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불었다. 눈은 이미 무릎까지 쌓여서 걷기가 불편했다. 눈이 내리는 것은 브루스의 고향이자 눈의 마을인 스노(sno)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주일이 넘도록 쉬지 않고 눈이 내리는 것은 스노에서도 흔치 않은 경우였다. 브루스는 이곳에서 29년을 살았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내리는 눈은 딱 두번 경험해 보았다.
바로 오늘과 5년전에 스노우를 만났던 날이다. 눈에 파묻혀가고 있었던 녀석을 발견한 후 녀석들 들쳐업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 어느때 보다도 길었다. 그 후로 아버지라면 아버지이고 형이라면 형으로써 열심히 녀석을 키웠다.
이런 날씨에 장작을 구하러가자고 하자 도움 줄 생각은 않고 '당연히 형이 다녀와야 하는거 아니야?'라는 반응을 보인 그 녀석을 떠올리니 갑자기 열이 북받쳐 오른다. 예절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있다.
"응, 이건?"
브루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눈밭 위에 사람의 발자국이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이런 날씨에 바깥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후 발자국이 향하는 방향이 절벽이라는 것에 또 다시 놀랐다.
"젠장!"
브루스는 발자국을 본 자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원망도 잠시, 들쳐매고 있던 장작을 내던지고 최대한 빨리 절벽으로 걸어갔다. 부디 별다른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눈이 많이 온 날에는 절벽의 끝이 눈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아예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절벽으로 향한 사람을 찾겠다는 것부터가 무리라고 평가받을 만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어떤 멍청이가 이런 날씨에 길을 잃어버리는거야!"
발자국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자 눈보라가 조금은 약해졌다. 선명히 찍힌 발자국이 보인다. 발자국은 일정하게 그리고 끊기지 않고 숲의 끝까지 죽 이어져있다. 숲을 나오자 다시 눈보라가 덮친다. 눈앞은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였다. 하얀색 이외의 색깔은 모두 거부당한 듯한 그 순수함에 숙연해질 정도다. 길의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영원히 이 길을 걸을 것만 같았다.
브루스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스로는 똑바로 걷고 있다고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쫓던 발자국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무언가에 이끌리 듯이 목적지 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걷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브루스가 자신의 감각에 이상이 왔다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두번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브루스는 항상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았었다.
아아, 아버지. 풋풋한 어린날의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말이었다. 순백의 순수함 위에 아버지의 모습이 번졌다. 만나뵌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전보다 머리카락이 긴 듯 했지만 따뜻한 숨결과 손길은 여전했다.
"아버지..."
브루스는 눈을 감고 어린 날의 꿈을 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