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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녀 류하 시리즈
작가 : 루날
작품등록일 : 2017.7.9

비정한 청부업자들과 범죄조직들이 판치는 부산을 배경으로, 오갈 데 없는 한 소녀가 방황한다. 무기력하고 무감정한 소녀가 거친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며 성장하는 하드보일드하고 피카레스크한 이야기, 지금 여기서 개막.

 
12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작성일 : 17-07-10 20:50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3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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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소담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척추가 부러진 사람이 일어나는 모습 같았다. 한쪽 팔은 어깨가 빠져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입에서부터 흘러내린 피가 온 몸에 번져 있는 추한 모습이었다.

 헷켄은 경계심에 저절로 자세를 취했다. 소담은 그 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채 끓어대는 피거품으로 여기 있는 모두를 비웃고 있었다. 꺽꺽. 끓는 피거품 소리가 링 위를 가득 채웠다. 헷켄은 그 모습에 원초적인 공포를 느꼈다. 볼장 다 본 야쿠자인 그도 이런 모습은 처음 봤으리라.

 비단 헷켄뿐만이 아닐 것이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좀비처럼 다시 일어나 세상을 비웃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나 또한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그건 귀신이었다. 차라리 죽은 줄 알았던 소담이 다시 일어났다기 보다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소담의 귀신이 이 자리에 나타났다고 설명하는 것이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우리는 이미 죽었던 사람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보라. 그 죽었던 사람이 자기를 보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비웃으며, 그 자리에 미친 사람의 몰골을 하고 서 있다. 그리고, 그 흉측한 몰골은.

 헷켄을 가리켰다.

 스승의 목숨을 취한 자. 누이의 목숨을 걷어간 자.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거둬가려 한 자. 그를 현실에서 벗어난 무간지옥으로 끌어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냥 아예 생각을 할 능력 자체를 잃어버리고 동물적인 감각만이 남아서 눈 앞에 가장 가까이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 자체가 경이로울 정도로 무서운 것이었다. 한순간이라도 인간의 형상을 취했던 것이, 그 정도로 굴러떨어지는 것은.

 꺼억, 꺼억, 끓던 피거품이 끓기를 멈췄다. 소담이 피거품을 걷어냈다. 그 눈빛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보이는 모든 것을 박살내려는 괴물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망막이 포착하는 것은 바로 헷켄이었다. 하지만 한쪽 팔이 박살난 괴물이 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헷켄은 생각하지 못했다.

 소담이 탈구된 한쪽 팔과 피를 휘날리며 헷켄에게 달려들었다. 헷켄이 접근을 막고자 주먹을 휘둘렀지만, 소용없었다. 소담의 눈은 번뜩이며 보이는 모든 것을 포착해냈고, 움직임은 살아있을 적보다 더 빨라져서는 이미 지옥에서 다 보고 왔다는 듯 가뿐하게 피해버렸다. 헷켄이 급하게 한발짝 물러섰지만 소담은 기름에 불붙는 것처럼 빠르게 따라붙었다. 지옥의 핏자국이 링 위를 뒤덮었다.

 헷켄이라도 타오르는 지옥불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소담은 멀쩡한 한쪽 팔로 헷켄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제는 어쩔 것인가. 다른 한쪽 팔이 멀쩡하기만 했어도 주먹이라도 지르겠지만, 소담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헷켄도 그걸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렇기에 방심했으리라.

 소담은 머리를 썼다.

 글자 그대로, 머리를 써서 헷켄의 이마를 들이받았다. 소담은 쉬지 않았다. 대가리를 자꾸만 헷켄의 얼굴에 부딪혔다. 이마로 헷켄의 이마를, 코를, 이빨을 찍어 눌렀다. 그 모습을 쳐다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형벌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온몸을 다 써서 싸우는 그 모습은, 정말로 지옥의 광전사가 현실로 돌아왔다고 믿을 것 같았다.

 

 

 하늘은 사람을 낳아 만물로써 길렀는데

 사람은 하늘에 대해 조금도 보답하는 것이 없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헷켄이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쓰려지자, 소담은 머리 갖다박는 걸 그만두고 손으로 헷켄의 머리를 붙잡아서 바닥에 자꾸만 내리쳤다. 쾅! 쾅! 쾅! 이미 소담에게는 헷켄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뭔가 박살내버릴 것이 있다는 충동 자체로만 움직이는 기계나 다름없었다.

 으적. 하고 링의 바닥이 부러져 나뭇조각이 튀어올랐다. 이미 링 위는 피로 한가득이었다. 소담은 헷켄의 머리가 완전히 부서져 버린 것을 느끼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 육체는, 아직도 숨을 쉬고 있었다. 오히려 그 하나의 의식을 통해 육체를 부여받은 것 같았다.

 

 우츠쿠시가 일본어로 뭐라 말했다. 아마도 욕일 것이다. 일본어. 있을 수 없어. 일본어.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반반 섞여서 나오는 그의 모습은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까 경기 중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는 도망치려 했다. 손은 빠르게 권총을 향했지만 그의 부하가 배신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우츠쿠시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었을 우츠쿠시의 부하는 우츠쿠시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뒤에서 찍어 눌렀다. 우츠쿠시가 비록 야쿠자 도련님이었을지언정 눈 앞에서 지옥의 광전사가 튀어나와 적을 심판하는 꼴을 보고는 버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단죄받기 전에 어서 우츠쿠시를 팔아넘기는 것이 당장의 이득일 것이다.

 “씨발, 놔! 대체 뭐하는 거야!” 우츠쿠시가 소리쳤다. 그 소리에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때 사람의 입에 총을 물리던 인간이 이렇게까지 추락하는 걸 보는 건 꽤 재미있었다. 하지만 시계가 이미 자정이 되었는 걸 어쩌겠는가. 만물의 운명이 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우츠쿠시의 시계가 다른 것들보다 조금 일찍 멎어버리려는 것일 뿐이었다.

 야쿠자 부하 하나가 옆에서 권총을 건넸다. “당신이 이겼습니다. 죽이십시오.” 후천적으로 배운 게 티가 나는 딱딱한 한국어 말투가 들렸다. 나는 총을 받아들어 우츠쿠시를 겨누었다.

 “사,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응? 지, 지금 그만두면 돈이고 뭐고 다 줄게, 세상이라도 줄게, 응?”

 “당신에게 세상이 있었더라면 아예 나랑 내기조차 안 했겠죠.”

 나는 이 남자에게 주려는 것이 단죄인지, 아니면 오히려 하나의 구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총을 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총으로 사람을 맞혀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 방아쇠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적은 없는 것이다.

 망설임에 망설임이 더해졌다. 빈 총을 자기 머리에 겨누고, 빈 총을 사람에게 겨누고, 이제는 총알이 가득 찬 총을, 타인의 머리에 겨누기까지. 긴 세월이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내게 달려 있다. 이제 만족하나? 대체 어디까지 갈 생각이지? 자, 류하, 이제 뭔가 전지전능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아? 네가 이 세상에 발 디디고 매달려 있을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서 한 사람에게 그 기회조차 박탈해버리는 게?

 아니면 이건 구원인가? 발버둥치지 않으면 발 디딜 틈조차 주지 않는 지옥에서 사람을 구해주는 것인가? 결정해. 망설임에 망설임이 더해졌다. 내가 그 망설임이 괴로워 총구를 치워버리려는 순간이었다.

 관중석에서 소리가 들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로 된 말이었다. 고로세. 그 한 마디가 삽시간에 번져 세상을 가득 메웠다. 고로세. 고로세. 고로세. 고로세. 나는 총구를 치우지 못했다. 야쿠자의 통역이 내 손에 못을 박았다.

 “죽이라는 뜻입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이 세상이라는 것은 내 행동조차도 내 의지로 하지 못하게 자꾸만 막으려는 것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현은 말했다. 자기 자신을 상처입히느니 차라리 남을 상처 입히는 것이 낫다고. 그가 한 말이 꼭 이런 의미는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이게 현실이 아닌 어딘가가 있다고 믿고 싶다.

 다른 사람을 밀어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그런 자리가 가지고 싶었다. 그런 경우의 수가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이제 나는 그게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고작해야 중학생 탈을 쓴 어린아이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방아쇠를 당겼다. 불꽃이 리볼버에서 뿜어져 나와 우츠쿠시의 두개골을 박살냈다. 손은 저절로 위로 튕겨져 나왔고, 총이 내 손에서 벗어나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그것이 총을 쏘는 감각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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