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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시간의 저편
작가 : 윤혜원
작품등록일 : 2017.7.8

죽음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천둥처럼 찾아왔고 미처 준비하지못한 이별은 모든것을 아득한 기억 속으로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시작이었고 30년 후,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완전히 다른 인생으로 다시 만났다. 소멸된 기억을 갖고 천사로 돌아 온 그에게 다가 온 한여자. 그리고 서서히 되살아나는 익숙한 그림자들
이것은 복수일까 아니면 다하지 못한 사랑의 메시지일까?

 
제 2 화
작성일 : 17-07-08 13:21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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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왜 이래?! 오징어값을 왜 나한테서 빼!”

 

 짠물이 줄줄 흐르는 괴짝을 가게에 밀어 넣으며 기태는 눈알을 부릅떴다.

 앞치마를 젖가슴 아래까지 치켜맨 주인아주머니는 육중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붉은 립스틱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만원짜리 틱 1장을 내밀었다.

 확 낚아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기태는 짜증스럽게 툴툴대며 중얼거렸다.

 

 “꼴랑 이거 얼마한다고.”

 “요새 하도 장사가 안돼서 그래.”

 “배달하는 놈이 남의 가게 장사까지 책임져야 해?”

 “우리가 남이야?”

 “남이지. 그럼 우리가 님이냐?”

 “말하는 본새하고는... 아이고 이제 깎아달라는 소리 두 번다시 내가 하나봐라.”

 “하면 들어나 주고?”

 “어린놈이 한마디도 안져. 그래 잘못했다. 가 어서!”

 

 기태는 늙은 주인여자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툭치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모. 오늘 루즈 이쁘다? 남자 생겼어? 과부나무에 꽃 폈나?”

 “이 놈이 어른 놀려?”

 “놀리긴 누가 놀려? 이쁘다니까. 배달 계속 나한테 줄거지?”

 

 주인 여자는 그제야 뽀로퉁한 눈초리를 풀고 싱긋이 웃었다.

 

 “밥은. 배달 다 끝난 것 같은데 물회 한그릇 줄까? 먹고 갈래?”

 “아니. 성우집 가서 밥 먹을 거야. 서울서 성우왔어.”

 “아 그래 다방집 아들 방학이라고 왔댔지?”

 “카페! 다방이 아니라 카페라고! 아~~ 이 촌구석. 진짜”

 “그래그래. 까페. 그 놈 성질머리하고는. 갈려면 가! 나도 장사 준비하게”

 

 기태는 건들건들 한켠에 세워둔 오토바이로 향해 가게를 나섰다.

 짠내에 흥건하게 젖어있는 낡은 오토바이에 기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 땡기자 짭짭한 바닷바람이 끈적끈적하게 덮쳐왔다.

 문득 성우가 생각났다.

 지긋지긋 이 느낌. 이 냄새가 성우는 왜 그렇게 좋은 걸까.

 나라면 1년 반이 아니라 10년 반이 지나도 그립지 않을 차라리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지긋지긋해질 이곳인데.......

 기태는 자신과 너무나 다른 성우가 언제나 부러웠다.

 연속극에서나 나올 법한 상냥한 엄마도 그렇고

 항상 가지런하게 정리된 집도 그렇고

 그 곳에서만 은은하게 풍기는 커피향기도 그랬다.

 물론 단 한번도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런 부러움은 열등의식으로 가득한 못생긴 계집애들이나 하는 질투니까.

 그리고 그 곳은 자신보다 성우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기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기태는 그간 연습한 도덧을 말아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입꼬리에 힘을 팍 주고 한끗 목을 빳빳하게 세웠다. 그것은 기태가 생각하는 가장 남자다운 모습이었다.

 아깝고 아까워 끝까지 피운 꽁초를 버리는 궁상맞은 구질구질함 보다 반쯤 피우고 멋있게 발로 비벼 끄는 것. 그 또한 그가 생각하는 남자다움이었다.

 21살짜리 성우 같은 어린놈들은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라 자부하며 멋있게 50CC오토바이에 몸을 실고 시동을 걸었다.

 탈탈탈 낡은 오토바이는 검은 연기를 내 뿜으며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끼이익!!!

 

 탈탈탈 달리던 기태의 오토바이가 누군가의 느닷없는 돌진에 찢어지는 바퀴소리를 내며 급정지했다.

 기태의 오토바이를 가까스로 피한 여자는 놀란 눈을 껌벅거리며 기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향긋한 샴푸냄새가 기태의 콧끝으로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그대로 기태는 얼어버리고 말았다.

 

 “죄송해요....”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까맣고 가지런한 긴 생머리 안에서 드러난 투명한 크리스탈 피부와 가늘고 뽀족한 콧날에서는 윤기가 반짝거렸다.

 앙증맞은 입술에 번진 분홍 립스틱과 잘 어울리는 새하얀 원피스가 바람에 나풀거리며 기태의 낡은 오토바이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두리번대다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건너편 택시에 오르는 그녀에게서 기태는 눈을 떼지 못했다.

 성우정도라면 모를까.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여자라는 걸 깨닫고 체념해서야 짧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줄.

 

 “너 에미 죽는 거 볼래?!”

 “이번엔 정말이야. 진짜라구! 엄마 나 영화배우되면 이깟 50 하루면 끝나. 어?!”

 “어떤 우라질놈이 너 배우 시켜준대! 지난번 100 주고도 안된 배우가 50주면 된다고 누가 떠들어 대! 어서 이름대! 아가릴 찢어버릴라.”

 “그땐....에이 씨!! 이번엔 진짜라니까!!”

 

 다시 돌아 온 집에는 한달만에 찾아온 기준과 춘자가 한바탕 난리가 피우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너저분한 마당에는 춘자가 다듬다 만 생선 내장들이 어지럽게 너부러져 있었고 기준은 행여 각 잡은 백바지에 생선 오물이 묻을까 작은 대청마루에서 신발도 벗지 않은채 서서 생선 비늘로 번들거리는 고무장갑으로 삿대질을 하며 악다구니를 내지르는 춘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놔!! 그 돈 저 미친년 약값인거 몰라?!”

 

 기태는 엄마 춘자의 손끝이 향하는 기숙을 바라보았다.

 기숙은 잔뜩 겁에 질려 장독대 뒤에 숨어 막 들어서는 기태의 뒤로 숨어들었다.

 작은 떨림이 기태의 등 뒤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기준은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는 기태를 발견하곤 짜증섞인 한숨을 내쉬며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갔다.

 춘자는 천하의 몹쓸 놈. 때려죽어도 시원찮을 놈에서 죽어야지. 접시물에 코를 박고 콱 죽어버려야지. 팔자팔자 더러운 이 년의 팔자.....레파토리를 이어댔다.

 그리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기숙의 팔을 잡아끌며 죽자 이 년아. 이 정신 없는 년 차라리 같이 죽자며 금쪽같이 여기던 아들이 안겨준 실망을 어문 기숙에게 쏟아부으며 발악을 부렸다.

 겁에 질린 기숙은 그런 춘자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다.

 기태는 바닥에 엎어져 통곡하는 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긋지긋했다.

 늘 겪어도 지긋지긋했고 팔자팔자 더러운 엄마 팔자보다 더 지긋지긋한 자신의 팔자가 이젠 더 이상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기태는 아침 경매판에서 번 3만원을 엄마에게 던져주고 돌아서 나왔다.

 춘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돈을 주워들며 소리쳤다.

 

 “밥 먹게 기숙이 찾아와!!”

 

 기태는 대꾸도 않고 담배를 꺼내 물며 해안가 언덕에 있는 성우의 집으로 향했다.

 기숙이는 분명 거기 있을 것이다.

 엄마 춘자 말마따나 아무리 정신없는 기숙이라해도 어디가 편하고 어디가 불편한지는 알테니까. 언젠가 인희 아줌마는 기숙이를 커다란 궁궐에 잠든 공주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구해줄 멋진 왕자를 기다린다고 했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철떡같이 믿고 있는 정신없는 년 불쌍한 기숙을 위해 손발이 오그라들고 닭살이 돋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그런 정신없는 왕자는 없을 테니까.

 

 딸랑딸랑.

 

 카페 안은 여전히 향긋한 커피향기를 품고 있었다.

 예상대로 기숙은 카페를 통과한 안채 쪽마루에서 인희아줌마의 무릎을 베고 그새 잠들어 있었다.

 

 “쉬~ 금방 잠들었어.”

 

 기태는 고개만 꾸벅 인사를 하고 성우의 방을 기웃거렸다.

 

 “성우 잠깐 나갔어. 근데 무슨 일이니? 기숙이가 많이 놀란 것 같던데. 또 기준이 왔었니? 어떡하니... 또 돈 달래?”

 “뭐 어제오늘 일인가요. 거지빤스 같은 집구슥.”

 “무슨 그런 말이 어딨니? 엄마 또 속상해 하시겠네. 괜찮아?”

 “괜찮아요. 며칠 돈돈돈 하다 또 우리 큰아들 우리 큰아들 하겠죠. 뭐...”

 “아니 너 말이야. 넌 괜찮아?”

 

 역시 인희 아줌마는 달랐다.

 

 “나요. 난 남잔데요 뭐,,..그 깟일이 뭐 대수라고.”

 

 인희 아줌마는 성우에게 물려 준 예쁜 미소로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기태에게 아침 역전에서 만난 여자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녀도 인희 아줌마 나이가 되면 이렇게 예쁘고 상냥하게 변할 수도 있을거란 상상이 들어서였다.

 아니 어쩌면 더 아름다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에 숨이 턱 막혀왔다.

 죽었다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여자이기에 죽었다 깨어나도 볼 수 없는 상상 일테니까.

 인희 아줌마는 훌쩍이며 잠든 기숙을 다독이며 성우는 돌바위에 갔을지도 모른다며 가보라고 했다.

 인희 아줌마 말대로 성우는 돌 바위에 있었다.

 그림처럼 펼쳐진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성우는 기태가 봐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기태는 성우를 부르지도 다가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행여 들킬세라 몸을 숨기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추스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였다.

 분명 그녀였다.

 성우가 쓰다듬는 바람에 흩날리는 저 까만 머리카락도.

 성우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맑고 생기 넘치는 저 눈동자도.

 햇살에 반짝이는 가늘고 뽀족한 콧날을 부딪치며 성우와 키스를 나누는 저 앙증맞은 분홍빛 립스틱 입술도........

 분명 그녀였다.

 

 기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기에 아쉬울 것도 없었다.

 성우야!!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멋쩍었던 첫만남을 화재 삼아 떠들어대면 되는 기태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기태는 몸을 숨긴 등대 뒤에서 한발짝 나서지 못했다.

 아무리 발을 떼려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목끝까지 차오른 성우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결국 돌아서 달려갔다.

 어쩌면 그랬다간 진짜 절대 가질 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린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기태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기태는 뭐에 홀린 듯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성우와 아쉬운 이별을 나누고 울먹이며 기차에 오른 그녀를 먼발치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차라리 기차에 오르지 말 것을. 아니 그 바닷가에서 성우의 이름을 부르고 다가가 그의 멋진 친구 노릇이나 하고 말걸........

 하지만 시선은 그녀에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기태 스스로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가 종종 걸음을 재촉해 굵은 철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는 집으로 들어가자 허무한 체념을 가슴에 묻으며 물치항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기태는 틈만 나면 서울로 향해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웃을 때 항상 눈이 먼저 웃고 그 다음 선홍빛 입술이 새침하게 따라 웃는다는 것을 알았고 커피는 항상 우유를 조금 넣어 마셨으며 말하기 보단 듣는 걸 좋아해 간혹 그녀의 친구들에게서 내숭떤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는 것도 알았다.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그녀의 몸짓을 훔쳐보며 욕심내고 또 체념하기를 반복하다 그렇게 그녀의 일상이 끝나고 그녀의 창문 분홍 커튼너머로 불이 켜지면 물치항으로 돌아왔다.

 이제 기태에게 더 이상 성우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기태의 안식이 되지 못했다. 성우를 향한 분노와 미안함이 기태의 온 마음을 다 헤집어 놓고 있었다.

 기태는 결국 가질 수 없는 운명을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하지만 기태는 몰랐다.

 체념이 잔인한 운명이 되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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