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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더 포저(The Pauser)
작가 : 송지음
작품등록일 : 2017.6.1

[범죄·추리·미스터리·판타지·로맨스]
일시 정지된 시공간, 멈춰진 세상에서 범죄의 비밀을 쫓는다.
시간을 일시 정지할 수 있는 현이우. 특수범죄사무국의 영업팀 김수호.
이우에게 도착하는 의문의 메시지로 인해 스치게 된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과 시즌별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범죄 사건들.
각 사건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범죄조직의 최종 목표를 파헤치는 과정과, 이를 통해 발현되는 서로를 위한 헌신과 희생.
수호의 헌신을 통해 잠재된 능력을 깨워가는 이우의 성장을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시즌제 소설.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7
작성일 : 17-07-13 21:00     조회 : 301     추천 : 3     분량 : 8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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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듯이 달리는 심장소리가 수호의 고막을 쿵쿵 때렸다.

 “이우야!”

 빈 거실을 정신없이 둘러보던 수호는 침실로 뛰었다. 텅 빈 침실을 망연하게 훑어보았다.

 객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수호는 다급하게 방 밖으로 뛰어나갔다.

 객실 안으로 들어선 이우가 혀를 헤 내밀고 웃었다. 샌드위치와 캔 음료를 소파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뭐, 어, 너, 무슨, 언제, 아…….”

 더듬거리던 수호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부분 기억상실. 확실하다. 분명히 문제가 생겼다.

 수호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이우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수호의 넋 나간 얼굴을 잠시 보고 있던 이우는 망설여지는 입을 뗐다.

 “형 기억력, 아무 문제 없어요.”

 수호의 멍하던 초점이 이우의 얼굴 위로 맞춰졌다.

 “제가 그랬잖아요. 형 기억력 정상이라고.”

 “어?”

 수호는 제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 같은 이우의 말에 더 멍해졌다.

 “그게, 제가요.”

 갑자기 입이 마르는 기분에 이우는 소파 테이블 앞으로 주저앉았다. 음료에 빨대를 꽂아 한 모금 마셨다. 동상처럼 바닥에 박혀 서 있는 수호를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제가 시간을 좀 쓸 수 있어요.”

 “응?”

 “제가 시간을 잠깐 멈춰둘 수 있어요.”

 멍하던 수호의 정신이 텅텅 비워졌다. 이건 또 웬 갑작스러운 동화책 이야기일까. 요즘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시간 멈춰두고 저 혼자 십 분 정도 쓸 수 있어요. 지금 이거도.”

 이우는 빨대를 다시 물어 음료를 쪽 빨았다.

 “십 분 안에 사 오려고 막 뛰었어요.”

 수호는 이우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수호의 표정을 살피던 이우는 싱겁게 웃으며 말을 얹었다.

 “허황되죠?”

 수호는 이우 앞으로 천천히 주저앉았다. 이우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동공은 정상. 이마에 손을 짚어 올렸다. 체온도 정상. 이우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었다. 약간 빠르지만 정상 범주.

 이우의 헛웃음이 터졌다.

 “이우야.”

 수호는 이우의 이름을 괜히 불렀다. 눈이 또 뜨거워졌다.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자기 같은 강철심장도 눈물이 쏟아지는 소리를 어쩌자고 이우에게.

 울컥 치미는 눈물에 수호는 애먼 입술을 깨물었다.

 이우는 잘근잘근 씹히고 있는 수호의 입술 사이에 빨대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마셔요. 배고프죠?”

 수호는 엉겁결에 빨아올린 음료를 꿀꺽 삼켰다.

 “안 믿기죠? 근데 사실이에요. 형이 말했던 슈퍼맨 배트맨 외계인은 아니지만.”

 이우는 웃음을 흘리며 샌드위치 포장을 벗겼다.

 “이우야. 형이 헤어지자고 그래서 그래? 그게 형이 너 싫어서 그러는 게 아”

 “안 헤어져요 우리.”

 말을 가로막은 이우는 수호의 손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형 내가 붙잡았어요. 청테이프로 꽁꽁 묶어서. 내가 잡았으니까 형은 내 거에요.”

 제 말에 저가 찡해진 이우는 콧등을 찡그리며 히히 웃었다.

 “어딜 도망치려고. 손가락 걸었으니까 이제 얘기 끝이에요 끝! 빨리 먹어요. 형 배고프겠다.”

 이우는 수호의 손에 샌드위치를 올렸다. 수호는 멍한 눈으로 샌드위치를 쳐다보다가 다시 이우를 쳐다보았다.

 “야, 그게 무슨 소린지 형은.”

 “아유, 무슨 소리겠어요? 형은 국가기밀이고 나는 초능력자라는 소리지. 빨리 먹어요. 나 배고파요.”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문 이우는 수호의 표정을 살피며 배시시 눈웃음을 웃었다.

 수호는 멍한 눈을 껌뻑이며 이우의 웃는 얼굴을 빤히 뜯어보았다.

 

 

 수호가 웃는다. 평소 그 매서운 눈꼬리를 순하게 내려뜨리고. 저런 얼굴을 누가 또 할 수 있을까. 숨이 찬지 혀를 빼물고 헥헥거린다. 딱 강아지다. 빨리 뛰어오지 왜 저렇게 오래 걸릴까. 그 빠른 다리는 뭘 하고 있을까.

 너무 오래 달렸을까, 갑자기 눈매가 사납다. 분노일까. 왜 또 화가 났을까.

 아니다, 틀렸다. 두려움. 공포. 이마 가운데에 찍힌 점은, 무엇일까. 점이 커진다. 구멍이 된다. 흘러내린다. 붉은 액체. 혈액. 피. 수호의 피. 쫄랑아. 수호야. 김수호. 무슨 일이야. 수호…

 “야!”

 입 밖으로 뱉어진 음성에 기웅의 눈이 번뜩 떠졌다.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미친 듯이 빨라진 호흡에 눈앞이 어지러웠다. 낯선 몸의 떨림을 가누며 멍하게 허공을 쳐다보았다.

 총구멍으로 피를 쏟던 이마가 어른거리자 떨림이 온몸으로 번졌다.

 기웅은 눈을 감았다. 흔들리는 호흡을 가만히 가라앉혔다.

 목이 졸려 시뻘겋게 부풀었던 수호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진정되었던 떨림이 다시 전신으로 번졌다. 수호의 목을 감아쥐었던 오른손을 펼쳤다. 흔들리는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수호는 기가 막히다 못해 약이 오르고 있었다. 사람을 바보로 아나, 아무리 자기가 이우 앞에서 바보짓을 많이 했기로서니, 노바디까지 들먹여지는 상황에,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우주로 날아갈 것 같은 지경에, 심장이 뜯어지는 고통을 참고 헤어지자는 말까지 뱉은 이 마당에.

 “넌 지금, 너 형 놀리지?”

 이우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누구도 자신을 믿으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다시 확인받고 있자니 우울해졌다.

 “내가 형을 왜 놀려요.”

 “그러니까, 니가 시간을 멈춘다? 하! 차암 내.”

 이우는 입을 닫고 조용히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이우를 빤히 째려보던 수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우가 저런 헛소리를 할 사람인가. 기웅이라면 또 모를까.

 “그걸 형보고 믿으라고?”

 “믿지 마요, 그냥.”

 이우가 눈을 감은 채 대꾸했다.

 눈치를 살피던 수호는 쫓아가 머리맡으로 올라앉았다. 이우의 안색을 곰곰이 살폈다. 아픈 거 같지는 않은데, 헤어지자는 말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을까나. 아무리 그렇다고 뭐 이런 뚱딴지같은 소리를.

 “그럼 뭐, 너 형한테 증명할 수 있어?”

 이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

 ​“증명 아까 했잖아요. 샌드위치 시간 맞춰 사 오느라 진짜 힘들게 뛰었다고요. 늦으면 형 또 걱정하느라 야단할까 봐.”

 은근한 짜증이 섞인 대꾸에 수호는 떨떠름해졌다. 정말 시간을 멈춰놓고 나가서 사 왔다고? 저가 기억을 잘라먹은 게 아니고?

 조용해지자 이우는 슬쩍 눈을 떴다. 멀뚱멀뚱한 수호의 얼굴을 보다가 일어나 앉았다.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형도 몇 번 느꼈을 텐데요 뭐.”

 “응?”

 수호의 가슴에 시선을 세운 이우가 총상 위로 손을 올렸다. 수호는 제 가슴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 괜찮아 이제. 기웅이 형한테 갈 때마다 의사 만났어, 진짜.”

 “이거, 어떻게 다쳤는지 기억 안 난다고 했죠?”

 “어? 아, 글쎄, 총상 비슷하긴 한데.”

 “총상 맞아요.”

 “응?”

 “형 몸에 총알 들어갔었어요.”

 수호는 눈만 끔뻑였다.

 “그날 저 거기 있었어요. 제가 뺀 거예요. 총알.”

 “응?”

 “형이 총알을 튕겨낸 게 아니고.”

 말끝에 웃는 이우를 멀뚱하게 쳐다보던 수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야, 이우야. 너 총 만져는 봤어? 총알이 얼마나 빠른 줄 알긴 알어? 눈에 보이지도 않게 날아가는 걸 니가 무슨 수로 잡아?”

 이우는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 멈춘다고요 형. 제가 시간을 멈춘다니까요?”

 높아진 목소리에 수호가 눈치를 슬슬 보았다. 실없는 소리 하면서 뭘 저렇게 정색까지.

 “어떤 남자가 총 꺼내는 거 같아서 시간 세웠어요. 그래놓고 형 보니까 벌써 총알이 몸에 닿아있었고요. 그래서 제가 뺐다고요. 날아가는 총알을 잡은 게,”

 이우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날아가는 게 아니고 멈춰있는 총알 뺐어요. 응급상자 가위밖에 없어서 그걸로 뺐는데.”

 이우는 말을 멈추며 불쑥 한숨을 흘렸다.

 “미안해요.”

 “엉?”

 “시간도 없고 너무 떨리고, 급하게 파내는 바람에 상처 더 심해졌을 거예요. 너무 급해서 거즈 대충 뭉쳐서 총알구멍만 간신히 막았어요.”

 몸에 박혀있던 거즈뭉치, 수호의 입이 멍하게 벌어졌다.

 “기웅이 형 어깨에 총 맞은 것도.”

 수호의 말문이 꽉 막혔다. 기웅이 총상인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기웅이 그새 떠벌렸을까.

 “그때도 제가 가긴 갔는데 좀 늦었어요. 총소리 들리자마자 바로 시간 세웠는데 이미 총알이 어깨 뚫고 나가서.”

 잘린 손이 떠오른 이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지혈이라도 해야 될 거 같아서 제가 입고 있던 셔츠로 감고 기웅이 형 허리띠 빼서 조여 놨어요. 스컬 버클 붙은 거요.”

 수호는 얼이 빠졌다. 기웅의 해골 벨트. 피에 흠뻑 젖어있던 시뻘건 천이 이우의 셔츠였다고?

 “이래도 못 믿으면 어쩔 수 없고요.”

 시무룩하게 말을 맺은 이우는 샐쭉 눈을 흘겼다.

 “괜히 말했어.”

 볼멘소리를 뱉은 이우는 훌렁 드러누웠다. 수호처럼 예민한 사람이 시간의 끊김을 여러 차례 경험해왔으니 금방 믿을 줄 알았는데. 자신은 이 정도로 믿기 힘든 존재일까.

 “그럼, 그. 그 너 약 맞았을 때도? 그 막 울다가 형 옷 막 벗기고, 그날도?”

 정신없이 더듬거려진 말에 기억을 되짚던 이우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뜨거워진 얼굴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꽉 깨물고 대꾸했다.

 “그날 일은 좀 잊어버리면 안 돼요?”

 어벙하게 웃던 수호는 다시 멍해졌다. 이우의 감긴 눈꺼풀을 물끄러미 보다가 드러누웠다. 홀린 기분으로 천장을 멍하게 올려다보았다.

 “비밀 얘기해줄까요?”

 이우가 다시 말을 꺼내자 수호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형 지하철에서 도망치던 날이요. 그날 저 형 배도 만지고 복근도 구경했어요.”

 수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짚었다.

 “아… 뭐, 길바닥에 누워있을 때?”

 “아니요, 지하철에서 형 내 뒤에 서 있을 때요. 형 도둑질하기 전에.”

 수호는 그날의 지하철을 떠올렸다. 분명 조금 이상했었다. 이우 뒤에 서서 목덜미를 훔쳐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눈이 마주쳤었다. 자신의 빠른 반사 신경이 미처 시선을 피할 틈도 없이.

 “뭐야, 그럼 너.”

 수호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우는 수호의 표정을 살폈다. 이제 좀 이해했으려나.

 “나 넘어져서 잡았다는 것도 뻥이야?”

 이우는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는 약이 오르는 기분에 입술을 꽉 물었다. 그럼 그렇지.

 “참 내.”

 수호는 탄식을 흘렸다. 시간을 멈춘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자신이 이우에게 달리기로 잡힌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둘 중에 뭐가 더 말이 안 될까.

 “형 우리 집 처음 와서 자고 갔던 날이요.”

 이우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날도 제가 형 몸 막 뒤졌는데. 총도 구경하고 몸에 붙인 무전기도 구경하고.”

 이우는 새삼스럽게 뜨거워지는 얼굴을 베개에 묻으며 킥킥거렸다.

 “셔츠 걷어서 몸매도 구경하고 허벅지도 만져보고. 형 속옷도 봤는데, 파란색 팬티.”

 수호의 입이 떡 벌어졌다. 파란색 팬티. 쓸데없는 김칫국 마시느라 다음 진도 고민하면서 되짚었던 속옷을 떠올렸다. 그날 분명히 멀찌감치 떨어져 누워있던 이우가 갑자기 붙어서, 그것도 입술이 갑자기 붙어있어서 혼자 들이마셨던 김칫국.

 이게 말이 되는 걸까,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조화일까.

 한동안 벌어진 입으로 앉아있던 수호가 다시 이우를 돌아보았다.

 “그럼, 그러면.”

 눈을 감았던 이우는 실눈을 뜨고 수호를 보았다.

 “그럼, 지금도 막 세울 수 있어? 아무 때나?”

 이우는 잠이 쏟아지는 눈을 도로 감으며 대꾸했다.

 “네. 멈춰놓고 딱 십 분 쓸 수 있는데 연달아는 안 돼요. 시간 쓰고 나면 십 분 정도는 안 되더라고요. 십분 간격으로 세웠다가, 흘렀다가. 근데… 쓰고 나면 졸려서….”

 “졸려? 아, 그럼 그거, 기면증도 그거 때문이야?”

 조용했다. 대답을 기다리던 수호는 감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이우는 이미 잠들어있었다.

 

 *

 기웅은 밤새 뜬눈이었다.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뒤엉킨 정보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노바디가 현이우를 조준했다. 이유는 확인 안 됨.

 추가 현상금까지 총 백오십만 달러. 액수로 미루어보아 상당히 중요한 일. 원한일까, 복수하거나 갚아줄 일이 있을까.

 틀렸다. 그런 문제라면 벌써 죽이고 끝냈을 일이다.

 직접 죽여야 풀릴만한 일일까, 그렇다면 몸 어딘가를 망가뜨려서라도 데려가면 그뿐이다.

 약만 놓고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허진태의 증언대로 다치지 않게 생포가 목적. 흠집 없이 데려가야 하는 이유. 그게 뭘까.

 전영인. 아니, 조갑선. 노바디의 아시아 라인이라면 수뇌부 열댓 명은 모두 알고 있었다. 정확한 정보통에서 흘러나온 작년 초 명단을 쥐고 있다.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 일 년여 만에 탑 쓰리. 어떤 재주로 노바디의 눈에 들었을까.

 잔혹성일까, 실력일까, 둘 다 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카드, 그것이 현이우일까.

 기웅은 웃음을 흘렸다. 느낌이 음험하다더니, 수호의 사람 가려보는 눈 하나는 신의 경지다.

 전영인이 노바디 라인인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기세등등해서 우쭐하려나. 현이우를 잡아가려는 것까지 알면 한바탕 법석을 피우겠지.

 전영인은, 아니 조갑선은 현이우를 왜 여태 그냥 두었을까. 데리고 나가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데려가는 것이 전부가 아닌 걸까. 현이우의 협조를 구해서 시켜야 하는 일이 있는 걸까.

 현이우가 과연 범죄에 협조할 인물인가.

 기웅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괴어 받치며 이우를 떠올렸다. 단단한 성품. 몸은 여리고 인상은 부드럽지만 속은 대나무다. 맑다. 악이 없다. 그래서인지 당당하다. 제 눈에는 그렇게 읽힌다.

 게다가 수호가 가려낸 사람.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다.

 노바디는 현이우의 껍데기만 손에 쥐는 것을 원치 않는다. 현이우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 강제성을 띠지 못하는 어떤 것. 이우가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 그게 뭘까.

 기웅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발적이라.

 찌푸려진 이마를 긁적거렸다. 설마, 설마 수호의 말대로 마성이라도 있는 걸까, 노바디가 현이우에게 홀렸나. 제 디어로 지목이라도 한 걸까. 십오억을 걸어가며?

 기웅의 헛웃음이 터졌다. 홀린다는 말을 심각하게 뱉던 수호의 표정이 떠올랐다.

 놀랍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수호를 그렇게 바보로 만든 걸 보면 마성이 있기는 있는 걸까.

 추가로 수호를 지명해서 현상금을 걸었다. 현이우와 수호를 한꺼번에 포획해서 꿇리려는 계획.

 수호를 붙잡아두고 현이우에게 억지로 뭔가를 시키기라도 할 심산일까. 수호를 죽이겠다고 협박이라도 한다면. 길들이기 쉽지 않을 수호를 죽인다면.

 기웅은 가만히 심호흡했다. 문득 떠오른 구멍 난 이마를 털어내며 생각을 이었다.

 수호를 죽인다면 현이우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수호가 죽고 없어진 이후라면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반감만 살 것이다.

 그렇다면 수호도 생포 목적일 가능성.

 기웅은 또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 사나운 맹견을 생포한들 뒷감당이나 할 수 있으려나.

 노바디는 조갑선을 앞세워 현이우를 생포, 설득시켜서 무언가에 이용하려고 한다.

 현이우의 성품을 미루어 보아 범죄조직에 자진 가담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메시지로 현이우를 부르기 시작했다. 올 봄에 현상금까지 걸었다. 설득 전에 몸부터 잡아갈 생각도 있다는 것이다.

 현이우가 운이 좋았다. 메시지의 장소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단 한 번 약방까지 갔던 것을 수호가 찾아냈다. 용케도 여태 잘 빠져나갔다.

 기웅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저들의 소굴에서는 용케 빠져나왔다. 그렇지만, 조갑선은 지난 5월, 7월에 입국해서 현이우를 만났다. 이미 메시지가 오고 있던 시점.

 몸부터 잡아갈 생각이 있다면 왜 조갑선은 손을 놓고 커피나 마시며.

 찌푸려진 이마가 문득 펴졌다.

 ​“아….”

 기웅은 무의미한 소리를 흘렸다. 노바디의 수족들이 산발적으로 시도 중인 현이우 납치를 조갑선은 시도하지 않은 이유.

 조갑선, 전영인. 이우의 유일한 평생지기라는 전영인. 미끼 역할.

 현이우를 잡아들이고 전영인을 미끼로 가장하려 했을까. 전영인을 죽이는 시늉을 해서라도 현이우에게 뭔가를 시키려는 의도.

 그래서 조갑선은 두어 달이 멀다하고 이우를 만나러 들어왔던 걸까, 그 멀리에서.

 현이우를 꾸준히 만나고 관리하면서도 내심 자신이 없었을까. 자기가 죽는 시늉을 해도 현이우가 범죄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조갑선은 죽는시늉이 아니라 정말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죽을 것이다.

 조금 더 확실한 미끼. 그것이 수호일까.

 현이우가 제 감정을 전영인에게 충분히 설명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놈이 수호를 단 한 번 보고 미끼감이라고 느꼈을까. 두 사람의 감정의 깊이를 느꼈던 걸까.

 조갑선. 어떤 자인가. 예리한가. 명석한가. 교활한가. 악랄한가. 노바디 쪽의 정보력은 얼마나 될까. 수호의 직업을 알고 있을까.

 수호는 은밀하게 움직일 줄 안다. 빠르고 힘도 있다. 혼자서만 은닉한다면 눈에 띄지 않고 몇 년이라도 숨을 수 있다. 수호를 생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예 못할 일은 아니다. 노바디의 장수들 중 두어 명이 붙으면 잡힐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노바디의 오른팔이 직접 나서게 된다면.

 기웅은 이마를 괴어 짚었다. 노바디의 오른팔, 이드가 등장한다면. 게다가 현이우까지 옆에 있다면 잡힐 가능성은 더 커진다. 현이우 가드 노릇한답시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노바디의 두 먹잇감이 함께 다닌다. 노바디 입장에서는 이보다 쉬울 수가 없다.

 노바디가 원하는 일은 둘 중 하나라도 손에 넣지 못한다면 어려운 어떤 일일 것이다. 떼어놓아야 한다, 수호와 현이우를.

 방법은 하나뿐이다. 포기시키는 수밖에 없다.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현이우의 안전을 이유로 들어 수호를 설득하고 떼어 놓는다. 수호의 노출을 아예 공식화하고 퇴사시켜 숨긴다.

 현이우는 무슨 수로 설득을 시켜야 할까. 노바디의 이름을 거론해 본들 두려움을 알 리가 없다. 만일 현이우가 수호를 붙잡는다면, 매달린다면.

 기웅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현이우를 설득시킬 방법. 그것이 문제다.

 조갑선이 곧 입국한다, 나간 지 한 달 만에. 이번에는 조갑선이 직접 나서서 현이우를 데려갈 가능성이 있다. 김수호라는 새로운 미끼가 생겼으니. 현이우와 수호를 모두 포획할 계획일 것이다.

 김수호를 잡아들여 담보로 현이우에게 원하는 것을 얻는다.

 아니, 김수호를 잡느라 애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현이우 하나만 잡아도 제 발로 쫓아가겠지. 현이우 구한답시고.

 두 사람을 설득해서 떼어놓을 방법을 찾을 때까지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기껏 둘이 도망이랍시고 쳐 봐야.

 기웅의 입에서 또 헛웃음이 흘렀다. 호텔이 웬 말일까. 세계 각국의 잡종들이 다 드나드는, 어쩌면 가장 위험한 장소임을 정말 모르는 걸까.

 기가 막힌 웃음을 물고 기웅은 시계를 올려보았다. 병실 창밖의 하늘이 허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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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8 2017 / 7 / 14 278 2 6128   
42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7 2017 / 7 / 13 302 3 8739   
41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6 2017 / 7 / 12 317 3 5606   
40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5 2017 / 7 / 11 302 3 5872   
39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4 2017 / 7 / 10 277 3 6854   
38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3 2017 / 7 / 7 286 3 7879   
37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2 2017 / 7 / 6 301 3 8033   
36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1 2017 / 7 / 5 294 3 6492   
35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1 (완결) 2017 / 7 / 4 298 3 8147   
34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0 2017 / 7 / 3 294 3 7334   
33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9 2017 / 7 / 1 293 3 7110   
32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8 2017 / 6 / 30 295 3 6328   
31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7 2017 / 6 / 29 277 3 6536   
30 { 더 포저 시즌Ⅲ} 그들의 포커스 ... 6 2017 / 6 / 28 293 3 6688   
29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5 2017 / 6 / 26 333 3 4873   
28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4 2017 / 6 / 25 281 4 5613   
27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3 2017 / 6 / 24 282 4 5819   
26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2 (2) 2017 / 6 / 23 340 5 5239   
25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 (2) 2017 / 6 / 22 409 5 5234   
24 { 더 포저 시즌 Ⅱ} 아담의 비밀 ... 9(완결) (2) 2017 / 6 / 21 326 5 6978   
23 { 더 포저 시즌 Ⅱ} 아담의 비밀 ... 8 (1) 2017 / 6 / 20 301 5 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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