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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오철식에 대한 제 1회 피의자신문 조사를 마치고 나온 경일이 소회의실에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오철식이 모든 범죄 혐의에 대해 '잘 모르겠다' 라고 대답함으로써 전면 부인한 것은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징계위원회요?"
경일이 놀라 반문하자 앞에 있던 영우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봤다.
"뭘 그렇게 놀라? 놀랄 일도 아니잖아? 백주 대낮에 국민들이 전부 다 쳐다보는 앞에서 사람을 그렇게 패버렸는데"
"그 놈이 칼을 들고 설치는데 그럼...!"
"이봐, 한경일이. 아마추어 같이 왜그래?"
영우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오철식이가 칼을 들고 설치든, 총을 들고 설치든 피의자 몸에 함부로 손 댔다 하면 '과잉진압이니, 공권력 남용이니' 언론에서 물어 뜯기 일수야. 그게 우리나라라고"
"..."
"거기다가... 이번에도 오철식이가 칼 꺼내들게 유발했다면서? 그 꼴통놈이"
"그건..."
준혁의 누나 일을 말할까 고민하던 경일이 뒷말을 삼켰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영우가 침묵하는 경일을 보며 말을 잇는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임 놈이 사고쳐서 징계 받은지가 1년도 지나지 않았어. 그 것만 해도 북부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인데 또 대형사고를 쳐버리셨지"
"..."
"이 정도면 거의 그 놈 경찰관으로서 자질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경일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위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칼 꺼내 든 놈 발차기로 날려 버린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꼴통새끼 공집이나 폭행 유발하는 건 경찰관으로서 자질 문제라고. 이번에는 저번처럼 한 한달 쉬는 정도로는 안 끝날거다"
"그 말씀은..."
"최소 강등. 그 놈의 경우에는 강등 당할 계급도 없으니 이 경우에는 승진 제한이 되겠지. 물론 그 놈한테 든든한 빽이 있다면야... 흠..."
머쓱한지 잠시 헛기침을 하는 영우를 보며 경일이 큰 소리로 외친다.
"그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아직 내 얘기 안 끝났어"
"..."
"최소 강등. 최대 해임 혹은... 파면이다"
"...!"
경일이 경악하여 눈을 크게 떴다.
공무원에 대한 징계는 크게 중징계와 경징계로 나뉜다.
경징계는 일종의 경고인 견책과 월급을 깎는 감봉이 있고 중징계는 정직, 계급을 1단계 낮추는 강등, 해임, 파면.
해임과 파면은 공무원의 신분을 박탈당한다는 점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
다만 퇴직금을 수령받을 수 있는지 여부와 공무원 재임용제한 기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쾅!
"말도 안됩니다!"
경일이 소회의실 책상을 내려치며 말한다.
그 모습에 잠시 인상을 찡그린 영우가 경일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이봐 경일이. 너만 기분 안 좋아? 나도 기분 좋지 않아. 내 밑에서 일하는 팀원 놈한테 징계를 준다는데 내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으득하고 이를 간 경일이 영우를 바라보며 말한다.
"중징계는 너무 과합니다. 팀장님"
"언론 한번 타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일도 커지는 거 한순간이라는 사실 잘 알잖아? 여론은 파도와 같은 존재야. 한 번 커지면 겉잡을 수 없지"
"그럼 그 언론에 오철식이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알리시죠"
경일의 말에 영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 놈은 아직 피의자야.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단순한 수사 대상자일 뿐이라고. 아직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수사 진행 중인 사건 대상자를 언론에 뿌리겠다고? 생각이 있는거야?"
"이미 국과수에서 DNA 일치라고 다 확인 시켜줬는데 대체 뭐가..."
"그 놈 입으로 지금 불지 않고 있잖아. 지가 죽였다고 한마디라도 했어?"
말을 마친 영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경일이 주먹을 꽉 말아쥐며 말한다.
"다 된 밥에 재 뿌릴까 무서우신 거겠죠"
"뭐?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언론에 오철식이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알린다면 준혁이가 징계받을 일은 절대 없겠죠. 아니, 오히려 칼을 든 연쇄살인범을 제압했다고 박수 받을 일이죠"
"그러니까 아까 말했잖아!? 아직 그 놈은 수사대상자라고! 아무것도 밝혀진 것 없는데 오철식이 연쇄살인범이라고 언론에 보도했다가 혹시라도 그 놈이 범인이 아니라면? '1)인 두비오 프로 레오' 몰라!?"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뭐?"
경일이 영우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지금 오철식이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은 준혁이. 혹시라도 준혁이가 공을 독차지하게 될까봐 그게 무서워서 언론에 알리지 않고 있는 것 아닙...."
"이 개새끼가!"
퍽!
영우의 주먹에 가격당한 경일의 얼굴이 훽하고 돌아갔다.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분을 삭이 듯 씩씩거리는 영우를 잠시 바라보던 경일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소회의실 밖으로 빠져 나갔다.
경일이 빠져 나간 소회의실 출입문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영우가 중얼거린다.
"멍청한 새끼가 눈치는 더럽게 빨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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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녹화실 내부에 오철식과 준혁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준혁이 사고치지 않고 오철식을 감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부탁을 받은 희연이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감시해야 될 놈이 덩치도 산만한 두 놈... 선배는 진짜 여리여리한 아가씨한테 너무한 것 아닌가'
"하아~"
등 뒤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잠시 흘깃 뒤를 돌아 본 준혁이 다시 오철식을 바라본다.
"오철식이"
"..."
"니 정액이랑 타액에서 검출되는 DNA가 범인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까지 밝혀진 마당에 끝까지 모른다고 대답하는 이유가 뭐야?"
"..."
"어차피 재판 가도 아무도 니 말 안 믿어. 판사는 눈 앞에 보이는 증거만 보고 판단한다. 결국 니 만행은 모조리 밝혀지고, 죗값을 치르게 되겠지. 전과도 있는 놈이 그 정도도 모르지는 않을텐데?"
준혁의 말에 오철식이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어차피 재판 가면 죗값을 치르게 될텐데. 형사님은 왜 이렇게 절 못살게 구는 겁니까?"
"그건..."
말 끝을 흐리는 준혁을 보며 오철식이 말을 잇는다.
"형사님은 죽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뭐?"
"고등학생 때... 그러니까 박수홍이를 죽였을 때요"
"..."
"몸이 떨려 미칠 것 같더라구요. 처음에는 첫 살인에 대한 충격으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깨달았죠. 전 그런 착한 놈이 아니라는 걸"
"..."
"박수홍이 목덜이를 칼로 그어 내릴 때 손 끝에 그 감각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짜릿하더라구요. 흥분됬어요. 쾌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오철식이 그 때의 감각을 떠올린 듯 천장을 바라보며 부르르 몸을 떨어댔다.
"이 미친..."
욕지꺼리를 내뱉으려던 준혁이 한순간 뚝하고 움직임을 멈추는 오철식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오철식이 천장으로 고개를 향한 채 말을 이었다.
"죽음은 자유다"
"뭐?"
"수홍이도 사실 저랑 비슷한 처지였거든요. 어렸을 때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식당 일을 하는 어머니가 홀로 수홍이를 키웠죠"
"..."
"저를 볼 때 마치 자기를 보는 것 같았는지 미칠 정도로 저를 괴롭히더라구요. 마치 가난과 가정환경으로 받는 자신의 고통을 저한테 풀려는 것 처럼"
"..."
"교도소에서 끊임 없이 생각했죠. 수홍이를 죽였을 때 그 쾌감은 뭘까? 그 흥분은? 나를 미치게 만든 그건 대체 뭘까?"
"..."
"오랜 생각 끝에 결국 깨달았죠. 죽음은 자유다. 삶에서 고통받는 인간을 내가 죽음이라는 자유로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제가 마치 신이라도 된 것 같았죠.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어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더 이상 개소리는 집어 치워!"
준혁이 큰 소리로 외치자 오철식이 고개를 내리더니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준혁을 바라봤다.
"그러고보니 형사님. 저를 체포할 때... 분명히 '우리 누나 왜 죽였어?' 라고 말했었죠?"
준혁의 말투를 흉내내듯 중얼거린 철식이 잠시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준혁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댄다.
준혁이 그 모습에 잠시 몸을 움찔했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뒤에 앉아 있는 희연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이는 오철식, 그리고...
쾅!
"죽여 버릴거다 개새끼야!!!!!!!!!!!!!!!!!!!!!!"
준혁이 앉은 상태 그대로 오철식의 복부를 걷어 차더니 쓰러지는 놈에게 달려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