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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장왕곤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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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시작되는 기연(奇緣)(3).
작성일 : 16-04-10 15:31     조회 : 521     추천 : 0     분량 : 9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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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시작되는 기연(奇緣)(3).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북리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정자로 두 사람이 다가왔다. 이십대 후반의 청년과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한 용모를 지닌 금포노인이었다.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노인은 화려하고 깨끗한 금포를 입고 있으되 체구가 왜소한 데다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에 추악한 몰골이었다. 반면에 허름한 청의를 걸친 청년은 눈이 번쩍 뜨이리만치 준미한 용모였다.

 마치 햇살을 이고 있는 듯한 분위기랄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흥미롭다는 듯 밝은 눈빛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청년은 이내 정자 위로 올랐다.

 기이하게도 금포노인은 계단 옆에 멈춰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청년이 가문의 존장을 수행하는 모습으로 보였는데 사실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청년이 정자에 도착하는 순간, 후원 전체에 삼엄한 예기(銳氣)가 그물처럼 번지지 시작했다.

 단 한 명도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청난 인원의 고수들이 후원은 물론이고, 백약선축 곳곳에 포진된 것은 정자 위에 올라선 청의청년이 미처 바닥에 가부좌를 틀기도 전이었다.

 청의청년이 검미를 찌푸렸다.

 "명도(冥刀)."

 "예, 방주님!"

 "모두 물러가도록 해라."

 "하오나!"

 "쯧!"

 단지 가볍게 혀를 찼을 뿐이었다. 표정 또한 이미 지시한 일을 잊은 듯 밝기만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명도라 불린 금포노인이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곧이어 금포노인은 보이지 않는 수하들을 향해 전음으로 지시를 내리는 듯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백약선축 전체를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경호망이 썰물처럼 사라진 것은 바로 그 직후의 일이었다.

 청의청년이 문득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북리곤을 바라보며 의아해하는 눈길을 주었다. 웬 소년이 이런 곳에서 잠들어 있는가 하는 눈빛이었다.

 쓰러져 있는 북리곤의 왼손 엄지손가락에는 특이한 형태의 반지가 하나 끼어져 있었다. 중지(中指)에는 맞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엄지에 끼고 있는 듯이 보이는 반지였다.

 재질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은은히 묵광(墨光)이 감도는 반지의 앞면에는 아수라(阿修羅)의 두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조각되어 있는 악마의 두상이 선명할 뿐만 아니라 그 크기가 호두알 정도로 커서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예의 반지를 발견한 청의청년의 눈에 일순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설마, 혈왕비환(血王秘環)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고개를 갸웃하던 청의청년이 결국 금포노인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명도, 근자에 혈왕(血王)이 강호에 나타난 적이 있느냐?"

 "혈왕이 강호에서 사라진 것이 이미 칠십 년 전의 일이고, 그의 사문인 월단퇴도 칠십 년 전부터 일체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건 혈왕비환 같단 말이야?"

 "혈왕비환이라면 혈왕의 신물로써 혈왕비환에 새겨져 있는 아수라의 문양이 찍혀 있는 배첩(拜帖)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전설을 남긴 물건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 백약선축에서 누군가를 죽이려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야. 배첩이 아니라 혈왕비환이라니까."

 청의청년의 눈은 북리곤의 엄지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반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새삼 북리곤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잠이 든 게 아니라 정신을 잃은 거였군."

 청의청년이 북리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격공섭물의 방식으로 북리곤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건드리지 말게!"

 나직한 음성이 후원 입구에서 들려왔다. 동시에 약왕 도능곽이 황급히 정자로 다가왔다.

 정자 위로 올라온 약왕 도능곽은 대뜸 북리곤의 맥문을 잡았다.

 잠시 후, 약왕 도능곽은 북리곤의 맥문을 쥐었던 손을 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인가? 그 아이가 끼고 있는 반지가 혹시 혈왕비환이 아닌가? 저 아이가 혈왕의 전인이란 말인가?"

 청의청년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약왕 도능곽이 청의청년의 질문을 무시한 채 별안간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기 시작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는가? 왜 그런 눈으로 보는가?"

 "허어, 아무래도 내가 오십 년 전에 자네에게 약을 잘못 쓴 모양일세."

 "약을 잘못 쓰다니? 자네 덕분에 그 당시 죽을 수밖에 없던 내가 살아났는데 이제 와서 약을 잘못 쓴 것 같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청의청년이 크게 놀란 빛을 머금었다.

 약왕 도능곽이 여전히 청의청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짐짓 혀를 찼다.

 "쯧쯧쯧! 사람은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 게야. 늙으면 늙은이다운 모습을 지녀야 하는 법이란 말일세."

 "허허헛! 내가 나이에 비해 젊은 모습을 하고 다니는 게 시샘이 나는 모양이군."

 "생각해 보게. 겨울이 되어 다른 나뭇잎들은 모두 떨어지는데도 다 말라비틀어진 낙엽 하나가 악착같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면 얼마나 볼썽사납겠는가."

 "괜찮아, 괜찮아. 남들이 뭐라 하든 난 지금 내 모습이 좋아. 게다가 내가 이런 모습이 된 건 자네 때문이 아닌가!"

 "그러게 약을 잘못 썼다고 후회하고 있는 중일세."

 겉모습만으로는 조부지간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약왕 도능곽과 청의청년의 대화는 허물이 없었다. 이로 미루어 두 사람은 같은 연배임이 분명했다.

 "어?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지?"

 이때, 북리곤이 벌떡 일어나 어리둥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약왕 도능곽이 정색했다.

 "곤아야, 그가 아직 어항을 지니고 있더냐? 그리고 그 안의 물고기도 아직 살아 있더냐?"

 의식을 잃었다가 막 깨어났기 때문에 북리곤은 일시지간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약왕 도능곽을 멀뚱멀뚱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난 듯 탄성을 터뜨렸다.

 "아, 맞아요. 여기서 검은 옷을 입은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뭐라 그랬지? 그래, 내게 곤음진기를 심어주느니 뭐니 했는데?"

 혼자 중얼거리던 북리곤은 그제야 약왕 도능곽의 질문을 떠올린 듯 눈을 돌렸다.

 "예. 그 할아버지는 늘 어항을 갖고 다닌다고 했어요. 물고기도 살아 있고요. 그리고 이런 말도 했어요."

 "그가 무슨 말을 했느냐?"

 "물고기를 기르는 사람은 더 이상 살인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었어요."

 "그래? 그는 이제 완전히 검을 놓은 모양이군."

 약왕 도능곽이 흡족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혈왕에 관한 이야기라면 나도 궁금하니 자세히 말해 주지 않겠나?"

 청의청년이 참지 못하고 다시 질문을 던지자 약왕 도능곽이 회상에 잠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칠십 년 전, 나는 죽어가는 그를 살려주는 조건으로 어항을 주며 어항 속의 물고기를 기르도록 했네."

 "물고기를 기르게 했다? 흠, 자네다운 조건이었군."

 일반적으로 살수가 된다는 것은 모든 정(情)을 끊어야 함을 의미한다. 심지어 자신에 대한 정조차.

 한데 그런 살수가 물고기를 기르면서 정을 주게 되면 이미 살수가 아니게 되는 것.

 하나의 작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게 만든 약왕 도능곽의 조건은 곧 혈왕으로 하여금 살행(殺行)을 그만두게 만드는 금제이기도 했다.

 사실 당시 혈왕은 약왕 도능곽의 조건을 받아들여 스스로 은거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문인 월단퇴마저 봉문시킨 바 있었다.

 "한데 그가 칠십 년 만에 자네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청의청년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약왕 도능곽에게 질문을 던지기보단 스스로 독백하는 듯한 말투였다.

 약왕 도능곽도 그 점이 못내 궁금한 듯 다시 북리곤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

 "후일 월단퇴를 찾아가 봉문을 해제시키라고 나에게 부탁했어요."

 북리곤이 흑의노인, 혈왕과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자 약왕 도능곽이 전후 사정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월단퇴의 봉문을 풀어주기 위해 어항을 돌려주려고 날 찾아온 것이었네. 한데 이곳에서 곤아를 만나 마음이 바뀐 것이지."

 "혈왕이 저 아이를 자신의 전인으로 삼아 후사를 맡기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네."

 청의청년이 새삼 북리곤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북리곤의 맥문을 잡았다.

 북리곤은 부드럽고 따듯한 기운이 맥문을 타고 몸 안으로 흘러들어 오자 흠칫 놀랐지만 약왕 도능곽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손을 뗀 청의청년의 눈에 기이한 빛이 어렸다.

 마치 처음 대하는 놀라운 물건을 보는 듯한 눈빛이기도 했고, 또 반드시 갖고 싶은 보물을 눈앞에 둔 눈빛 같기도 했다.

 "으음! 혈왕이 처음 본 아이를 전인으로 삼은 게 이상하다 했더니 역시 이유가 있었어. 자네 솜씨인가?"

 "뭐가 말인가?"

 "이 아이의 몸 말이네. 마치 신장(神匠)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들어놓은 한 자루 명검 같다고 할까? 흔히들 천품이라고 하네만 그 천품도 잘 가꾸고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평범하게 되기 마련일세."

 "그렇지."

 "한데 이 아이는 선천적으로 천품을 타고난 데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갈고 닦여 있네."

 "그걸 알아볼 수 있었는가?"

 "보리 한 줌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은 쌀가마를 들 수 없고, 곳간을 지은 사람은 그 곳간보다 큰 물건을 담을 수 없음이네. 그릇으로 비유하자면 이 아이의 몸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런 그릇이네."

 "맞아, 맞고말고. 남들 같으면 늦은 나이이지만 곤이는 지금 당장 무공을 익혀도 대성할 수 있는 그런 몸이지."

 청의청년이 탄성을 터뜨리자 약왕 도능곽이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청의청년이 눈을 빛냈다.

 "혈왕이 저 아이를 전인으로 삼았는데 나라고 못하란 법은 없지."

 혼자 중얼거리던 청의청년이 문득 자세를 바로 했다.

 "본좌는 천하방의 제칠대 방주이다. 너를 내 제자로 삼아 천하를 주고 싶은데 날 따르겠느냐?"

 약왕 도능곽과 격의없이 이야기할 때와는 그 기도가 달랐다.

 흡사 수많은 군신들의 조례를 받으며 옥좌에 앉아 있는 제왕의 기도라고 할까. 그 위엄이 그야말로 보통이 아니었다.

 북천조(北天祖) 조광(趙匡).

 사도무림(邪道武林)의 패주(覇主)인 천하방(天下幇)의 당대 방주.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무릎 꿇게 만드는 엄청난 위엄이 북리곤을 압박해 들었다.

 "싫어요."

 북리곤이 간단히 고개를 저었다. 북천조 조광이 내뿜는 위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태도였다.

 북천조 조광의 눈에 어이없어하는 빛이 가득 찼다.

 그는 너무 황당해 놀랍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민망하기 이를 데 없어 일시지간 입을 열지 못했다.

 한마디로 북천조 조광의 제의를 일축한 북리곤은 품속에서 금침이 든 옥합을 꺼내 약왕 도능곽에게 내밀었다.

 "백부님! 생신 축하드려요."

 생일 선물은 전달한 북리곤은 이제 볼일을 끝냈다는 듯 몸을 돌렸다.

 "곤아야, 그 반지는 혈왕비환이라는 것으로써 그가 네게 준 것이니 잘 보관하되 남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계단을 향해 걸어가던 북리곤이 그제야 자신의 왼손 엄지손가락에 모르는 반지 하나가 끼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어리둥절해했다.

 혈왕비환을 내려다보던 북리곤이 이내 반지를 이리저리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미 이 년 전에 대장장이 중 최고의 경지라는 대수장(大手匠)으로 인정받은 북리곤이었다.

 혈왕비환에 감춰져 있는 기관 장치를 찾아내는 것은 그야말로 일도 아니었다.

 사악!

 아수라의 두상을 오른손으로 잡고 잡아당기자 두상이 반지에서 분리되며 앞으로 빠져나왔다. 아수라의 두상과 반지의 본체는 투명한 은사(銀絲)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게 뭐 하는 걸까? 앗!"

 무심코 투명한 은사를 손가락으로 튕겨보던 북리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은사는 예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단지 슬쩍 스친 것에 불과한데 어느새 손가락이 베어져 피가 흘러나왔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아수라의 조각을 놓자 반지는 원래 형태로 돌아왔다.

 몇 번이고 은사를 뺐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던 북리곤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거, 마음에 드는데요."

 북리곤이 혈왕비환이 끼어져 있는 왼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 새삼 반지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보며 좋아하는 태도였다.

 순간, 돌출되어 있는 아수라의 상에 햇빛이 반사되어 사면팔방으로 빛을 뿌렸다.

 지난 칠십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죽음의 전설, 혈왕비환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한동안 혈왕비환을 갖고 장난치던 북리곤이 다시 정자를 떠나려 하자 북천조 조광이 다급해하는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자, 잠깐만!"

 마치 애원하는 투라고 할까?

 북천조 조광의 태도는 한순간에 돌변해 있었다. 쓸데없이 위엄을 부려 북리곤의 반발을 샀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정자의 계단으로 한 걸음을 내딛던 북리곤이 고개만 돌려 북천조 조광을 바라보았다.

 할 말 있으면 빨리 해보라는 태도, 들어보고 별 볼일 없는 이야기이면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기세였다.

 일단은 북리곤의 관심을 끌어야 했다.

 북천조 조광은 잠시라도 북리곤의 발길을 잡기 위해 맹렬히 머리를 굴리다가 황급히 품속에서 하나의 단창을 꺼냈다.

 길이는 두 자가량, 창신 전체가 피에 담갔다 꺼낸 듯 붉은빛이 감도는 단창이었다.

 "후일 마음이 바뀌거든 날 찾아오너라. 이 천하번(天下幡)을 천하방의 제자들에게 보이면 내가 있는 곳으로 편하게 데려다 줄 것이다."

 "허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군. 방주의 신물인 천하번을 선물로 주며 인연을 이으려 하다니!"

 약왕 도능곽의 눈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무심코 천하번을 받아 든 북리곤은 이내 단창을 이리저리 매만지기 시작했다.

 "천하번? 아무리 봐도 이건 작은 창에 불과한데 왜 천하번이라고 했을까?"

 찰칵!

 잠시 후, 두 자 길이에 불과했던 단창이 삼단으로 늘어나며 여섯 자 길이의 장창으로 바뀌었다. 삼단으로 나뉜 채 가장 바깥 창대 안에 감춰져 있던 나머지 두 개의 창대들이 차례로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었다.

 촤아악!

 북리곤은 원래 이것저것 만드는 재주를 지닌 장인. 잠시 장창을 매만지자 다시 창대 속에 감춰져 있던 깃발이 기관 장치에 의해 활짝 펼쳐졌다.

 활짝 펼쳐져 있는 깃발의 중앙에는 사도십방(邪道十幇)을 상징하는 열 개의 검이 선명히 수 놓여 있었다.

 "주는 것이니까 받긴 하는데… 나중에 찾아가는 건 생각해 볼게요."

 북리곤은 천하번이 마음에 든 듯 다시 단창으로 만들어 갈무리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허어!"

 북천조 조광은 아쉬운 듯 멀어져 가는 북리곤을 보며 탄식을 터뜨렸다.

 "소용없네. 오직 장인 중의 장인, 장왕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일세. 그 목표가 너무 확고해 다른 것에는 아예 관심도 없네."

 약왕 도능곽이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약왕의 생일이 지나기 무섭게 길을 떠났어야 할 북리곤이었다. 하지만 북리곤은 보름을 더 예랑에 머물러야 했다. 따로 할 일이 생겼던 것이다.

 보름 뒤, 북리곤이 백약선축으로 가자 도여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선하단(仙霞丹)이라고 해. 원래 삼 년 전부터 만들고 있었지만 몇 가지 약재가 부족해 완성시키지 못했는데 이번에 필요로 하는 약재들이 들어왔어."

 도여군이 내민 금합 속에는 세 알의 단환이 담겨 있었다.

 도여군은 세 알의 선하단을 선물하며 그중 하나를 북리곤에게 복용하도록 했다. 이어 북리곤이 선하단을 먹는 것을 확인한 후 그의 전신을 안마해 주기 시작했다.

 "아마 넌 무림인들이 말하는 일 갑자 정도의 내공을 얻게 될 거야."

 "일 갑자의 내공?"

 사실 일 갑자의 내공이라면 육십 년을 꾸준히 수련해야만 얻을 수 있는 엄청난 내공이었다. 하지만 도여군의 말투가 무심하기 이를 데 없어 북리곤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 갑자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넌 아직 본격적으로 내공심법을 익히지 않아 당분간은 단지 각 경혈에 잠재되어 있게 될 뿐이야. 그래도 몸이 가벼워지고 눈이 밝아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야."

 늘 그랬던 것처럼 한 시진가량 추궁과혈을 받으며 잠들었다가 깨어난 북리곤은 품속에서 작은 공 형태의 철구(鐵球)를 꺼내 내밀었다.

 "나도 누나에게 줄 선물이 있어요."

 작은 철구의 한쪽에는 은사(銀絲)가 연결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

 반가워하기보다는 선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태도.

 북리곤이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냥 미인장(美人杖)이라고 이름 붙인 건데···."

 철구에 대해 설명하려면 도여군의 아픈 데를 건드려야만 했다.

 북리곤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거, 왜 있잖아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길을 갈 때 지팡이로 주위를 두드리면서 가잖아요. 한데 난 여군 누나가 지팡이로 길을 더듬으며 가는 게 싫어서 이걸 만들어본 거예요."

 "하지만 이건 지팡이가 아니잖니?"

 "철구에는 은사가 연결되어 있으니 던졌다가 받아내면서 지팡이 역할을 하면 주위의 지형을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도여군은 시험해 보려는 듯 북리곤과 함께 정원으로 나가 은사 끝을 쥔 뒤 철구를 앞으로 던져 냈다.

 딸랑!

 철구가 허공을 가르며 맑은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구는 앞쪽의 나무에 부딪쳤는데 땅에 떨어지기 전에 은사를 잡아당기자 은사가 원래대로 감기며 저절로 손 안으로 돌아왔다.

 도여군은 주위에 철구를 튕겨냈다가 다시 회수하는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데 과연 손에 익자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걸어가는 것보다 오히려 효과적이었다.

 지팡이는 길이가 짧아 먼 거리의 물체를 파악할 수 없는 반면에 미인장은 은사의 길이가 무려 삼 장이나 되었다. 게다가 허공을 날아갈 때 방울 소리가 울려 퍼져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감지할 수도 있었다.

 몇 번 연습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미인장이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도여군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어,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지? 날 위해 이런 걸 만들어주다니···!"

 "미인장의 또 다른 특징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한 송이 꽃으로 만들어 가슴에 꽂고 다닐 수 있다는 거예요."

 찰칵!

 북리곤이 미인장의 한곳을 매만지자 둥근 철구가 활짝 펼쳐지며 열두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한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변화되었다.

 손으로 더듬어 꽃의 형태를 확인한 도여군이 격동으로 몸을 떨었다.

 "동생은… 동생은 정말···!"

 "여군 누나가 기뻐하니 나도 좋아요."

 도여군이 눈물을 흘릴 듯이 좋아하자 북리곤 역시 기쁘기 한량없었다.

 사실 미인장은 혈왕이 주고 간 혈왕비환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혈왕비환의 은사가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 무기인 반면에 미인장은 단지 지팡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달랐다.

 "그럼 저 이제 가볼게요. 백부님에게 인사를 한 후 곧바로 떠날 거예요."

 "그, 그래, 한동안 못 보겠구나."

 도여군은 북리곤이 연검록에 나타나 있는 지형을 찾아 천하를 떠돌 예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섭섭한 듯 북리곤의 손을 꼭 잡는 그녀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한참 걸어오다 고개를 돌려보니 도여군은 다시 미인장을 이리저리 튕기고 있었다.

 철구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맑은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은 마치 미인이 줄에 매달려 있는 공을 갖고 춤을 추는 듯이 보여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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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달빛이 끊어지는 땅(1). 2016 / 4 / 11 532 0 5700   
14 13화.하산(下山)(4) 2016 / 4 / 11 675 0 3742   
13 12화.하산(下山)(3). 2016 / 4 / 11 657 0 5523   
12 11화.하산(下山)(2). 2016 / 4 / 11 659 0 6680   
11 10화.하산(下山)(1). 2016 / 4 / 10 649 0 4821   
10 9화.이 년 후(二年 後)… 곤, 십칠 세(2). 2016 / 4 / 10 503 0 5742   
9 8화.이 년 후(二年 後)… 곤, 십칠 세(1). 2016 / 4 / 10 647 0 6498   
8 7화.시작되는 기연(奇緣)(3). 2016 / 4 / 10 522 0 9601   
7 6화.시작되는 기연(奇緣)(2). 2016 / 4 / 10 605 0 5184   
6 5화.시작되는 기연(奇緣)(1). 2016 / 4 / 10 539 0 7199   
5 4화.곤(鯤), 가출(家出)하다(2). 2016 / 4 / 10 538 0 7445   
4 3화.곤(鯤), 가출(家出)하다(1). 2016 / 4 / 10 555 0 7194   
3 2화.싫다는데 왜 자꾸 이러십니까(2). 2016 / 4 / 10 509 0 4234   
2 1화.싫다는데 왜 자꾸 이러십니까(1). 2016 / 4 / 10 670 0 7164   
1 서(序). 2016 / 4 / 10 839 0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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