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새로 형사2팀장으로 발령받은 박영우라고 한다"

　발령식을 마치고 사무실로 내려와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한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새로운 형사팀장이 인사를 왔다.

　박영우를 보는 순간 희연의 얼굴이 살짝 굳었고 경일은 애써 웃는 낯으로 반겼다.

　"반갑습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병재를 보며 영우가 씨익 웃었다.

　"병재 자네가 내 밑에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구만"

　말을 마친 영우가 경일을 바라봤다.

　"하..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팀장님. 설마 팀장님이 저희 새로운 팀장님으로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거 한경일 너는 내가 여기 온게 상당히 못마땅한거 같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조금 의외라서요"

　"뭐가?"

　"아니 보통 징계받고 몇 개월 쉬다 돌아오면 지구대나 파출소로 전보(轉補) 보내던데 복귀와 동시에 바로 형사팀장은..."

　"좌천될 놈이 빽 써서 형사팀장으로 와서 아니꼽다?"

　영우의 말에 경일이 한숨 쉬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쯧"

　영우가 경일을 바라보며 혀를 한번 찼다.

　박영우는 마산북부경찰서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했다.

　수사부서에서만 20년이상 근무한 베테랑 형사에 범인을 잡아내는 능력도 뛰어난 인물.

　실력면에서는 흠 잡을 때 없지만 윗 사람에게 철저히 비벼대고 아랫사람들은 찍어 누르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

　자신의 공을 위해서라면 주변의 인물들을 철저히 이용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 후배를 방패막이 삼는 것을 서슴치 않는 인간.

　6개월 중징계를 받고 지금 막 복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일은 영우가 자신의 새로운 팀장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박영우가 공을 쌓기 위해 이용한 인물 중에는 경일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영우가 희연 쪽을 바라보자 희연이 영우의 시선을 회피했다.

　"..."

　"자네는 내가 온게 상당히 짜증나겠군? 나도 이렇게 만나게 같은 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희연의 굳은 얼굴을 보며 영우가 피식 웃는다.

　"짜증은 내가 내야 될 것 같은데? 날 그렇게 물먹인 년이랑 한팀..."

　"팀장님"

　병재가 조용히 영우를 불렀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하실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병재의 낮은 목소리에 영우가 씨익 웃었다.

　"아 걱정하지 마라고. 나 대인배야. 지나간 일 가지고 그렇게 마음 속에 계속 묻어두는 그런 소인배 아니라고"

　말을 마친 영우가 희연의 어깨를 툭, 툭 쳤다.

　"앞으로 잘해보자고 김희연씨. 그래도 새로운 팀장이 온 첫 날인데 반겨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굳은 표정으로 서 있으면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잖아?"

　자신의 어깨에 영우의 손이 올라오자 움찔한 희연이 무언가 말하려다 한숨을 쉬었다.

　"...예"

　피식 웃은 영우가 준혁을 바라봤다.

　"이 쪽은?"

　"올해 초에 형사팀에 새로 발령받은 조준혁 순경입니다"

　병재의 소개에 영우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아~ 그 꼴통?"

　빠직

　순간 욱한 준혁이 표정을 숨기기 위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순경 조준혁입니다"

　준혁의 말에 한 차례 미소 지은 영우가 말한다.

　"아 알지, 알아. 입문한지 1년도 안된 신임놈이 공집유발로 징계받고, 아파트 13층에서 서커스 묘기까지 부렸다지? 자네 활약상은 내 익히 들었지"

　준혁의 어깨를 가볍게 툭, 툭 치던 영우가 순간 준혁의 어깨를 꽈악 힘주어 잡았다.

　"초면에 미안한데, 내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아, 이건 자네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니까 다 같이 듣지"

　영우의 말에 형사2팀원 모두가 영우의 얼굴을 바라봤다.

　"난 말이야. 밑에 새끼들 때문에 나까지 피해보는 일은 절대 없었으면 좋겠어, 특히"

　 영우가 준혁을 바라봤다.

　"고삐 뿔린 망아지마냥 여기 저기 설쳐대면서 '팀장이 누구니, 팀원 관리를 어떻게 하니' 하는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거든"

　"..."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내가 딱 3가지만 부탁하지"

　형사2팀원들의 얼굴을 둘러본 영우가 말한다.

　"첫 째, 내가 시키는 일은 '예'하고 군말 없이 따를 것. 아 물론 독재자로 군림하겠다던가 그런건 아니야. 난 팀원들의 의견도 적극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거든. 대신 '아니오'란 말을 하고 싶으면 합당한 근거와 이유를 가져와. 내가 납득할 수 있게"

　"..."

　"둘 째,  하지마라는 짓은 제발 하지말 것. 하지마라고 내가 신싱당부한 일인데 자네들이 일을 멋대로 저질러버리면? 자네들만 책임지나? 팀장인 나도 같이 책임진다. 멋대로 날뛰어서 사고치는 일 절대 없었으면 한다. 특히..."

　영우가 준혁을 바라봤다.

　"...지켜보겠다"

　"...예"

　준혁이 작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영우가 계속 말한다.

　"마지막으로 셋 째..."

　영우가 힐끗 희연을 바라본다.

　"우리 같은 식구 팔아먹는 의리없는 짓은 하지 말자. 그래도 형사하면 의리 아니겠어?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살인범도 잡고 도둑놈도 잡고 해야 하는데 우리 사이에 신뢰가 깨지면 어디 서로 믿고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영우의 말에 희연이 움찔 몸을 떤다.

　그 모습을 자못 즐겁다는 듯이 바라본 영우가 말한다.

　"자, 여기까지. 질문있나?"

　"..."

　형사2팀원 전원이 침묵하자 영우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좋아, 좋아. 무언의 긍정으로 봐도 되겠지? 토 안달고 따라주는 여러분들의 모습에 감동. 시작부터 느낌이 아주 좋구만"

　영우가 번들거리는 민머리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안경을 고쳐쓴다.

　"질문없으면 각자 일보지. 다들 개인 사건 때문에 바쁠텐데"

　말을 마친 영우가 떠난 용진의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며 형사2팀원 모두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행님 잠깐 커피 한잔 하죠?"

　준혁의 물음에 경일이 고개를 끄덕였고, 사무실 밖으로 나온 둘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옥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행님"

　"무슨 얘기할지 알아"

　옥상으로 올라오자마자 준혁이 부르는 소리에 경일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박영우말이지?"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몇 년 전에 박팀장 밑에서 조금 있었어. 성격은... 봐서 대충 짐작은 가지? 공은 자기가 전부 다 챙기고, 신상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밑에 팀원들이나 후배들을 팔아먹기를 주저하지 않지"

　"어째서 저런 사람이 팀장을 할 수 있는거죠?"

　"인생은 빽이야. 얼마나 대단한 빽인지는 나도 직접 보지 못해서 알 수 없지만.. 작은 징계정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사람이야"

　"...그럼 희연이 누나는요?"

　준혁의 물음에 경일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너 1)휘슬블로어(whistle blower) 또는 딥스로트(Deep Throat)라는 말 알아?"

　준혁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 수험생 시절 공부한 기억이 있는 분야였다.

　"내부고발 말이죠?"

　경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박영우의 입장에서 희연이는 내부고발자야"

　"예?"

　준혁이 놀라 되묻자 경일이 한숨을 쉬더니 1년 전 있었던 사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1년 전 박영우는 마산북부경찰서 북마지구대 순찰3팀장이었다고 한다.

　그 무렵, 이제 막 임용된 24살 신임여경이 북마지구대 순찰3팀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보통 지구대 순찰팀장들은 주로 직접 순찰을 나가기 보다는 사무실 내에 방문하는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상황근무를 자처하곤 하는데 신임여경이 오고나서부터는 자신이 직접 순찰을 나가고자 했다고 한다.

　이유는 좋았다.

　신임경찰관의 경우 초기에 팀장이 직접 해야할 행동과 하지말아야 할 행동을 따라다니면서 가르쳐줘야 미연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박영우가 신임여경의 전담 순찰조장으로 근무한지 약 1개월 가량 지났을 때 발생했다.

　박영우가 좁은 순찰차 안에서 '내가 딸 같아서 해주는 말이야, 아빠처럼 편하게 대해' 등의 소리를 지껄이며 슬쩍슬쩍 신임여경의 손이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신임여경이 점점 과해지는 박영우의 행동을 보고 고민 끝에 경찰에 입직하기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선배였던 희연에게 이 일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박영우가 든든한 빽이 있다는 사실은 경찰서 전 직원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 때문에 희연은 생각 끝에 신임여경에게 들은 사실을 경찰서 감찰이 아닌 국가인권위원회에 알렸다고 한다.

　이후 박영우는 최초 징계위원회에서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강등' 처분을 받았는데, 소청심사를 신청하더니 결국 '6개월 정직' 처분으로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사고를 친 박영우가 아니라 피해를 당한 신임여경이 다른 경찰서로 전보조치 되었다고 한다.

　서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두 직원을 같은 경찰서에 둘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는데 이 때 직원들은 박영우 빽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개새끼..."

　경일의 얘기를 다 들은 준혁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