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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호스티스 연쇄 자살사건
작가 : 민지민
작품등록일 : 2017.6.23

“난 자살하지 않았어. 절대...”, 지역 정치인의 비리를 수사 중 좌천된 강력계 형사 민혁수. 징계가 풀려 복귀하는 날, 자신의 죽음의 이유를 밝혀달라는 영혼(아영)을 만나게 된다. 혁수는 사건을 파헤칠수록 거대한 힘이 진실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상처럼 외압이 열혈형사를 가로막고 수사는 난항에 봉착한다. “감당할 수 있겠어?”, 그 때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출신의 인권변호사 김무혁의 등장으로 수사는 탄력을 받고 거대한 힘의 꼬리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삽화:JewelSaviorFREE>

 
【2화】 은아영 (1) √ 매화꽃 이른 향기
작성일 : 17-06-29 13:04     조회 : 101     추천 : 0     분량 : 6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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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죽음은,

 그가 미리 아는 죽음이다.

 

 -비킬레데스-

 

 

 

 〓〓〓〓〓〓〓〓〓〓〓〓〓〓〓〓

 【2화】 은아영 (1) √ 매화꽃 이른 향기

 〓〓〓〓〓〓〓〓〓〓〓〓〓〓〓〓

 

 

 

 제가 필 날보다 일찍 꽃을 틔운 매화향기가 만발하던 어느 이른 봄날이었다.

 

 널따란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차는 어촌의 어귀.

 

 섬으로 낚시꾼들을 실어 나르는 배가 몇 척 정박해있을 뿐 항구라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은 포구였다.

 

 포구의 양 옆으로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모래사장이 끝나는 지점에 사람 머리통만한 돌덩어리를 얹어 만든 돌담이 늘어서 있다.

 

 돌담의 한 편이 무너진 것이 지난달 닥쳐온 태풍이 휩쓸고 간 풍마의 흔적인 듯 보였다.

 

 그 뒤로 전망 좋은 곳이 보인다.

 

 파란 기와집 한 채가 바다와 마주서 있었다.

 

 그 곳은 법 없이도 살법한 순박한 아빠와 하나뿐인 딸을 제보다 아끼던 다정한 엄마가 어여쁜 딸과 함께 살던 집이었다.

 

 

 “아빠는 어디 갔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탁자 위에 올려 진 작은 액자 속 아빠의 얼굴을 더듬고 있는 아영이 엄마에게 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았다.

 

 애썼지만 포근했던 아빠의 중저음 목소리마저 기억에서 지워져 버리고 있었으니까.

 

 

 “아빠는... 돈 벌러 바다로 나가셨는데, 잠시 길을 잃으셨나봐.”

 

 

 엄마는 매번 같은 말로 얼버무렸다.

 

 어린 소녀가 받아드릴 개재의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배기 딸에게 아버지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실종되었고,

 아직까지 생사조차 모른다는 말을 어찌 해야 할는지.

 

 

 “엄마. 아빠는 그럼 몇 밤 자면 오는 거야?”

 

 

 어부였던 아빠는 배를 타고 나가 며칠씩 집을 비울 때가 있었지만 요즘처럼 한 달이 넘도록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적은 없었다.

 

 

 “한 밤? 두 밤? 아니면 열 밤? 아빠는 꼭 돌아오실 거야.”

 

 

 엄마의 말처럼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고 있으리라 믿었다.

 

 길을 찾아 돌아온다면 예전처럼 밝은 얼굴로 소녀를 번쩍 들고는 꼭 껴안아 줄 거라 그렇게 소녀는 믿고 있었다.

 

 

 “엄...마... 울어?”

 

 

 하지만 검은 두 줄 띠를 두른 네모난 액자의 주인은 아빠였다.

 

 영정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엄마를 보던 날.

 

 그 이후로 아영은 더 이상 묻지도, 아빠가 보고 싶다 보채지도 않았다.

 

 

 “아이고. 어째... 우리 아영 엄마 불쌍해서 어쩌노.”

 

 

 그녀를 토닥이던 옆집 진희 엄마가 했던 말을 아영은 마을 사람들과 마주칠 적마다 몇 번이고 들어야 했다.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 놓이는지 알 정도로 가까웠던 사람들이었다.

 

 그네들이 아영 네의 속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아영 아빠가 돌아오지 못할 황천 강을 건넜다는 걸 마지막으로 안 사람이 아영이었을 정도였으니까.

 

 

 “아빠. 나빠!”

 

 

 등대가 있던 방파제 위로 오른 꼬맹이 소녀는 바다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그리움이 섞인 원망이었다.

 

 소녀는 아빠가 야속하고 미웠다.

 

 그리고 너무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삐쭉 솟은 눈썹을 하고 있던 아영은 꾀나 무덤덤해 보였다.

 

 

 “아빠!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나는... 나는 괜찮은데... 엄마가...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아빠. 너무 나빠. 어떻게 엄마를 두고... 엄마를...”

 

 

 아영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보다 엄마가 슬퍼할까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던 것이었다.

 

 아빠가 살아올 것을 믿는 엄마에게 현실적 감각을 키워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아영은 알고 있었다.

 

 저 두 줄의 띠는 죽은 사람의 사진에 걸어놓는 장식이라는 것을.

 

 TV속 드라마 주인공의 장례식장에서 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슬펐다.

 

 아빠를 볼 수 없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적을 바라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희망은 가졌을 때만 빛이 나니까.

 

 아영은 희망의 끈마저 놓고 있었다.

 

 드라마 안에서 주인공은 살아 돌아왔지만 아빠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영이는 잘 알고 있었다.

 

 

 “아영아. 우리 아영이 불쌍해서 어쩌니?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엄마는 항상 아영을 볼 적마다 그런 소리를 했었다.

 

 슬픈 눈으로.

 

 아빠를 닮은 눈을 한 아영을 바라보며.

 

 

 “우리 아영이. 생일 날 뭐 가지고 싶어?”

 

 “나? 음...”

 

 “왜? 뭔데? 비싸도 엄마가 이번에는 꼭 해줄게.”

 

 “아냐. 됐어. 엄마 깨진 핸드폰이나 바꿔.”

 

 

 아영의 넉살에 엄마는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더니 닭똥만한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이 많던 엄마였다.

 

 이렇게 마음 약한 여자를 두고 혼자 떠난 아빠가 더 미워지는 날이었다.

 

 

 “왜? 엄마. 왜 울어. 또...”

 

 “아냐... 엄마. 안 울어.”

 

 “아니긴 뭐가 아냐? 지금 여기서 나오는 게 눈물이 아니라 콧물인가?”

 

 

 아영은 엄마의 눈물을 멈추게 할 긴급처방을 대령했다.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을 짓더니 엄마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데고는 꼼지락거리며 간지럼을 태웠다.

 

 

 “하하하... 아! 그만해. 우리 딸. 엄마 안 울 테니까 그만해주라.”

 

 “약속해. 진짜 다시는 안 울기로.”

 

 “그래. 알았어.”

 

 “그런데 엄마.”

 

 “왜?”

 

 “왜 울었어? 혹시 이렇게 어른스러운 딸 가진 게 자랑스럽고, 내가 막 기특해서 그런 건가? 그게 맞지?”

 

 “응. 그래. 우리 딸 너무 기특하고. 너무 고마워. 우리 딸!”

 

 “어? 왜?”

 

 “엄마가 사랑해!”

 

 “나두! 엄마 사랑합니다. 헤헷.”

 

 

 새끼손가락으로 고리를 걸고서 복사에 싸인까지 해두었지만 엄마는 또 울 거라는 걸 안다.

 

 엄마를 울린 건, 엄마를 울게 만든 건 아영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

 

 

 

 “여보. 오늘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지난 아빠의 생일날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볼에 살짝 입술을 가져다 대며 물었었다.

 

 

 “됐어. 난 당신만 있으면 되네요.”

 

 “아니 그건 알겠는데. 그러지 말고 정말 없냐고?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까짓것. 내가 비싸더라도 오늘만은 사준다.”

 

 “됐다니까 계속 그러시네. 난 자기하고 우리 아영이만 있으면 된다니까 그러셔. 그거 말고는 아무 것도 필요 없네요. 우리 마눌님이랑 우리 딸이랑. 우리 가족 행복하게 오래 살수만 있으면 그 걸로 족합니다요.”

 

 “아이구. 이 아저씨가 정말...”

 

 

 아빠의 감동 섞인 말에 훌쩍이던 엄마가 또 한 번 물었다.

 

 

 “그러지 말고 말해보세요. 뭐 갖고 싶어?

 

 “으이구. 사랑하는 자기님. 내 거는 됐으니까 자기 깨진 핸드폰이나 바꾸세요.”

 

 

 그 날 아빠는 배를 타고 바다로 항해를 나섰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여보.”

 

 엄마는 그 이후로 아빠가 그리울 때마다 그 깨진 핸드폰을 꺼내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빠의 낡은 핸드폰과 자신의 깨진 핸드폰을 양 손에 쥔 채 아영 몰래 울음을 터뜨리곤 했었다.

 

 

 ‘아냐. 됐어. 엄마 깨진 핸드폰이나 바꿔.’

 

 

 아빠의 대답을 그 딸이 대신 해 준 것이었다.

 

 

 “우리 딸. 엄마 이제 절대 안 울 거야. 진짜!”

 

 “아이고. 그러셔요? 우리 윤찡찡씨.”

 

 

 엄마는 또래보다 속 깊은 딸을 본다.

 

 딸은 사랑을 잃고 허망한 미소를 짓는 엄마를 바라보며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일 년이 보냈다.

 

 그리고 아영이 여덟 살 생일을 며칠 남겨둔 어느 날이었다.

 

 아영은 해녀였던 엄마마저 물질을 하러 바다로 나갔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태곤이가 데려간겨.”

 

 “아니라니께는 그러네. 내가 봤다니께. 며칠 전부터 미친년 모냥으로 저 짝만, 암 것도 없는 저그만 내내 보드라고만.”

 

 

 삼일 뒤,

 

 방파제 인근에서 물에 불은 엄마의 시체가 떠올랐다.

 

 

 “그럼 실성했다는 겨?”

 

 “바람도 없는 날에 해녀가 물질하다 빠져 죽었으면 그게 뭐 겄어?”

 

 

 마을 사람들은 엄마의 죽음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데려갔다고,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거라며...

 

 

 “태곤 네가 오죽 이뻤어? 용황님이 데려간겨.”

 

 

 미신을 신봉하던 성근이 엄마는 바다신이 제물로 삼킨 거라고도 했었다.

 

 마을에는 아영 엄마의 죽음의 이유로 별의 별 추측들이 돌아다녔었다.

 

 

 “엄마... 엄...마... 엄마!”

 

 

 아영은 서럽게 울었다.

 

 여덟 개의 초가 꼽혀진 생일 케이크 앞에서 한 사람만을 부르고 또 불렀다.

 

 

 “엄마! 엄...마...”

 

 

 불러도 대답 없고, 외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지만 지쳐 쓰러질 때까지 부르고 또 불러야 했다.

 

 그 것이 어린 아영이 엄마를 찾을 수 있을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

 

 

 

 

 

 부모 잃은 어린 소녀, 고아가 되어버린 아영을 맡아줄 사람은 없었다.

 

 아영의 부모는 고아원에서 함께 자랐으니 피붙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아영에겐 할머니도 삼촌도, 이모도, 피가 섞인 혈육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아영이 있니?”

 

 

 면사무소에서 나왔다던 중년 여성이 일주일에 한번 씩 집으로 찾아오곤 했었는데 그 때마다 그녀의 손엔 김치며 쌀이 들려져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 삼 일마다 한 번씩이 되었고, 그 때마다 아영의 집에 있던 밥통에는 김을 모락 피워내는 갓 지은 쌀밥이 채워지곤 했었다.

 

 

 “아영아. 아영이도 이제 학교 갈 나이가 됐고, 이젠 보호자가 있어야 되는 거야. 며칠 뒤에 아영이가 잘 아는 할머니 한 분이 오실거야. 그러면 그 때부터 그 분이 우리 아영이를 보살펴 주실 거야. 알겠지?”

 

 

 나흘 뒤, 복지사의 말대로 아영의 집에 허리가 굽은 백발의 노파가 찾아왔다.

 

 

 “아영아. 그 동안 잘 지냈니?”

 

 

 아빠가 사라지고 얼마 후까지 아영의 뒷집에 살던 혁수 네 할머니였다.

 

 

 “어... 할머니...”

 

 “그래. 그새 참 많이 자랐구나. 이젠 숙녀 티가 확 나는데?”

 

 

 그녀도 아영의 엄마처럼 믿고 또 믿었었다.

 

 아영 아빠와 같은 배를 탔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었다.

 

 아영의 기억 속에서 조난된 아들을 기다리다 해양경찰의 수색포기 소식을 듣고 혼절한 뒤 앰뷸런스에 실려 간 것을 본 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는 볼 수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딸의 집으로 갔다고 했던 것 같았다.

 

 

 “할머니... 할머니가 무슨 일로?”

 

 “응. 이제는 할머니랑 같이 살면 되는 거야.”

 

 “그런데... 할머니가 왜...?”

 

 “현주 죽기 전에 날 찾아왔단다. 그리고 널 꼭 부탁한다고 그렇게 말하더니... 흑... 그 말이 이런 뜻인 줄 왜 진작 몰랐을까... 못난 년. 못났다. 이 어린 것을 두고 어찌 그리 가누...”

 

 

 부모를 잃고 세상에 혼자뿐인, 버려졌다는 생각에 몰래 눈물을 감춰야 했던 소녀는 알게 되었다.

 

 아들을 잃고 홀로 허망한 삶을 살던 노파와 자신이 비슷한 처지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서로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었으리라.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그렇게 노파와 소녀는 서로에게 의지 되는 가족이 되었다.

 

 

 “아영아. 도시락 챙겼니?”

 

 “그럼... 당근이지.”

 

 “저번처럼 딴 데로 새지 말고. 할미가 고기 끊어놓을 테니까 일찍 들어와.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스테낀가 뭐시긴가 하는 그 거 해 놓을 테니까.”

 

 

 소녀는 할머니를 사랑했고 할머니도 아영을 친손녀처럼 아꼈다.

 

 엄마도, 아빠도 없었지만 이제 소녀는 불행하지 않았다.

 

 아니 행복하다고 믿었다.

 

 언제나 소녀를 걱정해주던 엄마를 대신해 엄마가 보내 준 그녀가 곁을 지켜줄 테니까.

 

 

 “커 갈수록 점점 엄마를 쏙 빼닮아가는 구나.”

 

 

 10년에서 둘을 뺀,

 강산이 거의 변할 세월이 흘렀다.

 

 소녀는 어느덧 아가씨 태를 보일 정도까지 자라 있었다.

 

 할머니보다 머리 하나가 더 얹혀 진 키가 되었고 할머니의 허리는 소녀가 자란 만큼 굽어 땅바닥으로 가까워졌다.

 

 

 “할머니. 오늘 무슨 날인지 알지?”

 

 “오늘?”

 

 “아이 참... 오늘 학교 꼭 와야 된다. 안 오면 나 이제 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나를 이제 은길동이라고 불러줘.”

 

 

 아영의 농담 섞인 앙탈에 할머니는 세상에 둘도 없을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구. 다 늙어빠진 할망구가 가서 뭐할라고.”

 

 “그래도 와. 꼭! 꼭이다?”

 

 

 어른을 향해가던 중턱.

 

 고왔던 앨범 속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는 소녀였다.

 

 

 “아영아. 할머니가 오늘은... 콜록!”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잦은 기침을 하던 할머니의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왜? 어디 아픈 거야? 무슨 기침을 그렇게 해?”

 

 

 손녀가 걱정할까 말하진 않았지만 그동안 노인의 육체는 쇠약해질 데로 쇠약해져 있었다.

 

 

 

 *

 

 

 

 “어르신.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 이 상태면 저희도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달고 살던 지병은 번져갔다.

 

 담당 의사가 입원대신 요양을 권할 정도로 심각했다.

 

 암세포가 폐를 장악했고, 심장에까지 번져있었다.

 

 

 

 *

 

 

 

 “씨이. 할머니 진짜!”

 

 

 중학교 졸업식에서 꽃다발을 안겨주기로 약속했던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겉으론 무딘 척이지만 손녀 몰래 챙겨주시던 버팀목 같았던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할머니?. 할... 할머니!”

 

 

 식이 끝나자마자 연락을 받고 황급히 병원으로 가야만 했다.

 

 정신없이 달려온 손녀의 눈앞에 차디차게 굳어버린 몸을 한 노파의 주검이 있었다.

 

 

 “할... 머니...”

 

 

 할머니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뜬 눈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아버지가 떠났던 그날처럼 봄꽃이 일찍 꽃봉오리를 틔운 봄날.

 

 매화향기가 만발했던 열일곱 봄날에 소녀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아빠가 사라졌던 날보다.

 

 엄마가 주검으로 돌아왔던 그 날보다.

 

 할머니가 숨을 거둔 그 날에 소녀는 더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하늘은 질투의 화신인 건가?’

 

 

 왜 이리도 소녀를 못 잡아먹어서, 골려주지 못해 안달인 걸까.

 

 소녀는 믿었던 하늘에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

 

 

 

 

 

 몇 해 후. 스스로 죽기로 했던 날.

 

 소녀는 세 번째로 죽음을 결심하던 그 날의 일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인데...’

 

 

 할머니가 떠나던 날, 엄마 아빠를 잃었던 날보다 왜 그렇게 처절하게 울었었는지를 생각해 봤다.

 

 엄마, 아빠보다도 더 긴 세월을 보낸 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스무 해가 되지 않는 짧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어서?

 

 그것도 아니면.

 

 그 행복이 길을 잃고 돌아오지 않았던 아빠처럼 영영 떠나버릴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마지막 등대가 꺼진 후.

 

 소녀는 나지막한 한숨으로 호흡을 다잡았다.

 

 

 ‘힘을 내야해. 이제 혼자가 되었고, 또다시 외로움과 싸워야 할 테니. 약해지면 안 된다. 쓰러지면 안 된다.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힘은 남겨 둬야지. 그래야 일어설 수 있으니까.’

 

 

 아영은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해주던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바다에 뿌려진 한 많은 늙은 여인을 추모하기 위해 순수한 눈물을 그 곁에서 바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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