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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시뮬레이터
작가 : 류지혁
작품등록일 : 201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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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백작가의 마지막 후계자 제오딘 빚을 갚기 위해 귀족의 명예마저도 버렸다.
가문 몰락의 원흉 시뮬레이터 아레스 그를 철저히 부려먹는 제오딘,
성공을 위한 두 콤비의 기막힌 연계.
가문 재건을 위해 뛰어든 전쟁터에서 위대한 제오딘의 신화가 펼쳐진다.

 
제 15 화
작성일 : 16-07-22 15:22     조회 : 579     추천 : 0     분량 : 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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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녀석! 도대체 어디 갔지?”

 구석구석 세세하게 훑어 보았지만 안드레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딱히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혹시… 아직도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설마! 경험이 많은(?) 우리도 이렇게 빨리 나왔는데!”

 “하지만 딱히 있을 만한 곳도 없지 않습니까?”

 “그도 그렇긴 하지. 그럼 일단 확인이라도 해 보자. 그 녀석이 들어간 천막 기억하고 있지?”

 “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학! 아아악! 나 죽네! 나 죽어! 엄마야! 아아악! 자기야아!”

 안드레이가 들어간 천막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두 사람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다른… 사람이겠지? 분명 다른 사람일 거야!”

 “하지만… 우리가 예약한 시간이 아직 안 끝났는데요?”

 “그럼… 정말 그 녀석이란 말이야? 제발 아니라고 말해 줘!”

 “……아닐 겁니다. 아마도.”

 애써 부인하여도 뻔한 사실이 뒤집어지지는 않는다.

 “이 자식… 분명 처음이라고 했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인데 이 정도면…….”

 브리엔은 자괴감 반 부러움 반 섞인 눈으로 천막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저 녀석이랑 같이 나오지 말아야겠다.”

 “저도 그래야겠습니다.”

 “그나저나… 부럽다.”

 “저도 그렇습니다.”

 

 “조, 좋았냐?”

 브리엔은 두 시간을 꼬박 채우고 천막을 나오는 안드레이를 해탈한 얼굴로 맞이했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브리엔 중등병님.”

 “그, 그래. 니가 좋았다니 나도 만족스럽구나. 크윽!”

 안드레이가 나온 천막의 틈에서 진한 밤꽃 냄새가 퍼져 나왔다. 실신한 듯 축 늘어져 있는 알몸의 여인도 살짝 옅보였다. 솔직히 부러웠다.

 “아아! 하늘이 무척 맑군요.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뿌듯해하는 안드레이의 모습을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끌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따, 땀도 뺐으니 목이나 축이러 가자!”

 “오! 술까지 사 주시는 겁니까? 존경합니다!”

 “그, 그래.”

 힘없이 걸음을 옮기는 브리엔의 등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손니임!”

 “응?”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안드레이가 나왔던 천막에 있던 여인이 목만 살짝 내밀고 있었다.

 흘러내린 땀 때문에 얼굴에 달라붙은 그 머리결이, 초췌한 듯 보이는 그 얼굴이 왜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까.

 천막 밖으로 내밀어진 얼굴의 높이가 허리어림인 것을 보니 엉금엉금 기어서 나온 모양이었다. 필사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이다.

 “다음에 또 오세요! 그때는 반값으로 해 드릴게요! 꼭 와야 해요!”

 자랑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안드레이와는 달리 발루스와 브리엔은 싸움에 진 똥개마냥 고개를 푹 숙였다.

 

 브리엔은 이번에도 무리를 하였다. 안드레이들을 ‘죽어도 다시 한잔’ 이란 이름의 고급 주점으로 데려간 것이다.

 ‘선임병의 위엄을 다시 한 번 보여 주겠다!’

 장미 정원에서 열등감이 폭발한 브리엔은 술로 선임병의 위엄을 되찾고자 했다.

 혹자는 쓸데없는 자존심이라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간혹 남자들은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여, 여긴 향사(Esquire:기사의 종자)들이 드나드는 곳인데요?”

 “괜찮아! 괜찮아! 병사라고 못 들어가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 못 들어가는 거니까! 여기서 먹고 마실 정도의 능력은 된다고!”

 “하지만…….”

 “괜찮다니까!”

 브리엔은 안드레이의 손목을 잡고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브리엔은 겉으로는 자신만만한 척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혹시라도 향사들과 시비가 붙으면 아주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죽어도 다시 한잔’의 내부는 병사들이 드나드는 주점보다 훨씬 깔끔하고 화려했다.

 주점 한켠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시중을 드는 하는 미모의 여급들도 있었다.

 ‘휴우.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구나.’

 시간이 조금 이른 탓인지 주점 내부에 손님이 별로 없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브리엔은 후임병들을 구석진 자리로 이끌었다.

 “마음 편하게 먹어야 기분도 좋지!”

 잠시 후, 주문을 받으려고 여급 하나가 그들이 앉은 탁자에 다가왔다. 그런데 왠지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최대한 말끔한 옷을 하고 왔지만, 그래도 일반 병사라는 점을 숨길 수는 없었다.

 “여긴 제법 가격이 쎈데… 괜찮겠어요?”

 “우리가 그렇게 돈이 없어 보이나?”

 브리엔이 금화 세 개를 탁자 위에 턱하니 올려 놓자 여급도 돌변하여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주문은 뭘로 하시겠어요?”

 “이 돈만큼 술과 안주를 갖다 주시오.”

 “술은 무슨 종류로?”

 “가장 독한 것 중에 저렴한 걸로.”

 “사내들끼리만 마시면 칙칙하지 않겠어요? 예쁜 아이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됐소. 우리끼리 화통하게 마시고 싶으니까.”

 여급에게 술 시중을 받는 것도 돈이 든다. 쓸 수 있는 돈을 모두 사용해 빈털터리 신세이니 선택 사항이 없다.

 브리엔은 아쉬운 듯 자신을 바라보는 발루스의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

 ‘저놈이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잠시 후, 술과 안주가 나왔다.

 3골드라는 거금을 쓴 덕분에 안주도 푸짐했다. ‘드워프의 불망치’라는 이름만 들어도 독할 것 같은 술도 여덟 병이나 나왔다.

 “자! 먹고 죽자! 건배!”

 브리엔은 발루스와 의미심장하게 눈빛을 교환하며 술잔을 들었다.

 “크화! 좋타아아!”

 술을 마시는 것인지 불덩이를 삼키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화통한 척 소리를 지르는 브리엔. 안드레이의 시선이 잠시 다른 곳으로 향한 사이 재빠르게 발루스와 눈빛을 교환했다.

 ‘너무 독하다. 교대로 먹이자.’

 ‘네,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2:1의 술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놈 왜 이렇게 술이 강한 거야!’

 네 사람은 어느새 술 4병을 비웠다.

 브리엔은 어지러움을 표 내지 않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정신을 다잡았다.

 반면 브리엔보다 두 배는 더 먹은 안드레이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꿋꿋했다.

 “아, 자꾸 소변이 마렵네! 잠시만 기다리라고!”

 고급 주점이라 그런지 화장실도 깔끔하고 손 씻는 곳도 있었다.

 “우웨엑!”

 속을 다시 비워내고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으니 약간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브리엔은 조금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다시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제법 흐른 덕분인지 술잔을 기울이는 향사들이 제법 많아졌다.

 술기운에 좀 더 대범해진 브리엔은 당당하게 그들 사이를 지나가다 귀에 쏙 들어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특임 분대는 최하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가는데 유독 그 분대는 한 명도 죽은 자가 없다더라고. 그것도 6개월 동안이나! 지휘관이 대단한 모양이야!”

 “아! 그 이야긴 나도 들은 적이 있어. 그 지휘관 이름이… 그래! 제오딘! 제오딘 브라이트 백작이었을 거야! 분명히!”

 “그 유명한 몰락 백작? 백작인데도 초소로 배치되어서 제법 시끄러웠었잖아? 또 한 명 제거된다면서 말이야. 그런데 아직도 살아 있었어? 정말 대단하군!”

 곁눈질로 살펴보니 향사 4명이 앉은 자리에서 들리는 이야기였다.

 “헤헷.”

 브리엔의 얼굴이 기분좋게 풀어졌다. 자신에 대한 칭찬이 아님에도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듣는 것처럼 우쭐해지고 뿌듯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뒤이은 목소리에 브리엔의 얼굴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다들 잘못 생각하고 있구만. 그건 그 제오딘 백작이라는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야. 오히려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결과가 난 거라고!”

 “응?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생각을 해 보라고. 저쪽도 우리처럼 눈에 불을 켜고 살피고 있다고! 그런 상황에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사상자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야 저 자식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다니!’

 하지만 힘없이 안드레이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향사.

 귀족은 아니지만 평민보다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니 그저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다.

 자리에 앉은 이후에도 브리엔의 귀는 향사 넷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망자가 한둘이라도 있으면 또 모르지. 하지만 단 하나도 없다는 건 자명해! 아예 정찰을 나가지 않은 거야. 나가더라도 안전한 범위 내에서 깔짝거렸겠지.”

 “하지만 영상구로 저장을 하지 않나? 그런 짓을 했으면 금세 발각되었을 텐데?”

 “몰락했어도 백작 가문이었잖아? 그걸 속이는 아티팩트 하나 없으란 법은 없지!”

 “하긴…….”

 브리엔은 본래의 목적은 잊어 버린 채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목을 태울 듯이 독한 술이 달게 느껴졌다. 그만큼 정신은 점차 몽롱해져 갔다.

 “비겁한 놈이야! 다들 목숨을 걸고 있는데 그런 수를 쓰고 말이야. 그놈 때문에 다른 지휘관들이 곤란하다고! 왜 그렇게 피해를 많이 내느냐고 말이야! 억울한 일이지!”

 “그것도 그렇지! 아무래도 비교가 되니까!”

 “그런 비겁한 놈은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도움이 되는 일이야! 개자식! 빌어먹을 놈! 지옥에 떨어질 놈 같으니!”

 제오딘을 욕하던 향사는 어느새 자신의 가설을 기정사실화시키며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욕을 연거푸 터뜨리는 모양을 보건데 스스로의 말에 취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브리엔도 취했다. 그의 분노를 제지하던 이성도 술에 절어 버렸다.

 콰앙!

 브리엔은 테이블을 내려치며 벌떡 일어섰다.

 “거,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마주 앉아 있던 안드레이들 뿐만 아니라 주점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브리엔을 쳐다보았다.

 “뭐야?! 병사 따위가 왜 여기에 있어?!”

 “저놈이 미쳤나? 병사 주제에 감히 향사의 말에 토를 달아? 죽고 싶은 게냐?”

 “향사가 백작을 욕하고 저주하는데, 병사가 향사 말에 토 다는 게 대숩니까? 안 그렇습니까?”

 “허! 어이가 없구만?!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이군. 너 따위가 뭐라고 나서는 거지?”

 “난 당신이 욕한 제오딘 백작님의 병사다!”

 “오호라! 비겁한 백작 아래의 건방진 병사라 이 말인가? 이거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만. 죽고 싶은 거지?”

 향사는 벌떡 일어나 브리엔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브리엔 중등병님. 뭐하시는 겁니까! 어서 사과하십시오.”

 옆에서 무슨 이야길 하는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눈빛만으로도 살인을 할 수 있을 듯한 모습의 브리엔은 걸어오고 있는 향사에게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건방진 놈! 죽어 봐야 정신을 차리겠군!”

 브리엔의 코앞까지 다가온 향사가 대뜸 주먹을 휘둘렀다.

 ‘뭐야, 이 흐느적거리는 주먹질은!’

 술기운 때문일까, 향사의 움직임이 무척 느리게 느껴졌다.

 브리엔은 제오딘에게 배운 것처럼 자세를 낮추며 향사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쿠헥!”

 주먹을 맞은 향사가 먹은 것을 모두 게워 내며 쓰러졌다. 거품을 물고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니 기절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뭐야, 저 자식은!”

 “병사가 향사를 쳐?”

 “하극상이다!”

 주점 안에 있던 향사들이 일제히 일어서 브리엔에게 달려들었다.

 ‘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브리엔은 향사들의 기세에 잠시 이성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내 술기운이 올랐다.

 “저 새끼들도 똑같은 놈들이야! 우리 대장님을 욕하는 놈들! 모두 죽여 버리겠어! 으아아아!”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르며 맞서는 브리엔. 발루스와 안드레이도 어느새 휩쓸려 난데없는 패싸움이 벌어졌다. 3대17의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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