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분하는 경일을 잠시 바라보던 준혁이 말한다.
"정황상 오철식이가 범인인건 확실해 보이네요"
"..."
경일이 표정을 굳힌 채 침묵했다.
"행님"
"...?"
준혁의 부름에 경일이 준혁을 바라봤다.
"저 꼭 좀 막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 새끼 보자마자 반 죽여버릴 것 같거든요"
*************************
"오철식 체포영장 발부되었습니다. 팀장님"
희연의 말에 영우가 그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병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병재가 고생이 많았네. 수사기록 정리한다고 욕봤다"
병재가 희연의 얼굴을 흘깃 보고는 말한다.
"아닙니다. 희연이가 영장 친다고 고생 많았습니다"
"음..."
눈쌀을 찌푸린 영우가 희연에게 툭 던지듯 한마디 한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짝, 짝
"이거 좋은 일 앞두고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구만"
어색한 분위기에 영우가 박수를 소리나게 두 번 치더니 말했다.
"이번 일 끝나면 전부 어깨에 이파리 하나씩 더 얹힐건데 기분 좋게 일하고, 사고 없이 마무리 하자고. 하하하"
말을 마친 영우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희연이 중얼거린다.
"재수없는 새끼..."
그 말을 들은 병재가 쓰게 웃었다.
"희연아, 일단 경일이네한테 전화해서 영장 발부되었다고 얘기하고 팩스 넣어줘라"
"알겠어요 선배"
입이 삐죽 튀어나오 대답하는 희연을 보며 병재가 말한다.
"준혁이를 생각해서..."
"...?"
"아니, 더 나아가 오철식이한테 살해당한 피해자들, 그 가족들을 생각해서 우리 그 놈 꼭 잡자"
병재의 말에 희연이 피식 웃었다.
"진짜 선배는 너무 착해요"
*************************
"행님"
오철식의 아파트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시켜 잠복하고 있던 준혁이 옆에 앉은 경일을 불렀다.
"왜?"
"오철식이 왜 김선미씨를 죽였을까요?"
준혁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경일이 대답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
"박수홍이한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그래서 박수홍이 하나 죽인 거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건지, 그게 아니면 첫 살인으로 내면의 싸이코패스 본성이 각성한건지... 오철식이를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겠지"
"자신이 받은 상처가 그런 미친 행동을 합리화 시켜 주지는 않아요"
준혁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말을 경일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복수에 미친 살인마든, 태생부터 싸이코패스든..."
준혁이 주먹을 꽈악 말아쥐고 입술을 깨무는 모습에 경일이 말한다.
"너 또 혼자 사고칠 생각이..."
우우웅, 우우웅
경일이 말하는 도중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한 경일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응 희연아"
"전화 엄청 빨리 받네요? 우리 뼈 빠지게 일 시키고 어디 좋은 곳에서 꿀 빨고 있는건 아니죠?"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희연의 목소리에 경일이 피식 웃었다.
"영장 치는거 뺏겨서 속상한 사람한테 무슨..."
"아 알죠, 알죠. 그 영장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선배"
"발부됐어?"
경일이 밝은 낯빛으로 되물었다.
"네"
"고생 많았다. 팩스 좀 넣어줄래?"
"물론이죠. 그 쪽에서 가까운 양평경찰서 수사과로 팩스 보내드릴게요"
"부탁해"
통화를 끊은 경일이 준혁에게 말한다.
"영장 팩스 받아 올게. 차에서 오철식이 나오는지 감시만 잘하고 있어. 사고치지말고."
"..."
"대답은?"
머뭇거리는 준혁을 보며 경일이 다시 물었다.
"...예"
"하아"
한숨을 내쉰 경일이 준혁을 바라봤다.
"니 마음 잘 알아. 아는데. 제발 나 돌아올 때 까지만이라도 기다려 줘라. 고작 30~40분 사이에 오철식이 나올 것 같지도 않지만..."
"..."
"부탁 좀 하자"
"알겠다구요 진짜. 저 못 믿어요?"
조금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준혁을 보며 경일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래 못 믿는다. 이 꼴통새끼야"
말을 마친 경일이 차량 문을 열고 내려섰다.
"갔다 온다"
손을 휘휘 저으며 멀어지는 경일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준혁이 중얼거린다.
"못 믿을만 하죠. 저도 제 자신을 못믿겠는데..."
그리고 경일이 떠난지 정확히 10분 뒤, 마치 영화처럼 오철식이 집 밖으로 걸어나왔다.
오철식을 발견한 준혁이 눈을 빛내며 차량에서 내렸다.
뚜벅, 뚜벅
오철식도 정면에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접근하는 준혁을 마주 바라봤다.
이윽고 오철식의 앞에 도착한 준혁이 말한다.
"오철식씨?"
"예.. 누구...?"
준혁도 키가 181cm로 평균보다 큰 편에 속했는데 최소 185cm는 넘어 보이는 거구의 오철식 앞에 서자 덩치가 없는 준혁이 훨씬 작아보였다.
준혁이 뒷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며 말한다.
"마산북부경찰서 조준혁 형사입니다"
형사라는 말에 순간 흠칫한 오철식이 잠시 주저하다가 말을 잇는다.
"...형사님이 저한테 무슨 볼 일로?"
"왜 죽였습니까?"
"예?"
"왜 죽였냐고요"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혹시 수홍이 죽인 일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철식이 죄송스럽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한다.
"그 때는 사고였습니다. 물론 제가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이 사고라는 이름으로 합리화 될 수는 없지만... 그 날 이후 정말 속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매년 수홍이 묘비에도..."
"그 것 말고"
철식의 말을 준혁이 중간에서 끊었다.
"우리 누나, 그리고 박수홍이 어머니 김선미씨 왜 죽였냐고"
준혁의 말에 철식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형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사님 누나요? 아니, 수홍이 어머니를 제가 죽였다는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뭔가 오해가..."
"토할 것 같으니까 순진한 척 집어치워라 오철식"
준혁의 말에 오철식이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한다.
"형사님. 저는 정말 형사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엄한 사람 붙잡아 놓고 뭐하시는건지...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철식이 자리를 떠나려고하자 준혁이 말한다.
"거기 서"
"자꾸 반말하지는 마시구요 형사님. 영장 가져오셨습니까? 형사가 영장도 없이 선량한 국민 이렇게 핍박해도 되는 겁니까?"
"서라고 했다 이 새끼야"
준혁의 말에 철식이 돌아서며 말한다.
"명령하는 거야, 뭐야? 형사면 다야? 뭐 새끼? 죄 없는 사람 붙잡아 놓고 뭐하는거야 지금?"
오철식을 만난 순간부터 새파랗게 빛나기 시작한 준혁의 눈빛이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얼굴색과 다르게 매우 빠른 속도로 뛰고 있는 심장소리.
묘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눈동자.
불안한 듯 연신 꼼지락 거리는 손동작.
주기적으로 꿀렁이는 목울대.
이미 판단은 끝냈다.
"이 개새끼야!"
퍽
벼락같이 달려든 준혁이 오철식의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
"억!"
준혁의 주먹에 얼굴을 가격당한 오철식의 고개가 휙하고 돌아갔다.
"미친 짭새새끼가!"
격분한 오철식이 그 거대한 몸뚱이로 준혁에게 달려들더니 밀어 붙이기 시작했다.
쾅
"큭!"
그대로 밀려 등이 벽에 거세게 부딪힌 준혁이 신음을 흘렸다.
온 몸으로 밀어붙이며 오른쪽 팔꿈치로 준혁의 목부분을 찍어 누른 철식이 비릿하게 웃었다.
"형사님, 우리나라는 영장주의 아닙니까?"
"..."
"씨팔, 알지도 못하는 개소리 지껄이면서 사람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거냐고? 응? 대답해봐"
준혁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는 것을 본 철식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렸다.
"끄윽"
철식이 묘하게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준혁이 순간 철식의 멱살을 잡더니 밀리는 힘을 이용해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어..."
기우뚱하고 중심을 잃은 철식의 몸을 준혁이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컥!"
그 상태로 쓰러진 철식의 팔을 두 손으로 꽉 붙잡은 준혁이 팔꿈치를 꺾어 암바를 걸었다.
"끄으으윽"
신음을 흘리는 철식에게 준혁이 소리쳤다.
"헉, 헉...니 영장 이미 나왔어 이 새끼야. 힘 빼. 힘 안빼면 팔 부러뜨린다"
"아 항복, 항복!"
소리치며 힘을 느슨하게 빼는 철식을 보며 준혁이 수갑을 꺼내 들려고 한다.
"가만있..."
"좆까 씹새끼야!"
퍽!
순식간에 암바에서 벗어난 철식이 쪼그려 앉아 있던 준혁을 걷어차려고 했다.
"익.."
간발의 차이로 피한 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철식이 품에서 휴대용 맥가이버 칼을 꺼내들었다.
"...!"
"씨팔, 오랜만에 피 한번 보자"
혀를 낼름거리며 허공에 칼을 휘휘 휘두르는 철식의 모습에 주변에서 불구경하듯 구경하던 사람들이 경악했다.
"카...칼!"
"112신고해! 112!"
놀라서 도망가는 사람, 휴대폰을 꺼내드는 사람,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서 있는 사람, 어림잡아 10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철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어 이 새끼야!"
맥가이버 칼을 쥔 채 달려오는 준혁의 눈이 다시 새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철식의 시선, 달려오는 방향, 칼이 쥐어진 손의 각도.
코 앞에서 바라보듯 이 모든 것을 한 눈에 담은 준혁이 순식간에 판단을 끝냈다.
'왼쪽 옆구리!'
휙
준혁이 왼발을 축으로 그대로 좌측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퍽!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준혁의 깔끔한 뒤 돌려차기에 오른쪽 안면을 가격당한 철식이 그대로 쓰러졌다.
"끄윽..."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철식을 보며 준혁이 그대로 수갑을 채웠다.
"너를 체포영장에 의거, 김선미씨 등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로 체포한다. 워낙 급한 상황이라 사무실에 가는 즉시 영장은 니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 줄 예정이고, 필요하면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체포적부심 신청할 수 있다. 이 씹새끼야"
말을 마친 준혁이 수갑을 찬 철식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야 임마!"
그 때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준혁이 고개를 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