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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풍운제일보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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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고 말았다!
눈이 점점 커지고 목이 말라 온다.
바람소리가 들리고 땀내음이 풍긴다.
얼핏얼핏 시야 속에서 핏방울이 튕겨오른다.
씨이잉- 칼바람 뒤에는 쪼개진 시신들.
그 뒤를 좇는 무심한 눈빛들.

무릎까지 빠지는 설원을 걸을 땐 경공을 익히지 못한 주인공이 안타깝고
활활 타오르는 만금루에서 뛰어오를 때는 내 엉덩이가 후끈해진다.

요즘의 지루한 무협 속에서 화들짝 깨어나도록
사나이의 땀내음과 칼바람을 온몸 가득 느끼게 해준다.
앞으로도 계속될 칼바람과 더욱 짙어질 피내음에 적지않게 흥분하고
또한 기대하는 것은 이미 풍운제일루에 전염되었음인가?

 
제 12 화
작성일 : 16-07-22 14:22     조회 : 742     추천 : 0     분량 : 8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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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놈뿐만 아니라 너 혼자서 다 해라. 번풍과 나는 여기 앉아서 구경이나 하지.”

 막고성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나 번풍의 얼굴은 왠지 밝지가 못했다.

 그는 막고성이 호두개처럼 산적의 무리들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두개는 원래 호들갑스럽고 허풍을 떠는 경향이 있는 자였으니 그렇다고 쳐도 막고성은 신중한 자였다. 그런 그마저 들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칼날 위에 목숨을 걸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방심은 가장 큰 적이었다.

 번풍과 같은 사람들은 오직 이기기 위해서만 싸움을 해야 했다. 명예나 호승심 따위는 사치인 것이다.

 싸워서 이겨야만 돈을 받을 수 있고, 그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온다!”

 재미있다는 듯 막고성이 앉아 있던 바위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목책의 문이 삐죽 열리더니 그리로 망루 위에서 호통을 쳤던 자가 커다란 칼을 휘두르며 달려나오고 있었다.

 풀어헤쳐진 옷자락 사이로 시커먼 털로 뒤덮인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난 채였다.

 쿵쿵거리며 달려오는 기세가 제법 사나웠다. 체구도 듬직한 것이 과연 녹록치 않아 보이는 자였다.

 “옳지,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구나!”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우르르 달려온 자가 번풍과 막고성은 본 척 만 척하고 오직 호두개를 향해 곧장 뛰어들었다.

 그의 칼이 곁에서 흰빛을 뿌리며 떨어지고 있었지만 번풍의 눈길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는 활짝 열리고 있는 목책의 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제법 무장을 갖춘 십여 명의 장한들이 살기등등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눈앞에서 칼을 휘둘러 대고 있는 자를 선봉으로 삼은 모양이었다.

 “이크, 무섭다!”

 호두개가 호들갑을 떨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사내의 파풍도(破風刀)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그림자를 끊고 지나갔다.

 그들은 산적들을 토벌하기 위해 온 관병이 아니었다. 적당히 겁을 주어서 창고를 열게 하고 은자를 빼앗아가면 그뿐인 것이다.

 호두개는 굳이 살인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신의 솜씨를 마음껏 뽐내서 놈들이 감탄하고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번풍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자들이라도 열 명, 백 명이 무리지어 있으면 결코 가볍게 여길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날이 시퍼런 도검을 들고 있는 자들이라면 더욱 그랬다. 고수를 상대해 싸우는 것보다 그런 자들이 더 위험한 법이었다.

 들개가 무리지어 있으면 호랑이도 피해 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번풍은 자신의 결정이 성급하고 위험한 것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언덕에 올라서서 목책을 보았을 때부터 품었던 생각이었는데, 이제 그곳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자들을 보자 더 깊은 위기감이 그를 긴장하게 했다.

 그것이 그가 내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어이구, 좀 살살 해라. 나도 숨 좀 쉬면서 하자. 이크, 큰일 날 뻔했구나. 아깝다. 조금만 더 빠르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호두개는 눈앞의 상대를 희롱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는지 여전히 호들갑을 떨기만 할 뿐 조금도 진중한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막고성은 이제 더 이상 호두개의 놀이를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에도 목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자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게 여겨졌던 것이다.

 “되겠어?”

 막고성이 비로소 긴장을 담은 얼굴로 물었다. 그를 한 번 돌아본 번풍이 대답 대신 기대고 있던 바위를 밀고 몸을 바로 일으켜 세웠다. 그새 산적의 무리들은 오십여 보 앞까지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다시 십여 명의 산적들이 뛰어 나오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갑주를 갖추어 입고 말을 탄 자 한 명이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번풍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생긴 것들로 보아서는 영락없이 산속에 틀어박혀 되는대로 살아가는 무법자의 무리들이었지만 하는 짓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을 이 새벽에 전갈을 받고 급히 달려나온 자들의 수가 스무 명이나 된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밤새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이런 일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야간 대기조일 것이다.

 그리고 경계 병력과는 별도로 그런 대기조의 인원을 스무 명이나 뽑아 운용할 정도라면 적어도 산채 안에는 이백 명이 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게다가 그들이 군영(軍營)과 같이 잘 통제되고 있다면 더 무서운 일이었다.

 “안 되겠다.”

 묵묵히 바라보고 있기만 하던 번풍이 바위를 밀고 나섰다. 그의 손은 어느새 등 뒤로 솟아 나와 있는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그새 코앞에까지 몰려온 자들 중 한 명이 온 산이 쩌르릉 울리는 기합 소리와 함께 장창을 찔러오고 있었다.

 “이얍!”

 번풍의 입에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가 바위를 박차고 훌쩍 뛰어올랐다.

 동시에 그의 어깨 너머에서 흰 칼 빛이 뿜어졌다.

 “으악!”

 최초의 비명이 터졌다. 번풍을 노리고 첫 창을 내질렀던 자가 동강난 창대를 움켜쥔 채 쓰러졌다.

 반쯤 벌어진 어깨뼈 사이로 선혈이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번풍의 움직임은 한줄기 질풍과 같았다. 상대를 가볍게 찍어 넘긴 그의 쌍수도(雙手刀)가 번쩍이는 곳마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선혈이 뿌려졌다.

 긴 칼을 두 손으로 굳게 움켜쥔 채 한쪽만 드러나 있는 눈을 번쩍이며 달려드는 번풍의 기세는 단번에 산적들을 압도했다.

 적들의 중앙을 바라보고 똑바로 달려나가는 그의 발끝에서 이슬방울이 퉁겨져 안개처럼 흩어졌다.

 “으앗!”

 “흩어져라!”

 비명과 고함 소리가 동시에 깊은 산중의 새벽을 뒤흔들었다. 번풍의 칼에 다시 그를 가로막던 자의 목이 떨어지자 그것을 본 우두머리가 목청껏 외친 것이다.

 “으악!”

 번풍과는 다른 곳에서 또 한 차례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막고성의 단창에 가슴이 꿰뚫린 자가 터뜨린 소리였다.

 번풍 못지않게 후리후리한 키를 가지고 있는 마른 몸집의 막고성 또한 눈부시게 움직이고 있었다.

 두 자루의 단창을 엇갈려 뻗고 후려치는 곳마다 매서운 경기가 쏟아져 나가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여기도 있다!”

 훌쩍 뛰어 물러선 호두개의 손에는 어느덧 유성추가 들려 있었는데, 빼곡이 가시가 돋아나 있는 그것이 파풍도를 휘두르던 자의 뇌수와 피로 흠뻑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비로소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호두개도 장난기를 버리고 곧장 번풍의 좌측에서 유성추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세 명의 사내들이 저마다 힘을 다해 쳐들어오자 기세등등하던 산적들의 선봉이 곧 무너졌다.

 다시 막고성과 호두개의 손에 두 명의 목숨이 끊어졌다. 번풍의 칼도 크게 휘둘려 떨어지며 또 한 놈의 목을 날려 버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여섯 명의 목숨을 잃은 산적들이 우왕좌왕할 때 그 뒤를 받치며 뛰어든 후발대 열 명이 함성을 지르며 밀고 들어왔다.

 앞서 허둥거리며 달려나왔던 열 명과는 기세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뭐야? 겨우 세 놈이었냐?”

 말을 타고 있던 자가 어이없다는 듯 번풍 등을 바라보더니 칼을 뽑아 허공에 휘둘렀다.

 “어쨌든 살려둘 수 없다! 쳐라!”

 다섯 명의 창수가 장창을 내세운 채 밀고 들어왔고, 도검을 든 자들이 함성을 질러 기세를 올리며 뒤따랐다. 번풍 등은 위협적으로 쇄도해 들어오는 장창을 쳐내며 물러서기에 바빴다.

 갑주를 받쳐 입은 자가 뒤에서 말에 올라앉은 채 칼을 휘둘러 소리 지르며 졸개들을 독려했다.

 “들어간다!”

 몇 번 칼을 휘둘러 물리치며 그들의 공격법을 눈여겨본 번풍이 막고성과 호두개를 돌아보며 버럭 소리쳤다.

 이렇게 더 시간을 끌어서는 위험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이건 보통의 산적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어서 그것이 그를 초조하게 하기도 했다.

 “좋아, 해보자구!”

 번풍의 고함을 들은 막고성과 호두개가 마주 소리쳐서 서로를 격려했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이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빨라졌다.

 좌우로 벌려 섰던 그들이 한곳에 모이더니 서로 등을 떠밀 듯 두려움없이 장창을 마주 보고 달려나갔다.

 마치 불쑥 뻗어내는 창날에 스스로 가슴을 찔러 넣으려는 듯했다.

 “이 하찮은 산적 놈들이 감히!”

 호두개의 유성추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것이 앞서 찔러온 창을 휘감아 흔들자 뒤따라온 막고성이 두 자루의 단창을 힘껏 내저어 좌우에서 찔러오는 창을 밀어냈다.

 틈이 벌어졌다. 다음에는 쌍수도를 쥔 채 뒤따라 내달려 온 번풍의 차례였다.

 “이야압!”

 그의 우렁찬 기합 소리가 허공에 쩌르릉 울렸다. 막고성의 등을 밟고 뛰어오른 번풍이 단번에 창수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후진(後陣)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직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휘두른 그의 대도(大刀)가 칼을 쥐고 달려나와 가로막던 자의 머리통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뼈가 깎이는 끔찍한 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한 놈의 검을 퉁겨낸 번풍의 칼이 탄력을 받아 휘돌았다.

 씨이잉!

 좁은 공간을 치고 뻗어 나가는 그의 칼끝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났다. 왼쪽에서 겁없이 달려들던 자의 가슴이 쩍 벌어졌다.

 붉게 충혈된 번풍의 눈은 이미 그자를 떠나 다른 상대를 찾았다. 머리 위에서 힘껏 내려치는 칼이 또 한 놈의 정수리에 깊이 박혀 들어갔다.

 “저, 저놈이!”

 양 떼 속에 뛰어든 성난 늑대처럼 좌충우돌하며 수하들을 찍어 넘기는 번풍의 칼을 보던 마상의 두목이 이를 갈았다.

 그때쯤에는 뒤에서 벌어진 살육에 당황한 창수들의 장창을 걷어내며 막고성과 호두개도 난전(亂戰)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이렇게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게 뒤섞여 버리자 위협적이던 창수들의 장창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막고성의 단창이 또 한 놈의 가슴을 꿰뚫어 버렸고, 호두개의 유성추도 질세라 한 놈의 머리통을 박처럼 바수어놓았다.

 번풍의 빠른 발은 곧장 마상의 두령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휘파람 소리를 내며 떨어진 그의 칼날 아래 앞을 가로막던 자의 어깨가 가슴까지 길게 갈라져 벌어졌다.

 흠뻑 피를 뒤집어쓴 번풍의 모습은 이제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이놈!”

 그의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말을 놀라게 했다. 두 발을 번쩍 들어 올리며 울부짖는 그놈의 넓은 가슴이 시야를 온통 가렸다.

 번풍의 칼이 서슴없이 그것을 찔러 버렸다. 말이 내뱉는 처량한 울음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앞으로 무너지는 말에 깔려 버리는 듯하던 번풍이 바람을 맞은 가랑잎처럼 가볍게 몸을 틀어 빠져나왔다.

 그의 칼이 당황하여 몸을 바로 잡기 위해 애쓰는 자를 갑주와 함께 두 쪽으로 갈라 버렸다.

 밑에서 위로 쳐 올린 한 번의 칼질이었다. 바람 소리가 허공에 걸릴 새도 없었다.

 눈부시게 빠른 그 일격이 놈의 아랫배에서 가슴에 걸쳐 자로 그은 듯 반듯하게 치고 나간 것이다.

 번풍의 칼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날을 번쩍이며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말과 함께 쓰러지는 자의 부릅뜬 눈이 그 요기 서린 칼날에 멎어 있었다.

 

 “쳇, 이렇게 부끄러운 꼴을 당하다니. 이제는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려고 하지 않을 거다. 빌어먹을, 고향으로 돌아가서 땅이나 파고 살아야 할까 보다.”

 호두개의 투덜거림은 지칠 줄을 몰랐다. 번풍과 막고성은 묵묵히 그의 투덜거림을 듣고만 있었다.

 호두개가 분해하는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깟 산적 놈들 하나 당하지 못하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는 꼴을 보였으니…… 정말 살맛이 안 난다.”

 힐끔 번풍을 바라본 호두개가 답답하다는 듯 다가앉으며 다그쳤다.

 “대체 왜 그런 거야? 놈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지리멸렬했잖아. 그대로 뚫고 산채 안으로 쳐들어갔으면 되는 건데 왜 다 이겨놓고 갑자기 뒤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다가 내빼고 만 거냐고!”

 “그만 좀 해라!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어린애 같단 말이냐!”

 보다 못한 막고성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왜? 내 말이 틀렸냐? 너도 똑같아! 번풍이 튀기 무섭게 엄마 쫓아가는 염소 새끼모양으로 맴맴거리며 달아났잖아! 그 바람에 나만 죽을 뻔했다!”

 “멍청한 새끼!”

 여간해서는 화를 내거나 욕을 할 줄 모르는 막고성이 답답해 미치겠다는 얼굴로 제 가슴을 두드리다가 그렇게 내뱉었다.

 그 의외의 반응에 호두개가 어리둥절해서 입을 닫았다.

 “그렇게 원통하고 절통하면 지금이라도 네놈 혼자서 다시 찾아가 봐라!”

 막고성이 창밖을 손짓하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그쯤 해둬. 모두 내가 성급하게 생각한 때문이다.”

 얼굴을 감고 있는 붕대를 풀어내던 번풍이 비로소 한마디 했다.

 “그놈들은 예사 산적 나부랭이가 아니었다. 무언가 사연을 감추고 있는 놈들이 분명해.”

 “흥! 사연은 무슨 얼어죽을 사연. 세상에 숨긴 사연 한두 가지 없는 놈이 어디 있어?”

 여전히 억울함이 풀리지 않은 호두개였지만 슬며시 꼬리를 내리는 말투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지나간 일을 가지고 계속 속 끓여봐야 저만 손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들은 형주산(炯珠山)의 산채를 터는 일에 실패하고 나서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목책 앞에서 스무 명이나 되는 놈들을 마음껏 혼내주었지만 번풍은 산채의 문을 박차고 뛰어드는 대신 냉큼 몸을 돌려 칼을 끌며 달아났던 것이다. 그 뒤를 기다렸다는 듯 막고성이 따랐다.

 의외의 일에 어? 어? 하고 당황하던 호두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아직 살아 있던 대여섯 놈이 일제히 그런 호두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료들의 참혹한 죽음을 목전에서 지켜보았으면서도 두려움에 떨기는커녕 더욱 큰 적의와 분노로 미친 듯한 놈들이었다.

 호두개는 그들에게 에워싸인 채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단숨에 형주산을 달려 내려온 번풍 등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산 아래 마을의 허름한 주막에 들었다.

 수중에 남아 있는 은자 석 냥으로는 오늘 하루를 버티기에도 버거웠다. 좋은 술과 안주와 잠자리는 꿈꾸어 볼 수도 없었다.

 소금에 절인 야채와 삶은 돼지고기 몇 점으로 쓰디쓴 화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불어터진 소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랜 그들은 주막 뒤편 창고 곁에 있는 골방에 처박혀 뒹굴거렸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골방은 사방 벽 모서리마다 거미줄이 휘장처럼 늘어져 있고, 퀴퀴한 곰팡내와 쥐똥 지린내가 배어 있는 끔찍한 곳이었다.

 하지만 찬 이슬을 맞으며 풀숲에 누워 밤을 새우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렇게 위안을 삼고 있는데, 견디지 못한 호두개의 투덜거림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수상한 놈들이다. 오늘은 이걸로 참고 언제 다시 한 번 찾아가자.”

 번풍이 그런 말로 호두개를 달랬다. 그리고 다시 찾아갈 때는 이번처럼 어리석게 굴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숨어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고를 털고 산채에 불을 질러 버리지 않고는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었다.

 한 번 당한 일은 두고두고 잊지 않고 반드시 앙갚음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진 마음 탓이었다.

 번풍의 그런 성미를 잘 아는 호두개는 더 이상 그 일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막고성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루의 피곤에 급하게 마신 술기운까지 올라와 온몸이 나른했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되는대로 쓰러져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얼핏 잠이 들려는데 밖에서 왁자하니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뭔가 이상한데?’

 억지로 눈까풀을 밀어 올리려고 애쓰던 번풍의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술에 취하고 피곤해 쓰러졌어도 이처럼 맥이 풀려서 늘어져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늘 긴장하고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물먹은 솜처럼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아 가기만 했다.

 애써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호두개와 막고성은 이미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바깥의 소란에는 아랑곳없이 우렁차게 코 고는 소리가 자꾸만 아득해져 가는 번풍의 귓속에 먼 개울물 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놈이다.’

 번풍의 머리 속에 돼지처럼 생긴 주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들을 바라보던 놈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는 것이 비로소 생각났다.

 그놈이 농간을 부린 것이리라. 그런 번풍의 생각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제법 매끄럽게 생긴 놈과 함께 주루의 그 돼지 같은 주인 놈이 들어온 것이다.

 “헤헤, 다들 얌전해졌는뎁쇼?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아주 알맞게 저려졌습니다요.”

 주인이 손을 비비며 사내에게 한껏 아양을 떨었다. 그 꼴이 역겹기 짝이 없었지만 번풍은 입을 열어 말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좋아, 바로 이놈들이다. 아주 잘했어. 돌아가면 상을 내리도록 보고하마.”

 뒤따라 들어온, 얼굴이 박박 얽은 험상궂은 사내가 호두개의 옆구리를 툭툭 차며 말했다. 주인의 튀어나온 입이 곧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번풍은 이놈들이 산채에서 내려온 놈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 한 번 자신의 부주의했음을 탓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죽일 놈들, 감히 형주산(炯珠山)의 대왕님들을 얕보다니. 네놈들의 살을 저며 육젓을 담근 다음에 두고두고 술안주로 삼을 테다.”

 사내가 이를 갈며 으르렁거리더니 밖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묶어라! 산채로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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