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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보통이 아닌 연애
작가 : 꿀크리스마스
작품등록일 : 2017.6.16

준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
그것도 6살이나 어린, 갓 대학을 졸업한, 아주 예쁜, 우리 회사 신입사원과.

개자식, 3년 간 사랑이 이거야?

소임은 이를 바득 갈았다.
이별을 고했던 건 소임이었지만,
헤어진 지 이제 한 달 남짓 지난 시기에 새로운 애인을 사귀는 건
임준답지 않았으니까.

“오해하고 있잖아. 어떻게 나를 그렇게 몰라.”
왠지 모를 슬픈 눈으로 자꾸만 소임의 주위를 맴도는 준과

“저한테 고백한 거 아니예요? 나는 우리가 오늘부터 1일인 줄 알았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이 들이대는 카페 알바생 진기까지.

소임과 준, 그리고 진기가 그려내는
보통인 듯 보통이 아닌 연애 이야기.

 
11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3)
작성일 : 17-06-28 23:19     조회 : 333     추천 : 0     분량 : 8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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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3)

 

 

  진기는 소임을 기다리는 중이다. 소임이 자신을 이용하라는 진기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피하고만 있으니까, 이번에도 진기가 다가가기로 한 것이다. 소임에게 어디냐고 문자를 보냈고, 웬일로 소임에게서 답장이 왔다. 야근 중이란다. 언제쯤 끝날 것 같냐고 물으니 늦을 것 같다고 해서 진기는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 했다. 소임에게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보고 싶다. 오늘따라, 더.”

  진기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물론 진심이었다. 언제나 보고 싶은 소임이었고, 어제 오늘 못 봐서 더 보고 싶은 소임이었지만, 무엇보다 오늘따라 정말, 보고 싶었다. 소임이 자신의 앞에서 재잘재잘 떠들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는 과격하게 말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생동감 있는 그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진기는 생각했다.

  오늘 아버지를 만나서 더 그런 것이라는 걸 진기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만난 날이면, 진기는 소임이 많이 보고 싶어졌다. 소임과 가까워지기 전에는 아버지를 만난 날, 소임이 카페에 오는 날이면 이따금씩 커피를 그냥 주기도 했다. 소임은 화들짝 놀라며 알바비 얼마나 한다고 이런 걸 사주냐고 질색을 하면서 거절하기도 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으면서 받기도 했고, 울적한 날이면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을 받기도 했었다.

  물론 그런 모습이 보고 싶어서, 커피를 그냥 주었던 진기였다. 카페에서 행사를 하고 있어서요, 저번에 제가 실수해서 그냥 드리는 거예요, 등 이유는 만들면 만드는 대로 였다. 그만큼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생동감 있게 반응하는 소임의 그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내가 괜한 짓을 했나.”

  그래서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소임과 가까워지기 위해 다가갔던 것, 그리고 황당할 수 밖에 없는 제안과, 뜬금없었던 고백까지. 다가가면 갈수록 소임은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점점 카페에 방문하는 횟수가 줄어갔으니까. 그런 괜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평소처럼 소임은 하루에 한 두 번씩, 매일을 카페에 왔을 텐데. 그리고 진기는 그런 소임의 모습을 보면서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기는 소임과 가까워지고 싶은 욕심을 참을 수 없었다. 하루에 한 두 번이 아닌, 매일매일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즐겁고 싶었으니까. 진기는 소임과 함께 했으면, 언제나 즐거웠으니까 말이다.

  소임이 이렇게 자신을 피하고, 가까이 다가가려는 자신을 밀어내는 건 다, 준 때문일 것이다. 진기 역시 알고 있었다. 소임은 아직 준을 잊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진기는 어쩌면 이게 자신의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소임은 현재 준과 헤어진 상태니까. 그렇다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고.

  그래서 진기는 준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소임 같은 여자를 놓친 준이 멍청해보이다가도, 그런 소임과 3년이나 연애를 했던 준이 부럽기도 하고, 아직도 소임이 준을 잊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화가 났다.

  그리고 진기를 그렇게 분노에 휩싸이게 만드는 준이 회사 건물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멍청한 자식.”

  자기 갈 길은 가는 준의 뒷모습을 노려보면서 진기는 그렇게 읊조렸다. 물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준을 유희가 뒤따라 쪼르르 달려갔고, 준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유희를 거부하지 않았다. 진기는 다시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여자가 뭐가 좋다고.

  진기는 소임도 곧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준과 유희가 나왔다는 건, 야근이 끝났다는 뜻일 테니까. 그리고 진기의 예상대로 소임이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고 진이 빠진 모양새였다. 오늘의 컨셉은 울적 소임이네, 하고 진기는 생각했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된 소임의 모습조차, 귀여워 보이는 진기였다.

  “오늘 많이 힘들었어요?”

  “앗, 깜짝이야!”

  조심스럽게 소임에게 다가가 진기는 말을 걸었다. 소임은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건지 진기가 말을 걸자 화들짝 놀라했다. 오늘은 분명 불쑥 찾아온 것도 아니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까지 해놨었는데도, 자신의 등장에 자지러질 듯 놀라는 소임의 모습이 진기는 그저 귀여웠다.

  “또 놀라네요? 오늘은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선전포고까지 했었는데.”

  “아…… 잠시 다른 생각 좀 하느라고요.”

  “내 생각 하고 있던 건 아니고요?”

  “네. 그건 아니고요.”

  소임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소임의 모습을 보며 진기는 내적 웃음을 지었다.

  “누구?”

  그때, 소임의 뒤를 따라 회사 건물을 빠져나오던 도희가 다가와 물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진기를 쳐다봤다. 진기는 그런 도희의 눈빛이 뭔가 무례하게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 그,”

  “안녕하세요. 여기 앞에 헐리앗 카페에서 일하는 주진기라고 합니다.”

  소임은 진기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며 망설이고 있었고, 그런 소임을 눈치 챈 진기가 소임의 말을 자르며, 스스로 자기 소개를 했다. 도희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진기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불현 듯 생각이 났는지 아는 체를 했다.

  “아!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몇 번 카페에서 본 것 같네요.”

  “네, 저도 몇 번 뵌 것 같아요.”

  “그런데, 둘이 무슨……?”

  “오늘 소임씨랑 선약이었는데. 먼저 데리고 가도 돼요?”

  도희는 소임과 진기를 번갈아 보면서 시선의 의도를 거르지 않았다. 진기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소임에게 이 새로운 남자와는 무슨 사이냐, 그 사이에 애인을 갈아치운 것이냐는 등의 질문을 던질 것 같은 시선이었다.

  소임이 조금 난처할 수도 있겠지만, 진기는 도희의 말도 자르며 조금 서두르며 물었다. 소임과 단 둘이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이 어색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소임을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뭐랄까. 소임은 지금이라도 건들이면 당장에 눈물을 왈칵 쏟아낼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도희는 조금 당황스러워했지만, 순순히 소임과 진기를 놓아주었다. 다시 둘만 있게 된 진기는 소임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많이 힘들었어요?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아니예요.”

  “아니긴요. 제가 툭 건들기만 해도 으아앙, 울음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인데.”

  “아니라니까요.”

  “진짜요? 그럼 한 번 건드려 볼까요?”

  “뭐라고요?”

  진기의 말뜻을 헤아리지 못한 소임이 되물었다. 무슨 뜻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진기는 소임의 손등을 하나의 손가락으로 찔렀다. 소임은 지금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냐는 듯 진기를 쳐다봤다.

  “진짜 안 힘들었어요?”

  “네. 안 힘들었어요.”

  이번에는 소임의 팔을 찔렀다.

  “진짜, 안 힘들었어요?”

  “안 힘들었다고요.”

  이번에는 소임의 볼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다정하게 손가락으로 살짝, 찔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오늘, 힘들었죠?”

  “뭐야, 하하…… 흑.”

  진기의 장난에 즐거운 듯 웃던 소임은 마지막의 그 다정하면서도 당신의 마음을 모두 알겠다는 듯, 유독 힘들었던 오늘 하루를 다 알고 있다는 듯, 위로하려는 그 진기의 행동에 결국에는 울음이 터져나오고야 말았다.

  진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는 소임에게 다가가, 소임의 손과는 비교되는 큰 손으로 소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생했어요, 오늘. 다 알아요.”

 

 

 *

 

 

  일주일을 마무리 하는 일요일 저녁과,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의 저녁. 거리의 상가들은 일찍 문을 닫거나, 아니면 휴무일로 정하고 문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이도 녹턴 바는 문을 닫지도, 아예 문을 안 열지도 않았다. 그리고 월요일 저녁이라 한산한 녹턴 바에, 소임과 진기가 앉아 있다.

  가까스로 훌쩍임을 멈춘 소임에게 진기는 맥주 한 잔 하고 갈까요,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짝을 사가지고 집에 가서 퍼 부어 마시고 잘까 생각하던 소임이었기 때문에 진기의 제안을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진기가 집 근처로 가요, 라고 말했고 그래서 소임은 집 근처의 단골 바인 녹턴 바로 진기를 안내했다. 준과도 자주 찾았던 녹턴 바였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전부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싶은 소임이었다. 너와 함께 했던 장소들에,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들 말이다.

  “소임씨, 주량이 쎈 가 봐요.”

  맥주 한 잔 하자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시킨 술이 보드카였다.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양은 늘어만 갔다. 이런 운수가 좋지 않은 날, 소임은 평소보다도 더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정신을 좀 잃고 싶은데, 마실수록 제정신이었다.

  “제가, 좀. 술이 잘 안 취해요. 집안 내력인가 봐요.”

  “그래요? 전혀 몰랐는데.”

  당연하지, 싶었다. 진기와는 술을 마신 적이 없었던 소임이었으니.

  반면, 진기는 처음 소임을 만났던 날을 기억했다. 처음 만났던 날이라기보다, 처음으로 소임을 그저 단골손님이 아닌 그 이상으로 자각하게 된 날이라고 해야 더 맞았다.

  그날은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었다. 유난히 카페에는 손님이 없었고, 진기는 그만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페 마감 시간은 11시 30분이었다. 그보다 30분을 앞당겨 11시에 진기는 카페 마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요란하게 문이 열리고 등장한 게 소임이었다.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소임은 우산도 없이 들어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비는 하나도 맞지 않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우산도 없이 어떻게 비를 안 맞았지, 라고 생각하며 카운터로 걸어오는 소임에게 진기는 정중하게 말했다.

  “손님. 죄송합니다. 오늘 주문은 마감입니다.”

  “에에에? 여기 열 한시 반에 문 닫지 않아요? 시간 남았는데?”

  “아, 네, 그런데 오늘은 30분 앞 당겨서 마감해서요.”

  “에이, 알바가 무슨 그렇게 마감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그래요. 안 돼, 안 돼.”

  “하하, 죄송합니다.”

  진기는 끝까지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고, 끝내 마감이 되어 주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렸다. 소임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 오늘은 아메리카노 말고. 달디 달고 너무 달아서 혀가 다 얼얼해지고 이걸 마시면 10kg는 바로 찌겠다, 라고 생각이 들만큼 아주 단 바닐라 라떼 한 잔이요.”

  진기는 어리둥절했다. 마감이라니까, 지금 이 여자가 뭐라는 거야? 킁킁. 그러고 보니 소임에게서 진한 알코올의 냄새가 났다. 술에 취했구나, 취했으면 곱게 집에 돌아가지 왜 카페에 와서 진상을 보니라, 싶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오늘 주문은 마감되셨어요.”

  “아니야, 아니야. 바닐라 라떼, 어, 추우니까 따뜻하게. 어, 그렇게 해서 한 잔 주세요.”

  꼬인 발음으로 부정을 하던 소임은 진기의 만류에도 소신껏 주문을 한 후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술에 취한 소임이었으니, 현재 카페에 일부 불이 꺼지고, 진기 역시 사복으로 갈아 입은 상태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진기는 망설였다. 저걸, 내쫓아, 말아?

  “빨리 가져다 주세요.”

  소임은 말끝을 흐리며 한껏 애교 있는 목소리로 카운터, 진기를 향해 활기차게 외쳤다. 그래, 단골 좋다는 게 뭐야. 진기는 어차피 차 한 잔이니까, 보통 한 시간 이상 있다가 간 적이 없는 소임이니까, 그냥 주기로 다짐했다.

  포스를 전부 꺼버려서 주문을 넣을 수는 없었고, 그냥 그 상태로 커피만 제조했다. 진동벨이건 뭐건 쥐어준 게 없으니, 물론 계산도 하지 않았으니, 진기는 제조한 바닐라 라떼를 들고 소임에게 직접 배달까지 해주었다.

  “아이,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소임은 과장되게 행동했다. 누가 봐도 술에 취한 사람이었다. 저러다 금방 가겠지, 생각하며 진기는 카운터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 보니 계산도 안했는데…… 그냥 선심쓰듯 서비스 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던 진기는, 곧 핸드폰을 탁상 위에 놓은 후 넋을 놓고 소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소임은, 혼자서 원맨쇼를 제대로 하는 중이었다.

  “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넌 나쁜 새끼야! 으허헝!”

  소리를 치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가,

  “준아, 준아. 보고 싶어, 준아. 내가 다 잘못했어. 흐으윽.”

  낯선 이름을 되뇌이며 가슴을 치기도 하고,

  “근데, 너 그때 진짜 웃겼던 거 알지? 하하악하하하.”

  청자도 없는 말을 혼자 내뱉으며 자지러질 듯 웃기까지. 배를 까뒤집고 웃다가는 뒤로 벌렁 넘어질 뻔하다가 다시 앉아서는 울기 시작하기도 하고.

  “저 사람이 원래 저런 사람이었나.”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소임이라는 존재가, 원래 저렇게 다이나믹한 사람이었나, 싶은 진기였다. 진기에게 소임은 단골손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늘 같은 메뉴를 주문하고, 음료 쿠폰을 꼬박꼬박 받으며, 혼자서 카페에 와 몇 십분 앉아 있다 가거나 커피만을 들고 가는 손님.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으로 보아 근처 건물 회사원. 소임에 대한 정보는 그뿐이었다.

  “재밌네.”

  누군가와 이별을 하고 술을 진탕 마신 뒤, 술주정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뒤늦게 말하자면, 그 날은 소임이가 진기와 헤어진 날이었다. 소임은 이별의 아픔을 집에서 혼자 술로 달래고 있었다. 원체 술이 쎈 소임이었다. 웬만해서는 잘 취하지도 않고, 취해서 주정을 부릴 만큼 술에 취한 것도 일생 중 손에 꼽았다.

  첫째, 대학교 신입생 오티, 둘째, 대학 졸업 후 연일 취업 문턱에서 낙방했을 때, 셋째, 준과 헤어졌을 때. 그리고 진기는 소임이 일생 중 세 번째로 술에 취한 날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소임이가 보드카를 연거푸 마시면서도 술에 전혀 취하지 않는 것을 보며 놀랄 수밖에.

  “왜 웃어요?”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혼자 웃고 있던 진기에게 소임이 물었다. 그때의 일을 말해줄까, 싶었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더 있다가 하고 싶었다. 아직은 소임과의 첫 만남을, 혼자서 추억하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소임씨가 귀여워서요.”

  “헤엑?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왜요? 그럼, 귀여운 걸 귀엽다고 하지, 뭐라고 할까요?”

  소임은 마치 커다란 대왕 지네를 본 것 같은, 그러니까 징그러운 벌레만도 못한 것을 본 것 같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손사례를 쳤다. 그런 모습까지 진기의 눈에는 귀여워보였지만.

  “제가 뭐가 귀여워요, 도대체?”

  “음. 그냥. 전부 다요. 웃다가, 울다가, 화내다가도 또 웃다가. 그렇게 생동감 있게 감정표현 하는 소임씨 모습, 전부 다요.”

  진기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진심을 말해버렸다. 다시 말을 주어 담고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왕 말을 꺼냈으니, 조금 더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아버지는 저희들을 좀, 엄하게 키우셨어요. 학업에 대한 욕심도 많으셨고. 하지만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저는, 그런 아버지를 잘 따랐어요. 아버지가 멋있었고,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또 엄하게 교육하시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저는, 맞아요. 아버지가 멋있었어요.”

  갑자기 진기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너무도 멀쩡한 소임과는 달리, 보드카 몇 잔에 조금씩 취기가 오르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오늘 오후, 아버지를 만난 날이라 생각이 더 많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소임이 더 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멋있었던 아버지가, 나한테는 이 세상의 유일한 신 같은 존재였던 아버지가, 바람을 피고 계시더라고요. 그 때문에 어머니가 많이 아파하셨고,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아버지는 저에게 더욱 엄해지셨죠. 그래서 저는 알았어요. 저에게 엄하게 구셨던 아버지가, 저를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아버지 자신을 위해서 그랬던 것 뿐이라는 것을요.”

  “진기씨.”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진지해진 진기의 눈동자. 소임은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고,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그의 맘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 공허한 마음을. 그래서 소임은 살며시 진기의 왼손을 잡아주었다. 그에게 그렇게라도,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그래서 소임씨가 좋았어요.”

  진기는 말을 이었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교육을 받은 저는, 뭐랄까, 딱 FM대로만 살아왔다고 할까요. 감정표현 역시 숨겨야만 한다고 배워와서, 아버지의 바람을 알게 됐을 때 역시 어떤 표현도 하지 못했어요. 그저, 그대로 집을 나왔죠.”

  “……”

  “그런데 소임씨는, 감정 표현에 있어서 생동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살아있는 느낌이고, 그렇게 표현을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라는 걸요. 그리고 저는, 그런 소임씨의 매력에 반하게 됐고요.”

  진기는 여전히 진지했다. 소임은 뭐라고 말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저는 그저, 소임씨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예요. 소임씨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까요. 그러니까, 저 자꾸 피하지 마세요.”

  “진기씨.”

  “제 제안도 거절하지 말고요. 카페도 하루에 열 번씩 들러주시고요.”

  그렇게 할 말을 마친 진기는 소임을 보며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진기의 힘이 드는 미소를 보며 소임은,

  ‘이건 반칙이야. 이런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가 없는 거잖아!’

  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 속으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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