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들은 서로를 직원이라 불렀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은 회사에 다니는 정도로만 알았다. 정수는 유유히 산타페로 걸어갔다. 두 대의 차량에서 네 명의 형사들은 기지개를 키면서 차에서 내렸다. 꼼짝없이 차 안에만 있다는 자체가 곤혹이었다. 산타페의 조수석으로 간 정수는 나리의 귀에 속삭인다.
“20분간 재들이랑 식사하고 올 테니까 그동안 어머님 빈소에 다녀오세요. 정확하게 15분에 끝내세요. 어서요.”
나리는 정수가 저만치 앞서가자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야. 어디에 있어? 엄마 화장은 하고 있는 거야?”
“어딘데?”
“화장장 입구”
“뭐하려고 왔어? 그냥 가. 형사들이 깔렸다고 오지 말랬잖아.”
“괜찮아. 어디냐니까? 엄마 가시는 건 봐야지...”
“화장장 5호실이야. 10분 전에 들어가셨어.”
“알았어. 곧 갈게”
나리는 곧 바로 화장장으로 향했다. 식당이 있는 장례식장은 화장장 옆 동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경찰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나리는 걸음을 재촉했다. 화장장 5호실로 들어서자 빈소 같지 않은 빈소가 놓여있었다. 스크린에는 화장중이라고 적혀있고 사진 한 장만 덜렁 놓인 빈소에는 딸 세 명과 둘째 사위만 있었다. 나리 때문에 일가친척 하나 부르지 않은 장례였다. 그녀의 언니들은 나리가 여자로 나타날 줄 알고 애초부터 엄마의 사망소식을 친척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찰이 찾아와서 살인용의자라고 하자 친척들을 부르지 않은 것이 다행처럼 느껴졌다. 선글라스를 낀 말쑥한 남자가 들어와서 사진 앞의 향불을 피우고 절을 했다. 그때만 해도 절을 하는 남자가 남동생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던 여자들이었다. 절을 하고 돌아설 때 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우진아!”
“아이고 우리 우진아... 어허허흑”
“엄마! 엄마가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이 왔어요. 아들로 돌아왔어요. 엄마. 흑흑흑”
세 여자는 나리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한참을 울던 첫 째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무슨 일이고? 도대체 무슨 일인데 경찰이 널 찾아? 사람을 죽였다는데 맞나?”
“나 지금 가야돼. 다음에... 다음에 얘기 해.”
“아이고 니가 어쩌다가... 흑흑흑”
이제 세 여자는 동생이 안타까워서 운다. 나리는 우는 여자들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이미 10분이 지나고 있었다. 나리는 아침에 은행에서 찾은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한 여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형편이 안 되서 이것뿐이야, 미안해. 엄마 부탁한다.”
나리는 애써 세 여자의 시선을 외면하고 영정을 뒤로 하고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세 여자는 걸어 나가는 나리를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나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산타페가 서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거리가 먼 길처럼 느껴졌다. 나리가 산타페에 타고 5분정도 지나자 정수는 형사들과 장례식장 건물을 나오고 있었다. 태연하게 형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는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면서 유유히 주차장으로 걸어왔다. 양복 상의를 벗어서 산타페 뒷좌석에 던지고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어머님 만났어요?”
“네...”
나리도 양복 상의를 벗었다. 흰 와이셔츠에 그대로 드러나는 젖무덤과 붉은 유륜이 선명했다. 상의를 입었을 때는 남자의 근육정도로 생각되었지만 상의를 벗자 여자의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수는 남자에서 여자로 다시 돌아온 나리가 반가웠다. 상의를 벗자 다시 여자처럼 다소곳해졌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골격은 여자로 바뀌어버렸지만 양복 상의를 입었을 때만 남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정수는 운전대를 잡으면서 나리를 쳐다본다.
“가다가 뭐 좀 먹어요. 배고프죠?”
“괜찮아요. 매일 저녁 한 끼만 먹었는데...”
“어디로 갈까요? 지금부터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요.”
“...”
“당분간 당신 쉴 곳은 마련했는데, 그곳에 가기 전에 먼저 당신이 가고 싶은데 가요.”
“제가 쉴 곳은 어딘데요?”
“아는 분의 소개로 서울 수유리에 있는 화계사에 연락을 해뒀습니다.”
“수유리요?”
“네. 도심에 있지만 비교적 조용한 사찰입니다. 주중에는 사람들도 많이 찾지 않는답니다. 당분간 그곳에서 머물기로 해요. 나도 자주 찾아갈게요.”
“네...”
“화계사에는 월요일 오전에 들어가기로 했으니까 사흘은 어디 여행이나 가요.”
“네...”
나리는 정수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선택의 여지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다는 것을 알자 의욕마저 사라졌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자고하면 가고, 서자고하면 서야했다. 삶도 죽음도 온전히 정수한테 맡긴 것이다. 아니, 삶을 연장시키는 것은 오로지 정수의 몫이었다. 이미 나리는 죽은 목숨이었고 스스로도 살고 싶은 의지를 상실하고 있었다. 정수를 용서하던 날, 모든 것을 포기한 나리였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였던 그녀는 정수를 다시 만나고, 정수가 용서를 빌자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죄의식을 감당할 수 없었다. 자신이 세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이미 2년 전에 죽어야 했을 목숨, 1년 전에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목숨이었기에 죽음 따위는 무섭지 않았다. 남자로 살아도 봤고, 여자로도 살아본 삶이었다. 돈도 원 없이 만져보았고, 씨보기도 한 그녀였다. 세상의 향락이란 향락도 해볼 만큼 해본 그녀였다.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없는 삶이었다. 이미 죽었을 목숨, 생명을 다소 연장시킨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없자 경찰이 좇는 것도 실감나지 않았다. 애가 타는 쪽은 오히려 정수였다. 정수는 나리를 살려야 했다. 모두가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일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버린 죄는 되돌릴 수 없는 큰 죄로 돌아왔다. 그 살인을 교사(敎唆)한 죄가 바로 사랑하는 여자를 버린 죄였다. 모두가 자신이 저지른 업보라고 생각하는 정수였다.
정수는 무작정 길을 나섰다. 주말이 금요일로 바뀌어버린 후, 금요일 오후의 도로는 차들로 넘쳐났다. 산타페는 마치 가는 길을 알고 있는 지 막힘없이 달렸다. 신호에 걸리지 않으면 직진했고, 신호에 걸리면 우회전과 좌회전을 병행하면서 달렸다. 그러더니 어느새 평택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오성IC에서 빠져 나온 산타페는 아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40분을 달려도 나리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마냥 차창에 기대어 지나가는 가로수와 차들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 말도 걸지 않았다. 수원화장장에서 한 시간을 달린 산타페는 온양온천호텔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호텔은 곳곳에 옛정치가 묻어있었다. 기와로 역어진 지붕은 고풍스럽기까지 했다.
두 남자는 1층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두 남자의 모습은 마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양복은 입은 두 남자가 온천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온천을 하기에는 뭔가 어색한 조합이었다. 한 사람이 여자라면 모를까? 이곳 온천이란 곳은 그런 곳이었다. 사흘 밤을 머물 호텔이었다. 월요일에 화계사로 들어갈 준비를 해둔 정수는 나리가 딴 마음을 먹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 딴 마음이란 삶의 의욕을 버리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포기해버릴까 내심 걱정하는 정수였다. 살인자들의 최후는 검거되거나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두 가지 경우가 존재했다. 검거되지 않으면 자수하거나, 아니면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스스로 자결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특히 나약한 사람일수록 그런 확률이 높았다. 같이 있을 때는 괜찮지만, 문제는 화계사에 혼자 있을 때였다. 그녀를 혼자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정수는 커피 두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동안 호텔 방을 예약했고, 음식이 나올 때쯤 자리로 돌아왔다.
“사흘 묵을 방입니다.”
정수는 방 키를 나리에게 내밀었다.
“차에서 트렁크 좀 꺼내주세요. 이 옷 답답해서 못 입겠어요.”
“커피랑 케이크 먹고 먼저 올라가요. 내가 트렁크 들고 뒤따라 갈 테니까.”
“네.”
나리는 남들은 자연스럽게 볼지언정 자신은 남자 옷이 어색했다. 6년 만에 다시 입은 남자 옷은 생전 처음 입는 옷 같았다. 어쩌면 어색해서 걸음걸이가 남자 같을 수도 있었다.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걷던 걸음걸이도 무거운 구두가 버거웠는지 질질 끌며 약간 팔자로 걸었다. 엄마의 빈소를 찾기 위해서 남장을 하고 머리마저 잘랐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월요일 언론에 공개될 자신의 모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수는 나리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녀가 남장을 한 모습은 정수에게도 어색했다. 남자로 대할지? 여자로 대할지? 경계가 모호했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나리는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를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먼저 올라가요. 저녁은 두 시간 후 근사한 곳에 가서 먹어요.”
나리는 정수에게 받은 방 키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311호실은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복도 입구 쪽에 위치했다.
언제부턴가 나리는 걸을 때도 주변을 경계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것은 조정학을 살해하고 난 뒤부터였다. 태연한적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가 사방을 훑었다. 그만큼 신변이 불안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경찰이 자신을 좇는 꿈을 계속해서 꿨다. 도망자로 사는 동안 계속될 일이었다. 자고 일어나도 개운치가 않은 날이 반복되자 얼굴은 피곤에 절어있었다. 화장이 잘 먹지 않은 것을 예사로 생각할 때쯤 몸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영양 불균형과 만성피로는 면역결핍으로 이어졌고, 사타구니에 포진(疱疹)이 일어났다. 대상포진(帶狀疱疹)은 아니지만 좁쌀만 한 두드러기가 사타구니 양 옆에 나더니 간지럼을 동반했다. 두드러기는 특히 밤에 더 도드라졌다. 병원도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린 지금, 겨우 연고제 하나만 약국에서 사서 바를 뿐이었다.
잠시 후 트렁크가 도착했다. 나리는 트렁크를 열고는 갈아입을 옷을 고르고 또 골랐다. 브래지어와 팬티,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가을용 바바리코트를 침대위에 펼쳤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남자 옷들을 훌훌 벗어던지고는 욕실로 향했다. 정수가 소파에 앉아있는 것도 의식하지 않았다. 2년 전 그때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자연스러운 행동은 정수도 매한가지였다. 나리가 벗어던진 옷들을 옷장에 걸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욕실로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나도 나리가 나오지 않자 정수는 욕실 문을 두드렸다.
“뭐해요? 아직 멀었어요?”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욕실 문을 열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나리는 앉아있는 자세로 고스란히 머리로 받아내고 있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와 흐느끼는 소리가 뒤섞여 우는 줄도 모를 판이었다. 흐느끼는 소리는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에 잠식되어 미세하게 들렸다. 정수는 샤워기를 끄고 나리를 일으켜 세웠다. 나리는 젖은 몸으로 정수의 품에 안긴다.
“자자. 그만 나가요. 내가 있잖아요.”
부축하여 침대에 앉힌 후 몸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 내렸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지만 분명 여자였다. 정수의 손이 나리의 젖무덤에 닿는 순간 나리는 정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정수의 입에 자신의 젖을 물렸다. 한 때는 오매불망 이 남자만 기다리던 여자였다. 이 남자 때문에 밤마다 울면서 술을 마실 때, 그 틈새를 비집고 나타난 남자가 조정학이었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여자였다. 혼자는 외로워서 도저히 살아가지 못하는 여자였다. 남자들은 그런 그녀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정수는 나리의 젖을 빨았다.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빠는 것처럼 그렇게 빨았다. 그러자 나리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느낌이 가슴으로 전달되어 정수의 얼굴에 닿았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정수는 일어나서 나리의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쳤다.
“바보같이 왜 울어. 그만 울어요.”
“왜 이제야 왔어요? 왜 이제야 왔냐고요? 조금만 더 일찍 오지. 두 달만 더 일찍 오지. 두 달만... 흑흑흑”
두 달만 더 일찍 왔더라면 살인자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두 달만 더 일찍 왔더라면 도망자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차디찬 운명은 그렇게 그녀를 조금씩 비켜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