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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무극상도
작가 : 황정검
작품등록일 : 201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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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화기로 쌓은 내공을 신기로 돌려 연기화신을 수련하는 무당파 신선류.
그곳의 수장인 태허진인의 가르침 아래 천하제일 고수로 거듭나는 청우의 강호유람기.
영기를 얻으면 무림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2. 도(道)의 근원은 영묘하고 신령스럽다
작성일 : 16-04-10 19:25     조회 : 497     추천 : 0     분량 : 16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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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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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당산에 고루 퍼져 있는 신선류이지만, 중심처인 팔선관(八仙館)은 무당파 하부에 위치해 있었다.

 팔선관은 팔선 중 한 명인 여동빈(呂洞賓)이 수련하여 득도했다는 팔선궁을 본 따 만들었다.

 주전(主殿)인 팔선전의 내부 한가운데 삼신(三神)의 신상이 있고, 그 양쪽에는 팔선의 선인상이 있었다.

 신선류의 수장인 태허진인의 거처도 팔선전 내에 있었다.

 그곳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있었다.

 “허허허! 그놈 참 곱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허허.”

 연신 웃음을 흘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태허진인이었다.

 평소 언행이 점잖고 품성이 엄정한 도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태청장로의 입가에도 미소가 띠어져 있었다.

 다행히 팔선관은 무당파 아래쪽의 고을과 가까웠고, 팔선관에 일을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 한 사람이 최근 출산한 사람을 알고 있다 하여 부탁했는데 반 시진도 안 되어 유모를 모시고 왔다.

 품행도 단정하고 살도 적당한 이십 대 후반의 유모라 태청장로의 마음에도 쏙 들었다.

 물어보니 아이를 낳은 지 넉 달여가 되었다는데, 젖이 불어 한 아기를 더 먹여도 될 정도라 했다.

 유모가 오고, 이각 정도 지나서야 태허진인이 왔다.

 아기는 정말 배가 고팠던 것 같았다.

 정신없이 달려들어 젖을 빨더니 곧 흡족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그 표정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태허진인이 넋 나간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유모에게 아침 일찍 다시 방문해 달라고 청을 한 태청장로도 작은 숨을 쌕쌕이는 아기의 모습을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았다.

 “허허! 그놈 참…….”

 아기가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도록 급히 준비한 모포가 포근해서일까?

 아기의 입 꼬리가 살며시 말아 올려졌다.

 배부르고 따스하니 한낮의 긴장이 다 해소된 모양이었다.

 “허허허허!”

 미소 띤 아기 얼굴이 그렇게도 보기 좋은가 보다.

 아예 아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태허진인이 아기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사형! 아이 얼굴이 닳겠습니다.”

 역시나 아기 얼굴만 쳐다보던 태청장로가 부러움 때문인지 한마디 했다.

 하지만 태허진인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아기에게서 눈을 돌리기는커녕 눈동자를 깜박이기조차 않았다.

 “청우야!”

 가만히 아기를 바라보던 태허진인의 나직한 목소리.

 아기가 듣고 대답할 리 만무하건만 마냥 행복한 표정의 태허진인이었다.

 “사형! 아이 이름을 청우로 하실 겁니까?”

 태청장로가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태허진인을 바라보았다.

 “청자 돌림이라면 청운, 청산, 청학…… 좀 더 그럴 듯한 이름을 선점해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선점? 하하! 필요 없네. 이 아이 이름은 청우네, 청우.”

 태허진인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십삼 년에 한 번씩 제자를 받는 검선류를 따라 신선류에서도 항렬자(行列字)를 통일하고 있었다.

 신선류의 배분이 검선류에 엄정하게 통하지는 않았지만, 배분의 무시는 무당파의 근본 체계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었다.

 현재 진무관에 입관하여 훈련을 받는 제자들이 백 자 돌림이므로 구 년 후 다음 제자들은 항렬상 청 자 돌림이었다.

 아이가 진무관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항렬에 따라 당연히 현 자 돌림으로 이름을 지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를 진무관에 입관시키려면 규정에 따라 먼저 청 자 돌림으로 가명을 지어야 했다.

 돌림자 다음의 호칭은 관례에 따라 진무관 입관 후 십 일 안에 붙이는데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작위로 지어졌다.

 여기서 특이한 경우라는 것은 진무관 입관 전에 무당에 들어와 먼저 이름이 지어지는 경우와, 높은 사람들의 뜻에 따라 특정인에게 특별한 이름이 하사되는 경우였다.

 이름을 지을 때 두 사람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순차에 따라 이름을 붙이므로 선점이라면 선점인 것이다.

 ‘청우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사형의 의도가 궁금했으나 태청장로는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청우라는 이름도 나쁘지는 않았다.

 “사형! 양육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양육?”

 무슨 소리냐는 표정의 태허진인.

 아무 대책도 없음이 분명했다.

 하긴 대책이 없었던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도 조금 전 유모에게 이것저것 물어 들은 지식이 전부였다.

 “아기를 돌보는 것이 쉽지가 않답니다. 대소변도 받아 주어야 하고 따뜻한 물에 씻기고, 같이 놀아 주고…….”

 “험! 걱정 말게. 내가 할 것이네. 내가 씻기고, 내가 다 놀아 주겠네.”

 “예! 아니, 사형이요?”

 “그럼! 당연히 사부인 내가 해야지. 왜, 사제가 하고 싶은가?”

 “아니, 그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듣기로는 아기 한 명 돌보는 것이 노인 한 분 수발드는 것보다 몇 배나 힘들다고 하던데…… 공사다망하신 사형께서 어떻게…….”

 “험! 험! 걱정 말게나.”

 싱글거리며 대답하는 태허진인.

 장난스런 표정에 따스한 눈빛이지만 왠지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처음 봤는데 벌써 만정이 다 들었나 보다.

 “그래도…….”

 걱정이 됐으나 즐거워하는 사형을 보고는 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아기 젖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젖? 좀 전의 유모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역시 아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태허진인이었다.

 성인처럼 하루 세 끼만 찾아 먹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생후 이 개월까지는 두 시진에 한 번씩은 젖을 주어야 한다는데요.”

 “두…… 두 시진…….”

 전혀 듣지 못한 사실이었다.

 낮에야 유모에게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밤이 문제였다.

 한밤중에 젖동냥을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젖을 안 주면 막 운다는데…….”

 아기를 키워 본 경험은 물론 사전지식도 없으면서 만사태평에 호언장담인 사형에게 태청장로가 슬며시 겁을 주었다.

 “음…… 무슨 방법이 없을까?”

 태허진인이 심각한 안색으로 물었다.

 걱정스런 마음에 나름대로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하! 방법이 왜 없겠습니까? 좀 전에 온 아낙에게 밤이 늦더라도 짜서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그렇지. 그런 방법이 있었군. 허허! 사제 고맙네.”

 태허진인의 칭사에 태청장로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처음부터 그렇다고 사형에게 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찾아온 아낙네가 젖이 많은 분이라는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두 사람 분의 젖을 내기 위해서는 산모가 고기 등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는 법.

 도가 높으신 도사님에게 공양하는 것 또한 천복이라며 굳이 대가를 마다했지만, 먹고 싶은 것을 충분히 사 먹을 수 있도록 보상을 해 줘야겠다고 태청장로는 마음먹었다.

 

 그날 밤.

 태청장로가 물러난 후 반 시진도 안 돼 태허진인의 고달픈 애 보기는 시작되었다.

 잘 자던 청우가 갑자기 깨어 울기 시작한 것이다.

 어르고 달래다 뒤늦게 똥을 쌌다는 것을 발견했다.

 젖을 먹여 싼 똥이어서인지 황금색이며 냄새조차 거의 없었다.

 질척한 느낌 때문일까?

 청우는 똥 기저귀를 빼고 엉덩이를 닦을 때까지 줄기차게 울어 대더니 기저귀를 갈아 주고 안아 준 후에야 가까스로 울음을 그쳤다.

 울음이 그친 청우를 재우기 위해 슬슬 어르는 태허진인.

 하지만 쉬 잠들지 않는 청우였다.

 아기를 안고 이각 동안을 서성이자 청우의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앉았다.

 “휘유!”

 태허진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아기를 침대 위 모포에 눕혔다.

 그런데 침대에 내려놓다가 청우의 목을 받치고 있던 손을 성급히 거두었나 보다.

 “에…… 에앵! 응애! 응애!”

 또다시 청우의 울음소리가 팔선전을 떨쳐 울렸다.

 태허진인이 급히 다시 안고서 어르고 달래도 울음은 쉬 그치지 않았다.

 유모가 보내 준 젖을 먹이고 한참을 다독여 딸꾹질을 시키고 나서야 청우의 두 눈이 스르르 감겨들었다.

 이후 오줌을 싸서 축축해진 기저귀가 찝찝했는지 한 번 깨고, 아침나절에는 배가 고팠는지 또 깨서 울어 댔다.

 결국 태허진인은 날을 하얗게 지새우고야 말았다.

 그러고 보니 무당파에 들어와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던 수련을 빼먹은 것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뿌듯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두 손을 올려 크게 기지개를 켜는 태허진인의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시작이 반이라고 벌써 반은 키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침 일찍이, 새벽부터 모셔 온 유모가 청우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쪽쪽.

 배가 많이 고팠던지 청우는 소리도 요란하게 젖을 빨았다.

 젖을 다 먹인 후 유모의 조언을 들은 태허진인이 미리 따뜻하게 데워 놓은 물로 아기를 씻겼다.

 씻기고 나자 청우의 얼굴이 더욱 예뻐 보였다.

 솜털이 가시지 않았지만 하얀 피부에 윤기 나는 피부는……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목욕시킨 보람이 절로 느껴졌다.

 청우를 재운 뒤에는 유모에게 아기 돌보는 방법을 자세하게 물었다.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기저귀를 충분하게 준비하고, 목욕시킬 아기용 욕통도 마련하고, 위생적인 젖병과 아기를 눕혀 어를 요람(搖籃)도 만들었다.

 유모가 특별히 소개하여, 아기를 가슴에 안을 수 있는 장비도 장만했다.

 튼튼하고 부드러운 천을 엮어 아기 발을 양쪽으로 끼우고 널찍한 면에 아기 등을 고정시키는 장비인데, 필요에 따라 아기를 등 쪽으로 업을 수도 있었다.

 천에는 솜을 넣어 폭신폭신하게 만들었으며, 천 길이를 조정하여 아기의 운신폭을 넓힐 수도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아이라면서 아기 기르는 방법을 세세하게 가르치는 유모 덕분에 태허진인은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다.

 팔선관에는 도인들뿐만 아니라 일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수장인 태허진인이 직접 아기를 돌보자 보는 사람마다 자기가 하겠다고 서로 나서 댔다.

 하지만 태허진인은 자신이 손수 하겠다면서 누구도 참견하지 못하도록 단호한 명을 내렸다.

 그동안 심신을 수양하며 도를 닦았는데, 이제는 도를 닦듯이 아기를 돌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밤낮으로 아기를 돌보았다.

 아기가 밥 먹고 잠만 자는 것은 아니었다.

 먹고, 자고, 안아 달라 보채고, 똥오줌에 몸이 찝찝하니 씻어 달라 울어 댔다.

 몸이 깨끗하고 배부르면 이제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같이 놀아 달라 보챘다.

 하지만 이 모두가 태허진인에게는 행복이었다.

 아기가 어떻게 하면 좋아할 것인지 연구하면서 진종일 아기 옆에 붙어 소소한 일들을 챙기고 보살펴 주었다.

 아기가 놀아 달라고 하면 아기와 눈을 맞추고 어르며 시간을 소일했다.

 가장 소중한 일이라는 듯이 모든 초점이 아기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기 돌보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신선류 진인으로서의 공무 또한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간단히 처리할 일은 태청장로에게 위임하고, 중요한 일은 직접 찾아와 상의하여 처리토록 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더니, 순식간에 다섯 달이 지나갔다.

 유모의 조언에 따르면, 청우에게 이유식을 먹일 때가 된 것이다.

 애지중지하는 청우에게 아무 이유식이나 먹일 수는 없는 법.

 당연히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아침부터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

 태허진인이 청우를 데리고 외출하려고 하는데 때마침 찾아온 태청장로가 물었다.

 힐끗 태청장로의 행색을 보니 일 때문이 아니라 청우를 보러 온 것 같았다.

 자기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청우 사랑이 극진한 태청장로였다.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것이 밤새 청우가 눈앞에 어른거린 모양이었다.

 “돌팔이 태백에게 간다네.”

 태백이라면 동주(洞主) 또는 약선(藥仙)이라고도 불리는 태백진인을 일컬음이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친해서인지 사형과 태백진인은 서로 존칭을 생략하여 호칭하고 있었다.

 태백진인에게 간다는 말에 괜스레 아쉬워지는 태청장로였다.

 옹알이를 하는 등 한참 재롱이 많아진 청우와 놀기 위해 왔건만 오늘은 헛걸음을 한 셈이었다.

 사형의 앞쪽에 엎드려 쌔근거리며 자는 청우를 보자 걱정도 앞섰다.

 태백진인의 거처인 약선동은 무당산 칠십이봉 중 아주 험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도착하려면 큰 산을 세 개나 넘어야 했다.

 사형께서야 어련하시겠지만 아기에게는 좀 힘든 여정이었다.

 “어때…… 괜찮아 보이나?”

 자색도포에 곤원모(昆元帽)를 쓴 도인이 아기를 업고 봇짐을 메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어색한 모양이었다.

 “영 자세가 안 나오는데요.”

 “그런가? 허허!”

 위신이 상하고 창피할 만도 하건만 태허진인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행색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여유로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럼 다녀오겠네.”

 짧은 말을 남긴 태허진인이 소매를 휘저으며 길을 나섰다.

 한참 동안 태허진인을 배웅하다가 굽이진 길을 돌아 뒷모습조차 더 이상 보이지 않자 태청장로도 발길을 돌렸다.

 오늘 처리해야 할 업무가 꽤 많음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

 

 약선봉을 찾아가는 태허진인은 오늘따라 무당산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이라 대지는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정기를 머금은 파릇한 풀잎들은 싱그러운 미소로 날개치고 있었다.

 아름다움에 취해 느긋하게 구경하자니 천혜절경이 따로 없었다.

 팔선관을 떠나온 지 두 시진 정도 되었을까?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 늦게 약선봉 초입에 이르게 되었다.

 약선봉은 신비하게 생긴 봉우리였다.

 옆에서 보면 바랑(승려가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을 맨 노인의 모습이지만 태허진인이 다가가는 방향에서 보면 사나운 호랑이가 털을 곤두세운 채 숨죽여 엎드린 모습으로 보였다.

 길은 신법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험하고 가팔랐다.

 초입에서 반 각 정도 더 지났을 때였다.

 수백길이 넘는 낭떠러지를 낀 좁은 길을 지나, 조심히 발을 옮기던 태허진인이 갑자기 흠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길 저편 언덕 너머에서 거대한 기운이 구름처럼 일어나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가오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심안에 기운이 포착된 이후, 눈 깜짝할 동안에 어느새 가까이 이르러 있었다.

 뻗쳐 나오는 기운에 대기가 일렁이고 땅조차 부르르 떨었다.

 청우도 기운을 느낀 것 같았다.

 눈을 크게 뜨더니 불안한 표정으로 태허진인을 올려다보았다.

 막 울 것처럼 눈가에는 벌써 물망울이 어려 있었다.

 그런데 다급한 표정으로 몸을 피해야 할 태허진인은 표정이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곧 닥칠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순간,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존재.

 하늘을 덮을 듯한 기세로 바람을 몰며 불쑥 나타난 것은 몸길이가 이 장은 됨직한 대호로, 털이 눈처럼 흰 백호였다.

 휘리리릭!

 큰 언덕을 단번에 뛰어넘어 부드럽게 착지한 백호가 ‘으르렁’거리며 태허진인에게 다가왔다.

 황소만 한 대호가 으르렁대며 다가오지만, 태허진인에게서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반기는 표정을 짓더니 눈앞에 다가온 호랑이의 목울대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르릉, 그르르릉.

 기분이 좋다는 듯이 백호가 묘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백호가 태허진인의 앞섶에 있는 청우를 살짝 바라본 후 뒤돌아 몸을 낮추었다.

 태허진인에게 등에 오르라는 몸짓이었다.

 과거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허허! 괜찮다.”

 거부의 의사를 표시한 태허진인이 백호를 스쳐 걸어갔다.

 백호는 약선류의 수장인 태백진인의 수호영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태허진인의 행동이 백호를 서운하게 한 것 같았다.

 크릉. 크르르릉.

 섭섭해 하는 소리를 내며 따라오더니 애교를 부리듯이 커다란 머리를 자꾸 태허진인에게 비비적댔다.

 그러고는 다시 타라는 듯이 태허진인 앞에 넙죽 엎드렸다.

 “허!”

 난감한 표정을 짓던 태허진인이 간절한 백호의 눈동자를 바라보고는 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등에 올라탔다.

 그르릉.

 흐뭇하다는 울음소리를 낸 백호가 고개를 돌려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어슬렁어슬렁.

 별로 빠를 바가 없는 속도였다.

 백호는 탄 사람의 안전을 고려해서인지 천천히 걸었는데, 가끔씩 길이 끊겨 몸을 날릴 때에도 부드럽고 폭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오 장을 건너뛰어도 새털이 내려않는 것처럼 가볍게 착지했다.

 어슬렁대며 걸어도 백호의 보폭이 커서인지 태허진인의 걷는 속도보다 배는 빨리 목적지인 약선동(藥仙洞)에 도착했다.

 약선동은 천고의 비경 중에 위치한 동굴이었다.

 위로는 뜬 구름, 아래로는 가파른 절벽으로 원숭이가 떼 지어 살고 있는데, 무공이 없는 사람은 걸음을 들여놓기 어려워 보였다.

 그 약선동 입구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수염을 푸른 천으로 질끈 동여맨 노 도인이 황당한 표정으로 백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구에 조금 넉넉한 살집을 가진 노도인데 특이하게도 흰 수염 속의 얼굴은 주름 한 점 없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 예까지 나섰는가?”

 질문은 태허진인에게 하고 있지만 시선은 여전히 백호를 향한 채였다.

 노도인의 눈빛에는 의아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사람아! 사람이 왔으면 쳐다봐 주는 것이 예의 아닌가?”

 태허진인이 장난스럽게 호통을 치자 노 도인이 시선을 태허진인에게 돌렸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금세 노도인의 시선은 백호에게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본 태허진인이 작은 웃음을 머금었다.

 “왜 그런가? 백아가 나를 태운 것이 그렇게 신기한가?”

 그러자 노도인의 시선이 다시 태허진인에게 돌아왔다.

 이유를 알고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하하! 실은 나도 어리둥절하다네. 그동안 숱하게 방문했지만 백아가 등을 내민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네.”

 태허진인조차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자 노도인의 시선이 다시 백호에게로 돌아갔다.

 눈앞에 있는 백호는 거의 노도인과 비슷한 연배를 가지고 있었다.

 노 도인이 세 살 때 사부께서 어미가 죽었다며 가져다준 새끼였기 때문이었다.

 거의 일 갑자를 살았으니 일반적인 호랑이 수명의 두 배를 산 셈이었다.

 하지만 기력이 넘쳐 앞으로도 일 갑자는 더 살 것 같았다.

 약선동의 영약을 많이 먹어서였는데 대부분 노 도인이 거둬 먹인 것이었다.

 백아는 힘과 민첩성은 물론 지능이 일반 호랑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실로 영물 중의 영물이라 칭할 만했다.

 과거에도 태허진인은 태백진인과의 교분으로 약선동을 자주 찾아왔었다.

 때문에 백호와 태허진인 간 어느 정도 교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밥을 챙겨 주고 같이 뒹굴며 놀았던 태백진인 외에, 백호는 아직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등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늘 그 예외가 깨진 것이다.

 태백진인이 놀라 말을 잊을 만한 큰 사건이었다.

 그런데 태백진인이 놀라거나 말거나 백호는 별일 아니라는 태도였다.

 제 할일을 했다는 듯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약선동 입구에 뱃가죽을 깔고 길게 엎드렸다.

 햇빛이 아주 잘 드는 양지쪽이었다.

 영물이라고 인간과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는 아니니 답답한 쪽은 태백진인이었다.

 백호와 태허진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혹시 자신이 생각 못한 이유가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태허진인을 팔선관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게 만들고 있다는 어린 제자 외에 별다른 점은 없었다.

 문제의 아기는 목을 빼어 큰 눈으로 백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뜻 보니 별로 특별한 것도 없었다.

 “자네 제자인가?”

 “맞네. 도명이 청우라네.”

 아기를 소개하며 태허진인이 청우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 볼 때부터 유난히 머리숱이 많은 청우였다.

 태허진인의 손길을 느낀 청우가 고개를 들어 태허진인을 바라보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허허! 우르르. 까꿍!”

 “쯧쯧! 이 사람 정말…….”

 아기의 미소 한 방에 만사를 잊은 듯,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아기를 어르는 태허진인을 보며 태백진인이 낮게 혀를 찼다.

 늦게 얻은 제자에게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까꿍! 얼렐레…… 푸르르르르.”

 아니, 오히려 소문이 부족한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치유하기 힘든 중증이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귀한 걸음을 한 건가? 혹시 그 아이…….”

 찾아온 연유를 묻던 태백진인은 퍼뜩 지금 이 상황이 처음이 아님을 떠올렸다.

 삼 년 전 검선류의 태인장로가 아기를 안고 찾아왔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맞네! 아이에게 먹일 영약 좀 주게.”

 말하는 내용조차 똑같았다.

 태인장로가 데려왔던 아이의 이름은 청명이었던가?

 아기에게 먹일 이유식을 영약으로 제조해 달라고 부탁하여 얼굴을 붉히며 다퉜었다.

 약선류를 동네약방 취급하는 몰상식한 행동이라고 모욕을 주었는데도 태인장로는 집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귀찮게 굴던 태인은 아이가 이미 자소단을 복용하여 다른 영약이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후에야 물러났다.

 그 이후 약선류의 행사에 은근히 반대가 심한 태인장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태허진인이라니…….

 “보아하니 건강하고 정기도 충만해 보이는데 무슨 놈의 영약인가?”

 태백진인이 아기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숨겨 놓은 자소단 있으면 몇 알 주게.”

 “자소단! 왜? 자소단을 주면 아이에게 물 말아 먹이려고 그러나?”

 “허허! 그게 아니라……. 청우가 크면 진무관에 보낼 생각이네.”

 “아니 연기화신을 수련하는 신선류의 제자가 무슨 진무관인가? 버텨 낼 것 같은가? 아하! 내공이 달리니 영약으로 보충하겠다 이 속셈인가?”

 태허진인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정화기로 내공을 단련하는 검선류와 달리 신선류는 내기를 축적한 후 축적된 내기를 신기로 변화시키는 연기화신을 수련했다.

 때문에 신선류의 운기조식은 내기 축적과 신기 생성으로 나뉘며, 도인들은 내기 축적보다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강조되는 신기 생성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운기 시간이 적으니 내공이 적은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축적된 내공도 대부분 신기로 변화되어 버리니, 검선류의 동일 시간 수련자 대비 신선류의 도인들은 일이할 정도의 내공밖에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네가 그러지 않았는가? 영약이라고 다 쳐 먹다가는 신체에 오행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몸이 상할 확률이 높지만, 자소단은 천지인 삼재(三才)의 기운이 고르게 녹아 들어간 천고의 영단으로 그 효능을 말로 다 할 수 없고…… 특히 어릴 때 먹으면 효과가 좋다고…….”

 듣고 보니 그런 말을 한 것도 같았지만, 수 십 년 전에 한 말이었다.

 “부탁하네.”

 태허진인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잔뜩 어려 있었다.

 태백진인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태허진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친구에게 이 아이는 어떤 존재인가?’

 오십 년 넘게 친교를 유지해 오는 동안 부탁 한 번 하지 않던 자존심 강한 친우의 얼굴이었다.

 “이리 줘 보게.”

 태백진인의 요구에 태허진인이 청우를 건네주었다.

 먼저 청우의 근골을 살핀 태백진인이 아기의 맥을 짚어 한참 동안 관조했다.

 집중하여 아기의 맥을 살피던 태백진인이 눈가에 이채를 지었다.

 이후 갑작스레 다른 한 손을 들어 아기의 백회혈에 올려놓았다.

 백회혈은 두정 정중앙에 있는 경혈로, 위험하기 그지없는 혈맥이었다.

 특히 두개골이 약한 아기에게는 더할 수 없이 치명적이었다.

 “왜 그러는가?”

 갑작스런 태백진인의 행동에 태허진인이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물었다.

 백회혈을 짚어 건강을 살핀다는 말은 태허진인도 듣도 보도 못한 기사였다.

 “…….”

 반 각이나 더 지났을까.

 아기의 백회혈을 살피던 태백진인이 지그시 감겨 있던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이 이름이 청우라고 했지? 혹시 청우의 양친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있나?”

 아무래도 청우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청우의 부모를 언급하는 것을 보니…… 혹시 유전적인 질병이라도?’

 태허진인의 안색이 갑작스레 흐려졌다.

 아기의 백회혈까지 살펴 가며 진맥하였는데 문제가 있다면 심각할 것이었다.

 “청우의 부모? 아니! 잘 모르는데……. 왜, 왜 그러는가……?”

 태허진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 나왔다.

 “모른다고……?”

 질문에 대한 답도 주지 않은 채 태백진인이 다시 침묵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태허진인의 표정 또한 심각하게 굳어져 갔다.

 태허진인의 생각으로, 청우의 몸에 큰 문제가 있음이 분명했다.

 “우리 청우에게 몹쓸 병이라도 있는 건가? 심…… 심각한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태백진인이 흠칫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핏기가 가셔 창백해진 태허진인이 보였다.

 “너무 걱정은 말게. 죽을병은 아니라네.”

 “죽을병은 아니라니! 어쨌거나 우리 청우에게 몹쓸 병이 있다는 것 아닌가?”

 태허진인의 안색이 흑색으로 변해져 갔다.

 “글쎄, 병이라면 병이랄 수도 있겠지만…….”

 태백진인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허허! 이 사람 도대체 무슨 병인데 그런가?”

 태허진인이 갑작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걱정스런 마음에 호흡조차 놓치고 눈 주위도 은근히 붉어져 있었다.

 이런 태허진인의 심정을 모를 리 없는 태백진인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싶더니 아기를 태허진인에게 넘기며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방금 아이를 진맥하다 보니 몸속에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네.”

 “이상한 기운이라니?”

 태허진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심안이 트인 이후, 사람 몸속에 있는 내기를 파악할 수 있는 이능을 얻은 자신이었다.

 찬찬히 관찰하면 내공의 다소는 물론 내기의 성질과 운용 상태까지 파악 가능했다.

 청우의 몸 또한 수차례 관조한 바 있었다.

 이상한 기운은커녕, 누구보다 건강한 청우였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당파는 물론이고, 무당산이 위치한 호북성에서 약선 또는 의선이라 불리는 태백진인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청우의 뇌 속에 묘한 기운이 머무는데, 아무래도…… 영기가 아닌가 싶네. 하지만 영기는 구음절맥이나 구양폐맥을 지닌 아이들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구음절맥이나 구양폐맥은 백 년에 한 명도 나오기 힘든 희귀한 질병이네.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이들은 거의 다 희대의 천재들로 머리가 비상하지만, 불운하게도 열세 살을 못 넘기고 거의 다 죽었네.”

 “그렇다면 우리 청우도…….”

 “허허! 방금 청우는 죽을병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

 죽을병이라고 하면서도 죽지 않는다니, 태허진인이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태백진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절맥이나 폐맥은 인체의 주요한 맥이 끊어지고 막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무서운 것은 백약이 무효라는데 있네. 삼십 년 전 제갈가에서 태어난 구양폐맥의 아이는 벌모세수는 물론 명의의 진료도 받고 수많은 영약을 복용했는데도 결국 열여섯을 넘기지 못했네.”

 자신도 익히 알고 있다는 듯이 태허진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백진인이 말을 계속 이었다.

 “이 아이들은 후천진기의 연마는 고사하고 선천진기조차 정상적으로 운행하지 않네. 신체가 불안해서인지 뇌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하는데, 선배 고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뇌 속에 일반인에게서 찾을 수 없는 영기가 생성되어 뇌력을 높여 준다고 하네.”

 “영기가 확실한가?”

 “나도 제갈가의 아이를 진맥해 보았는데 청우의 머릿속에 깃든 기운은 절맥을 가진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영기가 분명하네. 특이하게 청우는 영기만 있고 몸에 이상이 없으니……. 청우의 양친 중 한 명이 절맥을 가졌는데 청우에게 우성만 유전된 것으로 추측되네.”

 “아니, 그렇다면 좋은 일 아닌가?”

 “허허! 누가 뭐랬나? 생사현관이 타통되고 연신환허에 이르러야 비로소 생성된다는 게 영기 아닌가? 나도 의학적 지식으로 영기임을 추정할 뿐, 정확한 실체를 느낄 수는 없지만……. 어쨌든 연기화신을 수련하는 신선류에서는 최고의 보물을 얻은 것이지. 다만…….”

 “다만이라니! 또 뭔가?”

 청우에게 영기가 발견되었다는 말에 환해진 태허진인의 미간이 다시금 좁혀졌다.

 연정화기를 통해 얻게 되는 내가진기와 연기화신을 통해 생성되는 신기와는 달리, 영기는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여 양신을 이루어야만 얻을 수 있는 천상의 기운이었다.

 도에 가까이 다가선 선인들의 기운으로 그 공능이 높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영기를 지녔다고 하면서 ‘다만’이라니…….

 태허진인의 심중으로 불안감이 다시금 스멀스멀 밀려들어 왔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영기는 현묘한 기운이라 후천진기인 내가진기와는 상충하지 않네. 하지만 신선류에서 수련하는 신기는 또 다르네. 초반에는 영기가 신기 생성을 북돋고 끌어 주겠지만, 둘 다 정신계에 깊이 관여되어 있는지라 한계점 이상으로 신기가 자라나면 두 기운이 충돌할 가능성이 많네.”

 “그럴 수도 있겠군.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나?”

 은근 기대에 찬 목소리로 태허진인이 물었다.

 연기화신을 수련하는 신선류의 제자가 신기를 생성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신기를 어느 한도까지 익히면 머릿속에 깃든 영기와 충돌하여 위험하다 하니 불안감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설명하는 태백진인의 표정이 마냥 여유로운 것이 무슨 대책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역시나 이어지는 태백진인의 말에 태허진인은 안도할 수 있었다.

 “허허! 방법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장황히 설명을 했겠는가? 잠시 기다려 보게.”

 치료할 약을 가져온다며 태백진인이 동부 안쪽으로 사라지자 태허진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코 허튼소리를 할 태백진인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태백진인의 손에는 못 보던 작은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금록색 바탕에 고풍스런 문양이 그려진 상자는 가장자리에 성애가 끼여 있었다.

 “스승님께 물려받은 귀한 약이네. 한빙고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네 그려.”

 한빙고는 약선동 가장 깊숙이 위치해 있으며 귀중한 약재만 보관하는 장소였다.

 태허진인에게 다가온 태백진인이 조심스럽게 상자를 개봉했다.

 태허진인도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상자를 바라보았다.

 태백진인의 말대로라면 상자 속에는 상상치 못할 귀물이 담겨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열려진 상자 속에는 검은 환약 한 개만 덩그러니 담겨져 있었다.

 자소단이나 소림의 대환단처럼 약효가 영묘한 약들은 대부분 청아한 향기가 흘러나와 냄새만 맡아도 심신을 맑게 정화해 주는데, 이 약은 별다른 냄새도 없었다.

 울퉁불퉁한 표면은 딱딱하여 이도 잘 안 들어갈 것처럼 보였다.

 태허진인이 보기엔 시장 바닥에서 약장사들이 차력을 하며 팔고 있는 환단보다도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검은 환단을 바라보며 태백진인은 시선을 잘게 떨고 있었다.

 이 약을 전하면서 사부가 남긴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머리를 맑게 해 주고 신기를 보해 주는데 세상천지에 이만한 약이 없을 것이다. 조사께서 해동까지 가셔서 얻은 영물과 영초를 선단비법으로 제조한 것이다. 아끼다 보니 사용하지 못해 너에게 남기는데, 너는 같은 우를 범하지 말고 연자가 생기면 아낌없이 베풀도록 해라!”

 

 돌아가시기 직전 유언처럼 남긴 말인지라 아직도 머리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검은 환단은 보통의 환단과 달리 내공을 높여 주지 못할뿐더러, 청우처럼 아주 희귀한 경우에만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이었다.

 일반인에게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았다.

 하지만 사용된 재료와 선단비법으로 약을 조제하면서 들인 공덕을 생각하면 가치는 돈으로 상정할 수조차 없었다.

 

 아낌없이 베풀라!

 

 존경하던 스승의 한을 풀어 드리고, 친우의 소원이 아니라면 이렇게 쉽게 꺼낼 수가 없는 선약인 것이다.

 “뇌를 보호하고 신기를 영험하게 하는 약이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자소단이나 대환단보다 몇 배로 귀중한 선약이었으나 태백진인은 내색하지 않고 꽤 귀한 정도의 약으로 폄하하여 말했다.

 부언으로 ‘또한 영기를 활성화시키고 기감을 높이며 오감을 증진시키는 효과도 있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효과를 전부 말한다면 태허진인이 약의 가치를 눈치채고 큰 부담을 가질 것을 저어해서였다.

 “귀해 보이는 약인데, 고맙네. 그런데 어떻게 복용하는 것인가?”

 태허진인이 어른 손톱만 한 환단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물었다.

 이유식을 먹일 때가 되었지만 청우는 아직 이도 나지 않은 젖먹이였다.

 단단해 보이는 환단을 부수어 주어도 소화를 시킬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걱정 말고 느긋이 기다리게. 삼 일이면 될 것이네.”

 “아니! 삼 일이나 걸리는가? 이렇게 작은 약인데…….”

 “최소한이 그렇다는 말이네. 더 걸릴 수도 있네.”

 조금 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태허진인은 애써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약선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약동 한 명을 팔선관에 보내 청우의 용품을 가져오도록 시키고 유모가 짠 젖도 약선동으로 배달시켰다.

 태백진인이 단단한 환단을 그대로 청우에게 먹인 것은 아니었다.

 검은 환단을 가르자 그 안에서 부드러운 금색 가루가 나왔는데, 열리는 순간 말로 형언치 못할 향기가 퍼져 나왔다.

 금색 가루를 몇 등분으로 나눈 약선은 하루에 일정량씩 유모의 젖과 함께 청우에게 복용시켰다.

 복용 후 추궁과혈은 응당 태허진인의 몫이었다.

 천하의 명약을 무료로 주는데 추궁과혈까지 하여 피 같은 진기를 소모할 수 없다며 약선이 태허진인을 강하게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추궁과혈에 전신안마를 받으며 약효를 흡수하는 동안 청우의 피부는 은은한 금색으로 변화되곤 했다.

 삼 일 후 청우의 상태를 살펴본 태백진인은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약선동을 내려올 때는 또다시 백호가 등을 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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