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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장왕곤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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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묵화(墨畵)의 비밀(1).
작성일 : 16-04-11 15:28     조회 : 526     추천 : 0     분량 : 8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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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묵화(墨畵)의 비밀(1).

 

 

 북리곤이 백의대에 입관한 후 어느덧 육 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몇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변화는 북리곤과 함께 숙소를 쓰던 소년들 대부분이 적의대에 입관해 넓은 숙소에 북리곤을 포함해 세 명만이 남게 된 점이었다. 역시 기초 무공을 습득하고 들어온 아이들이었기에 백의대에 오래 머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낮에는 종일 수련을 하느라 서로 얼굴 마주치기도 힘들다. 게다가 밤이라고 해도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넓은 숙소에 달랑 세 명만이 남게 되자 자연스럽게 서로 가까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곤, 너 오늘부터 검법 수련을 안 받는다며?"

 "그냥 혼자 수련하기로 했어."

 저녁이 되어 모든 수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 다른 두 소년도 이미 숙소에 돌아와 있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옆 침상의 장이(長二)였다.

 다소 통통한 체구, 낙천적인 성격 탓에 늘 싱글벙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소년이었다.

 장이는 단지 먹여주고 재워준다기에 월단퇴에 입문했다는 소년이었다. 나이가 많으면서도 다른 무공을 익힌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타고난 근골이 뛰어나 추천받은 경우였다.

 북리곤이 보기에도 장이는 도저히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너도 적의대에 입관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아직 백의대에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어."

 "아직 아냐. 적의대에 먼저 입관한다고 빨리 출관하는 게 아니니까 난 차라리 백의대에서 더 실력을 쌓을 생각이야."

 "하긴, 어설픈 실력으로 적의대의 관문들을 돌파하려다가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제자들도 많다고 했어."

 장이의 바로 옆 침상에는 체구는 가냘프지만 한 자루 잘 갈린 검을 보는 듯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모자서(模仔徐)가 누워 있었다.

 마치 '살수란 나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고 할까?

 모자서는 하루 종일 열 마디 이상 입을 여는 경우가 드물었다.

 북리곤과 장이, 모자서는 한쪽 구석에 나란히 붙어 있는 침상 세 개를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텅 비다시피 한 넓은 숙소에서 띄엄띄엄 서로 떨어져 있었는데 장이가 북리곤 옆의 침상으로 옮겨오자 모자서 역시 슬그머니 장이 옆으로 옮긴 것이다.

 

 "저 자식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어. 만약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군."

 

 북리곤은 장이를 통해 모자서에 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장이와 사귀고 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모자서는 장이와 북리곤이 나누는 대화에 관심 없는 척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귀는 두 사람 쪽으로 열려 있었다. 말을 없는 성격이기는 하지만 북리곤과 장이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

 북리곤이나 장이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 것은 둘뿐이지만 마음은 늘 세 사람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사실 북리곤의 성취는 함께 백의대에 입과한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똑같은 무공을 익혀도 막대한 공력을 바탕으로 펼치니 그 위력이 판이하게 달랐다.

 무공 이외에 기관진법이나 독공들의 학문 분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번 매달리면 끝장을 볼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 때문에 진도가 훨씬 빨랐다.

 반면에 장이는 무공을 익히는 데 열심이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는 백의대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을 때 적의대에 입관하기로 작정한 소년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밤새도록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것 같던 장이가 어느새 코를 골며 잠들었다.

 북리곤은 장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슬그머니 숙소를 빠져나왔다.

 달빛이 밝았다.

 멀리서 새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밤이었다.

 북리곤은 숙소를 빠져나온 뒤 곧바로 숙소 뒤쪽의 좁은 숲길을 통해 산 아래의 공터로 갔다. 주위를 높은 나무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이목을 피할 수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숙소에서 무려 삼백여 장이나 떨어진 거리. 밤에 아무도 모르게 검법을 수련하기 위해 낮에 이미 봐두었던 장소였다.

 "좋았어! 오늘부터 여기가 내 수련 장소다."

 공지에 도착한 북리곤은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 뒤 흡족해하는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수련용 목검을 들고 나온 상태였다.

 북리곤은 낮에 수운삼이 펼쳐 보였던 천잔십이결을 떠올리며 제일결부터 차분히 펼쳐 보기 시작했다.

 천잔십이결 중 제일결과 제이결은 이미 배운 상태였고, 수많은 반복 훈련 덕분에 저절로 손과 발이 움직일 정도였다.

 문제는 제삼결이었다.

 북리곤은 제삼결을 배우지 않고 단지 교두가 시범 보이는 것만 한 번 본 정도였다. 하지만 제일결과 제이결을 펼친 뒤에 그저 느낌이 떠오르는 대로 움직여 보니 과연 제삼결이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애써 교두가 펼치던 검로를 떠올리지 않아도 느낌으로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리곤은 내친김에 제사결까지 검초를 이어갔다. 역시 느낌을 따르니 제사결마저 온전히 풀려 나왔다.

 제오결도 마찬가지였다.

 수운삼이 펼치는 것을 단 한 번 보았을 뿐 배운 적도 없고 제대로 기억도 못하는 검초가 완벽하게 이어졌다.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천잔십이결일까?'

 의혹이 안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북리곤은 지금 자신이 펼치고 있는 검법이 제대로 된 검법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원래의 천잔십이결과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는 한 번도 배우지 않은 검법을 능숙하게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팔결에서부터는 손과 발이 어지러워졌다. 검초가 다른 게 아니라 호흡과 움직임이 부조화를 이루는 느낌이었다.

 북리곤은 내공이 깊어 힘으로 검초를 이어갔지만 결국 제구결로 넘어가지 못한 채 검을 내려뜨렸다.

 '생각으로는 충분히 펼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지 못하는구나.'

 알고 있는 것과 펼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몸이 기억해서 저절로 따르게 만드는 것은 끝없는 반복 수련밖에 없었다.

 북리곤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생각하지 않고 저절로 펼칠 수 있도록 숙련시켜야 하는 모양이구나."

 천색(天色)을 살펴보니 혼자 검법을 수련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한 시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수련도 좋지만 내일을 위해 잠을 자두어야 할 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북리곤은 침상에 앉아 품속에서 묵화를 꺼내 들었다. 바로 뒤에 있는 창을 통해 달빛이 환하게 비쳐 들어오고 있어 불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시간만 나면 늘 묵화를 꺼내 들여다보는 것은 이미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렇다고 묵화에 담긴 비밀을 풀기 위해 고심하면서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방심한 상태로 멍하니 그림을 들여다볼 때도 있고 또 때로는 그림 자체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볼 때도 있었다.

 묵화를 얻은 뒤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습관처럼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사실 그림 속의 선(線)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박혀 있을 정도였다.

 그림이 단순히 그림으로 끝나지 않고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묵화를 내려다보던 북리곤은 거대한 산세를 형성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선들이 불현듯 검의 궤적(軌跡)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하나의 선들이 모두 검이었고 나아가 검의 흐름이었다.

 선들이 연결되며 숲이 되자 하나의 검초가 완성된다.

 작은 숲들은 서로 뭉쳐져 다시 큰 숲이 되고 거대한 산이 되었다.

 북리곤의 뇌리로 묵화 속의 선들이 각기 예기를 뿜어내는 검이 되어 이리저리 꿈틀대기 시작했다.

 북리곤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묵화를 정시했다.

 그러자 막 머릿속에서 꿈틀대던 영감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묵화는 단지 묵화일 뿐이었다.

 '왜 일까? 왜 새삼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보려고 하자 검들이 사라졌지?'

 북리곤은 환영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던 선(線)의 유희(遊戱), 검(劍)의 난비(亂飛)를 되살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사용했다.

 비스듬히 누워 묵화를 올려다보는가 하면, 창 가까이 가 달빛에 이리저리 비춰보기도 했다. 심지어 처음의 감각을 찾기 위해 정시하지 않은 채 시야의 가장자리로 묵화를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뜻 떠올랐던 검의 비상(飛上)은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렇다! 이 묵화 속에는 하나의 검법이 감춰져 있는 게 분명하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한 채 뒤척이며 묵화에 대해 생각하던 북리곤은 아침이 될 무렵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자신이 배우지도 않은 천잔십이결의 검로를 모두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이유가 바로 그림 속에 감춰져 있는 상승 검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산의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은 그 정상보다 낮은 곳의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법.

 무공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비록 확연히 깨달은 것은 아니라 해도 심오하기 이를 데 없는 상승 검리를 습관처럼 매일 들여다본 북리곤이기에 천잔십이결의 검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부터 북리곤은 밤에 은밀히 하는 검법 수련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묵화 속에 감춰져 있는 검법은 그때 이후로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북리곤은 천잔십이결을 연마하다 보면 반드시 얻는 게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숲 속의 공터에서 혼자 천잔십이결을 수련한 지 육 개월이 되었을 때 북리곤은 천잔십이결의 제십결마저 능숙하게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느낌을 따른다. 그리고 그것을 몸으로 기억할 때까지 반복해서 수련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천잔십이결 중 제십결을 완벽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적의대를 출관한 선배들 중에서도 몇 명 되지 않았다. 북리곤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지만 실로 대단한 경지였던 것이다.

 다시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북리곤은 천잔십일결에 도전하고 있었다. 마지막 초식을 겨우 한 단계 남겨둔 상태였다.

 천잔십이결 중 후 육결은 기초인 전 육결과는 그 위력이 달랐다. 그래서인지 익히는 것 또한 전 육결과는 달리 진도가 더뎠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근 두 시진가량 천잔십일결에 매달려 있던 북리곤은 간신히 검로를 따라 펼쳐 본 후에야 비로소 검을 내렸다.

 그의 코에 향긋한 고기 냄새가 풍겨온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까?'

 북리곤은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검법을 수련하고 있는 공지의 가장자리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 속에서 고기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 나왔다.

 달도 없는 밤이라 주위는 어둡기 이를 데 없었다. 오직 모닥불 주위만이 어둠이 빛에 의해 밀려나 있을 뿐이었다.

 그 불빛의 테두리 안에 한 사람이 있었다. 모닥불 앞에 왜소한 체구를 지닌 노인이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불을 쑤시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끝났느냐? 이리 와 앉아. 그렇게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댔으니 시장하기도 할 게다."

 북리곤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노인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언제 와서 모닥불까지 피운 것일까? 고기가 익은 냄새가 나는 걸 보니 꽤 오래전부터 모닥불을 피운 모양인데 전혀 몰랐다니 내가 생각해도 난 대단한 놈이구나.'

 무슨 일이든 한번 빠져들면 바로 코앞에 벼락이 떨어져도 모른다. 실로 대단한 집중력이 아닐 수 없었다.

 북리곤은 향긋한 고기 냄새와 안식을 약속하는 듯한 불빛이 이끌린 듯 자신도 모르게 노인에게 다가갔다.

 흑의노인이 모닥불 아래쪽을 나뭇가지로 쑤셔 바싹 마른 진흙덩어리 하나를 꺼냈다.

 진흙을 떼어내자 새의 털과 껍질이 벗겨지며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보아하니 꿩을 잡아 진흙을 바른 뒤 모닥불 아래 묻어놓은 듯했다.

 노인이 꿩고기 한 덩어리를 불쑥 내밀었다. 한쪽 옆에는 소금과 향신료도 준비되어 있었다.

 북리곤은 상대가 스스럼없이 대해주자 아무 부담 없이 고기를 받아 들었다.

 "기가 막히네요!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아요."

 "당연하지. 누가 만든 건데."

 북리곤이 정신없이 고기를 뜯으며 감탄하자 흑의노인은 으스대는 말투로 대꾸했다.

 그제야 북리곤은 노인은 자세히 살폈다.

 월단퇴의 살수인 게 확실한데 날카로운 기도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십오 세 정도 된 아이의 체구.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눈을 보면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달리 보면 이미 백 살 가까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노인은 허리에 차고 있던 호로병을 끌러내 한 모금 마신 뒤 문득 북리곤을 바라보았다.

 "마셔보겠느냐?"

 "전 아직 술을 마실 줄 모릅니다."

 "처음부터 술 마실 줄 아는 사람은 없지."

 "예. 그럼!"

 북리곤은 공연히 기분이 흔쾌해져 노인이 내미는 술병을 받아 들었다.

 불 같은 것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한 모금을 마신 북리곤은 처음에는 향긋한 술의 향기에 놀랐다가 두 번째는 뜨거운 것이 뱃속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느낌을 받으며 또 놀랬다. 맛은 강렬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북리곤을 빤히 바라보던 흑의노인이 문득 얼굴을 굳혔다.

 "술과 살인은 공통점이 있다. 넌 그것을 알고 있느냐?"

 "술과 살인이 공통점을 갖고 있다니, 그게 어떤 건가요?"

 "술을 처음으로 마시게 되면 한 잔을 마셔도 충분히 취하지. 그런데 인간의 몸은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있어. 두 번째 마실 때에는 한 잔으로는 취하지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서 더 많은 술을 기다리기까지 한다."

 "그랬군요."

 북리곤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흑의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술에 적응된 후에는 처음에 느꼈던 그런 취기를 느끼려면 술의 양을 늘리는 수밖에 없어. 살인도 마찬가지야."

 북리곤의 흠칫 흑의노인을 바라보았다. 익살기만 가득 차 있던 노인의 눈 깊은 곳에 짙은 회한이 감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누구든지 처음 살인을 하게 되면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지. 방금 전까지도 살아 있던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충격 말이야. 그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어린 시절 웃고 떠들었던 지기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말이야."

 "아!"

 북리곤은 이제야 술과 살인의 공통점에 대해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살인을 하게 되면 첫 번째처럼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살인을 거듭할수록 무뎌지는 거지. 가장 무서운 점은… 술처럼 살인 역시 자신도 모르게 점차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

 북리곤은 침묵했다. 사실 그는 살수가 되기 위해 월단퇴에 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흑의노인이 들려주는 말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런… 역시 늙으면 죽어야 한다니까. 쓸데없는 말을 했구나."

 흑의노인의 눈에 다시 익살기가 떠올랐다.

 그는 짐짓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여기는 이 늙은이가 이삼 일에 한 번씩 꿩을 잡아 몰래 혼자 즐겨 먹던 장소야. 한데 지난 몇 달 동안은 이곳을 네놈에게 빼앗겨 혼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렸지."

 "죄,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한데 네놈이 지금 익히고 있는 검법이 천잔십이결이 맞느냐? 백의를 입고 있는 걸 보면 얼마 전에 입문한 제자인 모양인데 어떻게 벌써 후 육결을 익힐 수 있었느냐?"

 흑의노인은 북리곤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겉으로 보기에는 천잔십이결과 흡사하지만 그 속에 감춰져 있는 내용이 달라. 어떻게 보면 천잔십이결을 변형시킨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전혀 다른 검법 같기도 하고···."

 "저어··· 누구세요?"

 "나? 나 원로원에 있다."

 "원로원?"

 원로원에 있다면 곧 원로임을 의미한다.

 이제 갓 입문한 백의대 제자로서는 주눅이 들어야 정상이지만 북리곤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옆집 할아버지를 대하 듯 태연할 뿐이었다.

 "곤음진기를 익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곤음진기에 대해서는 어디서 들었느냐? 그건 문주만이 익힐 수 있는 내공이야."

 흑의노인이 흠칫 이채를 머금었다. 하지만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문주만이 익힐 수 있는 내공심법이라면… 결국 적의대의 비고에도 없다는 건가요?"

 "그렇다. 무림 일절 중 하나인 곤음진기를 어찌 함부로 공개할 수 있겠느냐. 그건 그렇고, 이놈이 감히 노인네가 질문하는데 씹어?"

 흑의노인이 짐짓 사납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북리곤이 뒤통수를 긁었다.

 "헤, 사실은 조금 전 내가 수련한 검법이 천잔십이결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천잔십이결의 제삼결을 배울 때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 혼자 검초를 이어본 거예요."

 "천잔십이결을 혼자 수련해 본 것이라고? 그럴 수가!"

 흑의노인은 불신의 눈으로 북리곤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북리곤의 태도를 보고 믿지 않을 수도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북리곤은 가만히 흑의노인을 지켜보다가 품속에서 묵화를 꺼냈다.

 "제 생각에는 이 묵화 속에 어떤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배우지도 않은 천잔십이결의 나머지 초식을 저절로 알게 된 것도 분명히 이 묵화를 계속 보아왔기 때문일 거예요."

 흑의노인의 눈에 이채가 스쳐 갔다.

 북리곤의 태도가 실로 의외였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절대로 남에게 밝혀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더구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내보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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