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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4인종의 다리
작가 : 밈밈밈
작품등록일 : 2017.6.4

여주가 차원이동 됨. 그 세계에서 열심히 구르며 인간, 용, 도깨비, 구미호 등, 이 네 종족을 만나 일어나는 이야기.

-전개 느립니다.

 
코 꿰다_22
작성일 : 17-07-16 03:10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10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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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희는 루크가 없었으면 장미궁에 발 한번 디뎌보지 못하고 쫒겨 났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장미궁의 입구에 도착했을때 험악한 인상의 기사들이 백희 일행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왕이 아닌 다른 남자들이 장미궁에 들어서려고 하자 순식간에 검을 뽑아 들고 백희일행을 위협했다. 하지만 아롱씨앗등에 루크의 얼굴을 비추자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고개를 최대한 아래로 조아리며 길을 터주었다.

 

  이미 어둠이 내려 앉아 장미궁의 외관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성벽에 달려 있는 거대한 아롱씨앗등의 은은한 빛에 의해 일부분 드러난 장미궁의 정원은 얼핏 봐도 아름다움을 짐작케 했다.

 

  루크가 익숙한 걸음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장미궁은 백희 일행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워 졌다. 남자의 등장에 시녀들이 딸꾹질을 해대고 얼굴을 가리며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러다 백희일행의 맨 앞에서 걷고있는 루크를 발견하면 화들짝 놀란 모양새로 재빨리 고개를 조아렸다.

 

  장미궁 안에는 여자들 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성인 남자인 제파도와 유루린의 그림자만 봐도 겁탈이라도 당한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백희는 그녀들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제파도는 장미궁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왕과 왕자뿐이라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제파도와 유루린은 원래대로라면 들어올 수 없지만 루크의 왕자라는 지위와 책임아래 그들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었다. 제파도는 루크에게 감사해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저 멀리서 나이든 시녀와 그 뒤를 따르는 젊은 시녀 몇명이 빠르게 다가와 루크에게 예를 취했다. 루크가 고개를 들라는 의미로 '음.' 소리를 내자 나이든 시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왕자 저하. 이 늦은 시각에 어인일로……."

  "어마마마를 뵈러 왔다. 급한 일이니 서둘러 어마마마께 고하도록 해라."

  "예. 알겠사옵니다."

 

  나이든 시녀는 공손하게 대답한 후 재빨리 뒤돌아 뛰어갔다. 잠시 기다리자 그녀들이 다시 뛰어왔고 백희일행을 장미궁 안 깊숙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프레지아 하나크비'는 아름다운 눈썹을 있는 힘껏 찌푸렸으나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 그래지한이 아닌 다른 성인 남자 두명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못마땅해 했지만 그보다 더 못마땅한 사람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배키라고?"

 

  프레지아는 백희를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눈'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총애한다는 아이를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프레지아는 왕이 백희를 총애하는 것 보다 자신의 아들, 루크와의 행보에 더욱 촉각을 기울였다. 루크 왕자와 함께 공부하고 함께 훈련한다. 이는 대단히 파격적인 일로 로코의 여자가 남자와 같이, 그것도 왕자와 함께 '무술 훈련'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백희는 사자궁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이 모든걸 허락하는 그래지한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백희는 멍한 얼굴로 프레지아를 바라보았다.

  만인이 인정하는 아름다움 중 하나가 꽃이다. 그런데 마치 자기자신이 꽃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여자가 백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은발에 영롱한 금색 눈동자, 새하얀 피부, 빨간 장미꽃을 머금은 듯한 입술. 백희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며 중얼거렸다.

 

  "예쁘다……."

 

  백희의 중얼거림은 프레지아의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었다. 유루린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고 제파도는 살짝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루크는 자기 어머니가 예쁜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눈썹을 찡그리고 있던 프레지아의 표정이 살며시 풀어졌다. 프레지아가 새침하게 헛기침을 하며 다시 물었다.

 

  "흠. 흠. 네가 배키냐고 물었다."

  "아, 네. 제가 백희 입니다."

  "이 늦은 시각에 무슨일로 나를 찾아온 것이냐?"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백희가 프레지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을 미뤄두기 위해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그런 다음 간절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부탁했다.

 

  "루크 어머니. 제발 도와주세요. 제 시녀 위니가 아게한느 왕비에게 납치 당했어요. 루크 어머니 이시라면 도움을 주실 수 있다고 들어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백희와 유루린을 뺀 나머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백희를 바라보았다. 위니의 납치 사건 때문이 아닌, 백희가 프레지아를 '루크 어머니'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제파도는 입술을 깨물었다. 프레지아 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백희가 예법에 익숙치 않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무례하더라도 자신이 나서서 프레지아 빈에게 말했어야 했다.

 

  제파도가 속으로 자책하고 있을 때 루크는 경악으로 입을 쩍하니 벌렸다. 아무리 이세계인이라 할지라도 기본 예법 조차 모르다니! 속으로 분노하던 루크는 곧 '어마마마께서 저 계집에게 화를 내시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되었다. 물론 왜 걱정되는지 이유는 모른채였다.

 

  모든 시선이 프레지아에게 가서 꽂혔다. 프레지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유루린의 눈에 프레지아의 입꼬리가 들썩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용에게 잡히지 않는 것은 없었다.

  프레지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게한느라. 하루종일 머리카락 한올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그런 이유에서였군."

 

  그러자 백희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이유에서라니요?"

  "그 욕심 많고 머리도 덜 떨어지는 자의 고약한 취미가 그 이유다."

 

  감히 아게한느 왕비를 저런 모욕적인 말로 지칭할 수 있는 사람이 로코에서 몇이나 될까. 제파도는 속으로 프레지아에게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마마. 고약한 취미라 하시면은……."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프레지아의 말에 불안감이 배가 된 백희가 다급하게 외쳤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시면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난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프레지아의 대답에 백희는 온 몸을 굳혔다. 그것은 제파도와 루크도 마찬가지였다. 백희는 절망한 얼굴로 프레지아를 바라보았다. 제파도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루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프레지아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덜떨어지는 것의 취미는 더 마음에 들지 않아. 슬슬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백희가 멍청한 얼굴로 쳐다보자 프레지아가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내 오늘 루크왕자를 봐서 특별히 동행해 주도록 하지."

 

  프레지아의 말에 백희는 한쪽 눈에 눈물 하나를 매달고서 환한 얼굴로 프레지아에게 외쳤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파도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프레지아는 백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아마 '루크 어머니'라고 불리운 것이 제파도의 생각 보다 훨씬 기분 좋았던게 분명했다. 백희가 루크를 데리고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때 제파도는 프레지아에게 다가가 인사 했다.

 

  "마마. 감사합니다."

  "흥. 너희 좋으라고 그런거 아니다."

 

  프레지아가 새침하게 지나갔지만 제파도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프레지아가 직접 움직여 준다면 위니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셈이었다.

 

 

 

  백희는 아게한느를 대적할 수 있는 프레지아를 등에 업어 힘의 균형을 맞추었다. 프레지아는 자신이 부리는 시녀란 시녀는 다 대동했는데 그 이유가 빈 마마 답지 않게 괴팍했다.

 

  "수 앞에 장사 없다."

 

  그녀는 백희 일행을 이끌고 장미궁의 지하고문실로 향했다. 백희는 '고문실' 이라는 말을 듣고 눈 앞이 캄캄해졌으나 한 술 더뜨는 프레지아의 말에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혼자 오려고 했다고? 어리석긴. 그 멍청한 것이 눈 앞에 놓인 먹잇감을 보고 생각이란걸 할 것 같으냐? 그 자는 네가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네 온 몸의 살을 다 발라버렸을게다. 살이 다 발라지고 난 후에도 살아 있다면 그걸 기적이라고 하겠지."

 

  프레지아의 말에 루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어머니가 이렇게 괴팍한 말을 자주 했었나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거렸다. 제파도는 더욱 긴장했고 유루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백희는 자신이 그래지한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말에 부정하려 했으나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어느새 지하계단을 밟고 있었다. 끝없이 내려갈것 같았던 계단이 끝나자 지하감옥이 나타났다. 백희는 왕의 여자들만 있는 장미궁에 지하감옥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했지만 알 수 없었다. 많은 수용실을 지나 다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고문실로 가는 계단의 통로는 유독 좁고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들은 아롱씨앗등에 의지한 채 한줄로 서서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꺄아아악!"

 

  여자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백희는 눈이 뒤집혀 당장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앞서 걷고 있는 프레지아와 수많은 시녀들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프레지아도 그 비명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시녀들을 재촉했다. 맨 앞에서 아롱씨앗등을 들고 길을 밝히는 시녀가 속도를 높이자 일행은 더욱 빨리 고문실에 다가갔다.

 

  고문실 문에 다다랐다. 안에서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프레지아는 문에서 비켜서며 백희에게 눈짓했다. 백희는 손을 달달 떨면서 문고리를 잡았다. 묵직하고 차가운 기운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문을 열었다.

  백희는 지옥을 보았다.

 

 

 

 ***

 

 

  위니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사지가 쇠사슬에 결박 되어있었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이 창문하나 없는 커다란 방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에 널려있는 흉악한 물건들이 아롱씨앗등에 비춰져 위니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그때 여자 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가 배키라는 년의 가장 가까운 시녀라고."

 

  위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아름다운 여자가 아게한느 왕비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위니는 시녀들 사이에서 돌고 도는 소문을 알고 있었다. 아게한느의 취미는 고문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몰래 잡아들여 웃으면서 매질을 한다고 들었다. 아게한느의 소문을 떠올린 위니가 몸을 달달 떨고 있을때 아게한느의 시녀가 말했다.

 

  "남작가의 일곱번째 딸로 글을 읽을 줄 알아 그 계집이 총애하고 있다 하옵니다."

  "호오-. 계집이 글을 읽을 줄 알아?"

 

  아게한느는 짐짓 흥미로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얼굴은 잔혹하게 일그러져있었다. 그녀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왕비였지만 글을 모르는 아게한느는 똑똑한 프레지아나 그녀의 추종 세력들에게 멍청하다고 무시 당하기 일수였다. 자신의 콤플렉스인 글을 일개 시녀인 위니가 알고 있으니 화가 치미는 아게한느였다.

 

  "일단 매질 부터 시작하여라."

  "예, 마마."

 

  그렇게 위니를 향한 갑작스러운 매질이 시작되었다. 시녀는 무자비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위니의 몸은 결박되어 있어 도망치지 못했다. 위니가 비명을 질러댔다. 온 몸이 멍으로 도배 되었을 때쯤 아게한느가 손을 들어 매질을 멈추게 했다. 그녀는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배키, 그 계집의 정체가 뭐냐."

  "흐으윽……. 전, 전 모르, 옵니다."

  "이 채찍으로 치거라."

  "예, 마마."

 

  시녀가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위니의 살갗이 뜯겨져 나갔다. 위니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고 아게한느의 눈은 기쁘다는 듯 휘어졌다. 아게한느가 다시 손을 들었다.

 

  "그 계집의 정체가 뭐냐."

  "허억……. 허억……. 저, 정말…… 모르옵니다…."

 

  다시 채찍질이 시작 되었다. 아게한느가 다시 질문했다. 위니는 모른다고 했고 또 채찍질이 시작 되었다. 위니의 몸은 이제 걸레짝만도 못하게 변해있었다. 온 몸에는 피칠갑이 되어 있었고 입고 있던 옷도 너덜너덜하게 변해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위니는 정말로 백희의 정체를 몰랐다. 어딘가의 귀한 집 여식이라는 것만 알지 정확한 신분은 하늘에 맹세코 몰랐다. 하지만 백희의 신분을 안다고 해서 아게한느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위니는 그 동안 백희를 모시면서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아게한느가 자신의 두손을 얼굴 높이까지 맞잡으며 황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말하고 싶게 만들어 줘야 겠구나. 저 시녀의 손톱과 발톱을 뽑아라."

 

  악마의 목소리가 위니의 귀에 맴돌았다.

 

 

 

  위니는 눈물과 침을 흘리며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있었다. 손톱과 발톱이 다 뽑혀져 나갔다. 비명을 너무 많이 질러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위니의 머릿속은 단 하나의 소원만이 떠돌고있었다.

 

  죽고 싶어요. 차라리 죽여 주세요. 죽여 주세요.

  위니는 자신의 삶이 이 차가운 지하고문실에서 끝날 것임을 알았다. 자신에게 희망은 없었다. 일개 시녀의 죽음 따위 누가 신경 쓸까.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그저 더 이상 고통 없이 죽고 싶다.

 

  "자, 이번엔 뭘 해볼까?"

 

  아게한느의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위니는 두려웠다. 아게한느의 시녀가 위니의 손,발톱을 뽑을 때 목이 쉬어라 용서를 구했다. 저지른 잘못이 없었지만 무조건 빌었다. 하지만 아게한느는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위니의 몸이 덜덜 떨리는 그때 아게한느가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외쳤다.

 

  "그래! 눈을 뽑자!"

 

  위니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였다. 떨어졌던 살갗은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돋는다. 뽑혀져 나간 손톱과 발톱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온다. 하지만 눈은? 위니가 자신의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말했다.

 

  "…제발…. 제발……."

  "그 계집의 정체를 말할래? 그럼 눈을 뽑는 대신 새끼손가락을 자를게."

 

  아게한느가 아이같은 말투로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위니가 대답할리 만무했다. 위니는 애원하는 얼굴로 아게한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게한느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눈을 뽑아."

  "예, 마마."

 

  위니는 체념했다. 눈이 뽑히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삶이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 백희가 원망스러웠다. 아니다. 백희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원망스럽다. 아니야. 그녀는 잘못이 없어.

 

  아게한느의 시녀가 위니의 턱을 잡고 들어올렸다. 위니는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 반항했다. 얼굴을 이리저리 틀으며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다했다. 시녀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위니의 뽑혀져 나간 손톱 부분을 짓눌렀다.

 

  "꺄아아악!"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비명이 목에서 터져나왔다. 시녀가 쇠꼬챙이를 손에 들었다. 이제 끝이다. 위니는 누군가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준다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따르리라 생각했다.

  구해주세요. 누가. 제발. 제발.

 

  '덜컹!'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이 열리고 위니가 잘 알고 있던 목소리가 고문실을 울렸다.

 

  "위니!"

 

  아아, 나의 구세주.

 

 

 

 ***

 

 

 

  "위니!"

 

  백희는 거칠게 문을 열어재끼고 고문실 안으로 튕겨지듯 들어갔다. 온몸이 뜯겨져 나간 위니의 몸을 보자 백희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백희는 눈물을 쏟으며 아게한느 왕비를 쏘아보았다.

 

  "사람이……. 어떻게……?"

 

  백희는 충격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백희가 아게한느를 쏘아보고 있는 사이 프레지아와 그녀의 시녀들, 그리고 제파도와 유루린이 들어왔다. 루크도 들어가겠다고 소리쳤으나 백희의 시녀들은 무례를 무릅쓰고 루크를 꽉 붙들어 맸다. 루크의 어머니, 프레지아의 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게한느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우르르 들어온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막 시작 되려던 아름다운 비명 소리를 방해한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그 속에서 자신이 증오하는 프레지아의 얼굴이 보였다.

 

  "프레지아. 네가 여길 어떻게…?"

  "멍청한 것. 너 말고 다 아는 사실을 정녕 들키지 않을 줄 알았느냐?"

 

  아게한느는 프레지아가 자신을 '멍청한 것'이라고 지칭 한 것에 대해 크게 화를 내려고 했으나 곧 입을 다물었다. 아게한느는 프레지아의 등장에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프레지아가 '아무리 시녀라지만 죄 없는 이를 고문하면서 즐겁게 웃더라.' 하고 여론몰이를 한다면? 안그래도 장미궁에서 나갈 수 없는 금족령이 내려진 자신을 무시하고 비웃는 자들이 밖에서 활개 치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표독스럽게 치켜뜨며 되레 소리쳤다.

 

  "내게 무례를 저지른 건방진 시녀를 교육 시킨 것 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란이야!"

 

  뻔뻔한 목소리에 백희는 화가 치밀었으나 우선 위니를 살펴야 했기에 이를 악물고 무시했다. 백희가 위니에게 달려가자 아게한느의 시녀가 앞을 가로막았다. 당장 비키라고 소리치려던 그 때, 뒤에서 유루린의 손이 백희의 눈 옆에서 튀어나와 아게한느의 시녀의 손목을 잡아 뒤틀었다. 시녀의 손에는 쇠꼬챙이가 들려있었다. 백희가 몸을 부르르 떠는 사이 제파도가 서둘러 위니에게 다가갔다. 그가 위니의 사지를 결박하고 있던 쇠사슬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풀었다. 위니의 몸이 무너지자 제파도는 서둘러 받아들었다.

 

  "여기, 물 좀 가져와 주세요!"

 

  제파도의 외침에 밖에 있던 백희의 시녀 몇명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범벅이 된 백희가 위니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위니. 어떡해. 어떡해."

  "……배…키…님……."

 

  위니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백희가 위니의 손을 잡으려 하자 위니의 몸이 크게 움찔 거렸다. 백희가 의아한 얼굴로 위니의 손을 조심스럽게 들어보니 손톱이 사라지고 없었다.

  백희의 얼굴이 더 이상 일그러질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백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제파도의 고개가 백희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프레지아는 아게한느의 멍청함에 기가 질렸다. 상상도 하기 싫었지만 만약 자신이 아게한느라면 시녀 몇명을 고문실 밖에 세워뒀을 것이다. 그러나 아게한느는 단 한 명의 시녀도 밖에 세워두지 않았다. 오직 위니를 매질한 저 시녀와 함께 아게한느 자신의 취미를 즐길 뿐이었다. 아마 소문이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겠지만 그래도 너무나 멍청했다. 이미 소문은 퍼질대로 퍼졌기 때문이다. 프레지아는 이렇게 멍청한 여자와 같이 말을 섞고 있자니 자신마저 멍청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네가 겨우 시녀를 위해 움직였다고?"

  "정확하게는 내게 도움을 요청한 시녀의 주인, 배키. 저 아이 때문이다."

  "뭐? 어째서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는거지?"

 

  아게한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프레지아도 자신과 같은 왕의 여자였다. 그렇다면 그녀도 왕의 총애를 받는 백희에게 적대감을 갖는 것이 당연했다.

  프레지아는 속으로 멍청한건 너겠지를 생각하며 아게한느 쪽으로 다가오는 백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게한느도 백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게한느는 백희의 얼굴을 보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백희의 시녀를 잡아 족쳤는데도 불구하고 정체를 밝힐 수 없었다. 도대체 저 계집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죽음 같은 고통 앞에서도 입을 열지 않는단 말인가.

 

  백희가 아게한느의 앞에 섰다. 백희의 마음 속은 끓어오르는 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속에서 터지는 용암들이 백희의 온 몸을 휘돌았다. 백희가 손을 들어올려 아게한느의 뺨을 세차게 내려쳤다.

 

  '짝!'

 

  모든이의 시선이 백희와 아게한느에게 쏠렸다.

  아게한느는 자신이 맞을 줄 몰랐다는 얼굴로 벙쩌있었다. 프레지아도 눈을 크게 뜨며 백희를 바라보았다. 제파도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고 프레지아의 시녀들은 숨을 들이켰다. 백희는 로코 여자들의 정점 중 한명인 왕비의 뺨을 때린 것이었다.

  아게한느가 분노했다.

 

  "이 무엄한 계집 같으니! 지금 뭣들 하느냐! 저 무례한 계집을 잡아서 쇠사슬에 묶어라! 내 당장 네년의 얼굴을 도려내 버릴 것이야!"

 

  하지만 움직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게한느의 유일한 수족 한명은 아직도 자신의 눈을 한 손으로 가린 유루린의 자유로운 손에 잡혀 있었다. 아게한느는 그제서야 아차 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지금 당장 자신의 명령에 따를 시녀들이 아무도 없었다. 어째서 밖에 자신의 시녀들을 대기 시켜 놓지 않았는지 후회를 하며 당황한 목소리로 백희에게 소리쳤다.

 

  "네 이년! 당장 전하께 가서 고할 것이다! 나, 아게한느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백희가 무서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말해 보세요."

  "뭐야? 이 당돌한 계집이!"

 

  아게한느가 손을 들어올려 백희의 뺨을 내려치려고 했지만 백희는 손쉽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 챘다. 그리곤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당신이 저한테 저지른 모든 일을 전하께 말하겠어요."

  "하하하. 재밌구나. 전하께서 겨우 시녀 한명 고문 시킨 것에 눈하나 깜빡 하실 것 같으냐?"

 

  아게한느는 정말로 우습다는 얼굴로 말했다. 높은 위치에 있는 그들에게는 시녀 한명 죽어나가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것은 그래지한과 프레지아도 마찬가지였고 아직 어린 루크 또한 그랬다. 물론 고문을 취미로 일삼는 아게한느에게는 정나미가 떨어지지만, 어찌됐든 그들은 시녀가 죽으면 다시 채우면 되는 부속품 정도로 여겼다.

 

  백희도 그들의 반응만으로 이 곳의 인권이 얼마나 바닥인지 알게 되었다.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댄다고 해도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백희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게한느를 확실히 누르기 위해 자기자신과 그래지한을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 아침식사에 나왔던 바퀴벌레와 방에서 나왔던 쥐. 당신이 한 짓이잖아."

 

  아게한느는 얼굴을 찌푸렸다. 저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이 자신에게 하대를 하는것과 갑작스럽게 나온 바퀴벌레와 쥐 이야기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나는 그걸 전하께 말하겠어요."

 

  아게한느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겨우 그 정도 일로 왕께 고자질을 하겠다? 그녀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으나 곧 자신이 백희의 뺨을 내려치려고 했을 때 단박에 '폐위'를 입에 올린 그래지한이 생각났다. 아게한느는 눈썹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랬다는 증거라도 있느냐?"

  "당연히 없겠죠. 괴롭히는 사람이 마음먹고 저지르는 일인데 증거가 있겠어요?"

  "그래서 거짓으로 고하겠다?"

  "뻔뻔하시네요.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아두세요.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가치있는 사람이에요. 제가 전하께 사실이든 거짓이든 울고 불고 매달리면서 고한다면 당신은 당장 폐위. 아니. 그보다 더한 처사도 받을 수 있어요."

 

  아게한느는 백희의 당돌한 말에 주먹을 말아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백희는 그래지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제 입으로 말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이, 건방진 년이!"

 

  아게한느가 부르르 떨고 있을 때 백희의 입에서 평온하지만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죽고 싶으면 계속 날뛰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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