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이후는 아마 알고 계신 그대로 일 겁니다. 저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한 건 사건 이후 그 당시 반장에게 들어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군요"
재규가 그 때 당시 끔찍했던 현장을 떠올린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경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싸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이유 없는 살인을 즐기는 놈들은 없겠죠"
"아마 생활기록부나 반 명부로는 특별히 알 수 있는게 없으실 겁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특별히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없었고 생활기록부는 그 사건으로 퇴학당해서 더 볼 것도 없죠"
"교감선생님, 그럼 혹시 오철식이 구속된 이후 면회를 갔다던지 만나보신 적은 있습니까?"
옆에 있던 준혁이 묻자 재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식이가 5년의 징역살이를 하는 동안 한달에 한번은 꼭 면회를 가곤 했습니다. 출소 후에는 일자리도 알아봐 줬으니까요"
재규의 말에 준혁의 표정이 밝아졌다.
"혹시 면회기간동안 오철식 학생에게서 다른 이상징후라던가 그런 것은 없었나요?"
"이상징후라면 어떤...?"
"아 뭐, 살인에 대한 후유증 이라던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이나 말을 한다던가 그런거요"
준혁의 말에 곰곰히 생각하던 재규가 대답한다.
"특별히 그런 것은 못느꼈습니다만... 제가 면회를 갈 때마다 철식이가 저한테 항상 묻던 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재규가 고개를 들어 준혁과 경일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말한다.
"형사님들은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죽음은 뭘까요?"
재규의 물음에 준혁이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요?"
"풉"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대사에 경일이 실소를 터뜨렸지만, 재규는 그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뚫어지게 준혁만 바라봤다.
"...제가 오늘 하나 배웠습니다"
"아니...예?"
경일의 반응에 무언가 변명하려던 준혁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형사님들이니까 당연히 '사람의 호흡이 완전히 정지했을 때 죽는거죠' 라던가 뭐 그런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라니... 솔직히 감동했습니다"
경일이 무언가 말하려고 하자 준혁이 팔꿈치로 경일의 옆구리를 '툭' 쳤다.
"윽.."
준혁을 바라보던 재규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아이.. 철식이는 면회를 오는 저에게 항상 '사람이 언제 죽는지, 죽음이 무엇인지' 물어보곤 하였습니다"
"예?"
"첫 살인에 대한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 저는 철식이에게 '죽음'에 대해 설명하기 보다는 위로하는 것을 택했죠"
"..."
"가령 '내가 너였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 살인은 충동적인 사고였다' 식의 진부한 얘기요"
옆에 있던 생수로 목을 축인 재규가 말을 이었다.
"그런 면회가 4년이나 계속 되다가 철식이의 출소가 1년 남짓 남았을 때 이런 말을 하더군요"
"...?"
"선생님, 사람이 죽음으로써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잖아요? 학생 때는 학업, 그 다음은 취업, 결혼,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책임감, 자식걱정에 노후 걱정... 일평생을 걱정과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인간이 '죽음'으로써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닐까요? 라고..."
"그건 너무..."
경일의 말을 재규가 중간에서 끊었다.
"물론 이제 갓 대학교에 들어갈 나이의 아이가 할 말은 아니죠. 하지만... 철식이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 자체가 다른데 일반인들의 기준을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
경일이 입을 다물자 재규가 말을 잇는다.
"그러던 중에 철식이가 5년 간의 징역살이를 마치고 출소를 했고, 오갈 데 없는 철식이를 지인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소개시켜 줬습니다"
"좋은 일 하셨습니다"
경일의 말에 재규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 때 부터 한 1년간은 걱정이 되어 전화도 자주하고, 마트에 직접 간 적도 제법 되는데... 애가 워낙 성실하게 일하고 지인도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하기에 그 이후로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살았습니다. 지금까지요"
"그렇군요..."
경일의 중얼거림에 잠시 생각하던 준혁이 말한다.
"혹시 오철식씨 아버지는 언제...?"
"철식이가 징역살이를 시작한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5층에서 건물 철거 작업을 하시다가 추락해서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례지만 그럼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준혁이 결재판에서 오철식의 판결문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여기 보면... 피해자의 어머니, 그러니까 죽은 박수홍 학생의 어머니가 충격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는...?"
잠시 판결문을 바라보던 재규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한다.
"수홍이 어머니.. 김선미씨도 그 사건 이후 저를 자주 찾아왔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제가 아니라 죽은 수홍이의 남은 흔적을 찾아 왔다는게 맞겠죠. 한 1달 간은 그런 극단적인 선택까지 할 정도로 힘들어 하셨지만 그 이후로는..."
"잠깐만요"
준혁이 재규의 말을 급히 끊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1달 간은 힘들어하셨..."
"아니, 아니요. 그것 말구요"
경일이 목소리까지 묘하게 떨리는 준혁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수홍이 어머니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분명히... 김선미씨가 맞을 겁니다"
재규의 대답에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준혁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혹시 그 분 지금 살아계신.. 아니 어디 계신지 알고 계신가요?"
재규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수홍이가 죽은지 1년 뒤부터 수홍이 어머니의 발길도 차츰 끊어져서 저도 그 이후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준혁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급히 밖으로 나가려고하자 경일이 준혁을 불러세웠다.
"야! 어디가? 왜 이렇게 급해?"
"행님, 일단 나가서 얘기해요. 나가서..."
말을 마친 준혁이 상담실 밖으로 나가자 경일이 재규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실례 많았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차량으로 돌아온 준혁이 급히 결재판을 뒤지더니 종이 1장을 찾아 손에 쥐었다.
빠르게 글을 읽어 내려가던 준혁이 어느 한 지점에서 시선을 멈추더니 부르르 몸을 떨었다.
덜컥
"야 뭐야, 무슨 일인데?"
그 때 경일이 차량 조수석에 뛰어 오르며 준혁에게 말한다.
"...행님"
"뭐? 왜?"
준혁이 말 없이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내밀자 경일이 받아들었다.
"이게 뭔데? 2번 째 연쇄살인사건 범죄 사실? 그 식당 아주머니 살해당한..."
말을 하면서 빠르게 글을 읽어 내려가던 경일의 시선이 어느 한 지점에서 멈췄다.
"뭐야 이거"
경일이 경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뭐냐고!"
경일이 준혁을 바라보며 버럭 소리쳤다.
"왜! 오철식이 죽인 피해자 중에 김선미씨가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