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요? 이거요?”
내 말에 지선은 내 손에 들려있는 명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뭐 성공한다고 저리 확신하니 한 번 해볼까?”
뒤에 있던 혼과 윤에게 장난이라는 신호를 보내며 웃으면서 물었다.
“맞아! 해보자! 재밌을 것 같아.”
“네. 뭐 우리 스스로 돈도 벌 수 있고 좋은 것 같군요.”
우리의 대화에 지선은 약간 뾰로통해졌다.
우리와 명함을 번갈아가면서 보며 얼굴을 약간 붉히려고 하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아니 아저씨들 내 수호천사라면서요! 연예 활동하랴 저를 돌볼 수 있겠어요?”
“난 천사 아닌데?”
지선의 말에 윤이 말대답을 했고, 그런 윤을 지선은 휙 째려봤다.
“미안.”
윤의 빠른 사과에 지선은 눈을 풀고 다시 우리를 봤다.
“네 한 번 해보시죠? 나 막 살 거야. 막 나쁜 짓도 하고, 막 살아버릴 거라고.”
그리곤 지선은 뒤를 돌아 집으로 가려했다.
“잠깐만 그럼 장은 어떻게? 우리 밥은! 처음 먹어보는 건데!”
윤이 집으로 가고 있는 지선을 향해 말했다.
“몰라! 밥 먹던지 말던지!”
이대로 두면 진짜 우리를 굶길 것 같아 우리는 장난을 그만 치기로 하고 지선에게 달려가 타이르기로 했다.
“지선아! 장난이야 우리가 그걸 왜해?”
“안하는 거야? 재밌어 보였는데.”
윤이 실망한 듯 말했다.
이쯤 되면 악마는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우선 이 악마 말은 듣지 마시고, 지 선양? 우리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순 씨의 표면상 직업은 이미 정해졌고, 저나 윤도 말씀은 안 드렸지만 직업이란 게 있습니다.”
“그래요?”
“네. 저희가 굳이 저런 일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에이 아깝다. 연예인 지인 두고 싶었었는데... 배고프다 우리 뭐 만들어 먹을까요?”
말하고 있는 단어의 의미와 말투가 다른 건 지선의 장기인 듯했다. 보통 자신을 숨기기 위해 저런 식으로 하지만, 지선은 무엇을 하든 다 표가 났다.
“우리가 아는 건 없고, 윤과 혼은 처음 먹는 인간의 음식이니 가장 자신 있는 걸로 해줘.”
“그러고 보니 순 아저씨는 처음 먹은 음식이 장례식장 음식이네요...”
지선은 갑자기 엄마가 떠올랐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난 두 손가락으로 지선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펴주고 이마를 살살 툭 쳤다.
“아닌데? 저번에 나랑 혼이랑 떨어졌을 때 너무 배고파서 먹었었지 윤이 준 15000원은 못 들고 나왔지만 내 옷차림을 보고 사람들이 돈을 줘서 그거 모으니 대충 1800원 정도 되더라고.”
“돈을 줘요? 왜요? 혼 아저씨는?”
“그야 그때 순 씨는 그냥 거지였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때 먹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것도 몰랐고,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잊어버리고 가지고 오지는 못했지만, 윤이 준 돈을 바꾸고 지선의 학교를 찾아 걸어갈 때 배고프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에게 100원, 500원 던져주는 인간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던져주는 것이 기분이 나빴지만, 혹시 모르니 주워 놓으라는 혼의 말을 듣고 던져 주는 것 마다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었다. 그렇게 모아서 나중에 확인 해보니 1800원이라는 돈이 모여 있었다.
지선의 학교 근처에 도착할 때 쯤 배가 고프다는 느낌을 넘어 배가 쓰리기 시작했었다.
난 참지 못하고 편의점에서 1800원을 사용하기로 하고 컵라면 하나를 사먹었다. 그 것이 인간으로서 나의 첫 끼였다.
“알았어요. 이렇게 부담을 주시네.”
지선은 곰곰이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곤 ‘역시 첫 끼는 이거지’ 하는 표정으로 다시 시장으로 걷기 시작했다.
“뭐하게?”
“비밀!”
지선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뭔가 설레어 보였다. 그리고 우린 시장에 도착했다. 시장에는 정말 다 있었다.
난 지선과 어릴 적부터 함께여서 시장은 항상 봐왔었지만, 윤과 혼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신기한 듯 “이건 뭐냐 저건 뭐냐” 다 물어 봤다.
나와 지선은 그래도 처음 와본 두 사람을 위해 하나하나 다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산 건 몇 개 안되지만, 집에 돌아오니 시간이 집에서 나간 후 2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물론 저녁시간은 진즉에 지났다.
그러는 바람에 윤과 혼은 처음 겪는 배고픔이 무척이나 괴로운 모양이었다. 둘은 배를 부여잡고 거실 여기저기를 뒹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아저씨들!”
지선은 사온 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재료는 떡, 어묵, 달걀, 고추장, 파와 김 등 여러 가지였다.
하나하나 살 때는 뭘 생각하는지 몰랐었지만, 막상 이렇게 다 꺼내서 보니 뭘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1시간 후 맛있는 냄새와 함께 지선은 우리를 식탁으로 불렀다.
“우와 이걸 뭐라고 하는 거야?”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지선에게 물었다. 하지만 지선은 바쁜지 대꾸를 하지 않고 있었다.
“분식이라고 하는 거야. 저기 빨간 건 떡볶이, 여기 김 안에 밥이 말려있는 건 김밥, 그리고 지금 지선이가 튀기고 있는 건 군 만두라고 하는 거고”
“분식~”
“이게 분식이군요.”
“다 됐다. 먹죠. 이제!”
군만두 까지 마친 지선도 식탁에 앉고 우리 넷은 한 식탁에 모두모여 음식만 보고 있었다.
지선은 우리가 먼저 먹어보길 바라는 눈치였고, 혼과 윤은 낯선 음식에 긴장 한 듯 보였다. 물론 나는 분식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먹는 건 처음이니 이 둘과 다를 게 없었다.
“안 먹을 거예요?”
“아냐 먹어. 먹어야지.”
우리 셋은 포크로 떡을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떡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고, 우리 셋의 표정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뭐야 이게...”
“왜요? 맛없어요?”
맛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먹었던 컵라면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지선의 표정을 보니 우리가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것 같아 우리 셋은 맛없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맛있어!”
음식을 먹고 내가 처음으로 입을 땠다. 지선은 그제야 자신이 차린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정말 맛있다는 표정이었다.
“인간의 음식이 원래 이런 건가요?”
옆에 앉아있 던 혼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내게 말했다. 나도 입을 가리고 혼에게 조용히 “아니”라고 말해줬다. 그나저나 지선은 맛이라는 걸 못 느끼는 것 같았다.
“특이해...”
“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지선이 입에 떡을 넣고 오물오물 하며 대답했다.
“아냐. 근데 떡볶이 재료 사려고 시장까지 간 거야? 그냥 가서 먹어도 되지 않았을까?”
“만들어 먹는 게 맛있잖아요. 시장은 그냥 오랜만에 가보고 싶었어요. 엄마가 있을 때도 고등학교 다니기 시작하면서 같이 못간지 오래 됐거든요.”
지선은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닌 것 같았지만, 분위기는 다시 숙연해졌다.
“에이 그러려고 말한 거 아니에요. 먹어요. 다들!”
분위기가 무거워진 건 맞지만 우리도 그래서 못 먹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렇게 우리 넷의 한 집, 한 식탁에서의 첫 식사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