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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향기를 입다
작가 : 서은환
작품등록일 : 2017.6.24

" 여솔씨, 사랑에 눈 먼 남자에겐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어요. 얼마나 멀리있던, 얼마나 높이있던,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갈께요. 누구도 무시 할 수 없는 최고의 남자가 될께요. "

 
8화
작성일 : 17-07-01 19:21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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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역시…. 원장님이야…."

 

 샵을 나서는 남녀를 본 직원은 가만히 벙찐채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계산을 마치고 도구를 정리하던 원장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해? "

 

 " 그럼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잖아요! 처음에 들어왔을 땐 무슨 아저씨가 온 줄 알았는데 "

 

 " 옷이랑 아무렇게나 길러놓은 머리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원래 신체 스펙 자체가 훌륭했어 "

 

 " 그럼…."

 

 " 특별히 꾸며준 건 없다는 거지, 그냥 숨겨둔걸 꺼낸 정도? "

 

 " 그걸 알고 데려온건가요. 대단하네요…."

 

 " 그러게, 어디서 보석들을 쏙쏙 잘도 찾아온단 말이야.. "

 

 그렇구나, 중얼거리며 바닥을 쓸던 직원이 문득 고개를 들며 말했다.

 

 " 신인 연예인일까요? 싸인 받아둘걸 그랬나? "

 

 .

 .

 .

 

 「 어머 유진아.. 너 완전 성공했구나….」

 

 파티장에 도착했지만 정작 설화가 보이지 않아 자랑이나 할 겸 호텔 앞에서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던 유진은 한껏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 아니 뭐~ 이제 시작이지~ "

 

 「 완전 대박이다…. 난 언제 그런 곳에 가볼까.. 」

 

 하늘을 뚫고 올라갈 것만 같이 콧대가 솟은 유진은 호텔 풍경을 화면에 담아 주었다.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모습 하나하나가 장관을 이뤘다.

 

 " 지금 남자친구는 미래 그룹 상무님이랑 대화하느라 바쁘고~ "

 

 「 와!! 대박이네!!! 아 진짜 부럽다…. 와 저 자동차 내 드림카인데….」

 

 자동차? 친구의 말을 따라 뒤돌아본 곳에는 아까 호텔을 빠져나갔던 차량이 다시 들어오고 있었다.

 

 " 큼큼…. 여기서 저 정도는 뭐 기본이지.. "

 

 자신의 차도 아닌데 친구의 반응에 본인 어깨를 세우던 유진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 여솔씨 저 아무래 좀 어색한데…."

 

 " 아니에요. 지금이 딱 좋아요. "

 

 강설화! 1년간 지겹게 들어왔던, 자신이 이 파티장에 온 그 이유가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유진은 한껏 비열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 아악 "

 

 급하게 돌아서면서 부딪친 코를 부여잡은 유진이 비명을 지르자 설화는 다급하게 물었다.

 

 " 어…. 저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

 

 " 설화씨 조심 좀 하지…."

 

 설화가 맞음을 확인한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다소 쪽팔리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어차피 강설화 멘탈이면 분명….

 

 분명….

 

 " 유진? "

 

 강설화 특유의 맑고 깨끗해 보이는 눈, 도드라지는 콧대와 도톰한 입술, 더벅머리는 깔끔하게 잘라 숨겨져 있던 날렵한 턱선이 드러났고, 앞머리를 올리자 시원한 이목구비가 뚜렸하게 보였다.

 

 빨간색 롱 코트 안에 담담하게 자리 잡은 검은 와이셔츠 카라에는 포인트가 되어줄 핀셋이 고급스러운 넥타이에 달려 심심한 듯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분명…. 강설화가 맞는데…. 강설화가 맞는 거야..?

 

 " 설화씨 아는 분? "

 

 " 아…. 뭐…."

 

 자신을 알아보고 싸늘하게 식은 설화의 표정에서 누군가가 겹쳐 보였다….

 

 강태화….

 

 그런 생각이 들자, 유진의 혀가 딱딱하게 굳었다.

 

 더군다나 자기 딴에는 최대한 힘주고 나왔음에도 여솔 앞에서 굴복당한 옷차림에서 오는 초라함과 전혀 생각 못 했던 강설화의 변신. 유진은 막힌 말문을 억지로 열며 말했다.

 

 " 너…. 너 같은 게 여긴 무슨…."

 

 " 이봐요 "

 

 유진이 말을 마치기 전에 여솔이 치고 들어 오며 말문을 막고는 말을 이었다.

 

 " 그쪽이 뭔데, 그런 식으로 말하죠? "

 

 " 네? 저…. 저는.. "

 

 " 설화씨 아는 사람이에요? "

 

 무덤덤하게 유진을 내려다보던 설화가 나직이 말했다.

 

 " 그냥 전에 좀 알았습니다. 가시죠 "

 

 무심히 발걸음을 옮기는 설화와 여솔을 보며 유진은 치욕스럽게 이를 갈았다.

 

 " 강설화...너 따위가...너 따위가.. "

 

 

 

 

 

 

 ***

 

 

 

 

 

 20분 전, 차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여솔이 백미러에 비친 설화를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 솔직히 기대 이상이네요 "

 

 " 저 여솔씨.. 저…. 이거..좀.. "

 

 평소와 다른 어색함에 민망하게 꼼지락거리던 설화의 입을 막은 여솔이 말했다.

 

 " 우선 사과할게요. "

 

 " 뭘요…?"

 

 " 설화씨 의견은 물어보지 않고 제 마음대로 데려온 것도 그렇고, 무슨 이유때문인지 꾸미기 싫어하시는 거 같은데 억지로 꾸며놔서 미안해요 "

 

 멋쩍은 듯 볼을 긁적이는 설화를 보며 여솔은 작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 전 아무도 설화씨를 무시하지 못했으면 좋겠어요. "

 

 " 왜요? "

 

 " 제…. 음…. 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잔잔히 미소 짓는 설화에게서 또다시 장미향이 감돈다. 분명히 싫은 일도 싫어할 수 없게 만든 그 향이 코끝에 맴돈다.

 

 여솔은 담담하게 말했다.

 

 " 좀 민망하긴 하지만 전 어쨌든 제 사람이 무시당하는거 보고 있을 수 없어요 "

 

 저도 그래요 여솔씨. 대답을 속으로 삼킨 설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제가 부끄럽지 않으셨나요 "

 

 " 이상하게 봤었죠 "

 

 " 되게 솔직하시네요 "

 

 " 그야! 전 직업이 이쪽이고…. 그러니까..그건 그냥 첫인상이 그랬다는 거 뿐이에요! "

 

 " 지금은 다른가요? "

 

 곤란하게 흔들리던 여솔의 눈빛이 자리를 되찾고 밝게 빛났다.

 

 " 어떤 이유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 전 설화씨가 정말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진심이에요 "

 

 알아요. 담담한 표정에서 잔잔하게 나오는 대답에서 이미 진실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 얼마 전에 방송국 갔을 때 강태화랑 잠깐 마주쳤었어요…."

 

 말을 꺼내려던 여솔이 곤란한 듯 미간을 찡그리자 설화가 웃으며 말했다.

 

 " 제 이야기가 나왔군요."

 

 " 네…. 이유를 몰랐었는데…. 그…."

 

 " 벌레라고 했을테고요"

 

 여솔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설화는 익숙한 듯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여솔씨, 제가 형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까요? "

 

 그리고 당신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 맡겨주세요."

 

 여솔은 씨익 웃으며 시동을 켰다.

 

 

 

 

 

 ***

 

 

 

 

 파티장이 어수선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떠나서 사라졌던 남자와 함께 돌아온 여솔은 그 남자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서 왔다.

 

 " 어…. 어이…. 알…. 바.. "

 

 아까 설화에게 샴페인 잔을 넘기던 남자는 설화가 돌아오자마자 다시금 다가갔지만 아까처럼 말을 잇지 못한 채 얼버부렸다.

 

 설화는 여유롭게 웃으며 잔은 받아들고 말했다.

 

 " 전 알바가 아니지만, 헷갈리실 수 있으니 이해하고 이번까진 제가 치우겠습니다."

 

 큼큼. 괜히 헛기침을 하던 남자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경멸하고 무시하는 시선을 보내던 파티장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난처하게 흔들렸다.

 

 " 저…. 편집장님…. 저 사람이 아까 그 사람이에요…?"

 

 " 신기하지? "

 

 당황한 듯 묻는 에디터에게 유리는 여유롭게 웃으며 잔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 넌 여솔이 왜 성공했다고 생각해? "

 

 " 그야…. 옷 보는 눈도 좋고…. 코디도 잘하고.. "

 

 " 반은 맞았지만, 반은 틀려 "

 

 이해할 수 없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직원을 보며 유리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 이 샴페인이 왜 고급일까, 아니 실제로 고급일까? "

 

 " 네? 그야…. 당연히…."

 

 " 이 샴페인을 종이컵에 따라서 동네 놀이터에서 마시게 했어도 고급이라고 생각했을 거 같아? "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는 유리를 보고 에디터는 답답한 듯 칭얼거렸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 표정, 말투, 움직임 등등…. 여솔이 보는건 분위기야 "

 

 " 분위기요…?"

 

 " 이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외모지상주의야. 근데 그저 잘생기고 예쁘다고 끝일까? "

 

 " 음…. 그렇지 않나요? "

 

 " 틀려, 연예인만 봐도 정말 외모로 따지면 더 잘난 애들이 지천에 널렸어도 못뜨고 있잖아? "

 

 " 아 "

 

 " 그래, 외형은 예선전이야. 그걸 얼마나 매력적으로 폭발시킬 수 있냐가 진짜 중요한거지 "

 

 애초에 저 강설화라는 사람을 바닥으로 찍어누르기 위해 마련된 파티.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설화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설화에게 아무런 악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용아 그룹의 실세로 떠오른 태화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유치한 장난질에 어울려줄 뿐. 그런 가벼운 마음은 어느새 본분을 잊은 채 몇몇의 여자는 얼굴까지 붉히며 설화를 훔쳐보기에 이르렀다.

 

 " 솔이가 보는 패션의 범주는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하고있어. 걔가 띄워놓은 연예인들이 대단하게 다른 옷을 입었을 거 같아? "

 

 " 그러고 보면…."

 

 " 응, 솔이는 장소와 상황에 맞는 옷에 추가로 분위기까지 요구하지. 그 상황에서 가장 잘 맞은 매력을 끄집어내는 능력이 있어. "

 

 샴페을 입안에 머금고 굴리던 유진이 계속해서 말했다.

 

 " 즉, 걔는 어떤 상황에서든 샴페인 맛을 보고. 그 가치에 맞는 분위기와 잔에 담을 줄 아는 애라는거지 "

 

 유리는 2층에서 한껏 심각해진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태화를 보며 씨익 웃었다.

 

 " 그게 지금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고 "

 

 

 

 

 

 ***

 

 

 

 

 

 태화의 샴페인 잔을 든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잘근 씹어 터진 입술에서 진한 피 맛이 비릿하게 새어나왔다.

 

 " 전하의 강태화가 완전 한방 먹었네. 동생은 동생인가 봐, 저렇게 해놓으니까 똑 닮았네 "

 

 접시에 가득 든 치즈를 입안에서 오물거리던 현정이 웃으며 말했다. 한껏 일그러진 태화의 표정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현정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살다 살다 오빠의 이런 표정을 다보고, 그보다 여솔은 역시 대단해? "

 

 어느새 주변 사람들과 간단하게 대화까지 나누고 있는 설화의 모습에선 여유까지 보이는 듯했다. 구부정했던 허리와 어깨는 꼿꼿하게 펴졌고, 손짓 하나하나에 기품이 묻어 나왔다.

 

 여유가 보이는 남자만큼 매력적인 게 없다고 했던가. 멀리서 봐도 그의 표정은 실로 달콤해 보였다.

 

 " 알맹이는 그대론데, 겉모습은 둘째고 분위기까지 바뀐 거 같은데. 그 짧을 시간에 존재감을 저렇게 바꿔버리네!"

 

 바뀔 리가 없었다. 옆에서 오랜 시간 봐왔기 때문에 분명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절대로 틀어질 리 없는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부서지는 걸 본 태화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차근차근 오랜 시간 심어놓은 트라우마는 이렇게 한순간에 극복 될 일이 아니었다.

 

 " 뭐가 문제냐…."

 

 나직이 중얼거리는 태화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림을 느끼자 분노는 더욱 가중되었다.

 

 " 설마…."

 

 태화는 들고 있던 잔을 거칠게 내려놓고 핸드폰에서 유진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 야 너 어디야 "

 

 그래, 아직이야. 알맹이까지 바뀌었을 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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