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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더 포저(The Pauser)
작가 : 송지음
작품등록일 : 2017.6.1

[범죄·추리·미스터리·판타지·로맨스]
일시 정지된 시공간, 멈춰진 세상에서 범죄의 비밀을 쫓는다.
시간을 일시 정지할 수 있는 현이우. 특수범죄사무국의 영업팀 김수호.
이우에게 도착하는 의문의 메시지로 인해 스치게 된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과 시즌별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범죄 사건들.
각 사건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범죄조직의 최종 목표를 파헤치는 과정과, 이를 통해 발현되는 서로를 위한 헌신과 희생.
수호의 헌신을 통해 잠재된 능력을 깨워가는 이우의 성장을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시즌제 소설.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2
작성일 : 17-07-06 17:42     조회 : 300     추천 : 3     분량 : 8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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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의 전화를 받은 이우는 어리둥절해졌다.

 “왜요?”

 -그냥, 형 말 듣고 오늘은 집에만 있어.-

 이우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알았지? 밖에 나가지 말고. 응?-

 “네. 알았어요. 안 나갈게요.”

 -형이 최대한 빨리 갈게. 그때까지는 꼭 집에 있어.-

 “네, 걱정 말아요.”

 통화를 끊으며 이우는 피식 한숨을 실어 웃었다.

 자신이 필로폰으로 고생한 이후로 계속 민감하고 굴고 있는 수호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또 뭐에 놀라서 이런 전화를 했을까 싶어 도리어 수호가 걱정스러워졌다.

 

 수호는 멍해졌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가까워진 건물을 올려보았다.

 그 검은 차가 왜 이 병원으로 들어간 걸까.

 수호는 생각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병원 안으로 차를 몰았다. 쫓던 차량은 어디에 세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옥외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살폈다. 오전 진료가 시작되기 전의 병원은 비교적 한산했다.

 수호는 머릿속에 뒤엉킨 의문점을 끄집어내 나열했다.

 누군가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지난번 카페 뒷문과는 느낌상 다른 인물. 오늘의 남자는 왜 하필 이리로 왔을까.

 기웅이 입원해있는, 자신도 입원치료를 받았던 특범국 전담병원.

 우연일까. 이런 우연이 확률적으로 가능한가.

 수호는 차에서 내려 병원 건물을 올려보았다. 이유 모르게 망설여지는 걸음을 옮겼다.

 

 막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틈 사이로 비상계단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스쳤다. 수호는 다급하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이미 닫힌 비상구로 뛰어 문틈에 귀를 붙였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서 계단 아래를 내려 보았다.

 이미 남자는 없었다.

 수호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층마다 비상구를 열어보며 뛰다가 대여섯 층을 내려가서야 멈췄다.

 숨을 고르며 내려온 계단을 올려다보던 수호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 처음 내렸던 층으로 들어섰다.

 특실 여섯 개와 처치실, 사무실, VIP 접대실이 전부인 복도를 천천히 훑었다. 병실 문에 붙은 환자명을 하나씩 확인하며 슬쩍 열어보았다.

 층 전체를 통틀어 환자는 두 명뿐이었다. 초등학생 하나. 그리고 기웅.

 수호는 기웅의 병실 앞에 섰다. 망설여지는 기분을 떨치며 소리 없이 문을 열었다.

 침대를 세우고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기웅이 수호를 돌아보았다. 어리둥절 커진 눈으로 잠시 시선을 맞추다가 피식 웃었다.

 “우리 쫄랑이, 아침부터 형 보고 싶었어?”

 수호는 입을 굳게 닫은 채 기웅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그러고 있어? 왔으면 들어와 앉지.”

 기웅이 말을 얹고서야 수호는 침상으로 다가갔다.

 침묵하는 수호를 잠시 보던 기웅이 시큰둥하게 인상을 구겼다.

 “아침부터 왜 또 죽상인데? 뭔데?”

 수호는 흩어진 생각을 끌어 모았다. 기웅이 붙인 사람이었을까. 신원노출을 이우가 시켰다고 의심하는 걸까.

 “야 인마! 너 오늘 출근 안 하냐? 휴가야?”

 기웅의 짜증에 수호가 시계를 쳐다보았다.

 “잘한다, 너 또 김 실장한테 죽어났다 이제.”

 “형 혹시.”

 말을 꺼낸 수호가 뜸을 들였다.

 “혹시 뭐.”

 “혹시, 이우 뒤밟아?”

 기웅은 멀뚱멀뚱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

 “뭘 밟아?”

 수호는 낮은 한숨을 뱉으며 물었다.

 “지금 여기 왔던 사람, 누구야?”

 “지금 여기 온 놈은 우리 강아지 새끼지?”

 수호가 눈을 치켜뜨며 쏘아보자 기웅이 웃으며 되물었다.

 “누가 왔어야 되는데?”

 잠시 대답을 고르던 수호가 말했다.

 “이우 주변에 잠행하는 인간이 있던데, 그 인간이 형 병실 앞까지 올라왔더라. 이거 우연이야?”

 기웅은 흥, 웃었다. 강 실장을 벌써. 수호가 예민하긴 하지만 이 정도로 빨랐던가.

 대답 없는 기웅을 빤히 쳐다보던 수호는 불안함을 누르며 다시 물었다.

 “우연, 일까?”

 기웅이 헛웃음을 흘리며 수호를 째려보았다.

 “야 인마, 넌 확률 몰라? 그게 우연인 게 말이 돼?”

 수호의 목으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미안하다. 미리 말했어야 하는데. 형이 가드 붙였다. 경호원.”

 굳어있던 수호는 얼떨떨하게 눈을 키웠다.

 “경호원?”

 “그래 인마. 그런 메시지가 그냥 온다는 게 말이 돼? 분명히 심각한 상황인데, 고양이한테 그런 메시지 오는 이유가 뭔지 너 혹시 알아? 짐작이라도 돼?”

 수호는 어리둥절해서 눈만 끔뻑였다.

 “으이구 미친놈. 애 잡아먹을 생각이나 하고 자빠졌지 니가. 뻔한 거 아니야? 너랑 관계 노출된 거 아니겠어?”

 수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있거나….”

 말이 끊어지자 수호는 허공으로 흘리던 시선을 기웅에게 집중했다.

 “뭐가 됐든 걱정되잖아. 특범국 프로텍팅은 니가 싫다 그러고,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그렇긴 하고. 사람 몇 붙여놓으면 일단 마음이라도 편치. 안 그래?”

 수호는 대꾸 없이 기웅을 뚫어지게 보았다.

 “뭘 또 노려보고 그러냐. 너 또 괜히 자존심이 상하네 어쩌네 할까 봐 말 안 한 거야 인마.”

 “형 정체가 뭐야?”

 엉뚱한 소리에 기웅이 수호를 고쳐보았다.

 “정체가 뭐냐고.”

 더해진 말에 기웅은 헛웃음을 웃고 대꾸했다.

 “내 정체를 몰라서 묻냐? 니가?”

 “무슨 재주로 사람을 동원해서 가드를 붙여? 딱 보기에도 기가 철철 흐르는 비싼 놈을?”

 기웅의 입가에 또 웃음이 흘렀다. 도대체, 얼마나 제대로 노출되었기에 저런 소리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강 실장도 이제 나이가 드는가.

 “너 형이 하는 말은 다 띄엄띄엄 듣냐? 형 돈 많아서 감당이 안 된다고 했냐 안 했냐.”

 수호는 입을 닫은 채 기웅을 물끄러미 쏘아보았다.

 “그런 경호원 백 명이라도 필요하면 쓴다 형이. 너 몰랐구나? 형 능력 좀 되는 놈인데.”

 “형이 왜? 이우 일에?”

 “왜, 고양이 내가 잡아다 키울까 봐 걱정되냐?”

 수호가 이를 악다물자 기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안 잡아먹을게 인마.”

 “아 진짜, 이우를 왜 형이 잡아먹냐!”

 기웅은 클클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형이 우리는 한 몸이라고 했냐 안 했냐. 니가 잡아먹었으면 나도 잡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지.”

 수호가 눈을 버쩍 부릅떴다.

 “뭐, 이런 씨, 그걸 지금 말”

 “수호야.”

 낮은 목소리가 수호의 말을 가로막았다.

 “형이 니 이름 부르니까 이상하다 그지? 김수호는 많이 불러봤는데, 수호는 안 불러 봤네.”

 수호의 째진 눈을 잠시 쳐다보던 기웅은 덤덤한 말을 이었다.

 “너 고양이 잘못되면 안 힘들겠어?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저번 같은 문제 또 생기면. 지난번엔 운이 좋아서 잘 데리고 나왔는데 앞으로도 계속 운 좋으라는 법 있겠어?”

 수호의 굳은 표정이 더 굳어졌다. 지난번은 운이 좋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예 못 찾았더라면.

 “지금 너 하는 꼬라지 봐서는 고양이가 엔조이는 아니고. 최소 일 년은 물고 빨고 하실 꼴인데. 아니야? 엔조이야?”

 기웅의 이죽거림에도 수호는 굳어있었다.

 “고양이 잘못되면 너 힘들고, 너 힘들면 형도 힘들어. 고양이 잃어버렸다고 죽네 사네 하는 꼴, 형 못 본다. 한마디로, 내 속 편하자고 가드 붙인 거니까 그냥 모른 척해. 너 없을 때, 혼자 밖에 다닐 때만 지키라고 했어. 지켜만 보라고 했으니까, 한 번만 눈 감어.”

 수호의 대답이 없었다. 굳은 표정을 살피던 기웅이 시계를 쳐다보았다.

 “너 진짜 죽었다. 오늘 아예 재끼냐? 빨리 못 가?”

 “형.”

 “아 왜! 또 뭐!”

 목소리를 키운 기웅이 눈살을 찌푸렸다.

 “싫냐? 가드 싫어? 싫음 뺄게! 안 세우면 그만이지!”

 기웅은 핸드폰을 집어 들며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아, 그 자식 진짜. 왜 말귀를 못 알아듣고.”

 “형, 나한테 왜 그래?”

 기웅이 수호를 째려보았다.

 ​“뭘 왜 그래.”

 ​수호는 또 입을 닫고 기웅을 물끄러미 보았다. 시선을 잠시 맞추던 기웅이 말을 얹었다.

 “내가 너한테 뭘 어쨌길래 인마.”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 내가 형한테 뭐라고?”

 기웅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요거 진짜, 쫄랑이 진짜. 뭐긴 인마! 한 몸이지! 이거 진짜 갈수록 이상해지네?”

 불쑥 수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동식이었다.

 “아이 씨.”

 수호는 입술을 질겅거리며 기웅과 시선을 맞췄다. 기웅이 혀를 쯧쯧 찼다.

 “그러게 빨리 가라니까. 형 얼굴 그만 쳐다보고 빨리 좀 가라 인마.”

 수호는 울리는 전화기를 손에 쥔 채 부리나케 걸음을 돌렸다.

 급하게 사라지는 수호를 물끄러미 보던 기웅은 침대를 천천히 눕혔다.

 

 

 이우는 메시지를 적어둔 노트를 펼쳤다. 메시지를 보기만 해도 질색하는 수호 때문에 답을 생각해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메시지를 잠시 눈에 담던 이우는 한숨을 흘렸다. 처음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면, 뉴스로만 접하게 되는 흉악한 범죄들을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로 여기고 살았을까. 어쩌면 뉴스로도 접하지 못했을까.

 이우가 처음으로 찾아냈던 강원도 여아 납치 사건도, 선암교 현장의 장기밀매 미수 사건과 청담동 마약 소굴도, 단 한 줄의 기사로도 나오지 않았었다.

 사람들이 공포심을 느낄까 봐 쉬쉬하는 걸까, 수호의 말대로 국가기밀의 존재들이 해결한 문제라서 드러내지 않는 걸까.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떨리는 끔찍한 범죄들을 수호는 어떻게 상대하고 있는 걸까.

 그런 위험한 현장을 다니다가 또 다치게 되거나, 지난번처럼 위험한 총격전이라도 생긴다면, 자신이 보지 못하는 중에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이우는 끔찍한 상상을 떨쳐내며 핸드폰 사진을 열었다. 수호의 어색한 미소를 뜯어보았다.

 한숨이 길게 흘렀다. 한마디로는 형용할 수 없는 제 감정이 신기했다. 날이 더해질수록 점점 깊어지고 소중해지는 감정. 같이 있는 시간에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곁에 있는 것 같은 기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얼마나 길 수 있을까. 생물학적인 기준대로 길어야 이삼 년일까. 이삼 년이 흐르고 나면 지금의 감정을 잊게 될까. 그리고 나면 멀어질까.

 이성을 잃은 듯 정신없이 빠져버린 이런 감정이 그렇게 부질없는 걸까. 영원한 마음은 없는 걸까.

 수호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을 밝히고 나면, 그나마 더 빨리 멀어지게 될까.

 핸드폰 액정을 문질러 닦으며 수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눈에 담던 이우는 불쑥 웃음을 터뜨렸다. 사진 속 수호의 표정은 보면 볼수록 우스꽝스러웠다.

 실없는 웃음을 물고 메모에 시선을 올렸다.

 [finWW2.midntpl2.반석m-brukcrs]

 세계 2차대전.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전쟁. 그것의 끝. 전쟁의 종결 장소를 말하는 걸까.

 세계 전역에 걸친 전쟁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종전일은 9월 2일. 혹은 원폭일 8월 15일. 날짜를 의미하는 걸까.

 midntpl2. midnt. 미드나이트. pl2는 무엇일까. place. 주소. 미드나이트 2가. 혹은 plus일까. 자정 플러스 2, 새벽 두 시. 반석.

 이우는 반석을 검색했다. 넓고 평평한 돌, 기초, 반석교회, 반석 스포츠, 어린이집, 출판사, 정밀공업사…….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런 메시지를 아예 몰랐다면 속이 편했을까. 아는 게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아예 몰랐더라면, 수호를 만날 일도 없었을까. 갈 일 없던 선바위역을 매일 갔던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는데.

 이우의 입에 웃음이 흘렀다. 한 달이 넘도록 훔쳐보고 있었다니. 왜 까맣게 몰랐을까.

 누군가가 훔쳐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일까.

 이우는 사진을 또 열었다. 입꼬리만 바짝 올리고 있는 억지 미소를 보며 킥킥 웃음을 흘렸다.

 

 

 수호는 비어있는 옆 책상을 흘낏 보았다.

 오전에 기웅의 병실에 다녀온 뒤로 심란한 속이 풀리지 않았다.

 가드를 붙여야 할 정도로 이우의 신변이 위협받고 있는 걸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제 몸도 아픈 기웅이 왜 그렇게까지.

 너 힘들면 형도 힘들어.​

 수호는 턱을 받치고 있던 손가락 끝을 움직여 가만히 입술을 만졌다. 이내 이를 앙다물며 손등으로 벅벅 문질렀다.

 짓궂기로는 하여간 기웅을 따라갈 자가 없다. 아무리 장난질이라고 해도 그런 식의 입맞춤을 막 해대는 게 말이 되는가.

 문득 가라앉는 기분에 수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웅이 다른 마음으로 그러는 건, 절대 아닐 텐데.

 삼 년의 훈련 끝에 예비생으로 합격해서 또 일 년간의 훈련. 그리고 배치된 영업팀에서 기웅을 처음 만났다. 훈련 기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입사 동기였다.

 사수가 신입을 데리고 다니는 이인 일조 팀이 기본이지만, 사수 인원이 부족했던 이유로 기웅과 수호의 팀만 신입 둘로 구성되었다.

 수호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훈련소 수석 졸업에 예비생 수석 수료, 발령받기 어려운 영업팀으로 수석 발령, 자신의 빛나는 실력으로 미루어 볼 때 사수 따위가 뭐 필요하겠는가 싶었다.

 해외에서 훈련받았다는 기웅을 두고 처음엔 낙하산일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모두가 그를 실력으로 인정했다. 물론 자신보다는 조금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수호였다.

 여섯 형제 중 막내라는 기웅은 막내답게 철딱서니가 없었다. 김 실장의 불같은 성격을 봐서는 백 번을 잘리고도 남았을 기웅이지만 실력이 좋으니 실장도 하는 수 없이 참아주고 있는 형국이었다.

 건들거리고 다니면서도 절대 노출되지 않는 잠행 능력. 위기의 순간에만 아주 잠깐 나오는 침착함.

 목숨이 오가는 위급상황이 종종 있었지만 기웅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냉철하게 상황을 마무리했었다.

 수호도 그런 기웅을 보면서 다른 건 다 엉성해도 잠행과 위기대처능력만큼은 자신보다 조금 나을 수도 있겠다고 속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영업만 떴다 하면 불철주야 붙어서 같이 먹고 씻고 자고 일하는 사람. 퇴근 후에도 쉬는 날에도 심심하다고 종종 쫓아와서 같이 틀어박혀 있던 것이 벌써 삼 년 반.

 틈만 보이면 변태처럼 뒤에서 끌어안고, 허구한 날 뽀뽀나 하자는 이상한 농담을 던지고, 가끔은 주둥이까지 빼물고 이마며 볼에 입을 맞추기는 하지만 그건 다른 남자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머리 맞대고 성인물 사진이나 같이 보면서 클클 대고, 자신이 여자라도 만날라치면 옷은 뭘 입어라, 말투는 어떻게 해라, 어느 레스토랑이 맛이 괜찮더라, 모텔이 어디에 새로 생겼더라 하며 발 벗고 코치하던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기웅에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럼 도대체 왜. 왜 기웅이 이우의 주변을 지키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는 걸까.

 허구한 날 남자들 훑어보고 다니더니, 곱게 생긴 이우에게 정말 흑심이라도 품은 건지.

 수호는 생각 끝에 짜증이 솟구쳤다. 어이가 없다 못해 울화통이 치밀었다. 아니, 저가 이우를 잡아먹었으면 자기도 잡아먹은 거라니. 그게 무슨 되먹지도 않은 발상이란 말인가.

 이우를 보면서 설마 그런 상상이나 했던 걸까. 그래서 그런 요상한 물건들을 사서 생일선물이랍시고 던져주었던 걸까. 자신은 그걸 또 멍청하니 받아들고 있던 걸까.

 입술을 꽉꽉 씹던 수호는 이내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럴 사람은 아닌데. 조금 변태 같은 면이 있긴 하고, 저한테 막돼먹은 혀놀림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까지 할 사람은 분명 아닌데.

 한숨만 팍팍 내쉬던 수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finWW2.midntpl2.반석m-brukcrs]

 반석. 반석m. 아무리 검색해보고 생각해봐도 이우는 반석의 의미를 추리지 못하고 있었다. 장소를 가리키는 단어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관련된 장소가 너무 광범위했다. 메모해 둔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반석m

 brukcrs. 어떤 단어의 축약일까. 브룩커스? 브룩. brook 일까. 개울, 실개천, 장애물. 어딘가의 장소를 의미하는 걸까. brookcrs, crs, cross일까.

 메시지 들어오는 소리에 이우는 고개를 들었다.

 ― 김수호 : 아침에 놀랐지? 미안.

 이우는 웃음을 물고 메시지를 적었다.

 ― 아니요.^^ 무슨 일 있었어요?

 ― 김수호 : 그냥. 이따가 만나서 얘기해줄게.

 이어진 메시지를 읽은 이우는 갸우뚱했다. 얘기할 일이 있기는 있었나 생각하며 액정을 터치했다.

 ― 기웅 형 병원 갈까 하는데, 퇴근하고 그쪽으로 올래요?

 

 수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침부터 그놈의 병원 쫓아갔다가 지각하는 바람에 일 년치 욕을 십 분 동안에 들어먹었는데 왜 또 이러실까.

 기웅이 가드를 붙인 것을 들으면 이우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 니가 거길 뭐 하러 자꾸 가. 형이 알아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

 ― 현이우 : 핸드폰 맡기기로 했잖아요.

 ― 형 오늘 정신도 좀 없고. 다음에 형이 가져다줄게.

 ― 현이우 : 저 혼자 잠깐 다녀오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해요.^^ 저녁 땐 집으로 올 수 있죠?

 수호는 이를 악물었다. 하여간 고집이 세다. 말을 어지간히도 들어먹지 않는다.

 짜증을 누르며 잠시 고민하던 수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웅의 말대로, 최고 권력자님을 무슨 수로 이겨 먹겠다고.

 ― 형 끝나고 바로 병원으로 갈게. 도착하면 다섯 시 반 정도 되니까 너도 시간 맞춰.

 ― 현이우 : 히히^^ 네.

 ― 절대 일찍 와 있지 말고! 딱 다섯 시 반까지 와.

 ― 아니, 여섯 시까지 와.

 ― 여섯 시 반도 좋고.

 수호는 점점 구겨지는 인상으로 연달아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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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4 2017 / 6 / 25 281 4 5613   
27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3 2017 / 6 / 24 282 4 5819   
26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2 (2) 2017 / 6 / 23 340 5 5239   
25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 (2) 2017 / 6 / 22 409 5 5234   
24 { 더 포저 시즌 Ⅱ} 아담의 비밀 ... 9(완결) (2) 2017 / 6 / 21 325 5 6978   
23 { 더 포저 시즌 Ⅱ} 아담의 비밀 ... 8 (1) 2017 / 6 / 20 301 5 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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