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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아스칼 연대기
작가 : 각박한호두
작품등록일 : 2017.5.27

아스칼 라이오스의 일대기

 
1부 괴물의 아이
작성일 : 17-06-27 09:07     조회 : 221     추천 : 0     분량 : 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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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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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없는 아이가 있었다.

 마을의 이름은 엔다르. 리니카에서도 가장 최북단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마을 안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는데 1년 중 3달을 제외하면 언제나 얼어붙었다. 그나마 따뜻한 2~4월이면 아이들이 호수 근처에서 뛰노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이름 없는 아이에게 그런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아이에게 마을은 언제나 한산했다.

 그 날도 그랬다. 여인은 아이를 커다란 바구니에 넣었다. 자기는 두꺼운 거적때기를 걸치고 아이는 천쪼가리 한 장 덮어놓았다. 얼마든지 펑펑 울어도 될 상태였지만 그랬다간 뺨을 맞아 얼굴이 퉁퉁 부울 것이므로,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살을 에는 찬바람을 견뎌내었다. 여인은 마을 바깥으로 나갔고 다른 마을이 아니라 산 쪽 방향이었다.

 아이에게는 물론이고 여인에게도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코스였다. 이정표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고 길은 바위 천지로 험난하다. 으레 오르기 힘든 길목에는 나무줄기나 큰 바위에 걸린 밧줄이 도움을 주지만 르구누바로 향하는 길은 사람의 손길이 아예 없었다. 여인이 이곳에 온 이유도 정확히 이와 같았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등반은 다음 날 저녁 8시까지 이어졌다. 여인은 중간에 탈진할 뻔하기까지 했지만 무사히 37시간의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르구누바 골짜기의 입구는 밑이 잘 보이지 않는 절벽이었다. 여인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기억들을 어렵게 떨쳐내고, 여인은 꽉 쥐고 있던 커다란 바구니의 손잡이를 탁, 하고 내려놓았다.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꽉 다문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려 했다. 먹은 게 없어 용변할 일이 없는 건 천만다행이었다. 대체 어디를 가길래 이렇게 헉헉대며 몇 십 시간째 한 번 간 적 없는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 아이는 얼마든지 소리를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얼마만큼이 지났는지 알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여인은 멈췄고 아이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그 때 한 번 몸을 뒤집어 고개를 들었다.

 몸이 붕 뜬다. 깊이가 짐작되지 않는 절벽. 그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아이는 그제야 우렁차게 울부짖었지만 소리는 허무하게 골짜기 밑으로 울려 퍼질 뿐이었다. 협곡은 더욱 더 그윽한 어둠으로 그 괴물의 아이를 반기었다.

 

 

 “크윽…!!”

 아스칼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고 숨을 가다듬었다. 침대가 꽤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지독한 악몽이다. 브리칼 라이오스가 어린 아이를 거두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꾸는 꿈이었다. 과정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끝이 났다. 잠에서 깰 즈음엔 말하기 힘든 먹먹함이 몸을 지배하고 있다. 그 때부터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는 이 악몽을 반복할 때마다 자조하듯 중얼댔다.

 ‘또 그 꿈이야?’

 침대 옆에 대검을 기대어놓았다. 9살이 되었을 때 브리칼이 그에게 준 것이었다. 소유권을 넘겨받으며 그녀와 감통(感通)할 수 있는 권한도 얻었다. 검에 깃든 검성. 천신. 그녀를 상징하는 말은 100개로도 부족하다.

 “……응.”

 ‘정말 지겹지도 않네. 그렇게 피곤하게 일해 놓고도 꿈은 꾸는 거야?’

 “이 꿈 말고 다른 꿈은 꿔본 적이 없어.”

 창문 커튼을 슬쩍 걷어보았다. 대지에 비친 햇살이 얕다. 돌아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해봤자 아침 여섯 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5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한 셈이었다. 아스칼은 다시 스르륵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돈은 얼마 정도 모았어?’

 “2실라트 30하운드 남짓.”

 ‘어제까지 해서 며칠 째였지?’

 “58일째.”

 ‘그럼 이틀 남은 거네?’

 “그렇게 되는군.”

 “2실라트…그 정도면 충분한 걸까?”

 “글쎄. 여차하면 다시 돈을 벌어야 할지도 모르지. 그건 그 때 가서 걱정하자고.”

 골짜기에서 내려온 지도 벌써 2달이 넘었다. 갖고 있는 거라곤 몸뚱이 밖에 없는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야말로 막일밖에 없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단 둘이 살아왔던 그에겐 단순한 대화도 중노동이었다.

 

 니카 대도의 중추를 꿰뚫는 거대한 산맥, 누바 산맥은 리니카의 자원줄과도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원료를 산에서 얻었는데 목재부터 물까지 얻지 못하는 게 없었다. 아스칼 역시 누바 산맥 한복판에서 혹독하게 살아온 만큼 산에서 생활한다면 딱히 돈이 없이도 문제될 게 없었다. 음식은 동물을 사냥하면 되고, 산 아래의 숲에서 과일도 공수할 수 있다. 누바 산맥은 어디건 꽤 춥지만 계곡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하면 얼음을 다량 챙겨 가죽부대에 우겨넣은 다음 녹여서 물을 만들 수도 있었다. 산에 사는 대부분의 맹수를 도륙한 경력이 있는 아스칼에게 동물도 적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산이 아닌 마을로 들어가 생활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돈은 절대 없어선 안 될 요소였고 그는 르구누바에서 르구 마을로 내려오자마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다행히 구직한지 3시간도 안 돼 바로 일거리를 얻었는데 일의 내용은 운반원이었다. 산과 주변 숲에서 벌목한 목재를 옮기거나 사냥꾼들이 죽인 동물을 실어 나르거나 하는 게 주 업무였다. 여간 힘을 많이 쓰는 게 아니라서 견디는 데는 이골이 난 그에게도 제법 피로한 일이었다.

 그래도 참고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가시밭길을 걷기로 한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엄살부려봤자 소용없다. 모든 건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서니까.

 

 “거기 신입! 이쪽 좀 도와줘!!”

 “예!”

 허리보다 두꺼워 손으로 잡기조차 힘든 긴 통나무를 세 명이서 겨우 붙잡고 있었다. 아스칼은 왼쪽 아래로 가 균형을 잡고 통나무를 들어 올린 후 왼팔을 중간 부근까지 뻗어 무게를 분산시켰다.

 “읏샤아――!!”

 사람 여섯 명은 누울 수 있을 만한 거대한 수레에 통나무를 던져 밀어 넣는다.

 “덕분에 살았다 신참!”

 동료들은 허리를 한 번씩 툭 치며 오른쪽으로 빠졌고 아스칼은 운송용 수레가 모인 왼쪽으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수고하는구먼.”

 소장이 작은 가죽부대를 흔들며 덕담했다. 코르크마개를 뽑아 안의 내용물을 천천히 들이킨다.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미 수레가 열 개 이상 쌓여 있었다.

 아스칼은 양 손에 하나씩, 손잡이를 힘껏 붙잡고 끌어당겼다. 얼굴만한 크기로 알맞게 조각한 장작이 더미로 쌓인 수레였다.

 

 “오늘이 마지막인 건 알지?”

 “예.”

 “내일은 정리만 하고 뒤풀이 할 거니까 딴 데로 새지 말고. 일꾼들이 내는 거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이를 악물고 힘을 꽉 준다. 일터엔 운반 일을 오래해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사람 한 명이 낑낑대며 끌고 가는 장작더미 수레를 두 개씩 끌고 다니는 진귀한 풍경은 그들에게도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힘 조절 운운할 게 아니다. 바위라도 덥석 들 수 있지 않은 이상 저 정도 무게의 수레를 한 손으로 끄는 건 불가능하다. 대체 뭐하나 온 녀석이냐는 질문에 아스칼은 사냥꾼이었다고 둘러대곤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여어――신입! 오늘도 대단하구만!”

 “…마론 씨도 수고하시네요. 오늘은 아파서 쉬어야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엄살이지 그건! 원래 빈말 같은 건 일상이여 여긴!”

 “저, 마론 씨!”

 “엉?”

 시야에서 벗어나기 전에 불러 세운 아스칼이었다.

 “르구 마을에서 정보통으로 통하는 사람이라던가 없을까요?”

 “정보통? 그런 놈이 있겠냐, 이런 촌구석에!”

 “…그렇군요.”

 “뭐―원래 이야기는 술집에서 도는 법이니 궁금한 게 있으면 내일 뒤풀이 때 거기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그랴―수고!”

 

 리니카의 수많은 마을이 누바 산맥에 인접해있다. 르구 마을은 그 중에서도 지나치게 인접한 마을인데 그것을 장점으로 활용해 산 인근의 숲에서 벌목을 시작한 것이 이 일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리니카 정부에서도 신경 쓸 정도로 적지 않은 양의 목재와 가죽을 생산하고 있다. 다른 일거리는 전무하다지만 산과 엮인 몇 가지 분야에서만큼은 누바니카 연방에서 최고를 자부하고 있다.

 골짜기에서 더할 나위 없이 험난한 나날을 보내온 아스칼 라이오스에겐 안성맞춤인 일거리였지만, 그것도 길게 지속하진 못한다. 신입은 2개월이 최대, 업무강도가 아주 세기 때문에 경력자들도 6개월이 최대이다.

 무엇보다 정식으로 이 일을 하려면 주증서가 필요하다는데 그 증서를 발급해주는 곳이 또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2-4월에는 모든 작업이 중단된다고 하니 운이 잘 따랐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만약 2달 정도 더 늦게 누바에서 내려왔다면 일거리도 없는데 당장 먹고 잘 곳도 없어 산으로 돌아갔어야 했을 것이다.

 

 운반소에서 르구 마을까지 걸어서 약 40분. 수레를 끌면 페이스가 늦춰져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오전 8시에 시작해 밤 10시까지 14시간. 일하는 동안 인당 옮겨야 하는 수레 개수가 정해져 있다. 업무 끝날 때까지 할당량만 딱 채우는 게 베테랑의 기준이었다. 할당량을 다 채웠다 해서 남은 시간 동안 가만히 쉬게 놔둘 수는 없으니 결국 신입은 힘은 더 쓰고 일은 더하고 수당은 그대로 받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것도 둘째 날 정도까지만 그렇고 그 이후엔 자기 페이스를 스스로 터득해 요령껏 설렁설렁 할 수 있었다. 해봤자 한두 번 정도만 더 왕복하는 게 대부분. 운반소장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어 이런 풍조를 질타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아스칼은 한 번에 수레 두 개, 그것도 설렁설렁 하질 않아 최소 3인분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것도 2달 연속으로. 17년째 근속 중인 최고참 마론은 자기도 왕년에 몇 번 그런 적 있다며 코웃음을 치다가 그게 일주일을 넘기자 입을 싹 닫아버렸다.

 일을 그 정도로 열심히 잘하는데 소문이 안 날 리가 없다. 이미 운반소장은 일 없을 때 불러서 술을 사주는 등 각별히 신경 써주고 있었다. 그와 같이 들어온 신입들은 반은 질타 반은 부러움으로 일관했다. 아스칼과 같은 날 일을 시작한 동료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일 없을 때까지 따로 불러내는 건 호의가 아니라 범죄라며 툴툴대기까지 했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는 스무 살 청년에겐 어찌됐든 과분한 관심이었다. 별로 부담은 되지 않는다. 사람은 온갖 정보가 담긴 책이라고 할아버지는 자주 말하곤 했다. 그 ‘정보’가 누구보다 절실한 아스칼에겐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예정보다 1시간 빨리 일이 끝났다. 운반소에 모인 사람은 서른 둘. 헛기침 한 번 하고, 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동안 수고했다는 얘기와 다음번에 함께 할 사람을 우선 지원받는다는 얘기가 10분 이상 길어졌다. 업무 연장을 결정한 사람은 스무 명. 아스칼은 세 번이나 권유를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내일 뒤풀이하는 거 모두 알고 있죠? 1시부터 시작할 예정이니까 속 비워두고!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삼사오오 모여서 떠들썩한 가운데 홀로 자리를 뜬다. 아스칼은 숲길 위로 펼쳐진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 정도는 하고 가도 됐을 텐데.’

 “……그랬겠군.”

 ‘아직도 무서운 거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저 사람들이 나한테 뭘 했다고.”

 ‘칼도 그랬었잖아. 인간은 책과 같다고.’

 “알아.”

 단지, 마음을 다하고 싶지 않을 뿐.

 라는 말이 입 근처에서 맴돌다 없어졌다. 그는 아직도 꿈속의 결말과 싸우고 있었다.

 아니, 그저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일까. 사람들과 뒤엉키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함께 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극복해낼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오산이었다. 오히려 기억은 멋대로 왜곡되어 자신을 더욱 갉아 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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