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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시뮬레이터
작가 : 류지혁
작품등록일 : 201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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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백작가의 마지막 후계자 제오딘 빚을 갚기 위해 귀족의 명예마저도 버렸다.
가문 몰락의 원흉 시뮬레이터 아레스 그를 철저히 부려먹는 제오딘,
성공을 위한 두 콤비의 기막힌 연계.
가문 재건을 위해 뛰어든 전쟁터에서 위대한 제오딘의 신화가 펼쳐진다.

 
제 12 화
작성일 : 16-07-22 14:56     조회 : 667     추천 : 0     분량 : 5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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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 조금만 더 기다려라

 

 

 

 온 산이 붉게 물들고 있습니다. 점점 날이 선선해지고 있어요. 이제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나 봅니다.

 제 카운터에 의하면 지구는 지금쯤 크리스마스 이브겠군요. 정확히는 지구력 2,71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캐롤이 한창 울려퍼지고 있겠군요.

 주인님이 특임 분대로 발령받아 이 산에 머문 지 오늘로 6개월째입니다.

 그 동안 별다른 사건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척 바빴어요. 물론 초자아 인공지능인 저의 능력에 부치는 일은 하나도 없었지만, 역시나 단순 작업을 반복한다는 것은 힘들고 지루한 법이죠.

 

 그간 해 온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주인님의 특임 분대가 정찰 활동을 할 때 주변을 감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문용어로는 ‘짱보기’라 할 수 있겠네요.

 인근에 위협적인 대상이 없는지 세세히 살펴보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다녔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주인님이 다치거나 죽으면 전 아주 곤란해지니까 필사적으로 해야 했지요.

 그 다음으로 중요했던 일은 주인님의 주변인들을 감시하고 주변의 정세를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혹시 누군가 주인님을 모함하거나 함정에 빠뜨리지는 않을까 주요 인물 1,200명을 밀착 감시했고, 혹시 카이더스 제국 쪽에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을까 300㎢를 꾸준히 감시했습니다.

 저의 도움으로도 위험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 다음 순위가 주인님을 강하게 키우는 일이었죠.

 테오도르에게서 받은 마나 플로를 토대로 32만 번 시뮬레이션하여 가장 효과적인 마나 플로를 새로 설계하여 주인님께 익히게 하였습니다.

 실전 대련도 많이 시켜드렸죠. 덕분에 주인님은 제법 강해졌죠.

 그리고 다음 순위가 주인님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건강 검진을 실시하고 뭉친 곳이나 혈액 순환이 안 되는 곳이 있으면 저의 기능을 이용하여 풀어 드렸지요. 하루를 보람되게 보낼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리고 여분의 동력으로 해야 했던 일이… 바로 돈을 버는 일이었습니다.

 혹시나 돈이 될 것이 없나 온 산을 구석구석 뒤져야 했죠. 돈 되는 장비를 가진 시체가 유기되지 않았는지, 돈 될 만한 산짐승이나 몬스터는 없는지, 돈 될 만한 약초는 없는지 살폈습니다.

 최근엔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약초들을 한군데로 모으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다량의 약초가 한꺼번에 풀리면 신선도도 떨어지고 시세도 떨어지니까요.

 주인님은 300㎡가량의 약초밭을 보실 때마다 흐뭇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십니다.

 이렇게도 많은 도움을 드리고 있건만, 주인님은 허구한 날 저더러 쓸모 없다고 하시네요. 제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데 말이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지구에 있는 저의 여자 친구 GXE―253156양이 너무 보고 싶어집니다.

 오늘도 그 소릴 들어요.

 심심한데 주인님의 경험을 위해 대련이나 좀 시켜 드릴까요.

 통각을 100%로 설정하는 것은 주인님께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오해하지들 마세요. 그저 고통에 익숙해져서 실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기를 바라는 저의 충성스러운 마음이랍니다.

 

 ―아레스의 영상 일기 중에서.

 

 “레깅스 착용하겠습니다.”

 “음.”

 바소르 백작은 부관인 마이트 남작의 도움으로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는 사령관이다. 갑옷을 착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휘하의 귀족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항시 갑옷을 착용하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사실, 이 갑옷이라는 물건이 상당히 무겁고 불편한 물건인지라 귀찮을 때가 많았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갑옷을 착용하는 것을 싫어했다. 적의 침입이 전무하다시피 한 요새 내부인지라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5개월 전부터 그런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망토 착용하겠습니다.”

 마이트 남작은 바소르 백작의 갑옷 양어깨에 붉은 망토를 단단히 매듭지었다.

 ‘폭풍 망토라 했던가? 참 어울리는 이름이야!’

 바소르 백작은 길게 늘어뜨려진 붉은 망토를 슬쩍 매만지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 망토를 얻게 된 것은 5개월 전이었다.

 마커스라는 상인이 진상품으로 그에게 바쳤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또 뇌물인가 하면서 좋아했던 바소르 백작이었다. 부족한 전비를 채울 수 있으니 뇌물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하지만 상인 마커스가 진상한 것은 묵직한 돈 주머니가 아니라 겨우 천 조각 하나. 기대했던 만큼 분노도 컸던 바소르 백작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며 마커스를 쫓아 보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가 바친 천조각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바소르 백작은 그의 집무실 벽에 못 보던 천 조각 하나가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저건… 뭔가? 햄버튼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저것 말일세.”

 “아, 얼마 전에 마커스라는 상인이 진상했던 것입니다. 폭풍 망토라는 과장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기에는 제법 괜찮아 보여 장식을 해 보았습니다.”

 마이트 남작의 답변에 바소르 백작은 폭풍 망토라는 물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피가 뚝뚝 떨어질 듯한 붉은 색상과 화려하게 장식된 햄버튼 가문의 문장이 너무나 잘 조화되어 무척 고급스러워 보였다.

 “폭풍 망토라고?”

 “네! 갑옷 위에 걸치는 것이라 하더군요. 모양뿐만 아니라 기능도 여러가지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행자들이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망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갑옷 위에 걸치는 망토라는 것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바소르 백작은 새삼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착용해 본 결과……. 갑옷을 입는 것이 즐거워졌다. 어깨선을 강조시켜 주는 주름과 품격 있는 디자인에 헤어나오질 못했다.

 “거울을 보시겠습니까?”

 마이트 남작이 한켠에 있는 전신 거울을 바소르 백작 앞에 대령시켰다.

 “흠. 흠.”

  붉은 망토를 착용한 거울 속의 그의 모습은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귀해 보였다.

 바소르 백작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바꾸어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가세나!”

 뒤돌아서는 바소르 백작의 망토가 멋드러지게 휘날렸다. 망토의 모양새를 잡아 주는 다섯 개의 주름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바소르 백작은 거의 매일 회의를 개최하여 각급 지휘관들을 한자리에 모으곤 했다.

 설령 안건이 없다 하더라도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전선의 고착 상황이 길어지며 흐트러질지도 모를 지휘관들의 기강을 느슨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때문에 각급 지휘관들은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회의에 불참하려 하였고, 덕분에 회의에 주로 참석하는 이들은 뒷감당이 어려운 하급 지휘관들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출석률이 부쩍 높아졌다.

 “오늘의 안건은…….”

 바소르 백작의 발의로 회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하는 귀족들의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리도 입지 않으려 했던 갑옷을 전원 착용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참석하는 인원들의 주의가 왠지 모르게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은 참 이질적이다.

 “험! 험!”

 헛기침을 하다가 망토를 살짝 들어 입을 가리는 귀족이 보인다.

 “오늘따라 좌석이 불편하구만! 쩝!”

 끊임없이 앉은 자세를 고치며 애꿎은 망토를 펄럭이듯 털어내는 귀족도 보인다.

 “음음. 100 골드 짜리라서 그런가? 감촉이 전혀 다르군. 감촉이!”

 혼잣말이랍시고 꺼내는 말이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큰 귀족도 있었다.

 은연중에 자신의 망토를 자랑하느라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회의의 안건이 중요한 것이었다면 바소르 백작이 크게 화를 내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털컥.

 그때 회의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귀족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죄송합니다. 예약한 물건이 도착했다 하여…….”

 지각한 귀족을 노려보는 여러 귀족들의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자리에 다급하게 달려가느라 휘날리게 된 지각 귀족의 망토가 유난히 화려하고 멋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훗! 고작 망토 하나 가지고!’

 바소르 백작은 신경전을 벌이는 귀족들의 모습에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자네들에겐 한계가 있다네. 후후.’

 바소르 백작의 시선은 귀족들의 망토 주름에 향해 있었다. 대부분 3개였고, 간혹 4개 짜리도 있었다.

 망토 주름이 다섯 개인 것은 바소르 백작이 유일했다.

 

 발로렌의 주력은 3만에 이르는 병사들이 아니라, 500명밖에 되지 않는 기사단이었다.

 주력으로 취급되는만큼 병사들처럼 느슨해지지 않고 항시 고된 훈련을 반복했다.

 “차지잉!”

 부단장인 젤러 남작의 구령에 맞추어 500여 인마가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이럇! 이럇!”

 “하아! 하앗!”

 히이이이잉!

 마갑을 갖춘 말들이 내뿜는 거친 숨소리가 훈련의 열기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은 과연 주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정예한 모습을 보여 준다.

 실제로 혼자서 병사 서른 명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500이라는 숫자를 감히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반전! 반전하라!”

 말의 무게와 속도를 십분 활용한 집단 렌스 차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기사단이 일제히 말머리를 돌렸다.

 일사분란하게 몸을 돌리자, 그들의 어깨에 매어져 있던 매듭이 두 개인 망토도 멋드러지게 휘날렸다.

 그때, 한쪽에서 천 명가량의 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매복이다!”

 피피핑! 피핑!

 모습을 드러낸 병사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 천여 발에 달하는 화살이 오백여 기마를 향해 활공했다.

 “화살 공격에 대비하라!”

 젤러 남작이 우렁찬 명령에 오백여 기사들의 망토가 일제히 펄럭였다.

 기사들의 온몸을 완벽하게 가린 망토는 말 머리까지 덮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피피핑! 피핑!

 허공을 활공한 화살이 폭풍 속의 소나기처럼 거칠게 내리꽂혔다. 하나같이 촉이 날카로운 실제 화살들이었다.

 하지만 화살들은 기사들의 망토를 꿰뚫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망토 속에 망사처럼 얽혀 있는 철사 때문이다.

 화살세례가 지나가자 500여 기사단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기사단 부단장인 젤러 남작은 한 명의 낙오자도 발생하지 않게 한 망토의 효능에 또 한 번 감탄했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화살비 속에서도 견딜 수 있다 하여 폭풍 망토라지?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참 잘 지었단 말이야! 하하!’

 

 마커스의 상점 천막은 오늘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도대체 내가 주문한 망토는 언제 된단 말인가!”

 “폭풍 망토! 폭풍 망토를 달란 말일세!”

 천막에 모인 향사들은 대략 백여 명. 그들은 하나같이 폭풍 망토란 단어를 부르짖으며 마커스를 닥달했다.

 “아이고 나으리들. 제 사정도 좀 봐 주십시오! 지금 고위 귀족님들의 주문도 밀려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열심히 만들고 있으니 며칠 지나지 않아 나으리들께도 망토를 전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향사들에게 사정을 하는 마커스. 겉으로는 울상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파안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니! 꽤나 인기를 끌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정말 생각 밖이로구나! 크하하하!’

 “험험험! 길을 비켜라!”

 아우성치는 향사들 너머로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본 향사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열었다. 향사들이 비켜 준 길을 통해 쥐상의 귀족 한 명이 느긋하게 걸어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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