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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전우치
작가 : 권오단
작품등록일 : 20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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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는 중종 때의 인물로 도술에 능하고 시를 잘 지었는데 반역을 꾀한다 하여 1530년경 잡혀 죽었다고도 하고 〈조야집요 朝野輯要〉.〈대동야승 大東野乘〉.〈어우야담 於于野談〉 등 여러 문헌에 나타나 있는 실재 인물인 전우치를 소재로 탁월한 역사적 상상력과 풍부한 사료, 재기 넘치는 한문시의 묘미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전우치 1 - 처사 전유선 - 6
작성일 : 16-04-11 10:37     조회 : 547     추천 : 0     분량 : 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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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도 김일손의 집 앞 감나무 위에 집을 짓던 까치가 아침부터 깍깍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권오복은 대청마루 난간에 기대어 감나무 위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는 까치를 바라보다가 문득 일손에게 말했다.

 “일손이. 오늘은 날씨가 아주 무더울 것 같구먼.”

 “그런가?”

 김일손(金馹孫)은 얼굴 한쪽이 일그레진 탓에 말이 분명치 못하였다. 김일손의 자는 계운(季雲)이며 호는 탁영(濯纓)이니, 성종17년(148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예문관(藝文館)에 등용된 후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성종이 승하하시고 연산주가 임금이 된 다음해 12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까닭에 벼슬길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삼년상을 치르다가 무리하여 풍(風)을 맞았는데 한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고 구안와사가 와서 조정에 입궐하지 못하고 정양을 하고 있었다.

 권오복은 예천 사람으로 자가 향지요, 호는 수헌(睡軒)이니 성종 17년(1486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館)에 들어갔다가 봉교(奉敎)․수찬(修撰)․교리(校理) 등을 역임하고 연산주 2년(1496년) 노부모 봉양을 구실로 벼슬길을 마다하고 귀향하였다.

 오복은 김일손과는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생으로 있을 때부터 막역한 사이로 일손이 와병 중이라는 소리를 듣고 청도로 찾아와 문객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안개가 자욱한 것을 보면 낮에는 분명 찌는 듯 무더울 것이 분명하네.”

 “그걸 어떻게 아는가?”

 “안개는 음기(陰氣)가 뭉쳐진 것이라 반드시 양기(陽氣)가 반응할 것일세. 그러니 오늘은 무척이나 무더울 걸세.”

 “여름이니 더운 것은 당연하겠지.”

 “이 사람. 나를 무안하게 만드네.”

 “자네가 워낙 싱거운 소릴 해대니 그렇지. 그나저나 약을 먹고 침을 써도 잘 낫지 않으니 답답하군 그려. 이회가 무사히 개성에 갔을까?”

 “그 사람이 출발한 지 보름이 넘었으니 벌써 도착했겠지. 전처사를 용캐 찾았다 하더라도 보름쯤은 더 기다려야 하지 않겠나?”

 “그도 그렇군. 몸이 불편하지 요즘엔 만사가 귀찮고 우울하네 그려.”

 “자네 맘 이해하네. 그래서 내가 전처사를 부른 것 아닌가? 그 사람이 의술이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류가 아닐세. 반드시 자네 병을 고칠 것이니 마음을 느긋이하고 기다려 보게.”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 자신하니 나도 기다려지네 그려.”

 그때, 바깥문으로 청지기가 들어와 마당에서 꾸벅 인사를 하곤 입을 열었다.

 “영감마님. 개성에서 전유선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아시는 분이십니까?”

 일손과 오복이 놀란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일손이 이 사람아. 내가 전에 말했잖은가! 그 사람이 이인(異人)이라고.”

 권오복이 너털웃음을 지으니 김일손이 찌그러진 얼굴을 끄덕였다.

 “옛날 팽조(彭祖)는 하루에 오백 리를 가고, 명나라 장삼봉(張三峰)은 하루에 천 리를 간다하더니만 전처사가 그들처럼 축지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군 그려.”

 “이회가 축지를 하진 않을 것이니 자세한 건 오면 물어보세.”

 “알겠네.”

 일손은 청지기에게 전처사를 이곳으로 모셔오라고 이른 후 돌려보냈다. 잠시 후에 청지기과 함께 전유선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큰 키에 푸른 도포를 입은 전유선은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옥골선풍의 풍모가 한눈에 드러났다.

 권오복은 버선발로 마당으로 뛰어나가 전유선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맞았다.

 “유선이. 이게 얼마 만인가? 반갑네, 반가워.”

 “나도 그렇다네.”

 유선은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권오복과 수인사를 하였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방으로 들어가세.”

 권오복은 전유선의 손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윗목에 앉아 있는 김일손에게 소개하였다.

 “이 사람 일손이. 바로 이 사람이 내가 말했던 개성의 전처사라네.”

 김일손은 불편한 몸으로 일어서서 예를 취하려 하였으나 전유선이 만류하여 하는 수없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여 예의를 차릴 수 없음을 양해하여 주십시오.”

 이때 오복이 끼어들었다.

 “이 사람 유선이. 자네도 양반은 아닌 모양이군.”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러잖아도 지금 자네 얘길 하고 있었다네. 그런데 이회, 그 사람이 언제 자네 집에 도착하였나?”

 “이틀 전에 만났지.”

 “이틀 전?”

 “자네 지금 천리 길을 이틀 만에 왔단 말인가? 그걸 나더러 믿으란 말인가”

 전유선은 말없이 미소만 지을 따름이다.

 김일손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권오복의 친구라 해서 기대했건만 보기와는 다른 것 같아서 실망이 되었던 것이다.

 “제가 듣기로 의학에 고명하다 들었습니다. 제가 풍을 맞아 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데 제 몸이 나을 수 있겠습니까?”

 전유선이 일손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더니 말했다.

 “중풍(中風)은 사람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졸도하여 혹 소생하더라도 얼굴이 일그러지는 구안와사(口顔臥斜)와 반신불수(半身不隨) 등의 후유증을 가지게 되거나, 혹은 깨어나지 못하고 죽을 수 있는 중한 병이지요. 그런데 모습을 보니 그리 중한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병의 원인은 비정상적인 기후나 적풍(賊風), 사기(邪氣)의 돌연한 침입 같은 외부 요인이나, 생활에 절도가 없고 규칙적이지 못한 경우나, 과격한 긴장으로 인하여 음(陰)과 혈(穴), 기(氣)와 혈(血) 상호간에 평형을 잃는 경우에, 사람이 섭생과 정신적 수양을 하지 못하여 심화(心火)가 몹시 타올라 열이 위로 거슬러 오르기 때문에 생기지요.”

 오복이 말했다.

 “자네 말이 맞네. 이 사람이 모친상에 무리하여 소상(小祥)에 그만 풍을 맞지 않았는가?”

 유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중풍은 크게 다섯 가지로 형태로 나뉘는데 얼굴이 찌푸려지는 구안와사같이 근육과 피부가 든든하지 못한 것은 락(絡)이 풍을 맞은 것이라 해서 중락(中絡)이라 부르고, 반신불수가 되어 근골을 쓰지 못하는 것은 경(經)이 풍을 맞은 것이라 해서 중경(中經)이라 부르며, 의식이 혼미하여 대소변에 장애가 있는 것은 풍이 부(腑)에 맞은 것이라 해서 중부(中腑)라 하며, 정신이 혼미하여 인사불성이 되고 입술이 늘어지며 가래 섞인 침이 흐르는 것은 장(臟)이 풍에 맞은 것이라 해서 중장(中臟)이라 이르지요. 대감은 중경에 가까우나 치료한 지가 오래되어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완치될 수 있겠습니다.”

 유선의 말에 오복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당장에 말인가? 풍을 당장에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

 전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일손은 수많은 의원들을 만나고 치료를 하였지만 풍을 당장에 치료할 수 있다는 유선의 장담을 믿을 수 없었다. 개성에서부터 청도까지 이틀 걸렸다는 말도 허풍처럼 느껴져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는데 지금 하는 말을 들으니 더욱 믿기 어려워 마음이 꺼림칙하였다.

 “먼 길을 오셔서 피곤하실 테니 좀 쉬시고 내일부터라도 저를 치료해 주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허허허. 괜찮습니다.”

 전유선이 김일손의 뒤에 좌정하고서는 말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몸 안에서 기운이 이끄는 대로 가만히 따르기만 하십시오.”

 “그런데 내가 마음이 편하지 못하오.”

 김일손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어째서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겁니까?”

 “내가 당신을 믿지 못하겠소.”

 갑작스런 일손의 말에 당황한 것은 권오복이었다. 일손의 성정이 대쪽같이 꼿꼿하고 고집스러웠지만 권오복이 일부러 청한 손님이 아닌가.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러시는가? 자네가 이러면 내 체면이 뭐가 되는가?”

 김일손이 오복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도 생각해보게. 천리길을 이틀에 왔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나? 그리고 수많은 의원들이 고치지 못한 내 병을 단번에 고칠 수 있다니 그것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전유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어찌하면 저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대가 나를 당장 고칠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이라면 나는 그대를 관아에 넘겨 혹세무민한 죄를 물을 것이오.”

 “좋도록 하십시오.”

 김일손은 노기가 치솟아 마당을 향해 소리쳤다.

 “여봐라. 누가 있느냐?”

 “예. 찾아계십니까?”

 “너 가서 튼튼한 밧줄 하나 가져오너라. 그리고 튼튼한 종놈들을 모두 이 앞으로 불러오너라.”

 “예?”

 “어서 명대로 행하라.”

 김일손의 엄명에 종놈이 부리나케 달려가 날이 굵은 밧줄과 건장한 노비들을 데려왔다.

 “이 사람아. 자네 대체 왜 이러는가?”

 “난 자네가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였네. 관직에 있는 사람이 허무맹랑한 방술을 믿어 쓰겠는가? 이런 자들이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속임을 당하는 것 아닌가.”

 김일손이 되려 큰 소리를 쳤다.

 “허허허. 듣던데로 강직한 분이시군요. 좋습니다. 믿고 안믿고는 두고보시면 알 것이니 이제부터는 제가 시키는 데로 하십시오. 마음을 편히 하고 두 눈을 감으십시오. 마음이 흐트러지면 병을 고칠 수 없으니, 제 탓이 아닙니다.”

 “변명하는 거요?”

 “허허허. 좋게 생각하십시오. 대감께서 저를 관아에 보내려고 다른 생각을 하시면 모를까, 저는 대감을 고쳐드릴 수 있습니다.”

 “좋소. 두고 봅시다.”

 김일손은 노기를 누르며 하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 사람들이 점점.”

 김일손과 전유선 사이에 끼인 오복이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전유선은 권오복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곤 김일손의 등 뒤에 좌정하였다. 이내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입정에 들어간 듯 하더니 눈을 떠서 일손의 등줄기 아래에 있는 명문혈(命門穴)에 검지를 갖다 대었다.

 이때, 김일손은 등줄기를 타고 찌릿하고 뜨거운 불길 같은 것이 치솟아오는 것을 느끼었다. 그 묘한 불길은 등줄기를 따라 올라와 머리를 타고 가슴으로 내려오더니 배꼽 아래에서 한참을 모여 있다가 한 덩어리가 되어 자신이 쓰지 못하는 다리와 팔을 향해 흘러 들어가는 것이었다.

 뒤틀린 팔과 다리에서 막혔던 무언가가 터지는 듯하여 일손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홍시처럼 붉어진 일손의 얼굴에서 구슬 같은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권오복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엉덩이로 방바닥을 쓸 듯이 다가가 일손에게 소리쳤다.

 “이보게, 일손이. 자네 얼굴이, 자네 얼굴이 제자리로 돌아왔네, 제 자리를 찾았어.”

 전유선은 한동안 검지로 일손의 몸 이곳저곳을 찌르다가 길게 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떼었다.

 “자. 이제 되었습니다.”

 김일손은 온몸이 날아갈 듯 가뿐해진 자신을 느끼고 눈을 떠 크게 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얼굴과 팔다리를 번갈아 만져보았다. 못 쓰던 팔다리와 구겨진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이럴수가. 침도 약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손가락을 사용했을 뿐인데 풍(風)이 치료되다니…….”

 일손은 보고도 믿을 수 없어서 놀란 사람처럼 오복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아. 이래도 내 말이 틀렸단 말인가?”

 오복이 책하듯 다그치자 김일손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게 변하였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에게 미안하고 전처사에게 무례하였네.”

 전유선이 미소를 지으며 일손에게 말했다.

 “이제는 믿으시겠습니까?”

 “내가 옛날 소옹(邵雍)이 귀신을 봤다는 말을 의심하였더니 이제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소. 전처사. 나를 용서해주시오. 내가 옹졸하여 우물 밖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소.”

 권오복이 전유선에게 물었다.

 “이보게. 도대체 어떻게 치료를 한 건가?”

 “사람의 몸엔 피가 도는 혈관이 있듯이 기가 도는 기경이라는 것이 있네. 기경은 음과 양의 순환을 관장하여 음양의 조화가 무너지면 병이 생기는 것이네. 나는 오랫동안 내공을 단련하였는데 그리하게 되면 내 마음대로 기를 조정할 수 있다네. 의학을 배운 이들은 침으로 상대방의 기를 조정하여 병을 고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내 기운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막힌 기경을 뚫어 병을 고치는 것일세.”

 “그, 그것이 가능한가?”

 전유선이 말없이 웃으니 김일손이 말했다.

 “이보오. 전처사. 오복이의 친구라면 내 친구가 아니겠소? 어떻소. 이 옹졸한 일손이의 친구가 되어 주실 수 없겠소.”

 “이미 그럴 마음으로 대감을 시험해 본 것입니다.”

 김일손과 권오복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기뻐하였다.

 이날, 김일손의 병이 나았다는 것이 알려져서 집안에서 돼지 잡고 닭 잡아 동내잔치를 크게 벌였다.

 다음날, 세 사람이 소풍을 나섰다. 김일손이 갑갑증을 참지 못하고 두 사람을 이끌고 나온 것이다.

 “옛날에는 사지육신이 고마운 줄 몰랐는데 이젠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 것인지 알겠네.”

 “상중에 몸을 상하는 것이 불효일세. 돌아가신 부모님이 슬퍼하실 것을 생각하면 다음에는 그리하여서는 아니 되네.”

 “잘 알겠네.”

 “그런데 어디로 갈 생각인가?”

 “가까운 장육산으로 가세. 거기 볼 만한 것이 많다네.”

 세 사람이 정오 무렵, 장육산에 도착하였다. 가까운 내에게 밥을 지어먹은 후 김일손이 앞장 서서 산으로 올랐다.

 “내가 신기한 것을 보여줌세.”

 전유선와 오복이 그 뒤를 따라 험한 산길을 오르다보니 단애절벽 가운데에 굴 하나가 보였다.

 “저게 육장굴일세.”

 김일손이 가쁜 숨을 내 쉬며 굴을 가르쳤다.

 세 사람이 굴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넓은 동굴 안에 암반이 펼쳐져 있는데 여섯 사람이 앉은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김일손이 가져온 표주박으로 동굴 안의 샘물을 떠 마시며 말했다.

 “내 어릴 적에 할머니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네. 이곳에 옛날 여섯 무사들이 모여 수련을 하였는데 신라의 화랑들이었다 하더군. 그중의 한 사람이 김유신인데 이 굴 석벽에 손자국이 뚜렷하게 남아있다네.”

 김일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과연 다섯 손가락이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오복이 손자국을 뚫어질 듯 바라보며 감탄하였다.

 “기이한 일이군. 석벽에 손바닥이 찍힐 정도라면 신력일세.”

 “그러니 김유신이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겠나. 신라의 화랑들은 낮에는 이 산에서 무예를 수련하고 밤이면 이 굴 안에 모여 좌선하며 기공을 수련했다 하네. 이 산의 상정에는 널따란 암반이 있는데 암반위에 무수한 말발굽 자국이 있다네. 또 석마를 모신 작은 사당도 있지. 어떤가? 옛 선인들의 자취를 찾아보는 것도 소풍의 한 재미라네.”

 세 사람이 장육산 산정에 있는 마애불좌상도 구경하고, 산내천에서 옛날 화랑들이 밥 할 때 솥을 걸었던 바위도 보고, 여섯 화랑이 걸터앉아 놀았다는 놋다방구도 보며 늦게까지 장육산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세 사람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정자위에 자리를 잡고 술잔을 마주하였다.

 “자네는 우리 임금을 어찌 생각하나?”

 오복의 물음에 일손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 쉬었다.

 “점필재 선생께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 내가 물어본 적이 있네. 선생이 하는 말씀이 새 임금의 눈동자를 보니 나 처럼 늙은 신하는 목숨을 보전하면 다행이라 하시더군. 성종께서 아끼시던 사슴을 보위에 오르자마자 손수 쏘아 죽이셨으니 그 잔인한 성정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이대로 몸이 불편하다 칭하고 은둔하여 사는 것이 상책이지.”

 오복이 말없이 듣고 고개를 몇 번 끄덕끄덕 하였다.

 일손이 물었다.

 “자네가 귀향할 때 조정의 사정은 어떠하던가?”

 “허허. 자네가 귀향할 때나 별반 다름이 없다네. 사림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훈구파들이 국왕의 좌우에서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정국을 이끌어나가고 있다네. 주상께서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고 매일 활터에 나가 활을 쏘고 계집들을 불러 주색잡기에 바쁘시네. 대간들과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에도 눈 하나 깜짝하시지 않으시니 선비들을 아끼시던 선왕(성종)의 선례가 무색할 따름이라네.”

 “아! 장차 이 나라가 어찌 될 것인가?”

 일손이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듣고 있던 전유선이 말했다.

 “나라 걱정을 하면서 조정을 떠나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육신들은 죽음으로 충성하였고, 생육신들은 절개로 충성을 마쳤는데 자네들은 관직에 있는 몸으로 부끄럽지 않은가?”

 김일손과 권오복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안하게 생각하였다.

 몇 잔 의 술이 오간 후 전유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잘 먹고 잘 놀았네. 나는 약속이 있어 먼저 갈까 하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어딜 간단 말인가? 우리에게 섭섭했는가?”

 하는 것은 김일손이요,

 “자네는 언제나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구먼.”

 하는 것은 권오복이다.

 “나는 본래 자네들을 탓할 마음이 없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선비가 때를 만나지 못하면 물러나는 것도 처세하는 한 가지 방편이 아니겠는가.”

 “그럼 우리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닌가?”

 “나도 자네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이미 약속이 되어 있으니 어찌하겠는가? 새털같이 많은 날이 남아있으니 아쉽더라도 훗날 다시 만나 회포를 푸세.”

 “무심한 사람 같으니. 그러세. 사람은 약속을 지켜야지. 잘 가게나. 다시 볼 날만 기다림세.”

 “아쉽네. 한 며칠 더 놀다 가도 될 것인데…….”

 권오복은 아쉽게 여기고 김일손은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전유선은 이별을 고한 후 정자를 내려와 작은 숲길을 따라 바람처럼 걸어갔다. 잠시 후, 푸른 음영 사이로 전유선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권오복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윽이 강을 바라보았다. 구불구불한 푸른 강물 위로 외로운 배 한척이 떠가고 있었다.

 “무정한 사람.”

 한마디 중얼거리던 권오복이 붓을 축여 종이위에 시 한수를 지었다.

 

  客裏羈懷惡 객지에서 나그네 마음이 울적한데

  逢君又送君 그대를 만나자마자 또다시 보내네.

  孤帆和雁落 외로운 돛은 기러기와 함께 떠나가고

  遠岫點螺分 먼 산봉우리 소라껍질같이 나뉘어섰네.

  樓上一盃酒 누각 위에서는 한잔 술이 오고 가는데

  洛東千里雲 낙동강에는 천리 길 구름만 이네.

  蒼茫天欲暮 창망히 저 하늘마저 저물고자 하니

  吟斷不成文 읊는 소리 막히어 글을 지을 수 없네.

 

 처연히 듣고 있던 김일손이 권오복의 붓을 빼앗아 종이위에 시를 지었다.

 

  落日長程畔 해는 지고 가는 길 먼 들판 가에서

  把盃持勸君 잔을 잡아 그대에게 권하노라.

  危樓天欲襯 높은 누각은 하늘에 가깝고

  官渡路橫分 나루터에는 길이 가로로 나뉘었네.

  去客沒孤鳥 손님 떠나니 외로운 새만 부침하고

  浮生同片雲 부평초 같은 삶이 조각구름과 같구나.

  江風不解別 강바람 우리 이별을 풀어주지 못하고

  吹到動波文 물위로만 불어대어 슬픈 물결 일으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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