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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억의 문
작가 : 최윤정
작품등록일 : 2017.6.24

<기억의 문>은 왼손에 무속의 몸주신을 봉인한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숨겨진 기억을 왼손 그림으로 그려내는 치유의 이야기와, 수몰지구로 지정되어 고향을 잃고 서울에 정착한 이들의 실종과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중첩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흰 옷을 입은 여인
작성일 : 17-07-06 15:56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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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출근하는 길에 이웃집 화단에 심은 라일락이 지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수희는 올해도 그럭저럭 넘기는가 싶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님이 보자고 하시네.”

 

 “오, 웬일로 벌써 출근하셨대요? 좋은 일? 나쁜 일?”

 

 방 실장이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우리 원장님만한 분이 어디 계시다고, 부원장은 그래? 좋은 일이것쥬? 이거 커피 내려놓은 거 들고 어여 들어가 보셔.”

 

 수희는 원두 커피 담은 컵 두 개를 들고 정 원장의 진료실에 들어갔다.

 

 정 선배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 보다 수희를 보자 과장되게 반가워하며 일어나기까지 했다.

 

 “수희야!”

 

 수희는 고개부터 흔들며 재형의 책상 위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안 돼, 안 돼요. 선배 내 이름 부를 때마다 무리한 부탁 하는 거 내가 알지. 안돼, 절대 안돼요.”

 

 정 원장은 이것 봐라 하는 표정이었다.

 

 “야! 너, 선배가 후배 이름 부는 게 뭐 어때서? 니가 내 후배인 것도 사실이고, 내 병원 부원장인 것도 사실인데, 지금은 진료 시작 전이니까 사적인 관계여서 이름 부르는 것이 뭐 어때서? 너 은근 선 잘 긋는다.”

 

 “어쨌거나 무슨 부탁이든 노우입니다, 노우! 원 헌드레드 퍼센트, 앱설루틀리 노우!”

 

 “뭐라는 거야? 야! 너 우리 병원이 돈 벌어들이는 일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어? 니가 월급값 한다고 생각하냐?”

 

 “매일 내담환자 5명에, 짬짬이 약물 처방하는 환자 이십 여명. 이 정도면 건물 월세, 직원들 월급 값 톡톡히 하고도 남는 거 같은데요.”

 

 수희는 책상 옆에 놓인 상담 의자에 앉으며 의기양양하게 보고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봉직의 두 몫은 하는 거 아닌가.

 

 “TV 출연한 후로 환자가 많아져서 내가 마음 놓고 화장실에 앉아 사색할 시간도 없어요. 그러니까 너 내담 환자 하루 세 명으로 줄이고 약물 처방 외래 환자 위주로 바꾸자. 그래야 나도 마음 놓고 화장실에서 볼 일 보지.”

 

 수희는 얼굴을 살짝 굳혔다.

 

 “저 일하기 시작할 때 조건이 내담환자 위주로 보는 거였잖아요. 저는 약물 처방 재미없어요.”

 

 “어이 부원장. 병원이 너 재미있으라고 있는 거냐? 그리고 요새 약물 좋아. 꼭 심리적인 원인을 파헤쳐야 한다는 생각, 버려야 해. 무시하고 살 수 있으면 그렇게 살아도 되지 괜히 파헤치다가 부정적인 기억이 더 강해질 수도 있는 거고. 요는!”

 

 정 원장은 검지를 펴서 내 눈 앞에 흔들며 강조를 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오는 환자들 예약이 꽉 차 있어 일주일 정도 기다리게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되는 거거든. 병원 신의가 있지. 내담 환자 세 명으로 줄여, 약물 처방 환자 더 늘리고.”

 

 “선배, 아니 정 원장님! 그간 제 내담 환자들 예후 좋잖아요. 덕분에 병원 이미지도 올라가고. 선배 TV 나가서 이야기하는 케이스들 거의 다 내 환자 이야기이면서. 저번에 왜 실검에도 오른 바람둥이 환자 케이스도 내 거였잖아.”

 

 선배가 잠시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에 굴할 원장은 절대 아니었다. 도박 스릴 대신 요새 통장 숫자 불어나는 재미로 마음 잡아보려 하는 양 돈에 환장을 한 것처럼 굴었다.

 

 “니 케이스 하루 세 개씩이면 일주일에 최소 열다섯 개인데 그걸로 충분해. 줄여. 이건 원장으로서의 요구야. 그리고!”

 

 선배가 수희의 눈을 똑바로 보며 명령조로 요구했다.

 

 “너는 내 대신 모레 방송에 출연해야 한다는 거. 나 다른 방송 프로그램 해외 촬영 잡혀서 거기 가야 하거든.”

 

 수희 입이 떡 벌어졌다.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반박을 하려 하자 틈새를 안 주고 정 원장이 쐐기를 박았다.

 

 “이건 부 원장으로 의무야. 병원 수익에 협조해야 하는. 청소년 정신 건강 대담 프로인데 친구가 PD라서 거절할 수가 없어요. 내대신 너라도 보내달라니까 그냥 가서 청소년 건강에 대해 말하면 돼. 프로그램 컨셉에 대해 이메일 받은 거 포워딩 했으니까 읽어보고 준비하고. 오케이? 끝! 가서 진료 봐.”

 

 이거였다. 앞의 말은 다 이걸 위해 연막을 친 거.

 수희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전문의도 안 땄는데 제가 어떻게 그런 데 나가요? 나중에 말 나오면 어쩌려고. 선배는 전문의니까 섭외가 된 건데 거기에 나를 넣으면 어떻게 해요?”

 

 수희는 신경정신과 레지던트 1년 차에 봉직의로 취업을 해야 했다. 아버지 피부 이식 수술비가 오천만원도 넘었기 때문이다. 그 때 수술비 빌려주면서 정 원장이 자기 병원에 와서 일하라고 자리를 주어 일하게 된 인연이었다.

 

 “진료 5년 넘게 하면서 환자 엄청 봤는데 새삼 무슨 전공의 타령? 그리고 그 프로그램 밤 늦게 하는 대담 프로라서 보는 사람도 없어. 걱정 마.”

 

 그건 당신 생각이고.

 

 수희는 입을 비죽였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한숨을 내쉬고, 수희는 못을 박았다.

 

 “이번 딱 한 번이에요, 딱 한 번. 그거 약속해 주셔야 저 TV 나가요. 앞으로 TV 출연 절대 없다는 거 문서로 날인해서 주세요.”

 

 “아니 뭐 날인씩이나? 야, 남들은 TV 못나가서 안달인데. 나나 되니까.”

 

 “그건 남들 이야기고, 전 싫다고요. 사정이 있다고요.”

 

 왼손이 막 움직이면 어쩔 것인가?

 

 해리 증상을 가진 정신과 의사라는 걸 만 천하에 공개되는 걸 감수할 이유가 뭐가 있겠냐고 확 말해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정 원장에게 이야기하기에도 너무 큰 사안이었다.

 

 하여간 저 원장은 도움이 되는 게 없어요, 도움이.

 

 수희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정 원장 대신 TV에 출연하는 일 없게 하겠다고 자필 날인한 종이쪼가리를 기필코 받아내 진료실에 돌아왔다. 하지만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길 멈출 수가 없었다.

 

 겨우 화가 가라앉자 심각한 걱정이 찾아왔다. 왼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걸 막기 위해 녹화 시작 전에 리도카인 한병을 주사하고, 바지 호주머니에 단단하게 손을 옥죌 주머니를 달아서.......

 

 왜 정 원장이 이 사단을 만들어서....... 불안감만큼이나 그 날 무슨 일이 벌어지고야 말 거란 강한 예감에 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

 

 좀처럼 안정을 하지 못하는 수희를 보다 못한 방 실장이 방송국 구경을 핑계로 수희를 따라나섰다.

 

 녹화는 밤 10시,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토론 프로그램이었다.

 

 정신과 의사인 수희, 비행 청소년을 주로 변호하는 변호사 한 명 그리고 교육 심리학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가 한명 패널로 출연하기로 되어 있다는 건 사전에 보내온 이메일을 통해서 숙지한 사항이었다.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으려니 방 실장이 심심했던지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부원장, 오늘 출연료 얼마래? 나하고 반띵, 알지? 내가 부원장 위해 저녁 휴식도 마다하고 와주었으니까 절반은 나하고 나눠야지. 일종의 야근 수당이랄까.”

 

 수희가 피식 웃었다.

 

 “거, 할아버지가 피난길에 굶주려 돌아가셔서 그러나 가만 보면 방 실장님 돈 되게 밝히는 거 아세요?”

 

 방 실장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내가 우리 외할아버지가 피난길에 돌아가셨다고 말 했었어?”

 

 수희는 아차 싶었다. 언젠가 방 실장과 술 마실 때 왼손이 그려준 그림에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아, 뭐 저번에 술 마시며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외할머니가 엄청 고생하셨다고.”

 

 으응하며 고개는 끄덕였지만 방 실장은 미심쩍은 듯 수희를 보다 지나가듯 한 마디 툭 던졌다.

 

 “환자들이 가끔 그런다? 부원장 정말 잘 맞춘다고. 어떤 때는 이게 상담을 받은 환자들인지 점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인지 내가 막 헷갈려요.”

 

 말을 뱉어놓고 방 실장은 메이크업 해 주는 분장사가 신경 쓰였는지 얼른 주워 담았다.

 

 “부원장님이 애들 볼 때 타로 카드도 이용하고 그래서 그런가봐. 하긴 정신과 의사나 무당이나, 뭐 잘 고치기만 하면.”

 

 훅 뱉어놓은 무당이란 말에 지레 놀랐는지 방 실장은 그 때부터 입을 꾹 다물었다.

 

 눈두덩을 터치하는 분장사의 붓질 때문에 눈을 감고 있는 수희는 방 실장의 수다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다. 잘 될 거야. 왼손만 안 움직이면. 수희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꽉 잡아눌렀다.

 

 왼손에 리도카인을 주사하려던 계획은 접어야 했다. 타로 카드를 이용한 상담 기법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제작진에서 강력하게 요구해왔기 때문이었다.

 

 수희가 연거푸 거절했지만, 딱딱한 좌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요청을 계속 거절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신 주경씨 상담 이후 왼손은 잠들어 있었다.

 

 수희는 매일 아침마다 108배를 하면서 왼손을 향해 빌었다. 제발 침묵해주길. 더 이상 움직이지 않기를.

 

 하지만 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지 않았던가?

 

 수희는 방송 출연이 드디어 지하실의 문을 열기 시작하는 행위라는 걸 그 때는 몰랐다.

 처참한 과거를 지하실에 묻어 놓고 봉인한 채 각자의 삶을 꾸리기 위해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말해지지 않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해결되지 않은 죽음을 풀어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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