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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마스커레이드
작가 : 블루벨
작품등록일 : 2017.6.29

전장의 여신, 무패의 기사라 불리는 아름다운 소녀 아라베스의 이야기

 
#3.
작성일 : 17-07-06 01:33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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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그녀가 날카로운 눈으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응시했다. 아라베스의 시선이 정확히 어느 한 지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유리의 눈동자가 같은 방향을 빠르게 훑었다. 그가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입을 열었다.

 

  "11시 방향 정면, 아카데미 기사학관과 이어진 첨탑입니다."

 

  "가보죠."

 

  유리의 말에 아라베스가 지체없이 기사부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나갔다. 잘 벼려진 검처럼 예기를 뿜으며 발걸음을 내딛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멍하게 응시하던 유리는 신음처럼 목을 타고 오르는 한숨을 삼켰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갑작스러운 전개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누군가 아라베스 리마 힐가르드를 암살하려했다? 대체 왜?

 

  뜬금없이 암살이라니 그 시기와 의도가 미묘하다. 아라베스가 최근 리다라움에서 가장 화제를 몰고다니는 인물인 것은 맞지만 왕위계승자인 것도 아니고, 수뇌부의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팬이 많은 만큼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 현재의 그녀에게 쏟아지는 시기와 질투가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이끌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요는 아라베스가 거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재임은 분명하지만 현재의 그녀가 암살 따위를 당할만큼의 위치는 아직 아니라는 얘기다.

 

  설사 암살을 시도했다손 치더라도 그녀가 오늘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유리가 아라베스를 안내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으니까. 빠르게 솟아나는 의문들을 누르며 유리는 서둘러 떨어져 있는 부러진 화살의 잔재를 갈무리한 뒤, 앞서나간 아라베스의 뒤를 쫓았다.

 

 

  "잽싸게 도망 갔군요."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연 아라베스의 말에 유리는 첨탑의 전면부 창문으로 다가가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첨탑 안에는 이미 쥐새끼하나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탑으로 다가가면서 주변의 움직임을 주시했지만 누군가 빠져나가는 것도 들어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학관의 첨탑은 대열 훈련중인 학생들을 위에서 지켜보거나 학생들의 사열을 조망하기 위해 주로 교관들이나 교수들이 올라온다. 오늘을 아카데미의 행사가 있는 날이니 내부는 계속 비워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이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곳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화살처럼 눈에 띄는 물건을 들고오기에는 더더욱. 아라베스가 화살이 날아온 예상지점으로 꼽은 이 장소의 안으로 들어오려면 학생회실이나 생도클럽이 있는 중앙건물의 입구를 지나쳐야했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정규수업이 없어 학생들이 온 아카데미에 북적거렸던 오늘 같은 날에는 더 그렇다.

 

  유리가 품을 뒤적여 방금전 챙겼던 화살의 잔해를 꺼내들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로 한참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라베스가 동그래진 눈으로 유리의 곁에 다가왔다.

 

  "이거 혹시 방금 날아온 그건가요?"

 

  "네. 일반적으로 군대 보급용으로 쓰이는 세형촉 같습니다만..."

 

  "살대도 그렇고 별다른 특징은 없어보이는군요."

 

  그녀의 말이 맞다. 목표물을 꿰뚫기 쉽게 가느다란 모양으로 만든 이 화살촉은 가장 효율적으로 살상력을 높인 형태로 값도 저렴해서 보병들이 보급품이나 하급 용병들이 주로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수요가 많은만큼 흔하디 흔한 물건이었지만... 머릿속에 탐탁지않은 가정을 떠올린 유리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아라베스에게 물었다.

 

  "힐가르드 경께서 여기서 활을 쏘면 보통 어느 정도까지 날아갈 것 같습니까?"

 

  "흠...이 위치에서라면...아마 저쪽의 장미정원의 울타리까지 정도는 날아갈 것 같은데요."

 

  "일반적인 군용 활정도로 말입니까?"

 

  "그래요. 좀 더 탄성이 좋은 동대륙식 활을 쏘면 사거리가 더 나올 수도 있겠지만요."

 

  "그럼 같은 조건으로 이 첨탑에서 아까의 위치까지 활을 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실력일 것 같습니까?"

 

  유리의 질문에 아라베스의 눈동자가 흥미롭다는 듯 가늘어졌다. 그녀는 유리가 묻는 질문의 의도를 곧바로 알아챘다. 그가 손에 들어 내민 화살촉과 부러진 화살대의 조각을 살피던 아라베스가 날카롭게 미소지었다.

 

  "궁사로서 꽤 괜찮은 실력이네요. 화살을 보니 석궁은 확실히 아닌 것 같고, 일반적인 활을 썼다면 아주 훌륭해요. 게다가 목표물에 꽤 정확하게 닿았고."

 

  정확히는 닿을 뻔 했지. 유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아라베스가 천천히 덧붙였다.

 

  "다만 다소 어설픈 점은 있군요. 저격하려는 것 치고는 화살이 급소로 날아오지 않았거든요. 첨탑과 아까의 지점간의 거리를 봤을 때 사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아 더 실력 좋은 사람이었다면, 제가 쳐낼 시간이 부족했을 거예요."

 

  "...애초에 날아오는 화살을 쳐낸다는 평가기준이 저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종류인 것 같습니다만, 그렇군요. 참고가 됐습니다."

 

  아라베스의 말에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에 아라베스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이런 짓을 한 범인이 누군지 알겠어요?"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힐가르드 경 덕분에 범위는 많이 좁혔습니다."

 

  유리가 선선히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가 예상한대로 아카데미 내부의 누군가가 벌인일 가능성이 커진 것 같았다. 이 세형촉은 아카데미 내 전투분과에서 실습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종류중에 하나였다. 이 첨탑으로 접근하는 동선도 그렇고, 아라베스의 말마따나 암살범이 급소를 노리지 않고 저격을 감행하는 미숙함 등을 따져봤을 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얼굴들이 몇 있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던 유리가 문득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는 아라베스를 향했다. 유리가 한숨을 내쉬고 약간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좀 많이 늦은 질문이지만, 괜찮으십니까? 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는데."

 

  그의 질문에 다시한번 아라베스가 묘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보시다시피. 뭐 이정도 일로 기죽을 만큼 약하진 않아요."

 

  "그렇습니까...하지만."

 

  유리가 뭐라 말할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전장의 여신이든 무패의 기사든 이런 형태로 목숨을 위협받는 것이 그녀에게도 익숙한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전쟁에서의 전투와 일방적인 살해 위협이라는 것은 분명히 다를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베스는 정말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 모습은 유리의 마음을 조금 무겁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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