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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드레이크 방정식
작가 : 카시니
작품등록일 : 2017.7.8

6천 년 전 외계로 끌려갔던 지구인의 후손이 평범한 지구인과 사랑에 빠진다.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지적 외계 생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이용하여 혹시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는 내 사랑을 찾을 확률을 계산해 보자!

 
02 외계인? 지구인?
작성일 : 17-07-09 00:46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8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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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속이었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잠든 지수의 눈에도 실제로 눈물이 맺혔다.

 

 “그럼 제가 한 해석이 맞았나요? 제가 쓴 건요?”

 “80% 정도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거예요. 우리 쪽 연구원들도 다 놀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꿈꾸고 있는 거죠? 그럼 당신도, 제가 맞았다는 말도 그냥 가짜겠군요. 믿은 내가 바보지. 아휴.”

 “당신을 직접 만나기에 앞서 일부러 당신의 꿈을 통해 접촉하는 겁니다. 하긴, 지구에서는 아직 이런 기술이 발명되지 않았겠군요. 믿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른 행성에 사는 건 맞습니다. 믿도록 노력해 보세요.”

 “음, 아무래도 사기 같기도 하고. 그러면 외계인인데 자기가 지구인이라는 얘긴 또 뭐죠? 그리고 우리말은 왜 이렇게 잘 해요?”

 

 자르트는 피라스트인들이 벌였던 라-아툼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언어는 지수와 접촉하기 위해 미리 익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지수. 용감하게 제일 궁금한 걸 묻는다.

 

 “그럼 그 문장 중에서 ‘날아’라는 단어요. 혹시 다른 뜻도 가지고 있어요?”

 “네, 그 단어에는 ‘도망가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 역시! 그럼 매끄럽지 않았던 부분도 풀리네요.”

 

 8년 전, 가장 문맥이 매끄럽지 않던 부분이 이제야 좀 이해가 된다.

 

 “저, 당신 행성, 리켄트-b 라고 했나요? 거기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잘 생겼어요?”

 “네? 글쎄요. 잘생겼다는 말은 별로 못 들어봤습니다만…….”

 “실제 얼굴인가요? 지구에 온다고 꾸미거나 바꾼 얼굴 아니고요?”

 “네, 그건 왜……?”

 “그렇다면 좋아요. 매일 밤 꿈에서 만나요. 그렇게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당신의 말을 믿게 되는 날도 오겠죠. 실은 아직은 잘 못 믿겠거든요.”

 

 지수는 자르트의 외계 행성 어쩌고 하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꿈속에서라도 이런 미남을 만나는 게 어디냐, 횡재한 기분이다.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다면 비록 꿈속이라도 오케이!

 

 “그럼 제가 꿈이 아닌 실제로 당신 눈앞에 나타나서는 외계에서 왔다고 하면 믿었을까요?”

 “음, 그것도 아닐 것 같기도 하네요.”

 “우선 우리 서로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제가 지구로 가서 당신을 만날 수도 있고, 승인되면 당신을 우리 행성으로 오게 할 수도 있어요.”

 

 평소 궁금했던 점, 이것 하나는 꼭 물어봐야겠다. 설마 꿈속에 나타난 사기 캐릭터가 이런 것까지 구체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을 테니.

 

 “4광년 떨어져 있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그러면 당신들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이동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 건가요?”

 “빛의 속도라……. 사실 제가 당신 꿈속을 찾아온 것이나 광속을 넘는 기술 같은 건 모두 우리 행성이 아니라 피라스트인들이 개발해낸 거죠.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광속보다는 훨씬 빨리 이동할 수 있습니다.”

 “와, 그게 가능하긴 한 거였군요.”

 “당신들이 생각하는 ‘워프’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와 비슷한 방법이라고만 알아두세요. 어차피 설명해도 현재는 당신들의 과학자들조차도 이해를 못 할 겁니다.”

 “헐, 무시하는 것 봐. 네네, 알겠습니다.”

 

 기분 나쁜 티를 냈지만, 사실 설명해 줬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했을 건 자명했다. 현재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태양계를 탐사하는 정도의 내용도 읽어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으니.

 

 “그럼 앞으로 자주 뵙죠. 매일 밤 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하도록 해주세요. 제가 알아서 찾아올 겁니다.”

 “그래요, 그럼 오늘은 이만.”

 

 잠에서 깬 지수는 뺨을 꼬집어보았다. 아니, 지금 꼬집어봐야 소용이 없지. 반신반의 하는 맘으로 꿈의 내용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코웃음을 쳤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개꿈이지, 개꿈. 내 무의식이 이렇게 디테일한 꿈을 만들어 내다니. 대단하군.”

 

 역시나 눈에 보이는 증거도 없이 한 번에 믿게 하기엔 무리였다. 피라스트인들과 리켄트인들, 분발해야겠다.

 

 

 *****

 

 

 “하연아, 넌 외계인이 있다고 믿어?”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안 믿는 거 뻔히 알면서.”

 “그럼 내가 봤다고 하면 믿을래?”

 “안되겠다. 병원에 가봐야겠다. 일어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 바로 게임업체에 취직한 서하연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절친이다.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정해진 번호가 앞뒤로 붙어서 짝이 되어 친해졌지만 2, 3학년 때는 문, 이과로 갈라졌다.

 

 체크 남방에 청바지, 운동화에 뿔테 안경, 짧은 커트 머리와 노 메이크업. 하지만 대학 신입생 때 함께 찜질방에 가보고 실체를 알게 된 하연의 미모에 같은 여자인 지수마저 반해 버렸다.

 

 뽀얗고 매끄러운 살결에 안경에 가려져 있던 오똑한 코, 옅은 쌍꺼풀 진 초롱초롱한 눈, 적당한 볼륨감과 탄력을 자랑하는 몸매까지.

 

 화장발, 옷발, 머리발 없이 젖은 알몸에 수건으로 감싸 올린 머리, 똑 같은 상황에 놓이자 가감 없이 드러났다.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너 머리 기르고 이제 안경도 쓰지 마. 왜 그러고 다녀? 남자들에게나 여자들에게나 다 예의가 아냐!”

 “아, 귀찮아. 난 이게 편한데.”

 

 교복 치마를 입고도 책상에 다리를 척 올리거나 늦잠 잤다고 세수도 안하고 까치집 같은 머리로 학교에 올 정도로 털털한 성격 때문에 하연을 더 좋아했지만 남녀공학이 아니었던 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독한 현실주의자라 외계인의 존재는 물론, 종교나 미신, 초능력 같이 정확한 증거가 없는 건 절대 믿지 않았고, 가끔 신년 운세나 애정운을 점쳐보는 지수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안타까운 점은 그와 더불어 사랑 또한 호르몬 작용일 뿐이라며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독신주의를 선언하고 독립해서 따로 사는 하연의 집에 종종 가서 수다도 떨고 자고 오기도 했다. 2년 전 지수의 부모님도 서울에서 4시간이나 걸리는 곳으로 귀농하셔서 지금은 지수도 독립했지만 하연의 집은 여전히 그 둘의 아지트다.

 

  “아이참. 누가 봤대? 봤다고 하면 믿을 거냐고 물어본 거지.”

 “그 말은 넌 안 봤어도 믿고 있다는 말 아냐? 그러니까 병원 가야지.”

 “아, 그게 아니라니까. 어, 피자 왔나 보다. 어서 문 열어봐.”

 

 ‘딩동, 피자요’ 하는 소리와 함께 하연의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피자 박스를 연 하연에게서 외계인 어쩌고 하는 생각은 사라지진 지 오래인 것 같다.

 

 “이 집이 최고야. 바로 옆 건물이라 이렇게 치즈 쫙쫙 늘어나게 뜨끈한 상태로 오잖아.”

 “그래, 그건 인정. 근데 다른 집에 시키면 쿠폰도 주는데…….”

 “그 쿠폰보다 이 늘어나는 치즈가 더 중요해. 어서 너도 먹어.”

 

 서른 한 살의 두 아가씨는 라지 피자 한 판을 콜라 1.5리터와 함께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 와중에도 현준 선배랑은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묻는 하연의 말에 지수는 현준 선배가 아닌 자르트의 생각이 떠올랐다.

 

 “여전히 그렇지 뭐. 나 근데 깜빡한 일이 생각났어. 어서 가봐야겠다. 미안.”

 “피자만 홀랑 먹고 그냥 가냐? 나쁜 기집애. 다음번엔 내가 너희 집으로 갈 거다. 그 동네 족발이 맛있더라고.”

 

 

 *****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지수는 클렌징 폼으로 꼼꼼하게 세수를 하고 평소 입던 늘어난 잠옷이 아닌 비교적 멀쩡한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로 갈아입었다. 아직도 꿈속으로 찾아온다는 자르트의 말이 100% 믿어지진 않지만, 어제의 몰골은 좀 심했다는 생각에 혹시나 해서 신경을 좀 썼다.

 

 일부러 잠을 청하니 눈이 더 말똥말똥해 지면서 밤샘 교열 작업도 거뜬히 해낼 것처럼 정신이 맑아진다. 이런 젠장. 미남이랑 엮일 운명이 아닌가.

 

 두어 시간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다. 언제나 잠드는 순간은 왜 이리도 달콤한지. 지수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어제의 꿈에서처럼 온통 새하얀 공간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자르트가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그냥 평범한 꿈이라면 이렇게 스토리가 이어지진 않을 텐데……. 입은 옷을 확인하니 잠들기 전 골라 입은 그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가 맞았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게 진짜로 진짜인가……?”

 

 지수의 말에 자르트가 미소 짓는다. 아직 못 믿으시는 군요, 하며 한 발짝 더 다가와 손을 내민다.

 

 “내 손을 잡아 봐요. 악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자.”

 

 지수가 손을 내밀어 자르트의 손을 잡았다. 일반적으로 악수하는 것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르트의 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머, 따뜻하네요.”

 “그럼요. 사는 곳이 다를 뿐, 저도 지수씨와 같은 인류입니다. 우리 리켄트인들은 지구의 황하 유역에 살던 사람들이라 당신과 생김새도 비슷하죠.”

 “그럼 중국계라고 봐야겠네요.”

 “그런가요, 후훗.”

 “그럼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서 잡혀간, 아니 이주 당한 사람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했나요?”

 “네,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모두, 음, 그렇게 됐습니다.”

 

 지수가 옷을 좀 만져 봐도 되겠냐는 제스처를 보이자 자르트가 팔을 내밀어 만져보게 해준다. 보기에는 뻣뻣할 것 같던 옷은 예상 외로 너무 부드럽고 따뜻했다. 이런 천으로 옷 만들어 팔면 대박이겠다, 지수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하얗기만 한 공간에 서서 얘기만 해야 하나요? 꼭 정신병원에 갇힌 기분이라 당신 말이 더 안 믿길 것 같아요.”

 “아닙니다. 그럼 이런 건 어때요?”

 

 자르트가 아래로, 위로, 옆으로 손을 이리저리 휘두르자 꿈속의 새하얀 공간은 지수의 방처럼 바뀌었다. 2년 전 이사하면서 큰 맘 먹고 자비로 바꾼 연한 그레이색 장판에 크림색 벽지, 크기만 하지 엉망으로 어질어진 책상, 핑크 꽃무늬 이불이 깔린 침대.

 

 “와, 정말 신기해요. 내 방이랑 똑같아요.”

 “그럼 앉아서 얘기할까요?”

 

 자르트는 책상 의자를 빼서 앉고 지수는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이불을 손으로 쓸어 봐도 실제 지수의 이불과 모양이며 촉감이 똑같았다. ‘자, 그럼 무슨 얘기를 할까요, 지수씨는 글 쓰는 분이죠?’ 라며 자르트가 운을 띄운다.

 

 “사실 글을 쓴다기보단 다른 사람이 쓴 글의 틀린 곳이나 어색한 곳을 고치는 일을 해요. 그 행성에도 저 같은 직업이 있나요?”

 “네, 물론 있습니다. 보통은 인공지능이 알아서 고치지만 그래도 아직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긴 해요.”

 “그렇군요. 나도 얼른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되나.”

 “괜찮을 겁니다. 아직은. 저는 그냥 평범한 과학자예요.”

 

 이 세계에서 과학자라 하면 보통 저런 비주얼은 갖추지 않았는데 그곳은 참 좋은 곳이구나, 지수는 감탄했다.

 

 “제 미니홈피에 올린 그 당신들의 문자는 어떻게 찾으셨어요?”

 “피라스트인들은 6천 년 전 프로젝트 이후로 계속 지구를 모니터하고 있었어요. 가끔은 직접 가서 둘러보기도 한답니다. 리켄트의 우리들과 비교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 피라스트인들 말이예요, 그 사람들도 우리처럼 생겼나요?”

 “아니요. 상당히 다르게 생겼어요. 지구인들이 보면 아주 놀랄 겁니다. 그래서 비슷하게 생긴 리켄트인들 중에 지원자를 모집했고, 그 중 한 명을 선발해서 지수씨를 만나게 한 거죠.”

 “그럼 자르트씨는 거기서 되게 잘 나가시는 분인가 봐요. 그러니까 뽑힌 거 아니에요?”

 “잘난 건 아니고, 가장 적합하다고 합니다, 제가.”

 

 선발 과정이 기억난 자르트는 속으로 웃었다.

 1. 지수가 여자니까 남자여야 함.

 2. 비슷한 나이의 미남(여기서 미남의 기준은 철저히 현재 지구의 기준을 따라)이어야 함.

 3. 설득력 있는 목소리와 언변도 좋은 자.

 4. 정보를 취합하여 분석할 수 있는 뛰어난 두뇌를 가진 자

 5. 피라스트와 리켄트의 비밀을 함부로 누설하지 않을 자(좋은 집안, 명예, 부 등 잃을 것이 많아 규칙을 철저히 지킬 자)

 6.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고 상대방에 현혹되지 않을 자

 7. 프로젝트 진행 기간을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가진 자

 8. 범죄 경력이 없는 자

 …….

 

 리켄트인들의 고향도 결국은 지구다. 고향의 인류와 만난다는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껴 지원했는데,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결국 적임자로 선발됐다.

 

 “과학자면 어떤 분야를 연구하세요?”

 “저는 인간의 두뇌에 대해 연구합니다. 두뇌를 연구해서 인공지능 기능 향상을 꾀하죠.”

 “대박. 지구에서 그런 거 하는 사람은 엄청 똑똑한데.”

 

 자르트는 그냥 잔잔한 미소만 지을 뿐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피라스트인들에는 못 미치지만 리켄트에서는 손꼽히는 브레인인데다 모든 걸 갖추고 겸손하기까지 한 자르트는 리켄트의 여자들 사이에서도 신랑감 1순위로 꼽힌다.

 

 “그쪽에서는 지구랑 다른가 봐요. 미적 기준이나 다른 기준이나…….”

 “리켄트에서도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좋은 음악을 듣는 건 똑같아요. 과학기술은 우리가 피라스트에 배워서 훨씬 앞섰을지 몰라도, 지구의 예술은 저희를 앞섭니다.”

 “와, 정말요? 지구가 앞선 것도 있구나.”

 “예를 들어 리켄트-b, 우리 행성에도 예술가들이 있지만 요즘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이 곳 르네상스 시대의 다빈치, 미켈란젤로 작품들입니다. 음악도 바흐 같은 바로크 음악이 대세죠.”

 

 의외라는 듯 지수는 어깨를 으쓱한다. 갑자기 궁금해진 지수가 묻는다.

 

 “과학기술이 그렇게 발달되어 있으면, 미술 재료도 품질이 끝내주고 악기의 소리도 정말 좋아서 그쪽 예술작품들이 더 뛰어날 것 같은데요?”

 “그게 또 불가사의 중 하나입니다. 피라스트에서 아무리 뛰어난 기술로 악기를 제작해도 지구의 것에 비해 소리가 훨씬 떨어집니다. 리켄트에서 해도 그렇더군요. 결국 지구의 나무들이 지구에서 발명한 악기 제작에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이 났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게다가 우리는 6천년 동안 거의 머리를 쓰는 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피라스트에서 그러길 원했거든요. 그래서 과학이나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섬세한 예술쪽으론 감각이 떨어집니다.”

 “그렇게 예술적인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 안 어울리네요. 큭큭.”

 

 앉아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어느 새 창 밖이 어슴푸레해 지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헤어져야겠군요. 어떤가요, 아직도 나와 우리 행성, 피라스트인들, 다 믿을 수 없나요?”

 “글쎄요, 솔직히 아직도 완전히 믿어지진 않아요. 그냥 꿈을 꾸는 것뿐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요, 너무 쉽게 믿어버리면 안되죠. 이 우주에 얼마나 나쁜 사기꾼들이 많은데요.”

 “우주에도 사기꾼이 있어요?”

 “그럼요. 지구는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지구에 있는 건 우주에도 다 있답니다.”

 “당신이 사기꾼일 수도 있다는 얘기네요.”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둘은 배를 잡고 실컷 웃었다. 격렬하게 웃으면 매번 눈물을 흘리고야 마는 지수는 꿈속에서도 마찬가지라 놀라워했다. 이제는 정말 꿈에서 깰 시간이다.

 

 “어쨌든 지수씨, 저와 관련된 얘기는 오직 지수씨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피라스트와 리켄트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극비 프로젝트거든요.”

 “알겠어요. 어차피 말해도 아무도 안 믿을 테니 걱정 마세요.”

 “아무도 믿지 않더라도 말해선 안 됩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또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지수는 꿈에서 벗어나 이제는 깊은 단잠에 푹 빠져들었다.

 

 

 *****

 

 

 동틀 무렵부터 두어 시간을 더 자다가 깨서 이메일을 확인하니 일본 추리소설 번역본이 도착해 있었다. 교열 잘 부탁한다는 짧은 이메일 내용에도 그 귀엽게 생긴 번역가의 애교가 철철 묻어났다.

 

 ‘칫, 그래 봤자 하연이보다 못났구먼.’

 

 쓸데없이 화르르 질투심을 불태우다가 혼자 열 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깨닫고 힘이 쭉 빠졌다. 차라리 이렇게 나이만 먹기 전에 고백이라도 해 봤다면, 그리고 차이면 다른 남자를 어서 찾아보는 게 나았을 걸.

 

 진퇴양난이다. 이제 와서 포기하자니 그 동안 애태운 시간이 아깝고, 이제 와서 고백을 하자니 현준 선배와의 추억마저 빛바랠까 아깝고. 졸업식 날 고백하던 동기라도 사귀어 볼 걸 모태솔로로 서른을 넘겨버릴 줄은 정말 몰랐다.

 

 전화벨 소리도 귀찮아서 진동으로 돌려놓은 핸드폰이 부르르, 부르르 몸을 떤다. 액정을 보니 하연이다.

 

 “요, 왓츠업?”

 -뭐야, 지수 너 소개팅 해볼래?

 “왓? 아니, 뭐? 잘생겼어? 몇 살? 직업은?”

 -이런 속물. 외모로는 너보다 훨씬 낫고, 나이는 우리보다 두 살 많고. 직업은 프리랜서 사진작가.

 “아, 나 너무 프리한 사람 싫은데. 둘 다 프리하면 좀 그렇잖아.”

 -뭘 그렇게 따지냐? 그냥 한 번 만나보면 되지. 그쪽은 네가 프리라 좋다던데. 네 번호 알려준다?

 “그래, 일단 깨톡이나 좀 해보고 괜찮으면 만나지, 뭐.”

 

 전화를 끊고 십여 분 후, 진동이 울려서 보니 모르는 사용자로부터 깨톡이 와 있었다. 이런 식으로 먼저 대화를 주고받고 서로의 사진도 확인한 다음 맘에 들면 그제서야 만나는 것이 요즘 소개팅 방식이란다.

 

 지수는 소개팅 자체도 몇 년 만인데다 이런 방식으로 얼굴도 안 보고 문자로 상대방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니 덜컥 겁이 났다. 평소 문자나 깨톡, SNS를 친한 몇 명과 연락하는 용도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송지수씨. 서하연씨 소개로 연락드립니다. 저는 김재민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송지수입니다.]

 [하연씨에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프리랜서로 교열 일을 하신다고요.]

 [네, 김재민씨는 사진작가라고 들었어요.]

 

 이후로 한참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면서 김재민의 프로필 사진을 확대해봤지만 역광에 찍힌 옆모습이라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 몇 분이 지나서야 다시 핸드폰이 진동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게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약속 정해서 만나 뵈면 안 될까요?]

 [좋아요. 사실 저도 이런 식으로 소개 받긴 처음이라 어색해요. 직접 만나서 얘기하죠.]

 

 둘은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만나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수의 집 가까운 홍대 앞 작은 카페에서 오늘 저녁 5시로 보기로 했다. 만나서 맘에 안 들면 커피 한 잔 후에 바이바이, 맘에 들면 식사를 하거나 작은 공연 관람도 할 수 있으니 괜찮을 듯 했다.

 

 5시에 홍대 앞이면 넉넉잡아도 3시 정도부터 준비를 해도 되겠군. 지수는 나가기 전에 교열 작업을 위해 원고를 3부 프린트하고, 페이지 수에 따라 계획을 세웠다. 이 정도면 선배가 말한 날짜까진 충분하겠어. 그럼 오늘은 소개팅에 집중해야지!

 

 지수가 좋아하는 코랄 색 립스틱에, 머리는 끝부분만 살짝 말고, 옷은 지난주에 산 크림색 프릴 원피스, 신발은 김재민씨 키를 모르니 그냥 단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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