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뒤, 2020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이 곳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던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피청구인 대통령 박만수는 대기업 뇌물수수, 공무원 임면권(任免權) 남용,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였습니다. 이는 헌법과 법률에 중대한 위배가 되며 또한..."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헌법재판소장이 말을 잇는다.

　"자신의 정치적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23년 전 종로을 국회의원으로 재직할 당시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두려움으로 몸서리쳤던 연쇄살인사건을 이용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

　웅성, 웅성

　정적만이 감돌던 헌법재판소가 떠들석 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란스러움이 가라앉기를 잠시 기다리던 헌재소장이 다시 말한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만수를 파면한다"

　헌재소장의 판결 선고에 재판소 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부 사람들은 감격했는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면을 차지할 2020년 3월 20일.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민들에 의해 파면되었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이 파면됨에 따라 발 빠르게 특별법이 개정되기 시작했다.

　2020년 특별감찰관법의 파격적인 개정.

　개정내용

　1. 서울특별시, 6개의 광역시, 전국 9도에 각 1명씩 16명의 특별감찰관을 둔다.

　2. 특별감찰관의 명칭을 '암행형사' 로 칭한다.

　3. 암행형사는 이 법 개정 발표 이후 3개월 이내에 국가에서 날짜를 지정하여 전국적인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 합격여부는 개별통지 하되, 그 성적은 익명으로 대국민 공개한다.

　4.암행형사는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무원을 수사할 수 있음은 물론, 대한민국 수사기관에 대한 지휘, 수사권한 일체를 갖는다.

　5.암행형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파면되지 않는다. 단, 파면에 대한 대국민투표를 통해 전 국민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득하였을시 예외로 한다. ( 이 경우 투표 대상자의 인적사항은 비공개 하고, 대상자의 파면투표 사유에 대해서만 공개한다 )

　6.이 법은 공표 1년 후부터 효력을 갖는다.

　"이야, 법 참말로 믓지네. 행님 이제 검찰총장이고 대통령이고 까딱하면 한방에 다 모가지 아니것소?"

　모니터로 개정된 특별감찰관법을 훑어 보던 한 남자가 옆에 있던 다른 남자에게 말했다.

　"참말로. 암행어사 현대판이여~ 옛날 사또 볼기짝 치는 기분이겠구먼"

　"시방, 행님이 사또를 봤소? 저기 동네 구녕가게에 파는 사또밥이나 먹어봤겠지"

　"이 시펄놈이.. 근데 왜 암행검사도 아니고 암행형사냐? 가오떨어지게"

　"에헤이 좆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암행검사 했다가는 또 힘 이빠이 쌘 검사나으리들끼리 다 해 쳐드시겠지. 검사잡는 형사. 아따 가오 사는구먼"

　"나도 한자리 해먹어보게 도전혀봐?"

　"아 행님같은 꼴통이 얼어죽을"

　"야 이새끼야. 거 어사나으리들 뒷꽁무니 따라 몽둥이 들고 따라다니는 놈들 있잖아. 내가 그냥 문을 쾅 차고! 암행어사 출..!아니, 암행형사 출두야! 하면 다 놀라 자빠질거 아니여"

　"행님 쌍판으로 몽둥이 들고 들이대불면 아들이 쫄기야 하긋지"

　"이 문디새끼가...."

　형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주먹을 치켜들자 깐죽거리던 남자가 급히 말한다.

　"아 성님, 근데 박만수 그놈도 참 악독한 놈 아니요?"

　딱!

　"어디 화제전환 질이여. 살살 말 돌리는 꼬라지가 아주 그냥 박만수여. 손모가지 날려불라"

　"아고..."

　남자가 꿀밤을 맞은 머리를 문지르며 말한다.

　"쓰~벌. 성님. 아무리 그래도 박만수는 심하지 않소!?"

　진짜 성난 듯한 표정의 남자가 큰 소리로 외치자 형님으로 불린 남자가 고개를 숙인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심했구먼.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장난이라도 그런 욕은 함부로 하지 마시오, 성님!"

　"아 알았네 알았어. 거 참, 우리 어여쁜 동생님을 미치광이 살인마 취급했으니 내가 죽일 놈이여"

　형님으로 불리는 덕만을 잠시 쏘아 보던 남자가 말한다.

　"근데 박만수 그 인간이 했다는 일이 정말 사실이오?"

　남자의 물음에 덕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철식 그 살인마를 이용해서 죄 없는 사람을 3명이나 보내버렸제"

　"아니 박만수 그 미친놈이 죽인 사람 중에는 이제 갓 스무살 넘은 핏덩어리 대학생도 있었잖아요? 그 아가 자기 정치질 하는데 무슨 방해가 된다고..."

　"그 아 아부지가 그 때 주민당 대표였던 유재철씨잖어. 충격 한번 오질나게 주고 싶었는갑지"

　"미친놈... 아가 뭔 죄여... 오철식이 그 살인마 놈은 지가 안죽인 것까지 다 덮어쓰고 우찌 수십년을 살았다요?"

　"너 다큐 안봤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덕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가 지 입으로 얘기했잖여. 한 사람이라도 더 해방시켜주는게 자기 목표였다고"

　"그건 뭔 말이여?"

　"너 Liberty가 무슨 뜻인지 알어?"

　"아 리버티 알지. 가씨나 옷 아니요?"

　"무식한 놈... 자유 말이여. 몰라?"

　"아 알죠. 그래서 거 코쟁이들 나라에 자유의 여신상을 리버티 스톤이라고 부르지 않소!?"

　남자의 무식함이 덕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니랑 얘기하니까 내가 수준 떨어지는 느낌이다야"

　머쓱하게 웃던 남자가 다시 묻는다.

　"아 그래서 그 미치광이 살인마가 다큐 나와서 뭐라든데요?"

　"자기가 일면식도 없는 여자들을 죽인 이유가... 삶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라고 하드라.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죽음이라는 자유로 해방시켜 준다고. 그래서 주구장창 시신을 그렇게 훼손했다드라. 스님이 부적 붙이는 것 마냥..."

　"진짜 또래이네. 그래서 왜 지놈이 안죽인 남자들까지 지가 다 안고 갔디요? 워낙 흉악한 놈이라 지 죗값만으로도 죽을 때 까지 징역살이 해야 겠지만서도..."

　"니 정말 몰라서 묻냐?"

　덕만의 말에 남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덕만이 계속 말한다.

　"어차피 지가 저지른 일만으로도 평생 빵살이 해야 할 놈이여. 지 손으로 사람 죽이고 해방시켜줬다고 자랑스러워하는 미친놈인데... 또 다른 미친놈이 지가 자랑스러워하는 일을 지 이름으로 거들어주겠다고 하면 좋아 죽것지"

　"아하~ 거기에 거들어 주겠다는 놈이 금뱃지 단 양반이면 더 껌뻑 죽겠네요"

　"박만수 그 놈이 지 정체를 밝혔을 리가 있겠어? 지 아랫놈들 시켜다가 그 지랄을 했거나, 과잉충성했겠지. 아무튼 박만수 그 밑에 놈들까지 다 색출해서 모가지 해야해. 지금 쯤 다 한자리씩 꿰차고 있을 것 아니여"

　"어휴... 박만수 하나 모가지된다고 끝이 아니구먼... 나 같은 촌동네 무지렁이만 죽어나지. 성님, 촌 무지렁이는 이만 집에 갈라요"

　남자의 말에 덕만이 버럭 성을 낸다.

　"아 가긴 어딜가! 한잔 안할거여?"

　"한잔은 무슨. 더 늦으면 마누라한테 죽소. 갑니다 성님"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남자를 바라보던 덕만이 혼자 중얼거렸다.

　"요샛말로 오늘은 혼술해야 겠구먼"

　그리고 다시 1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