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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리움은 달빛
작가 : 우선
작품등록일 : 20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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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 아름답고 영민하지만 첩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태어난 채선, 채선을 사랑하지만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채선을 놓치고 그 후회와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윤수, 그리고 채선을 꺽어 옆에 뒀지만 그가 갈구하는 사랑은 단 한자락도 받지 못하는 나쁜 남자 김헌. 세 사람의 치정멜로. 그리움은 달빛. thtjfrk718@naver.com

 
1. 나 같은 늙은이의 여인이 되어도 괜찮은 것이냐?
작성일 : 16-08-08 14:37     조회 : 565     추천 : 3     분량 : 8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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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대감은 자식복도 처복도 없는 사람이었다.

 

 첫 부인에게서 아들을 보았으나 삼칠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고, 닷새 뒤 부인도 산후병으로 아들을 따라갔다.

 

 몇 년 후, 후처를 들였으나 후처에게선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후처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민대감은 그 큰집에 부리는 종들 외엔 가족도 없이 외롭게 낙이라곤 없이 살았다.

 

 주변에선 다시 장가를 들라고 성화였지만 연이은 처의 죽음과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가버린 첫아들 생각에 더 이상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 일만하며 평생을 보냈다.

 

 그런 민대감의 허전한 마음을 잡은 것은 은화였다.

 

  “제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할 테니 제 동생만은 살려주셔요.”

 

 은화는 민대감을 처음 만나던 그날, 매향각의 홍등아래에서 기생 수련을 붙잡고 빌고 또 빌었다.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고작 열 한 살이에요. 빚은 제가 갚아요, 제가 다 갚겠습니다. 동생만은 빼주세요.”

 

 눈물로 애원하며 치맛자락을 붙드는 은화를 수련은 매몰차게 뿌리쳤다.

 

  “열하나가 뭐가 어리단 것이냐? 내가 이 기방에 올 때도 열 하나였어. 날 붙잡고 이럴게 아니라 도박 빚에 딸 팔고 도망친 네 아비나 원망해. 내일 사람이 갈 것이다. 밤을 타서 도망쳐도 곳곳에 내 사람들이 있으니 잡히는 건 금방이야. 괜히 힘 빼지 말고 조용히 집에서 기다려. 만약 도망쳤다가 잡히면 더한 곳으로 팔려 갈 테니.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수련은 말을 끝내자마자 은화를 밀치고 기방 앞으로 다가오는 평교자를 향해 다가갔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어서 오시어요.”

 

 수련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교태를 부리며 사내를 부축해 기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자 은화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은화와 수련의 소동에 기방근처 버드나무아래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민대감이 은화에게 다가갔다.

 

  “이거 받거라”

 

 은화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붓고 눈물범벅이 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흐릿하게 단정하고 중후한 양반이 자신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게 보였다.

 

 은화는 벌떡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나으리.”

 

  “얼굴이 엉망이니 어서 이걸로 닦아라. 사양할 것 없다.”

 

 민대감은 은화의 손에 손수건을 쥐어주었다.

 

 은화는 다시 민대감의 얼굴을 올려다 본 후 조심스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어디 사느냐? 밥은 먹었느냐?”

 

 민대감은 은화가 조금 진정이 되자 부드럽게 물었다.

 

  “저쪽 큰 나무를 돌아가면 나오는 개울 건너에 삽니다.”

 

 은화는 단정하게 대답했다.

 

  “내가 너의 사정을 일부러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만 벗을 만나러 왔다가 너와 여기 행수가 하는 말을 모두 들었다. 일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줄 터이니 여기서 잠시 기다리겠느냐?”

 

 은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대감이 도와준다는 말에 생기를 잃었던 눈에 잠시 빛이 돌았다.

 

 민대감이 기방으로 들어가고 은화는 초조하게 민대감을 기다렸다.

 

 높은 양반으로 보이는 민대감이 기방에 잘 말해준다면 동생이 팔리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도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민대감이 나왔다.

 

  “가자. 일이 잘 해결 되었으니.”

 

 은화는 민대감의 말에 반색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제 동생이 팔려가지 않게 된 것입니까?”

 

  “그래, 그리 조처했으니 심려 말고 날 따르거라.”

 

  “감사합니다. 나으리. 제가 이 은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댁이 어디신지 알려주시면 동생과 함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동생과 제가 할 일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거들겠습니다.”

 

 민대감은 은화의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 집은 부리는 종이 많으니 너희까지 그러지 않아도 된다.”

 

  “제 어미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베풀어준 은덕을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해주셔요.”

 

 민대감은 은화의 똑 부러진 그 말이 귀여워 웃었지만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민대감의 뒤를 따르던 은화는 민대감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혹여 자신이 실수를 했나 하는 생각을 하며 민대감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민대감은 새로 단장했는지 깔끔하고 기품있는 커다란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여기가 내 집이다.”

 

 민대감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집안에서 가노가 뛰어나왔다.

 

  “아이고 마님, 제가 삼돌이에게 마님을 따르라 했는데 어찌 혼자 다녀오십니까?”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냥 있으라 했다. 그러니 괜히 삼돌이에게 뭐라 할 것 없다. 그리고 찬모에게 일러 이 아이에게 밥을 좀 내주어라.”

 

 민대감은 은화가 흠칫하여 자신을 보자 말을 이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듯 보여 데려 온 것이다. 동생 것도 싸줄 테니 어서 먹고 동생에게 가보아라.“

 

  “아닙니다, 오늘 도와주신 것만으로 이미 큰 은덕을 베푸셨는데…….”

 

  “네가 밥을 먹고 간다하여 내가 굶지는 않으니 그냥 먹고 가거라. 그리고 내가 이를 것이 있으니 내일 날이 밝고 동생과 함께 오거라. 찾아 올수 있겠느냐?”

 

  은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민대감은 집안으로 들어갔고, 가노는 은화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

 

 날이 밝고 은화는 가진 옷 중 가장 단정한 옷을 고르고, 깔끔하게 씻은 후 단장을 했다.

 

 칠흑 같은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내리자 머리에 따로 기름칠을 하지 않아도 윤이 났다.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잠든 은지는 언니가 수선을 떠는데도 깨지 않고 곤히 잤다.

 

 단장을 마치고, 은지의 자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은화는 더 지체할 시간이 없자 은지를 흔들어 깨웠다.

 

  “언니 벌써 아침이야?”

 

 은지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눈을 비비며 물었다.

 

  “언니가 어제 우리 자매 도와주신 분께 인사하러 가야 한다고 했던 거 기억하지? 너도 씻고 준비하자.”

 

 은화는 은지가 씻고 옷 입는 걸 도와주었다.

 

 은화는 자신과 은지의 치맛단을 한 번 더 가다듬고 은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어두울 때 와서 미처 몰랐는데 날이 밝고 민대감의 집을 보니 더 대단했다.

 

 은화는 어젯밤의 꿈같은 일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대문을 두드렸다.

 

 집에서 나온 가노는 은화와 은지를 대감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소녀 대감마님의 은공에 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은화와 은지는 민대감에게 절을 올렸다.

 

 절을 하는 은화와 은지 자매의 모습은 하강한 선녀처럼 고왔다.

 

 대감은 어젯밤 은화를 처음 보고 느꼈던 친근감의 이유가 죽은 첫 부인과 은화가 많이 닮아서 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절을 받았다.

 

 은화는 다소곳하게 앉아 살짝 머리를 숙였다.

 

  “소녀 대감마님께 염치없지만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아라.”

 

  “제가 기방에 가면 이 아이를 보살펴 줄 이가 없습니다. 대감댁에 이 아이를 맡기고 싶습니다. 이미 한번 큰 도움을 주셨는데 이리 다시 청을 올려 송구합니다.”

 

 민대감은 은화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어제 미리 말하지 않아 오해를 했나 보구나. 너도 기방에 가지 않아도 된다. 너희 두사람 몫의 값은 이미 지불 했으니. 내가 너희를 부른 것은 이리 인사를 받고자 함도 아니다. 밝은 날 너를 보고 불편함을 살펴주려 한 것이야.”

 

 은화와 은지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대감을 바라보았다.

 

  “대감마님, 그럼 울 언니가 아무데도 안가는 거지요?”

 

 민대감은 은지를 보며 웃었다.

 

  “그래 안가도 된단다.”

 

 은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은화를 바라보았다.

 

 은화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람을 시켜 너희의 사정을 소상히 들었다. 어미는 죽고 아비도 사라졌다지. 당장 생활이 곤궁할 터이니 내가 쌀을 좀 내어주마 우선 그걸 팔아 생활하고 또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부탁하러 오거라.”

 

 은화는 민대감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저희 자매를 살려주신 대감마님의 은공은 제가 꼭 갚고 싶습니다. 마님께서 기방에 가지 않도록 조처해주셨다고 하니 그럼 이 댁의 노비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일을 하겠어요. 그걸로 갚을 수 있도록 해주셔요.”

 

 은화의 결연한 표정에 대감은 난감해졌다.

 

  “우리 집은 일할사람이 부족하지 않다. 그렇게 마음 쓰지 않아도 되니 동생과 함께 잘 사는 것으로 갚아라.”

 

 대감과 은화는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혼을 내기도 하고 어르기도 했지만 은화의 결심은 확고했다.

 

 이게 은화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한 민대감은 할 수 없이 허락했다.

 

 그리고 문서로 매이는게 아니라 언제든지 떠나고 싶을 때 동생과 함께 떠나도 된다고 일러두었다.

 

 은화와 은지는 대감께 다시 절을 올리고 물러나왔다.

 

 방을 나오자 은화는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 나도 일 열심히 할게. 그러니까 울지마……. 이제 투정도 안 부리고 시키는 거 정말 열심히 할게. 응?”

 

 은화는 은지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민대감은 방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책장을 넘겼다.

 

 책장을 넘기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

 

 민대감은 방에 들어서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서책을 조심스레 쓰다듬는 은화의 모습에서 그 옛날 첫 부인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산후병으로 아이와 함께 눈을 감았을 때가 딱 지금 은화의 나이였다.

 

 민대감이 방에 들어와 있는 줄도 몰랐던 은화는 다시 걸레질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가 민대감과 눈이 마주치고,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걸레를 등 뒤로 감췄다.

 

  “저는 방을 소제 하려고…….”

 

  “그만 되었으니 나가보아라.”

 

 민대감은 당황해서 허둥대며 방을 나서는 은화를 다시 불러 세웠다.

 

  “책을 보던데, 글을 아느냐?”

 

  “아닙니다. 어미에게 언문을 조금 배웠을 뿐 글은 모릅니다.”

 

 가늘게 떨리는 은화의 목소리가 따뜻한 봄바람처럼 민대감의 귓전을 휘감았다.

 

  “글을 배워 보겠느냐?”

 

 은화는 민대감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천한 계집에게 글이 가당키나 한 것 인지, 머리로는 사양하고 당장 물러나야한 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은 다른 말을 뱉었다.

 

  “가르쳐 주신다면 배워보고 싶습니다. 제 이름 석 자 만이 라도요.”

 

 민대감은 은화의 복잡한 생각을 표정에서 읽기라도 한 듯 가볍게 웃었다.

 

  “좋다, 그럼 너와 은지에게도 가르쳐주마. 우선 이름 석 자부터하자. 미시(오후 1시~3시)에 부를 테니 은지와 함께 오너라.”

 

 은화는 가볍게 목례하고 방에서 물러나왔다.

 

 쉴 새 없이 뛰는 심장소리를 민대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표정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상기된 두 볼만은 은화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은화는 누가 볼 새라 주위를 한번 둘러 본 후 부엌으로 뛰어갔다.

 

 

 ***

 

 

  “평소엔 손이 여물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들었느냐? 자꾸 그릇을 놓치니 이러다 이 집안 그릇 다 깨먹겠다.”

 

 석이어멈은 설거지를 하다 자꾸 헛손질 하는 은화의 발그레한 볼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오늘 좀 몸이 안 좋아서.……”

 

 은화는 화들짝 놀라 애꿎은 사발을 세게 움켜잡고 박박 문질렀다.

 

  “처녀 마음에 봄바람이 부는 게지, 내가 중신 해줄까?, 지금까지 내가 줄 놓아준 혼사가 요 손가락보다도 많아. 잘 안된 적이 없어, 내가 딱 보면 알거든. 너는 우리처럼 매인 종 신세도 아니고, 월궁항아처럼 고우니 내가 말만 던지면 이 동리 사내들이 줄을 설 것이야.”

 

  “그런 거 아니에요.”

 

 은화는 석이어멈의 말에 복숭아처럼 두 볼이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워 할 것 없어, 요렇게 고울 때 너도 시집을 가야지. 성실하고 착한 남자 만나 시집가서 자식들 길러내고, 그런 것이 우리 같은 것들의 복이야. 괜히 딴생각 말고.”

 

 은화는 석이어멈의 딴생각 말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석이어멈이 무슨 눈치를 채고 한 말은 아닐지 모르나, 그 한마디는 은화의 가슴에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은화는 더 이상 석이어멈에게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조용히 그릇을 닦았다.

 

 그때 은지가 뛰어들어 왔다.

 

  “언니, 대감마님이 오라셨대. 언니랑 같이”

 

  “저 그럼….

 

 은화는 은지 손을 잡고 도망치듯 나갔다.

 

  “저것이 빨리 마음을 접어야 할 텐데, 잘 된다 해도 첩살이인 것을.”

 

 석이어멈은 혀를 차며 솥을 마저 닦았다.

 

 

 ***

 

 

  “대감마님, 은화입니다.”

 

  “그래, 들어오너라.”

 

 은화와 은지가 대감의 방에 드니 삼돌이가 붓과 벼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삼돌이는 은화와 은지를 흘깃 본 후 대감에게 인사를 올리고 물러났다.

 

  “내가 이름 쓰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으니 이 앞에 앉아 보거라.”

 

  “제가 대감마님을 번거롭게 하여 송구합니다.”

 

 은화는 민대감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은화를 따라 은지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번거로울 것 없다. 나에게도 소일이 되어 즐거우니.”

 

 민대감이 좌정하자 은화와 은지도 종이 앞에 앉았다.

 

  “언문은 쓸 수 있다 하였으니 한자로 쓰는 것을 알려주겠다. 이것을 배우고 나면 천자문을 배울터이니 부지런히 익히거라.”

 

 민대감은 뜻 없이 그냥 불리웠던 은화와 은지의 이름에 뜻을 만들어 주었다.

 

  恩花(은화) 와 恩知(은지)

 

 恩(은)자는 은혜라는 뜻과 사랑이라는 뜻이 담겨있고, 花(화)는 꽃, 그리고 은지의 이름에 들어가는 知(지)에는 안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민대감이 말해주자 은화는 가슴이 찌르르 했다.

 

 자신들을 버린 아비가 지어준 이름에 뜻을 불어 넣어 새로운 삶을 준 것만 같았다.

 

 이름 쓰기가 끝나고 물러나오며 은화는 천천히 되뇌었다.

 

  “은혜, 사랑 그리고 꽃. 사랑을 하는 꽃.”

 

 

 ***

 

 

 은화와 은지가 민대감 댁에 의탁하고 두 계절이 지나갔다.

 

 뒷산의 나무는 붉게 타올랐고, 민대감을 향한 은화의 마음도 점점 그 색이 짙어졌다.

 

 그러나 민대감은 글자를 한 자 한 자 가르쳐 줄 때마다 커져가는 은화에 대한 마음을 애써 눌렀다.

 

 아직 어린 처녀아이를 그저 좋다는 마음 하나로 안을 수는 없었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적은 자신이 마음만 앞세운다면 그건 은화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 여겼다.

 

 그것을 모르는 은화는 마음이 달았다.

 

 붓을 쥔 손에 민대감의 손이 포개질 때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뛰었다.

 

 분명 가슴이 뛰는 소리가 이리 크면 민대감이 들었을 텐데, 모른척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자신을 담백하게만 대하는 민대감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제 천자문을 모두 외웠으니 책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은지는 또 도망 간 것이냐?”

 

  “네, 천자문을 익히는 것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허허, 고녀석도 참, 내 너희 자매에게 할 말이 있는데 은지가 없으니 너에게 먼저 하겠다.”

 

 혹여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준 것이 아닐까하는 은화의 기대감은 민대감의 첫마디에 무너졌다.

 

  “너희 자매만 좋다면 둘을 내 수양딸로 들이고 싶구나, 너도 알다시피 나에겐 자식이 없고, 제사를 받들 양자가 하나 있지만 그마저도 황해도에서 벼슬을 하니 늘 적적했단다. 너희 자매가 이 집에 들어와 집안에 생기가 돌고 나도 마음이 흡족하니, 그냥 내 수양딸이 되어 살다가 좋은 혼처에 시집을 가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민대감의 말이 끝나자 은화의 두 눈에 그렁하게 고여 있던 눈물 한 방울이 다홍 치맛자락에 툭하고 떨어졌다.

 

 은화는 눈물을 참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끊임없이 다홍 치맛자락을 붉게 물들여갔다.

 

  “대감마님, 대감마님께서 아비의 빚을 갚아주시고 저와 제 동생을 이곳에 머물게 해주신 은혜는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감마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나 그 말씀은 싫습니다. 수양딸이 되라는 그 말은 거두어 주세요.”

 

 은화는 눈물을 흘리며 단숨에 말을 뱉었다.

 

 차마 민대감의 얼굴을 바라 볼 수 없는지 푹 숙인 은화의 모습에 민대감의 마음도 타들어 갔다.

 

  “기방 앞에서 저에게 손수건을 내미셨을 때, 그 때부터였습니다. 제겐 첫 마음이고, 그때부터 대감마님은 제게 사내셨습니다. 저는 대감마님을 아비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제 뜻을 어찌 이리 모르십니까?”

 

 은화의 절규에 민대감의 마음은 풀어헤쳐졌다.

 

 그 동안 꾹꾹 눌러왔던 가슴 속 열정이 한순간에 터지는 것을 느꼈다.

 

 민대감은 쓰러져 우는 은화를 품에 안았다.

 

 은화는 민대감의 품에서 폭포가 되어 흘러넘치는 민대감의 사랑을 느꼈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나 같은 늙은이의 여인이 되어도 괜찮은 것이냐?”

 

  “제가 그 말씀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은화는 민대감의 품에서 나직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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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음모(陰謀)의 밤 (1) 2016 / 8 / 24 162 1 7144   
9 8. 하루가 열흘 2016 / 8 / 24 167 2 7439   
8 7. 모략 (2) 2016 / 8 / 22 160 1 5027   
7 6. 모략 (1) 2016 / 8 / 22 164 2 6278   
6 5. 버드나무 그네 2016 / 8 / 16 197 2 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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