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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풍운제일보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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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고 말았다!
눈이 점점 커지고 목이 말라 온다.
바람소리가 들리고 땀내음이 풍긴다.
얼핏얼핏 시야 속에서 핏방울이 튕겨오른다.
씨이잉- 칼바람 뒤에는 쪼개진 시신들.
그 뒤를 좇는 무심한 눈빛들.

무릎까지 빠지는 설원을 걸을 땐 경공을 익히지 못한 주인공이 안타깝고
활활 타오르는 만금루에서 뛰어오를 때는 내 엉덩이가 후끈해진다.

요즘의 지루한 무협 속에서 화들짝 깨어나도록
사나이의 땀내음과 칼바람을 온몸 가득 느끼게 해준다.
앞으로도 계속될 칼바람과 더욱 짙어질 피내음에 적지않게 흥분하고
또한 기대하는 것은 이미 풍운제일루에 전염되었음인가?

 
제 16 화
작성일 : 16-07-22 14:26     조회 : 593     추천 : 0     분량 : 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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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 소저의 말이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의 도법과 냉 소저의 지법이 서로 합쳐진다면 천하제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두고 노신이 궁주님을 욕보이려는 속셈에서 한 말이라고 따진다면 그것은 틀렸습니다.”

 “흥!”

 냉 소저의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교 노인은 이제 그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만일 그가 냉 소저와 적이 되어 싸운다면 그때는 서로의 장점이 약점이 되어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는 궁극적으로 양이 음을 누르고 화기(火氣)가 한기(寒氣)를 물리치는 것이니 결국은 그의 도법이 냉 소저의 지법에 대한 천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뭐라고요? 흥! 교 노인이 과연 내 사부님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어디 두고 보겠어요!”

 노인의 말을 듣던 냉 소저가 분한지 씩씩거리며 뾰족하게 말했다.

 그러나 자신이 할 말을 다한 교 노인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시치미를 뗄 뿐이었다.

 비단 휘장을 두르고 있는 가마는 조금 전 두위가 칼을 휘둘러 산산조각 낸 그 아름드리 나무둥치 앞에 놓여 있었다.

 가마 주위에는 여섯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굳은 듯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흑의에 흑립(黑笠)을 쓰고 역시 검은색의 피풍(披風)을 걸치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돌아가자.”

 가마 안의 여인이 낮게 말했다. 곧 사내들이 가마를 둘러쌌다.

 네 명이 앞뒤에서 가볍게 그것을 들어 올리자 용두괴장을 짚은 노파와 교 노인이 앞장섰고, 매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여전히 몽롱한 눈을 한 채 가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그들의 모습이 거친 산비탈을 날듯이 가볍게 넘어 사라졌다.

 

 “언니, 그는 끝내 내 이름조차 묻지 않고 갔어요. 아마도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나 봐요.”

 가마 안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을 만했다. 투정을 부리듯 말하는 여인은 며칠 전 흑룡보의 폐허에서 두위에게 살인을 의뢰하던 그 여인이었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흥, 흥! 하고 연거푸 코웃음을 쳐대던 여인이 곁에 앉아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는 궁장(宮裝)여인의 무릎을 꼬집었다.

 “이제는 언니까지 나를 무시하는 거예요?”

 궁장여인이 살짝 이마를 찌푸리며 얼굴을 들었다. 이십 대 후반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눈 속에 수심(愁心)이 깃들어 있어서 그것이 그녀의 농염한 아름다움에 처연함을 더해주어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보보야, 너는 그렇게 너무 앞질러 생각할 필요 없다.”

 보보(寶珤)라고 불린 여인이 샐쭉하니 흘겨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언니가 가득 차 있는 게 분명해요. 언니의 마음속도 역시 그렇겠죠? 그러면서 그때 왜 나를 그에게 보낸 건지 알 수 없어요. 언니가 직접 가서 그를 만났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흥! 언니는 나를 놀리려고 했던 게 분명해요.”

 “아, 나는, 나는…… 이제 그를 만날 면목이 없단다.”

 궁장의 여인은 두위가 늘 가슴속에 품고 있는 그 수건의 주인이자 흑룡보주의 일점혈육인 채영경(菜玲璥)이었다.

 채영경의 눈가가 젖어드는 걸 본 냉보보(冷寶珤)가 더 이상 그녀에게 트집 잡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눈길로 빤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손을 잡았다.

 “언니, 그렇게 상심할 것 없어요. 소매(少妹)가 중간에 나서서 다리를 놓아줄게요. 월하노인(月下老人), 아니, 노파(老婆)라고 해야 하나? 에그 참, 그것도 아니네. 나는 이렇게 젊고 예쁜데 징그럽게 노파라니…… 옳지, 월하소저(月下小姐)라고 하면 되겠군. 흠, 월하소저라…… 호호호, 내가 생각해도 좀 징그럽다. 하지만 그게 다 언니를 위한 일인데 뭐 어때. 그렇지 않아요? 암튼 소매가 그 월하소저의 역할을 다해서 두 사람이 맺어질 수 있도록 해줄 테니 나중에 중매쟁이한테 준다는 석 잔 술을 잊으면 안 돼요?”

 냉보보의 붉은 입술이 쉴 새 없이 나풀거렸다.

 그녀가 자신을 위로해 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잘 아는 채영경은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어쩜, 언니의 웃는 모습은 내가 보아도 가슴이 설렌다니까. 그러니 사내들이 그것을 보면 어떻겠어. 역시 언니는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게 좋겠어요.”

 냉보보가 손뼉을 치며 더욱 수다를 떨어댔다.

 “동생, 그만 해. 자꾸 그렇게 놀리면 나중에 못생긴 신랑을 안겨줄 테야.”

 “어머머, 기가 막혀! 나는 누구를 위해서 매파(媒婆) 노릇도 마다하지 않을 참인데 그 누구는 보답으로 거북이 같은 신랑을 얻게 해주겠다니. 세상에 이렇게 못된 언니가 또 어디 있담!”

 눈을 흘기며 펄펄 뛰는 보보의 기세에 영경은 드디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성급한 불장난이었을까?’

 흔들리는 가마에 기대고 앉아서 영경은 가만히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실컷 수다를 떨어댄 끝에 피곤했던지 보보는 무릎을 베고 쪼그려 잠이 들었다.

 그녀의 치렁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영경은 자꾸 그날 밤을 생각했다.

 

 “소, 소저…… 내가 뭘 잘못한 거 아니오?”

 단단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서 온몸으로 그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 영경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슴에 얼룩지는 그 눈물이 두위를 당황하게 했으리라. 그가 영경의 맨 등을 쓸어주던 손을 멈추고 더듬더듬 말했다.

 영경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긴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일렁여 두위의 가슴을 덮었다. 간지러웠던지 두위가 몸을 움찔거렸다.

 한바탕의 격정이 지난 뒤였다. 몸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낯선 아픔이 영경을 꼼짝하지 못하도록 붙들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자기 자신도 무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런 묘한 감정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서럽기도 하면서 달콤하고, 두려운가 하면 아쉽고, 또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운 그런 것이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은 열여덟 해를 살아오면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영경은 처음 달거리를 하던 때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때의 그 감정과도 매우 흡사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우리 멀리 달아날까?”

 눈물을 훔친 그녀가 젖은 손으로 두위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속삭였다. 두위의 가슴이 흠칫하고 굳었다.

 “아버지는?”

 “바보, 멍청이!”

 불쑥 아버지를 말하는 그 한마디에 영경의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녀의 머리 속에도 부친의 근엄한 얼굴이 가득 떠올랐던 것이다.

 차갑게 욕하며 뺨을 때렸다. 두위가 얼떨떨하여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두위의 가슴에서 몸을 일으켜 앉은 그녀의 부드러운 어깨와 봉긋 솟은 가슴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쳐다보지 마!”

 그녀가 옷가지를 주워 가슴을 가리며 작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상체를 일으켜 앉던 두위가 움찔하고는 질끈 눈을 감았다.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그의 남성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영경이 얼굴을 붉히고 외면했다. 몸속 깊은 곳에서 다시 익숙하지 않은 고통이 느껴졌다.

 옷을 입기 위해 몸을 일으키던 그녀가 비틀거렸다. 가벼운 현기증이기도 했고, 다리에 힘이 남아 있지 않은 탓이기도 했다.

 옷을 찾아 걸치는 그녀의 손가락들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흐린 달빛이 숲을 더욱 어둡게 해주고 있었다. 풍천강(風仟江)을 건너온 바람이 아득한 물소리와 함께 물비린내를 던져 주고 스쳐 갔다.

 기대고 있는 노송 둥치에서 우우, 하고 우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개똥벌레 무리가 바람에 놀라 산산이 흩어지며 어두운 허공 가득 눈부신 별빛을 뿌렸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떠내려가는 송림이었다.

 두위는 채영경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고, 그녀는 손을 들어 개똥벌레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흔아홉을 세고 더는 세지 못했다. 백까지 세면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 시집가.”

 “무어?”

 두위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이 어둠 속에서 심하게 흔들렸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지.”

 지난봄부터 그녀의 혼례 소식은 보 안에 두루 퍼지고 있었다. 장정들은 결국 보주가 외인에게 그녀를 내준다는 것에 풀이 죽어 있었다.

 더구나 이처럼 갑자기 그 일이 결정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보주가 내린 결정이었다. 누구도 그것을 되돌릴 수 없었다.

 “언제? 어디로?”

 “닷새 뒤야. 귀주(貴州).”

 “귀주…… 닷새 뒤라고?”

 두위의 음성이 심하게 떨려 나왔다. 영경이 가만히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너무 멀어.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거야.”

 그녀는 어둠 속에서 두위의 입술이 악물려 있는 걸 보았다. 그 눈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가, 가지 마…….”

 “바보.”

 영경이 그의 얼굴을 와락 끌어당겼다. 떨고 있는 그의 입술에 입술을 비비면서 그녀는 소리없이 울었다.

 버스럭거리며 늑대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번쩍이는 눈과 사나움을 감춘 숨소리. 그러나 영경도 두위도 그것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두위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영경의 입을 막아버렸다. 숨 쉬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영경은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팔에 더욱 힘을 주어 두위의 목을 끌어당겼다.

 두위의 목을 안고 그의 입술에 입술을 붙이고 조금씩 넘어졌다. 등이 차가운 풀 위에 닿고 돌멩이가 뼈를 찔렀어도 그녀는 두위의 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늑대의 으르렁거림이 더 가까워졌다. 그놈의 눈이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도 영경은 두위를 묶어놓고 있는 팔을 풀지 않았다.

 두위의 손이 거칠게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비로소 그의 불 같은 입술에서 풀려난 영경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눈을 크게 뜨고 이마 위로 불어가는 바람과 그 너머에서 깜박거리는 별들을 보았다. 풀무질을 하듯 거친 두위의 숨결이 목덜미를 달구어놓고 있었다.

 “가… 지… 마…….”

 탁탁 끊기는 그의 말이 수십 번도 더 넘게 그녀의 귓속에 박혀들었다. 그의 어깨와 등을 부둥켜안고 영경은 그래서 또 울었다.

 

 영경은 첫 정을 나눈 후 지난 두 달 새 두위에게 듬뿍 정이 들어버려서 이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두위를 눈여겨본 것은 스스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던 무렵부터였다.

 그를 보면 잘못한 것 없는데도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볼이 붉어졌다.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함께 봄 꽃놀이를 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두위의 모습을 보기만 했을 뿐 말을 걸어볼 수도, 손을 잡아볼 수도 없었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근엄한 시선과 유모며 몸종들의 지나친 보살핌 밖으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었던 때문이고,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는 그와 자신과의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신분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던 거리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어느 날 아버지가 불쑥 그를 청풍전(淸風殿)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아버지와 자신만의 공간에 또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때 영경은 그것을 기뻐할 줄 몰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위의 시선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청풍전을 비운 틈을 타 말을 붙이기 위해 다가갔던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두위의 눈빛에서 보(堡) 내의 여느 장정들과 다름없는 복종과 공경의 마음을 보았다.

 그녀가 바라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실망했고 더 화가 났다.

 매섭게 흘겨보는 눈길을 받은 두위는 고개를 떨구고 쩔쩔매기만 했을 뿐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영경의 마음속에 억울함과 분노를 더해주었다. 마치 무시당한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다음부터 영경은 두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더욱 쌀쌀맞아진 얼굴과 눈길로 대신해졌고, 공연한 심술로 왜곡되어 표현되었다. 두위에게 그녀는 보 내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아가씨였을 것이다.

 그렇게 석 달을 보내는 동안 영경은 자신이 두위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두위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그들의 방법이 잘못되어 있었을 뿐, 눈길에서 눈길로 전해지고 읽어지는 마음은 같았던 것이다.

 억눌려 있던 그 불길이 터져 나오는 데는 영경이 급히 갈겨 쓴 쪽지 한 장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런 용기를 내게 해준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의 부친이자 흑룡보주이면서 당대 최고의 도객(刀客)으로 명성이 드높았던 열화천도(熱火千刀) 채군걸(寀君傑)이었다.

 “너는 두 달 뒤 귀주(貴州)에 있는 옥수궁(玉樹宮)의 소궁주(小宮主)와 혼약한다.”

 아버지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후회하지 않아.”

 영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얕은 잠결에 그녀의 나직한 중얼거림을 들었던지 냉보보가 눈을 비비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뭘?”

 “나의 선택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핏, 언니는 혼자서 생각하고 중얼거리는 그 버릇을 고쳐야 해. 그러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언니더러 미친 여자라고 할 거야.”

 영경이 곱게 눈을 흘기는 냉보보의 얼굴을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너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지?”

 “물론이에요. 언니가 후회하지 않는데 내가 그럴 리가 있겠어요? 사문의 복수는 곧 가문의 복수나 같아요. 반드시 사부님의 한을 풀어드릴 거예요.”

 “그래야지.”

 어느새 영경의 얼굴에도, 보보의 얼굴에도 결연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

 

 두위는 내내 말이 없었다.

 곁에 따라 걷고 있는 마석산도 그랬으므로 그들은 마치 서로 싸워서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다.

 두위는 줄곧 초막 안에서 만났던 여인, 냉보보가 했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백운장주(白雲莊主) 이릉운(李凌雲)의 목숨을 의뢰했다.

 두위는 이릉운이라는 이름을 지난 십 년 동안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삼십 년 전부터 그는 호북무림의 세력을 좌지우지하던 막강한 고수였으며, 지금도 그가 세운 백운장은 호북무림에서 성지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그는 또한 군웅성을 탄생시킨 일백 영웅들 중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절대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두위에게 잊을 수 없는 원한을 가져다 준 자였다. 그가 바로 십 년 전 흑룡보를 괴멸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물론 무존(武尊) 대무광(戴武光)의 명을 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가 대무광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두위는 어느 쪽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가 지금은 군웅성에 편입된 일단의 고수들을 이끌고 삼우각을 넘어와 흑룡보를 피로 씻은 장본인이라는 것,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일천 원혼들 안에는 자신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더욱 중요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나는 반드시 해내고 말 것이다.’

 두위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다짐해 주었다.

 흑룡보의 괴멸을 끝으로 일백 영웅들의 강호 정벌은 끝났다. 그들은 자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자들은 그것이 개인이든 문파든 가리지 않고 씨를 말려 버렸다.

 그 피의 세월이 장장 십 년 동안이나 강호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던 것이 흑룡보였다.

 당시 두위는 아직 그런 것들에 대하여 알고 이해할 만큼 철이 들지 못했었다. 그의 나이 불과 열일곱 살이었던 것이다.

 보주로부터 받은 선풍삼도주해서(旋風三刀註解書)를 들고 청태산(靑太山) 금쇄곡(禽鎖谷)에서 삼 년간의 수련을 마치고 나왔을 때 흑룡보는 이미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되어 있었다.

 두위는 피눈물을 삼키며 이를 갈았다.

 어느새 열화천도(熱火千刀) 채군걸(寀君傑)은 혈마존(血魔尊)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를 강호 십대고수 중 제일도객으로 불리게 했던 선풍삼도(旋風三刀) 또한 혈마삼도(血魔三刀)라는 끔찍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건 이미 고인이 된 사람에 대한 무서운 음해였고 모독이었다. 그러나 두위는 세상을 향해 한마디도 항변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보주의 선풍삼도를 물려받았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곧 소혈마(小血魔)로 낙인찍혀 군웅성에서 나온 추살대의 사냥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눈치 챈 두위는 철저히 자신을 속이고 낭객(浪客)으로 강호의 음지를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귀역에 흘러들었다. 이 년 동안 강호를 떠돌았으니 귀역에 몸 담은 지 다섯 해가 된 것이다.

 ‘풍 노인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가 원하는 것도 나와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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