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丹花(붉은꽃)
작가 : 정린
작품등록일 : 2017.6.1

붉고 아름다운 그 입술로 사랑을 말하지마. 넌 반드시 후회하게 될거야.

 
제 3화. 너는 서늘한 그림자 속에서 살아.
작성일 : 17-06-13 01:12     조회 : 217     추천 : 1     분량 : 429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띵똥! (쪽지 알림)

 

 쫓는 자입니다. :) 오늘 날씨 좋죠? 거긴 어때요?

 

 (나의 답글)

 

 거기, 여기가 어딘줄 아시는 듯 물어보시네요. :)

 경찰서는 다녀왔지만, 기대할 만큼의 증거를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울해지네요. 계속 조언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

 

 무작정 길을 걸었다. 2017년 5월 토요일 오후 두 시.

 

 도심에서도 봄의 열기로 아지랑이가 여기저기 피어올랐다.

 

 음식점 진열대의 진짜보다 더 맛깔스럽게 군침을 자극하는 조형 음식모형들, "뼈만 남겨드리겠습니다." 헬스클럽 현수막 광고, "가입만 하면 100% 솔로탈출", "조루 해결해드립니다" 붙어있는 공중 화장실 광고 문구들이 스쳐갔다.

 

 

 손을 씻고 거울을 보았다. 이 거울 안에 비친 세상, 그 안에 담겨있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웃었다. 거울도 따라 웃는다. 손을 맞댄다. 차갑다. 사실을 마주하는 일은 이렇듯 서늘하다. 굳이 모든 걸 다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얻어낸 사실들은 모조리 차갑게만 느껴졌다.

 

 햇볕은 쨍했다. 의미 없는 주말에도 여전히 밝았다. 다소 따뜻하기도 했다. 집을 향해 걸어온 거리를 되걷는다. 어린 날 교복차림으로 가방을 들고 뛰어가던 그날부터, 처음 하이힐을 신었던 날, 처음 술을 마시던 날, 누군가 집까지 바래다주던 날, 누군가를 기다리던 날, 그리고 또 지난 몇 년의 기억들이 거리 위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다가 사라지곤 했다.

 

 

  슈퍼에서 맥주캔 사서 나눠먹던 기억, 서로의 체온으로 바람을 버텨내던 공원, 가로등 밑에서 키스하던 기억, 가슴을 파고들었던 손.

 

 추억은 봄이 아니라도 피었다지곤 할 것이고,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올 것이다.

 그때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애틋한 마음에 더불어 더 이어가지 못한 여전히도 한숨짓는 이야기가 더 괴로울 것 같았다.

 

 지난 몇 년은 이대로 그렇게 흘러가도 되는 걸까.

 빈 손을 주머니에 욱여넣고, 이어폰 볼륨을 높였다.

 

 Lana Del Rey의 Shades Of Cool를 듣는다.

 

 "..... 하지만 나는 그를 도울 수 없어, 그를 낫게 할 수도 없어. 그리고 이상한 날씨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당신은 누구도 막을 수 없지. 왜냐하면 너는 서늘한 그늘에서 살고 있으니까. 당신의 심장은 깨지지 않아."

 

 

 너를 그곳으로부터 끌어내지 못했어. 나는 너한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였어? 인연은 떨어져나갔지만, 여전히 한 사람을 축으로 네 주위를 계속 멤도는 것 같아.

 

 너 한사람 없다해도 그까짓 사랑이라며, 가차없이 떨쳐버리고 멀쩡히 내 궤도를 찾아 돌아갈줄 알았는데, 여전히 같은 길을 걷고, 갖고 있던 고민도 그대로야. 벚꽃도 졌는데, 저 사람들은 왜 아직도 붙어 다니는 거야, 도대체, 왜!

 

 

 띵똥!(쪽지 알림)

 

 쫒는 자:

 

 제가 도움이 되긴 했으려나요? 실례가 안되면 커피라도 한잔할까요?

 다른 뜻은 아니고 만나서 조언을 좀 더 드리고 싶어서요.

 

 

 (나의 답변)

 

 지금 집에 가는 중입니다.

 근데, 커피보다 짧게 술이나 한 잔 하실래요?

 

 ******

 

 차라리 생판 모르는 남이 더 나을 때가 있다면, 지금이 아마 그런 때인 것 같다. 과거 연애사 안주거리 삼아 쏟아지는 조언들로부터 내 사랑을 지켜내고 미화시킬 방어력이 완전히 고갈되었으니까.

 

 난 여자도 아닌가 싶을때가 종종 있는데, 이렇게 보통의 여자들과 다른 짓을 할때다. 남자들이 보통 자신의 과거를 두고두고 미화시킨다던데 말이다. 그런걸 굳이 내가 하고 있을때, 스스로의 성을 의심해본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오로지 그 몹쓸 남자 친구를 끝까지 옹호해주는 방패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운운하며 신앙처럼 붙잡고 있던 그놈을 내 입으로 까발리고 온 날이니까 말이다.

 

 

 띵똥!(쪽지 알림)

 

 쫒는 자 :

 

 어디 계신데요? 전 uu역이에 있어요.

 

 

 (나의 답변)

 

 가깝네요. 저 지금 vv역 부근이에요.

 

 

 띵똥!(쪽지 알림)

 

 그럼, 제가 그쪽으로 걸을까요?

 

 

 (나의 답변)

 

 네. 저도 그쪽 방향으로 되돌아 걸어가면 되겠네요.

 중간쯤에서 한잔 하기로 해요.

 

 ****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 알고 있는 사람도 위험하긴 마찬가지고,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위험할 일도 없고, 사랑에 대한 설렘도 없으니

 가벼운 술 이상의 의미는 전혀 없었다.

 

 길 위에 선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걷다 흩어지고, 마주 오던 사람들이 다가오다가 길을 꺾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향한 걸까, 목적지를 정하고 가긴 하는 걸까, 돌아갈 곳은 아직도 기다려주긴 한 걸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오던 길을 돌아 나왔다. 술 한잔 넘길 생각에 벌써부터 갈증이 솟구쳤다.

 

 띵똥! (쪽지 알림)

 

 

 저 oo사거리예요. 신호등 기다리는 중입니다.

 

 *****

 

 먼 발치에서 누군가 금방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적는 남자를 발견했다. 깔끔한 정장차림, 훤칠한 키, 각잡은 골격, 수려한 외모에 걸음도 마음도 멈췄다.

 

 다시 걸음을 다른 방향으로.돌렸다. 그는 나와 마주쳐선 안될 사람인것 같았다. 나의 세계와 전혀 다른 세상 사람처럼 정갈하게 빛이 났다. 차분한 후광이 그를 감쌌다. 그 빛깔은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곳의 사람 같았다.

 

 시선을 피해 주변을 살피다 의류매장에 마네킹들 사이로 그의 모습이 비쳤다. 마네킹들의 웃음, 완벽한 핏, 그 사이로 마네킹보다 더 눈에 띄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나의 댓글)

 

 아, 전 아직,....

 

 ****

 

 그가 곁을 스쳐가며 휴대폰을 확인한다. 그에게 얼핏 어릴적 아버지에게 맡은 포머드향과 격한 운동 끝 흠뻑 젖은 남자의 달짝지근한 땀냄새가 섞여 있는 듯 느껴졌다.

 

 나와는 다른 세상, 삶은 내게만 늘 불공평하게 완벽한 세상에 벽을 세우듯 용기를 앗아갔다. 입에서 한숨처럼 후회가 길게 뿜어졌다.

 

 

 (나의 답글)

 

 전 아직... 거기까지 못갔어요. 머리가 아파서 약국에 들렀어요. 아무래도 술은 다음에 하기로 하죠. 죄송해요.

 

 

 띵똥! (쪽지 알림)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죠. 이왕 나왔으니 저도 술보단 커피 한잔 사들고 길이나 걸어야겠습니다. 날씨가 좋네요. 머리 아픈게 좀 나아지고, 생각이 바뀌면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길이라도 걸읍시다.

 

 *****

 

 그는 또 저렇게 든든한 어깨를 감싸고 무엇을 가리고 있을까, 그는 느긋하게 걸으며 속도를 늦췄다. 저런 사람도 나를 좋아할까. 내게도 그런 기회가 오는 날이 올까.

 

 '인생이 내게 한 번이라도 공평한 적이 있었던가'

 

 왜 공평해야 하는 것이지? 그 공평함을 위해 함께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것인지, 그것이 누구를 위한 선택이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고민의 방을 나와 문을 닫기로 했다.

 

 

 '벚꽃도 졌는데, 왜 저 사랑들은 아직도 붙어 다니는 거냐고!'

 

 그를 따라 걸었다. 그가 들어선 커피숍에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친절한 웃음을 섞으며 커피잔을 들고 문으로 향했다. 클래식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 설탕기 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깔끔한 슈트핏.

 

 평소엔 먹지도 않는 휘핑크림 잔뜩 올린 모카커피를 주문했다. 달달한 맛이라도 좀 느끼고 싶어서, 아니면 쓰린 속이라도 달래고 싶어서. 아니다. 그냥, 그저 그래보고 싶었다. 지금까지와 다른 행동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딸랑딸랑'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매장안으로 커플이 들어왔다. 썬그라스를 낀 남자와 또각또각 걷는 긴 생머리의 여자. 썬그라스와 긴 생머리를 번갈아 나눠 봤다. 썬그라스 안에 있는 눈은 분명 익숙한 눈이었다.

 

 아직 할부금이 남은 썬그라스도 분명 아는 것이었다. 저 셔츠도, 바지도, 구두도 낯익은 것들이었다. 가녀린 어깨를 감싼 그 팔과 손이 눈에 들어왔다.

 

  휘핑크림을 던진 건 그저 반사신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긴 생머리를 감싸 보호하는 썬그라스를 향해 분노를 실어 얼음을 일격했다.

 

 긴 생머리가 비명을 질렀고, 썬그라스는 컵에 담긴 얼음을 던지려는 내 팔을 잡았고, 바닥에 쏟아진 크림으로 미끄러워 썬그라스에게 팔이 붙들린 채 휘청거렸고, 넘어지는 나를 보고 깔끔한 슈트남이 붙잡아주기 위해 달려왔다.

 

 "앜!!!"

 

 "어???"

 

 "야!!!"

 

 "잠깐!!!"

 

 

 

 네 사람은 뒤엉켜 휘청거졌다. 휘핑크림이 쏟아진 바닥은 물컹거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영문없는 씽크홀로 빠져들었다.

 

 무언가를 말해도 들리지 않는 멍한 침묵의 긴 터널을 지나갔다. 어디로 가는 지 모를 긴 터널 속으로 끝없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씽크홀은 곧 닫혔다. 바닥에 쏟아진 휘핑크림이 사라졌다. 소리를 지르던 여자와 컵을 던지던 여자 그리고 두 남자의 존재를 사람들은 기어하지 못했다. 평화롭던 일상으로 돌아왔다. 클래식 음악도, 계산을 하던 점원도,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도 모두 그대로 주말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딘가의 차원인지 모를 어두운 터널로 깊이 빨려들어갔다. 소리를 질러보지만 내 목소리도 내게 들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저만큼 떨어져 보이긴 했지만 그들에게 갈 수도 없었다.

 

 한참을 지나가는 중 네 개의 홀이 나타났다. 네 사람은 각자의 중력으로 각자 흩어졌다. 각자의 끈을 따라 서로의 빛을 따라 속도를 내서 빨려들어갔다.

 

 

 "아아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 제 3화. 너는 서늘한 그림자 속에서 살아. 2017 / 6 / 13 218 1 4296   
2 제 2화. 폐망의 길, 내 타겟은 오직 너야. 2017 / 6 / 5 261 1 5057   
1 제 1화. 누가 봐도 또 다시 좆됐다. (6) 2017 / 6 / 1 419 5 4510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매향유희
정린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