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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hopeness
작가 : 아웃
작품등록일 : 2017.7.1

느닷없이 찾아온 죽음.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 아득해져가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게 된 이자룡, 그가 다시 눈을 떴다.
처음 보는 사람들. 처음 보는 환경. 처음 보는 세계. 모든 것을 이세계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한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야 하는데...
“하인이면 하인답게 처신하라고. 알겠어?”
“예…. 명심하겠습니다.”
“됐고, 이름은?”
“이자룡입니다.”
“뭐가 그리 어려워? 바꿔.”
“부모님이 주신 이름인데 함부로 바꾸는 건 좀 그렇습니다.”
“뭐래? 내가 이름을 바꾸래? 호칭을 바꾸라고.”
“….”
시작부터 영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새로워진 자신과 반드시 지켜야할 것들이 있다. 이제 그는 남은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4-4 하늘에서 소녀가 떨어진다면
작성일 : 17-07-14 23:00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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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진짜 허우대만 멀쩡한 애구나….”

 “어떻게! 어떻게! 너무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어!”

 아…, 이 답답한 중생을 어찌해야한단 말입니까. 중요한 일이라고 자기가 말해놓고선 그걸 까먹고 있었다니. 배고프면 음식을 까먹든가 왜 중요한 걸 까먹고 앉았는지.

 “빨리 출발해야해!”

 리프렌이 담요를 소파 한쪽으로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허둥지둥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려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급함은 리프렌 그녀도, 나도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발길을 잡았다.

 “으갹!”

 다 큰 남자의 잠옷이 중학생만한 여자아이에겐 많이 헐렁할 것이다. 게다가 내 잠옷바지는 허리끈도 느슨해 리프렌이 여유롭게 움직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할 기색도 보이지 않았던 리프렌은 마음만 급했고, 그녀의 다급한 다리에 스르륵 내려간 잠옷바지를 밟았다. 이를 눈치 채지 못한 그녀가 앞으로 내달린 순간

 

 쿵!

 

 앞으로 고꾸라졌다. 말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는데, 무어라 말할 필요도 없이 꽤 아파보였다.

 “이 바지, 너무 커!”

 “내 거니까 당연하지.”

 “불편해!”

 “사이즈가 크니까.”

 “이 바지, 이제 돌려줄게!

 “돌려준다니, 그게 무슨….”

 말릴 기회도 없이 리프렌이 발목에 걸쳐진 잠옷바지를 벗더니 내게 돌려줬다. 정확힌 내게 던졌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그보다 바지는 왜 벗어던지고 난리야! 너 지금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있잖아!

 리프렌의 속옷은 현재 앞마당 빨랫줄에 매달려 산들바람에 한들거리는 중이다. 그 말인 즉, 현재 그녀의 하반신엔 실오라기 하나 없는 무(無)의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잠옷윗도리 사이즈가 커서 하반신을 가려주고 있다는 거다. 좀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듯했다.

 “잘 썼어! 그럼 이만!”

 “이만은 뭔 이만이야! 얼른 입어! 입을 옷도 없으면서 다 큰 여자애가 발랑 까져가지고! 얼른 입어!”

 “싫어! 뛰는 게 불편해서 못 입겠어! 그리고 어차피 이 옷만 있어도 가려지니까 상관없거든! 레이는 잔말 말고 비켜! 빨리 안젤라 찾아서 돌아가야 한단 말이야!”

 “안젤라고 나발이고 빨리 바지부터…. 잠깐, 안젤라라고?”

 “그래! 안젤라 데리고 학교로 돌아가야 해! 늦으면 아빠한테 혼날지도 몰라!”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잠깐, 잠깐, 잠깐! 급한 건 알겠어. 그래도 잠시만. 너 인크리아라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며. 그런데 왜 갑자기 안젤라가 튀어나와?”

 

 다시 들어봐도 리프렌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잘못 듣지 않았음을 알려줬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말을 바꾸는 거지?

 “당연히 안젤라가 인크리아니까 그렇지!”

 “안젤라가 인크리아라고?”

 이게 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지. 설마 이름 뒤에 붙는 성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안젤라의 성이 인크리아?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야?”

 그 순간 안젤라가 큰방과 복도를 잇는 문을 열며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자고 있었는지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뜬 듯 감은 듯 떠진 눈을 하고서. 옷차림은 평소 그대로인 걸 보니 나하고 이야기를 마치곤 그대로 쓰러지듯 잔 모양이다.

 “어?”

 “아!”

 그때 서로 눈이 마주친 안젤라와 리프렌. 방금 잠에서 깬 탓에 비몽사몽한 안젤라와 달리 리프렌의 눈동자엔 반가운 기색이 떠올랐다.

 “안젤라다!”

 리프렌은 안젤라가 채 그녀를 알아보기도 전에 그녀에게 안겨들었다. 안젤라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안겨든 리프렌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리프렌! 너 여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안젤라의 질문에 그녀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리프렌이 고개를 들었다.

 “당연히 안젤라 보려고 아빠한테 물어봤지!”

 정황상 두 사람은 분명 친구인 것 같은데,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락없이 우애 좋은 자매다.

 “아, 그 분이라면 아시겠네.”

 리프렌의 말에 그제야 안젤라가 리프렌의 방문을 이해한 모양이다. 안젤라가 리프렌의 아버지를 아는 걸 봐 아무래도 두 사람간의 유대가 제법 깊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찾아온 거야? 특별과제 때문에 바쁜 거 아니었어?”

 “다 못했지. 근데 아빠가 안젤라 불러야와 한다고 해서 쌩하고 날아왔지! 오다가 그리폰이랑 장난도 치면서 말이야. 헤헤.”

 “그랬구나.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느냐고 고생했어.”

 “뭘 그런 걸 가지고. 헤헤.”

 안젤라는 마치 친동생처럼 리프렌를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었고, 리프렌은 그녀의 손길이 기분 좋은지 해맑게 웃었다. 두 사람 분위기가 킨과 안젤라라는 조합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옷차림은 왜 그래? 그건, 네 옷이 아니잖아?”

 뒤늦게 리프렌의 옷이 그녀의 것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챈 안젤라가 내 잠옷윗도리를 보며 의아해했다. 단번에 내 옷이라는 걸 안 모양이다. 당연할 수밖에. 그녀는 이 잠옷을 촌스럽다고 여겼으니까.

 “응. 옷이 젖어서 레이가 빌려줬어. 그냥 입고 있으면 감기 걸린다고.”

 “젖어? 이렇게 맑은데?”

 안젤라가 화창하다 못해 쾌청한 하늘이 보이는 창밖을 보며 고개를 갸웃댔다. 하기야 구멍에 껴서 물을 부어줘서 꺼내줬다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

 어? 잠깐. 안젤라랑 리프렌이 친구 사이라면, 난 안젤라의 친구한테 물을 부은 거고, 안젤라는 친한 사람을 끔찍이 아끼니까….

 망했다…!

 “물론 화창했지! 날아가기엔 좋은 날씨였으니까.”

 “그럼 어쩌다가 젖은 거야? 호수에 빠지기라도 한 거야?”

 “아니. 레이가 나한테 물 뿌렸어. 그래서 이 옷을 줬고.”

 리프렌이 상의만 남은 잠옷의 옷깃을 안젤라에게 펄럭여보였다.

 홀딱 젖도록 물을 뿌렸다. 그래서 갈아입혔는데, 고작 남성용 잠옷쪼가리 하나뿐이다. 게다가 큰방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보이는 리프렌의 옷과 속옷. 여기서 안젤라가 나에게 보일 반응은?

 “데스볼.”

 “워워워워! 잠깐! 여기엔 보이지 않은 오해가 있다고요!”

 살벌한 눈초리와 멸시, 그리고 내 몸을 지져버릴 듯 안젤라의 손아귀에서 타오르는 데스볼. 이게 정답이다.

 “애를 홀딱 젖게 한 걸로도 모자라서 갈아입으라고 준다는 옷이 고작 네가 입던 잠옷, 그것도 꼴랑 상의 한 벌만 준 거야?! 대체 인성머리가 어떻게 돼 먹은 거야!”

 “아니, 그러니까 잠시만 제 말 좀 들어보시라니까 그러네!”

 “됐어! 성도착증 수석 환자 같은 놈! 어떻게 자기 여동생 뻘인 애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안젤라의 양손에 화르륵 데스볼이 타올랐다. 금방이라도 던질 듯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잠깐! 안젤라! 안젤라는 큰 실수를 했어!”

 그때 리프렌이 나와 안젤라의 사이를 양손을 펼쳐 막아섰다. 그래, 얼른 설명 좀 해줘! 내가 그렇게 막 되먹은 놈은 아니라고!

 “리프렌? 내가 무슨 실수를….”

 “거봐요, 제가 오해가 있다고 했잖….”

 “나 레이보다 나이 많단 말이야! 엄연히 말하자면 내가 누나라고! 내가 동생취급하지 말라고 말했잖아!”

 …뭔가 아주 많이 빼먹은 것 같은데. 게다가 이야기도 조금 틀어진 것 같고.

 “그리고 레이 괴롭히지 마.”

 그래! 그게 나와야지! 빨리 해명을 좀 해달라고!

 “(바지가)좀 불편하긴 했지만 (지금은 바지를 벗었으니까)난 괜찮아! (바지 없이 상의만 있는)이 옷이 어차피 다 가려주니까! 창피하지도 않고! 아래가 좀 허전하지만. 헤헤.”

 뺨이 옅게 붉어진 리프렌이 옷자락을 잡고 누르며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지금 이게 웃어넘길 일이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게 변질됐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그 심각성은 안젤라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을 보니, 그냥 체념하는 게 편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휴. 내가 못 살겠다 진짜.”

 하지만 무슨 일인지 날 째려보던 기세와는 다르게 안젤라는 손아귀에 일으킨 데스볼을 없앴다. 그리곤 여전히 불만이 잔뜩 전해지는 눈길을 던지며 다정한 손길로 리프렌의 손을 잡아끌었다.

 “넌 나중에 다시 천천히 이야기하자. 리프렌, 그 옷 말고 내 거 입자. 어렸을 때 입었던 게 몇 벌 있을 거야.”

 “응? 나 이거 있어서 괜찮은데? 편하기도 하고.”

 “절대 안 돼. 이 모습을 그대로 둔다면 내가 아저씨 얼굴을 볼 낯이 없어.”

 안젤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리프렌의 모습을 그녀의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게 떨떠름한 모양이다. 하기야 내 생각에도 많이 곤란할 거다.

 “내가 안 갈아입으면 안젤라 곤란해? 그럼 갈아입자! 안젤라가 곤란하면 안 되지!”

 안젤라가 곤란하다는 말에 군말 없이 그녀의 말을 따라주니.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레이크 넌, 후. 아니야, 그냥 커피 좀 끓여줘.”

 잠시 날 째려보던 안젤라는 이내 크게 한숨을 쉬곤 별 다른 말없이 시킬 것만 시키고 리프렌과 함께 큰방을 나섰다. 다행히 안젤라는 이번 건을 그냥 넘기려는 듯하지만, 뭔가 석연찮은 구석들이 많아 보였던 같으니 제대로 해명은 해줘야겠다.

 “하…, 아침댓바람부터 꼬일 대로 꼬이네. 후, 지친다, 지쳐.”

 어제는 잘 풀렸다 싶었더니 날 바뀌자마자 사람 열불 터지는 하루가 시작됐다. 신의 농간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여자아이를 헐벗겨놓은 변태가 될 수가 있냐고.

 “아, 그러고 보니 아침밥도 못 만들었네.”

 아침부터 지랄이 풍년이라 해야 할 것도 못하고. 아, 아 뒷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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