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밖으로 나온 용진이 경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2번 정도 신호음이 가더니 수화기 넘어로 경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팀장님"
"..경일아"
"예?"
"오재희 체포영장 신청하고 있냐?"
"예. 거의 다 끝나가구요, 곧 검찰에 수사기록 싹 보낼겁니다"
"죄명은 뭘로 달았는데?"
잠시 뜸을 들이던 경일이 말한다.
"...우선 장혜진씨에 대해서는 협박이랑 1)정통법 위반으로 달아놨습니다. 굳이 영장 받아서 통신사에 오재희가 보낸 협박 문자 내역 따 볼 필요도 없이 장혜진씨 휴대폰 확인하니까 쫙 뜨더라구요. 전부 캡처해서 수사기록에 첨부해놨구요"
"그리고?"
"국과수에서 감정 중인 유골이 민경우의 것으로 확인된다면... 민경우에 대한 살인죄까지 똘똘 말아버릴 생각입니다"
"살인죄 2)기소(起訴) 되겠어?"
용진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경일이 대답한다.
"그래서 확실히 하려고 국과수 감정결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류 회신 받는 대로 기록에 같이 첨부하려구요"
"다른건 다 확인됐고?"
"정황상으로 확인되는 증거는 모조리 첨부했습니다. 영장 집행해서 오재희가 민경우한테 수 백 차례에 걸쳐 협박 문자 보낸 것 확인했고, 민경우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오재희라는 것,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통화 이후 민경우가 오재희에게 '어디냐?'라고 문자를 보낸 내역도 확인되는 것으로 봤을 때 오재희와 민경우는 실제 만났던 것으로 추정되고, 그 이후 민경우는 행방불명"
"...3)수사보고서는?"
"물론 다 쳐서 기록에 첨부해놨습니다. 장혜진 참고인진술조서까지 싹!"
"혼자 고생했겠는데"
용진의 말에 경일이 씨익 웃었다.
"부정은 못하겠습니다. 준혁이가 더 걱정이네요. 그 꼴통놈 사고는 치지 않을지..."
"그래도 초장부터 징계받은 놈 치고 생각은 있는 놈이니까 그 쪽은 신경쓰지 말고. 경일아, 조금 더 고생해야겠다"
"예?"
"오재희 체포영장에 죄명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경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한다.
"민채린양에 대한 상해치사죄"
"...!"
경일이 제법 놀랐는지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말이 없자 용진이 한숨을 쉬며 그 동안의 일을 설명한다.
"정미숙이 진술조서랑 수사기록 보내줄테니까 같이 첨부..."
쾅!
용진이 말하던 중 수화기 넘어로 무언가 부숴지는 소리가 들리자 용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흥분하지마라. 거기 4)타서 아니냐? 부수면 물어줘야해"
"....팀장님"
"왜?"
"오재희 그년, 제 손으로 꼭 잡아 쳐넣어야 겠습니다. 그년 제가 못 잡아 넣으면 사표쓸겁니다"
경일이 터져 나오려는 화를 억누르며 깊이 다짐했다.
**************
병재가 진술녹화실 밖으로 나오자 용진이 다가선다.
"뭐래?"
"일단 유치장에 갔다 와서 말씀드릴게요"
곧 이어 오경옥이 병재의 뒤를 따라 나오자 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수야 동석 고맙다. 지금부터는 내가 같이 갈게"
종수가 고개를 한번 숙이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병재가 말한다.
"오경옥씨, 저희 사무실 바로 옆에 유치장 있거든요? 거기 좀 계셔야 겠네요"
무언가 말하려던 오경옥이 이를 뿌득, 뿌득 갈았다.
오경옥이 유치장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인계되어 철창 안으로 들어가는 것 까지 확인한 병재가 밖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유치장 출입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용진이 병재에게 물었다.
"뭐래?"
"죽어도 안했다고 하죠 뭐. 보셨잖아요? 자기 죄 스스로 뉘우칠 위인 절대 아닌거. 공범진술까지 뻔히 있는 상황에서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떼던데요 뭐"
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시간 맞춰서 구속영장 신청할 수 있겠지?"
법적으로 체포한 5)피의자에 대해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으면 피의자를 석방하게 되어 있었다.
"예. 충분합니다"
듬직하게 말하는 병재를 믿음직스럽게 바라본 용진이 유치장 안을 슬쩍 보더니 말한다.
"근데 쟤 뭐하냐?"
"예?"
병재가 뒤를 돌아보더니 멍하게 입을 벌렸다.
"...기도?"
오경옥이 유치장 안에서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이제 소름이 다 끼치는군"
용진이 팔을 문지르며 중얼거리자 병재가 말한다.
"...저게 뭐하는 짓이죠?"
"죽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할 위인은 절대 아니고, 내가 보기에는 신께 기도하는 걸로 보이는데?"
"미친년..."
오경옥이 들으라는 듯이 병재가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병재야"
"...예"
"종교인들 중 일부는 '세상에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없다' 라고 말한다"
"..."
"니가 한 번 보여줘"
"...예?"
병재가 반문하자 용진이 말한다.
"세상에 용서 받지 못할 죄도 있다는 것을. 니 손으로 아이의 억울함을 직접 풀어줘"
**************
준혁이 오재희의 집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약 5분 전, 경일로부터 오재희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 되어 이 쪽으로 출발한다는 연락을 받은 준혁이 오재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겸 먼저 올라온 참이었다.
크게 한번 심호흡한 준혁이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쿵, 쿵, 쿵
"오재희씨?"
집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순간 불안감을 느낀 준혁이 문을 더 세게 두드렸다.
쾅, 쾅, 쾅
"오재희씨!?"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방범창 사이로 손을 넣은 준혁이 창문을 열어본다.
드르륵
창문이 열리고 코 끝으로 스며드는 농약냄새와 눈 앞의 상황에 준혁이 이를 악문다.
"...씨팔!"
방 안에 오재희가 쓰러져 있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준혁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 오재희의 바로 윗 집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계십니까? 계세요!?"
잠시 후 40대 중반의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슈?"
준혁이 지갑에서 공무원증을 꺼내든다.
"경찰관입니다!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준혁의 다급한 태도에 남자가 당황했다.
"아..아니, 무슨 일..."
"저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정말 실례 좀 하겠습니다"
준혁이 신발까지 신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남자가 화를 냈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뭐하는...!"
준혁이 거실 창문을 열어 철재난간에 그대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남자가 기겁했다.
"당신 미쳤어!? 여기 13층이야! 죽고 싶어!?"
남자가 고래고래 고함치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린 준혁이 난간에 매달린 채 크게 심호흡한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
그 모습을 지금 막 도착한 경일이 아래에서 올려다 보고는 놀라 외쳤다.
"저..저 미친 꼴통새끼!"
순간 준혁이 손을 놓더니 그대로 아랫 집 철재난간을 잡아채 매달렸다.
혹시나 창문이 잠겨 있으면 깨 부수고 들어갈 생각까지 하고 있던 준혁이었으나 다행히 창문은 열려있었다.
드르륵
창문을 열고 그대로 집 안으로 몸을 던진 준혁이 숨을 몰아 쉬었다.
"헉, 헉"
잠시 숨을 몰아쉬던 준혁이 현관문을 열고 오재희가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 갔다.
방 안에 오재희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 제초제가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준혁이 급히 오재희를 들쳐 업고 현관문 밖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 씨팔! 뭘 잘했다고 죽어! 살아! 살아 오재희! 니 죗값도 치르지 않고 이대로 아이 옆으로 가겠다고? 내가 용납 못해. 내가 허락 못하니까 살아! 살아 이 씨팔!"
준혁이 고함치면서 초조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때 마침 경일이 13층에 도착했다.
"야 이 미친 꼴...."
준혁이 경일의 말을 끊었다.
"헉, 헉. 행님! 오재희가 제초제를 음독(飮毒) 했어요!"
"뭐?"
숨을 몰아쉬며 말하는 준혁의 말을 들은 경일이 급히 준혁의 등에 업힌 오재희를 바라봤다.
코 끝을 찌르는 농약냄새와 의식을 잃고 축 늘어져 있는 오재희를 보며 경일이 이를 악물었다.
"119는!?"
"119 부를 시간도 없어서 제가 직접 옮기려구요"
준혁의 말을 들은 경일이 준혁을 거들어 주려고 하자 준혁이 급히 말렸다.
"행님, 오재희 집에, 후.. 제초제 병 있으니까 그 것부터 가지고 와주세요. 오재희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농약은 종류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농약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였다.
잠시 준혁을 바라보던 경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서 보자"
"예"
준혁이 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경일이 그 자리에서 잠시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다.
제초제를 음독할 경우 그 즉시 음독한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쳐 서서히 말라 죽어간다.
위 세척 등 응급처치만 잘 이루어지면 오재희가 살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말이다.
이미 오재희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 되었기 때문에 치료가 끝나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즉시 오재희는 체포될 것이고, 피의자를 체포하게 되면 반드시 그 가족에게 체포 사실을 통지해 주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오재희에게 남은 가족은 늙고 병든 부모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오재희.. 자식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러 천륜을 거스르더니 이제는 부모에게까지 죄를 지으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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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주일 뒤 경일의 예상대로 무사히 치료를 마친 오재희는 곧바로 체포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오재희는 민경우를 불러내 칼로 찍어 죽인 것, 그 시체를 유기한 것, 민채린을 학대한 것까지 자신의 모든 범죄 혐의를 인정하였고, 구속이 확정되어 검찰로 호송(護送)되었다.
오경옥은 끝까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공범인 정미숙의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정황상 범죄 혐의를 인정할만한 사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검찰의 결정에 따라 오재희와 마찬가지로 구속 기소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오경옥은 그 죄가 심히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민경우까지 살해한 오재희와 마찬가지로 징역 20년형을 확정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친딸 암매장' 이라는 타이틀로 이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고, 사건이 마무리된지 약 한 달여가 지나 친딸 암매장 사건 피의자들을 모두 검거하여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기여한 공으로 용진이 1계급 특진을 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