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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미안해,너를 사랑하고 있어
작가 : 조세핀D
작품등록일 : 2017.6.27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엄마를 찾아갔다.
약혼녀가 있는 남자와의 결혼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는 엄마. 엄마에게 모진 말을 남기고 길을 걷다가 정신을 잃고 눈을 떴더니, 다른 세상이다. 인혜가 아닌 아랑으로 살아야 하는 세계.
친절한 노모에게 속아서 벙어리 공주 대신 '환'이라는 거대제국에 조공물품이 되었다.
화려하고 잔인한 남자의 밤시중을 들게 되는데... 강압적이었던 밤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버렸다. 냉정한 세계에서, 살아갈 목적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혜.

'난, 왜 이곳으로 오게 된 걸까? 벌 인걸까? '

가장 보잘것 없는 신분으로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각자, 자신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게되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배신과 사랑....

황권을 쟁탈하기 위한 환 제국 왕자들의 다툼 속에서 원치 않던 정치싸움에 휘말려버리게 되고...지극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남자. 환의 태무황자는 어느새 그녀를 마음에 담아버린다.

자신이 남긴 상처때문에 차마 사랑을 고백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남자. 태무.

"미안해. 그렇지만 그대를 사랑하고 있어."

수없이 연습했던 고백을 그녀에게 할 수 있을까.

생존과 욕망, 그리고 사랑. 그 속에서 서로의 의미를 찾아가는 판타지 로맨스.

 
2장. 운명의 수레바퀴1
작성일 : 17-07-13 18:45     조회 : 327     추천 : 0     분량 : 1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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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운명의 수레바퀴1

 

 태을황자의 생일 연회가 시작되었다. 혹자의 말에 따르면 태을 황자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했고, 그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태무황자의 궁에서 성대하게 장장 일주일간 열린다고 한다. 보통 3일~5일 정도로 생일 연회가 열리지만, 권력의 실세인 태무황자의 바로 아랫 동생이기도 하면서, 이 연회를 빌어서 남지환의 시장에 활력을 더하려는 계산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이라는 기간이 정해진 터였다. 야시장 또한 일주일이나 지속되기 때문에, 다른 후궁들에서는 야시장에서 여러가지 물품들을 사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슬로타샤 국의 옆에 위치한 테르난 국에서 들여온 정력제라든가, 여인들에게만 전해진다는 방중술이 적힌 책이라든가, 성노예들 등 주로 태무황자를 꼬시기(?!)위한 비책들을 마련하기 위해 바빴다.

 

 그와 달리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달의 전각이다. 그러나 때때로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그 비명 소리는 다행히 처소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았다.

 

 "으아악, 또 망쳤어. 이 비누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모양을 갖추게 되는 걸까? 또 빨래비누만 늘어나게 생겼네."

 

 구시렁거리며 한탄하는 아랑 옆으로 주아가 다가왔다.

 

 "아가씨.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걸까요? 잿물을 오래 두어서 걸러도, 일정량 이상의 독소가 제거되지 않으니 말이에요."

 

 "그러게나 말이야. 이 독성을 제거할 무언가가 필요한데. 향낭가게에서도 하마르의 비법을 이렇게 저렇게 알아보려고 하는데, 그 쪽은 향기를 내는데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독소를 제거하는 기술은 그다지 없는 것같애. 기껏해서 독을 가진 꽃들에서 독을 빼는 일인데, 그 방법도 대부분 우리가 해본 아주 쉬운 방법이거든. 뭔가 독성을 제거하는 약초라든가 이런걸 알아봐야 하는 걸까? "

 

 "그럼,아가씨, 오늘은 향낭가게 일이 끝나고 바로 돌아오지 마시고, 주변에 약초상단이라든가, 가게라도 가보세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봐 바로 들어오시느라 그런 곳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어도 못 갔잖아요. 오늘은 아마 연회날이어서 다들 금의 궁으로 몰려갔을 테니까 크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우리를 찾는 일은 없을 거에요. 저도 오늘 만큼은 금의 궁으로 가서 음식을 나르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오오! 그럼, 그럴까? 좋아. 오늘은 그럼 약초상단을 다녀와야겠다. 주아도 오늘 너무 무리하지 말고, 무거운거 막 들다가 다치지 말고! 나는 그럼 다녀올게!"

 

 씩씩하게 벌써 저만치 뛰어나가버리는 아랑을 바라보며 주아는 조심하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늘 주아는 금의 궁의 일을 도우며 동태를 파악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랑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자신 없이 혼자 멀뚱멀뚱 이 전각에 있는 것 보다는 뭐라도 할 일이 있는 것이 좋았다. 잘 되었다며 주아도 금의 궁으로 향했다.

 

 오늘 따라 붐비는 향낭가게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던 주아는 하마르의 선물이라며 '달밤의 초대'라고 이름 붙여진 향낭을 받았다. 혹여나 차고 있다가 누구라도 유혹할까 싶어서 얼른 보따리 깊숙한 곳에 넣었다.

 

 평소에 지나다니다 눈여겨 본 약초가게에 들렀다. 약초 상단이 가게를 겸해서 하고 있다고 하마르가 설명해주었다.

 

 "실례합니다. 뭐 좀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빼꼼히 안으로 들어오는 아랑을 바라보면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이 인사를 건넸다.

 

 "네, 어서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아랑은 평소 생각했던, '약초가게의 인자한 할아버지'가 아니라 젊은 청년이 인사를 하는 통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순진한 아가씨가 아닌 척 조금은 다부진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저는 독성을 제거하는 약초를 찾고 있는데요. 그런 것들을 볼 수 있을 까요?"

 

 "독성을 제거하는 약초라... 워낙 종류가 다양해서... 주로 어떤 용도인가요? 누가 아프기라도 합니까?"

 

 날카로운 눈빛으로 청년이 물었다.

 

 "아, 아픈게 아니라요. 제가 뭘 좀 만들려고 하는데, 이게 손이나 피부에 닿으면 피부가 녹을 정도로 독성이 강해요. 음........ 어떤 거냐면 불에 타고 난 재를 물에 타서 숙성시키면 그런 상태가 되는데요. 저는 여기서 독성만 없애고 싶어요."

 

 "흐음. 흥미롭네요. 실례지만 어떤 용도로 그런것들을 만들고 있죠? "

 

 혹여나 독극물 같은 것을 만드는 건 아닐까 의심하는 걸까? 지나치게 자세하게 물어보는 청년이 부담스러운 아랑은 대뜸 화를 냈다.

 

 "제가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나요? 자꾸 이렇게 죄인을 취조하듯이 물어보시면 다른 곳으로 가겠어요."

 

 훽 돌아서려고 하는 아랑을 급히 붙들며 청년이 조금 부드러운 말투로 달랬다.

 

 "아, 손님. 취조가 아니라, 조금 더 손님에게 도움을 드리려고 여쭤본 것입니다. 그럼 일단 독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약초를 몇가지 드려볼게요. 댁에 가셔서 시도해보시고, 아니라면 다시 오셔서 다른 약초들이 구입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아랑은 짐짓 못이기는 채 다시 들어가서 몇가지 추천 받은 약초를 구입했다. 청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또 오라며 배웅했다. 왜냐하면 아랑이 구입한 약초가 생각보다 고가였기 때문에, 청년은 한 눈에 아랑이 고급 약초를 자주 사러 올것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휴. 정말 장사꾼들은 대단해. 얼굴이 여러개라니까. 하긴 하마르 아저씨도 가끔 그럴때마다 얼마나 섬짓한지."

 

 어느 곳이나 장사꾼들은 장사꾼들이라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아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약초가게도 들러보기로 했다.

 

 방금 구입한 가게와는 두 골목 떨어진 곳이었는데, 훨씬 더 규모가 커다랬다.

 

 "어서오십시요. 테마르칸 상단의 약초가게 입니다. "

 

 "헉."

 

 인사말을 듣고 곧바로 발을 돌려 나가려는 아랑을 붙잡으며 예쁜 여자아이가 설명을 계속했다.

 

 "어머, 손님. 테마르칸 상단의 약초가게에는 없는 약초가 없습니다. 또, 원하시는 약초를 가장 빠른 시일내에 구비해드릴 수 있는 최고의 상점이기도 하죠. "

 

 나가려다 붙잡혀서 안쪽으로 들어온 아랑은, 여자아이의 설명처럼 끝 없이 전시된 약초병들과 봉지들에 입을 쩍 벌렸다.

 

 '어마어마하네. 테마르칸이 약초가게 까지 한다면, 이건 대기업의 횡포가 되는 것 아닐까? 다른 소규모 상점들을 잡아먹을 가능성이 커.이거이거 황자가 아주 바닥끝까지 긁어모으려고 하는 걸까나.'

 

 정치학도로서 시민단체에서 활동해 보았던 아랑은 저 세계에서 보았던 대기업들의 횡포를 떠올렸다.

 

 '이거이거, 정경유착이 아닐 수 없군.'

 

 분석하던 표정을 가다듬으며 아랑은 독성을 제거할 수 있는 약초들을 물어보았고, 여자아이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아랑을 더 깊은 곳으로 유도했다.

 

 '동선을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바깥으로 다시 나올 수 있게 만들었군. 정말 대단한 수완가임에 틀림없어.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다른 소규모 상단들은 감히 따라갈 수도 없겠는 걸.'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아랑은 테마르칸 상단을 이끈다는 두 황자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욕심많은 잔인한 형제인 줄만 알았는데, 머리까지 좋은가보다.

 

 몇 가지 원하는 약초들을 구입한 후에 아랑은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 윗층에서 내려오던 남자와 부딪칠뻔 했다.

 

 "엇, 죄송합니다. "

 

 그때, 아랑의 콧 속으로 어떤 향기가 느껴졌다. 매혹의 향낭! 하마르가 경쟁자의 역량을 파악해야한다며 아랑의 코로 들이 밀었던 향이었다.

 

 "매혹의 향!"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눈 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건을 쓰고 머리 부터 발끝 까지 검은 옷으로 휘감은, 커다란 키의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남자가 자신을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손님인가."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얼른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손님께서 윗층도 구경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총 단주님."

 

 '총 단주? 총지배인 같은 건가?'

 

 남자는 손님이라는 말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나 손님을 존중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예의상 숙이는 느낌이었다.

 

 "제가 길을 막았군요. 올라가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아랑은 총 단주라는 사람도 누군가를 유혹하게 위해 안달이 났나보다고 생각하면서 매혹의 향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마르가 좀 더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올라가려는데, 고의인지 모르게 남자가 아랑의 보따리 쪽으로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아랑이 들고 있던 보따리 주머니가 떨어졌다.

 

 "엇!"

 

 "이런, 죄송합니다."

 

 떨어진 보따리에서 방금 전 구입한 약초주머니와 하마르가 준 향낭주머니가 빠져나왔다. 아랑은 몸을 굽혀서 정신없이 주워담았고, 남자도 몸을 수그리며 주머니를 담아주었다.

 눈 앞의 남자의 덩치에서 위압감을 느낀 아랑은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괜찮아 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신 보다 커다란 남자의 더욱이나, 몸을 어두운 비단으로 칭칭 감은 남자의 앞에 있으니 절로 몸이 굳고 손이 떨려왔다.

 

 "괘,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그냥 두세요!"

 

 약간은 신경질적인 말투로 눈 앞의 남자의 행동을 제지한 아랑은 떨리는 손 때문에 자꾸 주머니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눈 앞의 남자는 아랑의 만류에도 주머니를 같이 주웠다. 그때 남자의 손에 하마르의 향낭이 잡혔다.

 

 "이것은.."

 

 향낭의 집던 남자는 그것들 들어 코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살짝 눈을 떨었다. 아랑이 보기에 남자의 놀란 표현인 것 같았다.

 

 "실례지만 손님. 이 향낭은 어디서 구입하셨습니까?"

 

 "그 향낭은 저희 가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향낭입니다. 이름은 '달밤의 초대'라고 해요."

 

 두려움에 손을 떨던 아랑은 남자가 향낭에 보이는 관심이 반가워서 두려움도 잊고 향낭을 소개했다.

 

 "저의 가게 주인인 하마르님께서 특별히 태을 황자님의 생신 연회에 맞춰서 개발하신 향낭이에요. 향이 참 오묘하죠? "

 

 테마르칸 상단의 총 단주라는 얘기에, 얼른 향낭을 홍보했다. 하마르의 향낭을 좀 더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향이 깊고 오묘합니다. 이 향을 구입하고 싶은데, 하마르의 상점으로 찾아가면 됩니까?"

 

 곧바로 구입 의사를 말하는 남자를 보면 아랑은 반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네! 그럼요. 언제든지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남자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여자가 향낭을 산다는 말에 고개를 들고 밝은 표정을 짓자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대량으로 구입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가능합니까?"

 

 그 말에 얼굴이 활짝 핀 얼굴로 눈 앞의 여자가 곱게 눈을 접었다. 볼우물이 패도록 활짝.

 

 "제가 안내해드릴까요? 어차피 제가 가는 방향도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하마르가 정말 좋아할 거에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좋아하는 여자를 보면서 남자는 속으로 피식거렸다.

 

 '장사꾼 기질은 보이지 않는군. 감정이 온 얼굴로 드러내다니.'

 

 아랑은 떨어진 주머니들을 모두 주워담고는 남자에게 서둘러 나갈 것을 종용했다.

 

 "이 곳은 내일 다시 와야겠네요. 자, 어서 서둘러서 가요. 다 팔릴지도 모르니까요."

 

 남자는 자신의 뒤에 조용히 서있던 두어명의 호위들을 눈짓으로 물리고는 아랑의 뒤를 따랐다.

 

 어느새 남자는 아랑의 뒤가 아니라 옆에서 걷고 있었다. 남자는 원래 말이 없는 눈치 였고, 아랑 또한 말이 없어서 처음 패기와는 다르게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저... 테마르칸의 총 단주님 이시라면, 가장 많은 책을 관리하는 곳이 왕궁 말고 다른 곳이 또 있는지 아실까요?"

 

 어색함을 깨고자 조심히 질문하는 아랑을 보면서 남자는 어렵지 않게 대답해주었다.

 

 "왕궁 이외에 가장 많은 서적을 보유한 곳은 테마르칸 상단의 개인 서고 입니다"

 

 "개인 서고요? 아.......... 그렇군요. 찾고 있는 책이 있는데, 일반 책방에서는 팔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여쭤본게요."

 

 풀죽은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특별히 찾으시는 책이 있습니까."

 

 도움을 줄 것 같은 남자의 말에 아랑은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 관한 책이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줄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또, 그런걸 물어도 쉽게 도움을 주려고 할까?'

 

 아랑의 표정에서 많은 생각들이 오가고 있다는 것을 본 남자가 다시 말했다.

 

 "아주 좋은 향낭을 찾게 도와준 보답으로 도울 수 있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말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찾는 건 별거 아니에요. 신경쓰실 필요없습니다. 제가 좀 더 책방에서 찾아보면 될 것 같아요."

 

 아랑은 남자의 호의를 거절했다. 아직은 이 사람을 믿을 수도 없을 뿐더러, 아랑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은 사람을 신뢰하는데 있어서 꽤 신중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호기심이 옅어지도록 아랑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실례지만 향낭을 어디에 쓰시려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남자는 아랑이 호의를 거절하면서 회피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자연스레 아랑의 의도를 따라주었다.

 

 "태을 황자님께 선물로 드릴예정입니다."

 

 역시나, 그런 용도였구나. 그 태을 황자는 이 향낭으로 또 얼마나 많은 여인들을 취할까.

 

 "아, 그렇군요. 최고의 선물이 될거에요."

 

 어색한 질문 몇가지가 더 오가고 나서, 하마르의 가게에 도착했다. 아랑은 하마르를 불렀다.

 

 "하마르! 손님이에요. 하마르의 '달밤의 초대'를 찾아요"

 

 '달밤의 초대'를 찾는 다는 말에 헐레벌떡 뛰어나온 하마르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서오십시오. 손님. 안목이 아주 탁월하시군요. '달밤의 초대'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어떤 연인이든 향으로 넘어오게 만들수 있는 최고의 향낭입니다. 또한 그 향이 은은하면서도 깊이가 있어서 향을 맡는 순간............"

 

 향낭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는 하마르를 말리며 아랑은 남자를 곁눈질 하며 말했다.

 

 "하마르. 이 손님은 테마르칸 상단에서 오셨어요. 태을 황자님의 선물로 대량으로 구매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 말에 반색을 하며, 하마르가 잃어버린 남동생을 찾은 듯 반갑게 뛰어왔다.

 

 "아이고, 어서오십시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네요. 찾아오시는데 어렵지는 않으시던가요? 테마르칸에서 오시다니요. 정말 귀한 걸음을 하셨습니다~."

 

 그냥, 잘 걸어왔다. 별로 멀지도 않았고. 안내하느라, 어색한 분위기를 깨느라 애쓴건 오히려 아랑이었다.

 

 "'달밤의 초대'를 지금 보여주게."

 

 "자, 자아 이 쪽으로 오시지요.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하마르의 입장에서 보면 동쪽에서 나타난 귀인으로 여겨지는 남자를 인계하고 아랑은 조용히 뒤돌아섰다. 이제 돌아가야 하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역할은 끝났으니까.

 

 그때, 돌아서는 아랑의 팔을 잡아채며,남자가 서늘하게 아랑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인들이 좋아할 만한 향낭을 몇 개 추천해주지."

 

 "네? 제가요? 하마르가 훨씬 더 잘 해주실거에요."

 

 왠지, 남자와의 시간이 꺼려지던 아랑은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자 하마르를 끌어당겼다.

 

 "아니, 그 쪽이 추천했으니까 끝까지 책임을 져 줘야겠는데."

 

 '책임? 향낭을 고르는 일에 어떤 막중한 책임이 필요한 건가? 향낭을 고르는 일이 국가의 어떤 중대사와 맞먹는 일인건가? '

 

 "책임이요? 그....... 저는 일개 일꾼일 뿐이어서........ 향낭에 대한 지식도 그다지 없구, 또........."

 

 "내가 얘기하는 것은 날 여기로 데려온 그대의 안목에 책임을 지라는 거다."

 

  '참, 더럽게 까다롭네. 테마르칸의 총 상단주이기 때문인가. 나참. '

 

 더이상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랑은 다시 남자의 옆으로 다가갔다. 물론 한 두 발자국 떨어져서.

 그것을 본 남자는 순간 눈썹을 꿈틀 했지만,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남자는 하마르에게 가끔가다 질문을 던질 뿐 말이 많지는 않아다. 아니, 말하는 것을 귀찮아 하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향낭을 구입한 남자는 하마르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현금으로 주길 원하나? 아니면 내일 테마르칸 상단으로 올 텐가?"

 

 하마르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제, 제가 내일. 상단으로 가겠습니다!"

 

 "좋네. 그렇다면 상단에 얘기해두지. 아무때나 찾아와도 향낭 값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마르는, 이렇게 해서 테마르칸 상단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허리를 굽신거리며 남자를 배웅했다.

 

 "조심히 가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최고의 선물이 되실 겁니다!"

 

 하마르는 이 기특한 일을 해낸 아랑을 연신 자랑스럽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우리 아랑의 안목 또한 탁월하니 나머지 향낭들도 신뢰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랑 역시, 옆에서 손님 접대용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히가십시오. 또 오세요."

 

 남자는 아랑을 잠시 주시한 후에 돌아섰다. 미소를 짓던 아랑은 그 남자가 왠지 한 쪽 입고리를 올리며 비웃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몸을 낮추는 법을 익히게 된 아랑은 울컥한 속을 달래며 끝까지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세상에! 아랑!! 어디서 저런 거물을 물어온거야? 역시 안목이 있다니까! 기대해 아랑, 내일 거래가 잘 성사된 후에 내가 특별 수당을 지급할 테니까! "

 

 그 말에 남자의 비웃음 따위 저 멀리로 날려버리며 아랑이 방방 뛰었다.

 

 "하마르! 정말요? 우와~~ 진짜 감사해요. 보너스 인거네요? 히히 신난다!!"

 

 "보너? 뭐? 어쨌든 지속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면 테마르칸 상단을 통해서 슬로타샤국이나 아니타구 등등 까지 거래를 틀 수도 있을 거야!! 이런, 내 정신 좀 봐. 앞으로 향낭을 더 많이 생산하려면 일손이 부족할지도 몰라. 어서 가족들에게 연통을 돌려야 겠군!"

 

 벌써부터 대박의 꿈에 부풀은 하마르가 쏜살같이 가게 안 쪽으로 사라졌다. 뭐, 사장이 좋으면 직원도 좋은 거라고 즐겁게 생각하며 아랑 또한 상점을 나섰다.

 

 저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점쪽으로 몸을 틀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꺄악!"

 

 어디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나는 소리였다.

 아랑도 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눈을 굴렸으나, 아랑 보다 덩치가 큰 사람들에게 밀려서 광장 구석까지 오게되었다.

 

 "세상에, 이 대낮에 화살이 여기저기서 날아오다니요! 그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화살에 맞았대요!"

 

 "그러게요! 책 방 주인 아들이 지금 화살에 맞아서 의원한테 뛰어 가더라니까요~ 누구를 노린 걸까요?"

 

 "왠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어떤 장검을 등에 찬 남자를 쫓더라니까요."

 

 "그 남자 얼굴을 봤어요? 세상에!"

 

 "옆에 있던 포목점 주인 말이, 얼굴이 검은 색 가면으로 반이나 가려져 있었대요!"

 

 "태을 황자님 생신연회 중에 이게 뭔 일이래요."

 

 말 많은 시장 상인들의 대화 속에서 대강의 사건의 경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화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아랑이 가려고 했던 책방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어쩌나, 다른 책방을 가려면 꽤 걸어가야 하는데, 배도 고프고, 멀고. 하아....... 저 궁 너머에서는 음식이 남아 돌아서 골치라는데, 정작 나는 배를 곪고 있구나. 크큭. 참. "

 

 아랑은 배를 문지르며 점점 더 홀쭉 해져가는 자신의 허리를 만져보았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는 몸을 많이 움직이다 보니 열량 소비가 큰데, 그것에 비해 군것질도 안하고, 하루 세끼도 간신히 챙겨 먹는 형편이라 살이 계속 빠지는 모양이었다. 어제는 우연히 호숫가에 얼굴을 비춰보았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너무나도 왜소해진 여자가 쾡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왕 나온 것 가보자. 또 언제 갈 수 있을 지 모르니까."

 

 아랑은 다시 씩씩하게 길을 걸었다. 주변에서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들이 유혹하는 것 같아서 흘끔 흘끔 구경하기도 했지만, 시간 안에 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아쉬운 눈길을 거두었다.

 

 아랑이 가고자 하는 책방은 아랑의 향낭 가게로부터 현대의 시간관념으로 따지면, 40분은 걸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곳을 통과하려면 한적한 시냇물길을 돌아가야 했는데, 오늘 따라 사람이 적었다.

 

 그때 였다.

 

 쉭,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면서 아랑의 앞 쪽 나무 기둥으로 화살들이 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화살들을 피하며, 날쌘 몸짓의 가면을 쓴 남자가 나무의 굵은 나뭇가지들을 밟으며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뒤로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쫓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면의 남자가 방향을 틀어서 아랑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엇, 왜, 왜 이쪽으로 . 헉."

 

 "이쪽이다! 막아!"

 

 아랑 쪽으로 달려오는 가면 쓴 남자의 앞을 막으며, 몇몇 검은 복색의 남자들이 포진했고, 그 뒤 역시도 검은 옷의 무리가 쫓아오면서 포위했다. 위기를 느낀 가면의 남자가 손 안에 있던 단검과 표창을 닥치는 대로 던지기 시작했고, 아랑의 앞에 있던 남자들이 맞고 쓰러지면서 길을 내고 있을 때, 유달리 덩치가 큰 한 남자가 비호같이 날아와서 아랑의 앞에 섰다. 그리고 아랑쪽으로도 어떤 기척이 느껴지면서 한 남자가 아랑의 앞을 덮쳐왔다.

 

 아랑은 자신의 위를 덮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음영이져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눈빛이 느껴졌다. 순간적인 공포에 휩사였다. 그 밤이 다시 재생되려하고 있었다.

 

 "으... 으..........으윽......... 안..... 안돼.... 잠깐... 비.. 비켜."

 

 차마 말이 되지 못한 신음들이 아랑의 입 밖으로 쏟아졌다. 아랑은 주먹을 쥐고 자신을 덮쳐 누른 남자의 가슴을 쳐댔다. 그러나 주먹에는 힘이 실리지 못해서 바르작거리기만 했다.

 

 남자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아랑의 입을 커다란 손으로 막았다.

 

 "좀 가만히 있으라고."

 

 이에 아랑은 더 큰 공포감에 사로잡혀서 호흡이 가빠왔다. 남자는 뒤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가만히 자신의 아래에서 이제는 사지가 굳어져가는 아랑을 내려다보았다. 아랑의 얼굴은 이제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될 지경이었다. 그것을 보고 다시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서서히 손을 떼어보았다.

 

 "............."

 

 손을 떼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여자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남자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

 

 "도련님, 자결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남자는 자신의 밑에 있는 아랑에게 눈을 떼지 않으면서 말했다.

 

 "가면을 벗기고 데려가. 가서 가족이 있나 알아봐."

 

 계속 덜덜 떨고 있는 아랑의 눈빛을 주시하면서 낮고, 잔인한 음성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찾아서, 살 가죽을 벗겨."

 

 마지막 말에 커다랗게 눈을 뜨는 아랑을 재밌다는 듯 쳐다보면서 아랑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아랑의 거칠거칠한 손과, 왜소한 체격을 느낀 남자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정말 볼품 없군."

 

 "!"

 

 아랑은 일으키던 몸을 멈추며 남자의 얼굴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설마! 그럴리 없어!'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일어난 아랑은 남자에게서 몇 발자국 멀어졌다.

 

 "감...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서서 도망치려던 아랑을, 낮은 목소리가 붙잡았다.

 

 "잠깐."

 

 "?"

 

 "오늘 본 일은 잊는게 좋아. 내일도 그 상점으로 일하러 가고 싶다면."

 

 "!"

 

 그때, 남자의 뒤에 있던, 비호처럼 날아왔던 덩치 큰 무사가 웃으며 말했다.

 

 "도련님. 뭐, 어쨌든 죽였으니, 저희는 큭큭........ 이만 태무황자님께 돌아가시죠."

 

 '태무황자!, 그의 수하들인가? 향낭가게에 물건을 사러 온 단순한 상인들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더더욱 얼굴을 익히지 않는게 좋겠어.'

 

 "절대. 절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더 붙잡을 새라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나는 아랑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덜덜 떨던 모습이 왠지 익숙하다고 느끼는 태무황자였다.

 

 "큭큭큭 도련님. 지금 집무실에서 세림 형님이 좀이 쑤셔하고 있을 겁니다. 오늘은 태무황자님의 대행으로 꼼짝없이 박혀 있기만 했으니 말입니다. 큭큭큭"

 

 "엉덩이가 가벼운 짐승에겐 때로는 고삐가 필요한 법이지."

 

 저 멀리로 사라지는 아랑을 끝까지 주시하며 태무황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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