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월요일 아침에 두 사람이 온양온천호텔을 미처 빠져나오기도 전에 나리의 사진은 조간신문부터 실리더니 공중파 아침 7시 뉴스에 토픽으로 떠버렸다. ‘연쇄살인범 김우진’이란 이름과 나리의 주민등록부에 붙어있던 사진이 고스란히 텔레비전에 실린 것이다. ‘트랜스젠더 나 오미 나리’라는 것이 덧붙은 것은 정오뉴스부터였다. 결국 ‘트랜스젠더 나 오미 나리’가 ‘김우진’이라고 공고된 셈이었다. 자막에 광역수사대 연락처와 112의 번호가 깔렸다. 광역수사대는 오전부터 부산해졌다. 시민의 제보를 통하여 범인의 동선을 파악하고자 했던 광역수사대였다. 정오뉴스가 끝나자 광역수사대 수사1팀에는 제보전화가 이어졌다. 제보전화에는 영웅심리로 걸려오는 허위전화도 포함되었다. 그중 같은 빌라에 산다는 한 여자의 전화를 받은 수사관은 뭔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즉시 지용운 팀장에게 보고한다.
“팀장님. 김 우진을 안다는 여자의 제보입니다.”
“어떻게 안다는 건데?”
“같은 빌라 앞집에 산다는데요.”
“그래? 지금 바로 출동해”
수사1팀 수사관 네 명은 즉시 역삼동으로 향했다. 수사관의 무리에는 김대식도 포함되었다. 수사관들이 역삼역 빌라에 도착한 시간은 제보를 받고난 후 채 한 시간도 되기 전이었다. 경광등을 켠 소나타가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자 마주오던 차들이 한쪽 귀퉁이로 비켜난다. 소나타는 빌라 입구에 섰다. 네 명의 수사관들은 모두가 행동이 민첩했다. 차가 서자 빠르게 내리더니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2층이라고는 하지만 반 지하를 1층으로 칭하는 빌라는 입구에서 계단 열개만 올라서면 바로 2층이었다. 202호 초인종을 눌렀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뚱뚱한 여자가 현관문을 열었다.
“광역수사대에서 나왔습니다. 제보하신 분입니까?”
여자는 목소리가 크다며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한다.
“네. 바 바로 앞집이에요.”
수사관들은 앞집을 쳐다본다.
“틀림없습니까?”
“네. 그 그렇다니까요. 자주 보는 얼굴인데 모르겠어요? 살인자가 앞집에 살고 있다니 무서워서 혼났어요.”
수사관들은 일제히 201호를 포위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눌렸다. 대답이 없자 문을 두드렸다
.
“계십니까? 관리인입니다. 아무도 안계세요?”
현관문을 꽝꽝! 세차게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수사관 한 명을 곧바로 광역수사대 수사1팀으로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장석탭니다. 제보전화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김 우진은 없는 듯합니다.”
“그래? 알았어. 나도 갈 테니까 그 집 주인을 수배해봐. 임대차계약서도 확인하고, 소란피우지 말고 조용히 움직여”
“알겠습니다.”
장석태는 임대를 관리하는 인근 부동산사무실을 파악하고 집주인을 부동산사무실로 불렀다. 일흔이 넘은 집주인은 광역수사대에서 걸려온 전화에 허겁지겁 달려왔다. 집주인은 빌라와 2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장석태가 임대차계약서를 펴고 임차인을 파악할 때 지용운도 부동산사무실로 들어섰다. 수사관 두 명을 대동하고 있었다. 여섯 명의 수사관들이 들이닥친 부동산사무실은 집을 알아보기 위해서 찾아온 손님마저 나가버렸다. 손님을 떨쳐버린 부동산 사장은 싫은 내색도 못하고 수사관들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임대는 언제 한 것입니다.”
“지난 4월 초입니다.”
“임차인에 박 강철이라고 되어있는데, 혹시 이 사진의 인물입니까?”
“아닌데요.”
“그래요?”
지용운은 수사관들을 바라보며 장석태에게 지시한다.
“장 수사관, 지금 바로 박 강철 소재파악하고 검거해. 두 명 더 데리고 가.”
“알겠습니다.”
두 시간 후, 광역수사대 취조실에는 박강철이 잡혀왔다. 강철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것이다. 한쪽 벽면이 거울로 된 작은 방에 강철과 장석태가 마주 앉았다. 작은 백열등이 낮게 걸려서 책상 위만 훤하게 비추었다. 강철은 20년 전이 생각났다. 조직폭력배의 일원이었던 그는 행동대원 몇몇을 데리고 나이트클럽을 접수하기 위하여 야구방망이와 각목을 휘두르며 다른 쪽 조직폭력배와 큰 싸움을 벌인 후 취조실에 끌려온 적이 있었다. 음산한 분위기의 취조실은 20년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흔들리는 백열등은 여전히 주눅 들게 했다. 장석태는 강철에게 나리의 사진을 내밀었다.
“이 사람 알죠?”
“...”
“바른대로 말해. 이 사람 알지?”
“무슨 일입니까?”
“이 친구가. 아직 뉴스도 못 본거야?”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요.”
“연쇄살인범 김 우진을 몰라?”
“네? 연쇄살인범이라니요. 이 여자는 나리입니다.”
“나리가 김 우진이야. 김 우진이 살고 있는 집 임차인이 당신이던데...”
“네. 그렇지만... 뭔가 잘못 알았을 겁니다. 그 여자는 바퀴벌레도 못 죽이는 만큼 연약합니다.”
강철에게는 나리가 그런 여자였다. 키만 멀뚱하게 컸을 뿐, 무거운 것도 들지 못하는 나약한 여자였다.
“좋아. 그렇다 치고, 지금 김 우진이 어딨어?”
“지난 금요일에 나갔습니다.”
“나가다니? 어디로?”
“떠나야 된다면서 나갔습니다.”
“뭐야? 떠나다니? 짐이 그대로 있던데 떠나다니?”
“저도 목요일 저녁에 마지막으로 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주에 집주인을 만나서 집을 내놓으려고 했는데... 나리가 누구를 죽였다는 겁니까?”
“원한이 있던 세 사람을 죽였소. 아직 모른다 말이오?”
장석태는 강철이 범인을 은닉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자 태도를 바꾸었다.
“지난여름에 일어났던 연쇄살인의 범인이 나리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박 강철 씨는 우리한테 협조해야합니다. 혹시 김 우진한테서 연락이 오면 자연스럽게 만나자고 약속을 하세요. 그리고는 바로 우리한테 연락해야합니다. 만일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당신을 범인은닉죄로 철창신세를 지게 될 겁니다. 아시겠죠?”
“네...”
“김 우진의 핸드폰 번호가 어떻게 됩니까?”
“010.2123.6XXX번입니다”
“누구 명의죠?”
“제가 만들어줬습니다.”
“그런데 김 우진에게 왜 빌라를 제공했습니까?”
“그건... 아니 내가 그것까지 말해야 됩니까?”
“상대가 희대의 연쇄살인마입니다. 왜 제공을 해줬습니까?”
“사정이 딱해서 해줬습니다.”
“지금 김 우진한테 전화를 한번 해보세요. 만약 받으면 서울에서 한번 만나자고 말해요.”
“지금요?”
“네. 지금 걸어요.”
강철은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눌렀다. 액정에는 ‘내 여자’라고 떴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습니다.”
“그래요? 완전 잠적했군. 암튼 광역수사대에 협조하는 것 잊지 마십시오.”
“네...”
강철은 취조실을 나서면서 나리를 생각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그녀가 결국 그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불쌍한 여자, 그래서 떠났구나. 갈 곳도 없으면서 어디로 간 거지?’ 강철은 취조실에서 수사관이 한 말은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버린 지 오래였다. 설령 나리가 연락해 오더라도 광역수사대에 귀띔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를 도울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박강철을 취조했는데도 아무런 소득이 없자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버렸다. 공개수사를 시작한 후 곧바로 범인이 사는 곳까지 파악하여 급습 하였지만 이미 범인은 도주한 뒤였다. 월요일 조간신문부터 얼굴이 공개되었는데 바로 이틀 전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지용운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화이트보드에 김우진과 관계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송정수의 이름을 적었다. 피살자 세 사람과 박강철, 그리고 송정수가 김우진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지용운은 송정수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김우진을 ‘아는 여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남자. 위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지만 않았다면 그의 행적도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지용운은 송정수의 이름 위에 엑스 자를 그었다. 그러면서 역삼동 빌라 주변의 CCTV에 녹화된 영상들을 수거하라고 지시하다가 문득 지난 주 김우진의 모친상(母親喪)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수원 남부경찰서 형사들을 수원화장장에 이틀간 잠복시켰지만 별다른 보고가 없었다. 그래서 수원화장장에 대해서 잠시 잊고 있었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넘겨버렸지만, 김우진이 금요일에 가방을 싸서 나갔다면 떠나기 전 어머니의 빈소에 들렀을 것이라고 추측하자 그날은 금요일이면 가능하리라 추리가 되었다. 토요일이 출상이었다면 금요일에 갈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한 지용운은 수원 남부경찰서 형사과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서울시경 광수대 지용운 팀장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수원화장장에 잠복근무를 선 담당자가 누굽니까?”
“아 네. 특별히 네 명을 보냈습니다만 무슨 일입니까?”
“지금 잠복근무를 선 형사가 있습니까?”
“네. 셋은 외근 중이고 김판호 형사가 옆에 있습니다.”
형사과장은 서울시경 광역수사대 팀장보다 계급이 낮았다. 그러기에 지용운의 질문에 깍듯이 경어를 쓰면서 대꾸했다.
“별반 이상 징후가 없었답니까?”
“네. 그날 시경 광수대 직원이 와서 함께 점심을 먹었답니다.”
“그래요? 누가 수원까지 갔지? 잘 알겠습니다. 수고 하십시오”
지용운은 전화를 끊고는 다시 화이트보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김대식을 호출했다.
“김 수사관, 지난주에 수원화장장에 갔었어?”
“네? 아닌데요.”
“그래?”
지용운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수사관 특유의 직관이었다. 다시 수원 남부경찰서로 전화하여 형사과장을 찾았다.
“방금 전화했던 광수대 지용운입니다. 우리 광수대 직원이 다녀갔다고 하셨는데 누군지 확인됩니까?”
“아 네. 송정수 경위랑 또 다른 수사관 한 명이라네요.”
“네? 뭐라고요?”
지용운은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사람이 난데없이 화장장에 잠복중인 형사를 만났다니, 그것도 일행이 있었다면 김대식뿐이라고 생각하는 지용운이었다. 다시 김대식을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