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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풍운제일보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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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고 말았다!
눈이 점점 커지고 목이 말라 온다.
바람소리가 들리고 땀내음이 풍긴다.
얼핏얼핏 시야 속에서 핏방울이 튕겨오른다.
씨이잉- 칼바람 뒤에는 쪼개진 시신들.
그 뒤를 좇는 무심한 눈빛들.

무릎까지 빠지는 설원을 걸을 땐 경공을 익히지 못한 주인공이 안타깝고
활활 타오르는 만금루에서 뛰어오를 때는 내 엉덩이가 후끈해진다.

요즘의 지루한 무협 속에서 화들짝 깨어나도록
사나이의 땀내음과 칼바람을 온몸 가득 느끼게 해준다.
앞으로도 계속될 칼바람과 더욱 짙어질 피내음에 적지않게 흥분하고
또한 기대하는 것은 이미 풍운제일루에 전염되었음인가?

 
제 3 화
작성일 : 16-07-21 17:44     조회 : 677     추천 : 0     분량 : 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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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천천히 시선을 옮겨 이번에는 반천수를 바라보았다. 반천수는 두위처럼 그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다.

 꼿꼿하게 바라보는 것이 눈싸움이라도 하겠다는 듯했다. 진사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자네가 귀반악(鬼潘岳)인 게로군.”

 반악처럼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귀기 서린 검을 휘두르는 자는 강호에 오직 반천수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명성은 벌써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천하에 짝을 찾아볼 수 없는 미남인데다가 검법의 고수였으니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처럼 명성이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반천수는 만금루에 모여 있는 다른 떠돌이 무사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가 명문정파인 화산파(華山派) 출신이라는 것도 그랬다.

 두위를 비롯하여 이곳에 모여 있는 자들 대부분이 무명의 무사로 천대를 받고 있는 것과는 근본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이처럼 지척에서 검신(劍神)을 뵙게 되었으니 무상의 영광이로소이다.”

 반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못한 듯 포권을 했다. 입으로는 겸양을 하고 있었으나 검신(劍神)으로 불리는 진사후(陣獅侯)를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못했다.

 “무례한 놈!”

 진사후 뒤에서 차가운 눈길로 주루 안을 구석구석 훑어보며 사람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고 있던 하도욱이 발끈했다.

 그가 검 자루에 손을 올려놓은 채 나서려 하자 진사후의 근엄한 눈길이 꾸짖어왔다.

 “속하는 다만 저자가…….”

 하도욱이 여전히 눈으로는 반천수를 노려보면서 억울하다는 기색을 지었다. 그런 하도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반천수가 살짝 웃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보일 듯 말 듯 드러나는 것이 황홀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다.

 눈살을 찌푸린 진사후의 시선이 이번에는 마석산에게 향했다. 그는 얼굴이 온통 빳빳한 털로 뒤덮여 있어서 표정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부리부리한 두 눈이 반천수를 바라보고 하도욱을 바라보느라고 바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진사후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진사후의 얼굴에 이제는 감출 수 없는 감탄의 기색이 떠올랐다.

 “대단하군. 예전의 항우라고 하더라도 저와 같은 위용은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노안이 홀린 듯 마석산의 깍지동이 같은 몸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마석산은 여전히 두터운 입술을 꾹 다문 채 침묵할 뿐이었다.

 한마디 겸양의 말이라도 할 법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또 하도욱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가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도욱은 하필 이와 같은 곳이 군웅성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영 못마땅하기만 했다.

 무림인들의 성지로 추앙받고 있는 곳에서 불과 백여 리 떨어진 산자락 끝에 이처럼 무례하고 야만스러운 자들이 모여서 짐승처럼 비릿한 살기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군웅성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짐짓 모르는 척 방치해 두고 있다는 것은 더욱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도욱은 언제든 원로들에게 청을 해서라도 이곳을 토벌해 버려야겠다고 작정했다.

 “좋아, 좋아. 귀역이 대단하다는 소문을 듣고 궁금했었는데 이제 보니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풍가(馮哥)의 능력은 여전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바가 있다.”

 진사후가 껄껄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만금루에서 생활하고 있는 무리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죽은 조상보다 더 얼굴 보기가 힘들다는 검신 진사후가 무엇 때문에 이 외지고 궁벽한 곳에 찾아왔는지 궁금해하던 생각을 잊었다.

 그는 저 영웅비(英雄碑)에 빽빽하게 적혀 있는 백 명의 이름들 중 두 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진사후의 예고없는 방문에 놀랐던 무리들은 이제 그의 가식없는 웃음 속에서 그도 원래 이곳의 인물이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어리둥절했다.

 ‘전주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오직 하도욱만이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그런 진사후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로서는 평소 근엄하고 선악에 대한 구분이 뚜렷하여 조금의 사악함도 용납하지 않는 진사후가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술 한 잔에 노래 한 곡조로 대접해 보낼 분은 아닌 것 같군요.”

 머리 위에서 문득 비파를 타는 듯한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하도욱의 시선이 가장 먼저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크게 놀라 눈을 부릅떴다.

 이층의 난간에 기대어 규화(葵花)가 서 있었다. 옷고름을 한 손에 가볍게 쥐고 긴 치맛자락을 밟고 있었다.

 하도욱은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었다.

 그의 부릅뜬 눈 속에 살짝 벌어진 규화의 붉은 입술이 날카롭게 박혀들었다. 머리 속이 뜨거워졌다.

 “아가씨는?”

 진사후의 눈에 다시 한 번 감탄의 빛이 일렁이며 스쳐 갔다.

 붉은 모란꽃을 대하는 것 같았고, 청청한 햇빛 아래 반짝이며 드러난 양귀비꽃을 마주 보는 것 같은 감동이 늙은 가슴을 두드리고 달려갔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올을 쓸어 올리는 규화의 손가락이 우윳빛으로 투명해 보였다.

 홍조를 띤 얼굴을 숙여 인사한 그녀가 붉은 입술을 살며시 열었다. 하도욱은 그윽한 향기가 주루 안에 가득 퍼져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루에 몸담고 있는 계집에 불과하지요. 하찮은 몸이지만 원하신다면 석 잔의 술을 따라 올리겠어요.”

 진사후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눈으로는 하도욱을 바라보았고 웃음은 두위에게 향해졌다.

 하도욱은 손끝이 뻣뻣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지금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이 낯선 감정을 무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군웅성에도 여자는 많았다. 모두가 뛰어난 용모와 재주를 지니고 있는 여협사였고, 모두가 훌륭한 가문이나 사문에서 뽑혀 온 금지옥엽들이었다.

 하지만 하도욱은 그들을 대하면서 한 번도 지금과 같은 감정의 급류에 휩쓸려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그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했다.

 “좋아, 아가씨가 따라주는 술이라면 석 잔이 아니라 세 말이라도 마다할 수가 없겠는걸? 하하하…….”

 탐스러운 수염을 쓸며 짐짓 호탕하게 웃어대는 진사후는 어느새 본래의 신분을 내버리고 늙은 한량이 되어 있는 듯했다.

 진사후에게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고 처음 듣는 웃음이었지만 하도욱은 그것을 몰랐다.

 그의 눈과 귀는 온통 이층의 난간에 기대서 있는 규화에게만 향해져 있었던 것이다.

 진사후가 망설임없이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쿵쿵거리는 그 발자국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린 하도욱이 급히 뒤를 따랐다.

 그가 이층을 밟았을 때 규화의 투명한 손가락 한 개가 불쑥 내밀어져 그의 가슴을 가리켰다.

 “당신은 아무래도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좋겠어요. 몸이 하나뿐이라 두 사람을 상대해 줄 수가 없군요.”

 하도욱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귓가에 속삭이듯 달콤하게 와 닿은 규화의 말 때문에 눈앞이 몽롱해지고 말았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진사후는 물론 규화의 모습도 어디로 간 것인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모셔 왔어요.”

 규화의 짜랑한 음성이 어둠을 흔들었다. 유등의 심지를 돋운 그녀가 옷소매를 흔들어 의자의 먼지를 털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뚱뚱한 몸집의 동건유가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노인은 여전히 초라한 등을 보인 채 벽을 향해 돌아누워 있었는데 깊이 잠든 것 같기도 했다.

 문밖에서 잠시 기다리던 진사후가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 들어와 규화가 내미는 의자에 앉았다.

 방 안을 한 바퀴 휘둘러 본 그의 시선이 노인의 구부러진 등에 가 멎었다. 그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민망해진 규화가 잰걸음으로 다가가 노인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꼬집었다.

 “정말 이러실 거예요? 미워라.”

 “아야! 이년아, 아프다.”

 정말 아픈 듯 몸을 다 움찔거리며 소리를 지른 노인이 고개만 돌려 사납게 노려보았다.

 “이년아, 누가 이리로 데려오랬어? 술이나 두어 잔 먹여서 돌려보내라고 했지! 네년이 점점 간덩이가 부어가나 보다. 그러기에 이제는 늙은이 무서운 줄을…… 어?”

 규화에게 한바탕 욕을 퍼부을 태세로 몸을 뒤척이던 노인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의 가느다란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져 있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는 창가의 탁자 앞에 진사후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었다.

 “억! 정말 네놈이란 말이냐!”

 노인이 비명을 지르듯 크게 외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갑작스런 행동에 규화가 깜짝 놀라 물러섰다.

 그녀가 더욱 동그래진 눈으로 노인과 진사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사후가 노인의 성을 친밀하게 부르는 것을 듣고 그가 풍 노인과 잘 아는 사이이며, 그를 만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래서 곧장 노인의 방으로 안내해 왔는데 풍 노인의 반응을 보아서는 그것이 잘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잘 있었던 게로군. 엉덩이에 투실투실 살이 붙었다.”

 진사후가 수염을 쓸며 점잖게 말했다. 그 소리를 들은 규화가 입을 가리고 킥, 웃었다.

 모습과 말투는 근엄해 보였지만 말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그것이 더욱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진사후, 너, 너, 네가 겁도 없이 여기까지 오다니…….”

 노인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가락을 들어 진사후를 가리키며 턱을 덜덜 떨었다.

 면전에서 검신 진사후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천하인 모두가 입에 거품을 물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진사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기만 했다.

 “풍가야, 네가 겁도 없이 범의 턱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는 것보다야 내 소행이 훨씬 점잖고 사리분별이 뚜렷하지. 안 그러냐?”

 군웅성 아래에 귀역(鬼域)을 틀고 눌러앉아 있는 노인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었다.

 노인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곰방대를 잡아 앵속을 쟁였다. 불을 붙여 몇 모금 빨고 나자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는 모양이었다.

 허공에 푸른 연기를 길게 내뿜은 노인이 옷소매로 짓무른 눈을 닦아내고 나서 허허, 웃었다.

 “진가, 네놈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으니 장차는 네놈의 안방을 차지하고 드러누울 작정이다.”

 가시 돋친 노인의 말에 진사후가 입맛을 다셨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잘못하다가는 헛간에서마저 쫓겨나 가랑비를 원망하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무슨 소리! 남의 집 장독을 깨뜨려도 변상해 주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네놈은 내 인생을 망쳐 놓고서도 아무런 가책도 없다. 아니, 오히려 쪽박마저 깨겠다는 심보 아니냐? 누가 너를 가리켜 정의지검(正義之劍)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흥, 말짱 다 개소리지!”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치는 풍 노인의 두 눈에서 시퍼런 귀화(鬼火)가 일렁이는 듯했다. 물끄러미 그런 노인을 바라보던 진사후가 한숨을 쉬었다.

 “됐다. 더 떠들 것 없다. 너와 내가 그렇게 만난 것도 다 하늘의 뜻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그곳에 앉아서 곰방대를 빨며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였겠지.”

 “흥, 흥! 내가 죽지 않는 한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주고 말 테다.”

 “기다리마. 나는 언제든 너와의 약속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다.”

 다시 가볍게 한숨을 쉬고 난 진사후가 잠시 침묵하더니 한결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말했다. 그는 풍 노인을 달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옛일을 들먹인들 되돌릴 수 있겠느냐? 아직도 네가 소리를 지를 만큼 정정하게 잘살고 있는 걸 보았으니 되었다. 은혜와 원한은 두고두고 갚아야 하는 것이다. 네가 나를 잊지 않았고, 내가 너를 잊을 수 없으니 설마 우리 두 목숨이 죽기 전에는 모든 것이 마무리되지 않겠느냐? 옛 친구의 충고를 귀담아들어라. 이왕 이곳에 둥지를 틀었으니 큰 말썽이 없기를 바라겠다.”

 풍 노인은 시선을 내리깐 채 묵묵히 그 말을 다 듣기만 했다. 곧 일어나 진사후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하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가겠다.”

 지그시 노인을 바라보던 진사후가 장포 자락을 떨치고 일어섰다. 풍 노인이 번쩍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눈 속에 아쉬워하는 빛이 가득했다.

 “주루에 왔으면서 술도 안 마시고? 석 잔은 마시고 가라. 내가 사마.”

 진사후를 바라보는 풍 노인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면, 그런 풍 노인을 바라보는 진사후의 눈에는 연민의 기색이 가득했다.

 그가 무거운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신세를 지지.”

 “그럼, 그래야지.”

 풍 노인의 안색이 아이처럼 밝아졌다. 그가 규화를 향해 눈을 흘기며 소리쳤다.

 “이년아, 눈치코치도 없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그렇게 서 있기만 할 거냐? 너는 새대가리냐? 일일이 말해 줘야만 하는 거라면 이제는 지겹다, 지겨워!”

 “핏!”

 규화가 노인에게 혀를 내밀고는 사납게 눈을 흘겼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지지 않고 독설을 퍼부었을 테지만 진사후가 있어서인지 더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술을 따르는 그녀의 손끝에 노여움과 서운함이 고스란히 배어났다. 규화가 쌀쌀맞은 얼굴로 서서 술을 따랐고, 진사후는 아무 말 없이 서서 그 잔을 받았다.

 그렇게 마주 선 채로 석 잔을 따르고 마시는 동안 풍 노인도 규화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구석에 붙어 서서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는 뚱보 동건유(董健留)는 여전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아가씨 이름은?”

 진사후가 술잔을 건네주며 비로소 웃음을 띠고 물었다.

 “설규화(雪葵花).”

 “해바라기꽃은 원래 여름이 제철인데 눈 속에 피어 있으니 보는 사람에게도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지. 아무래도 아가씨는 이름을 고치거나 성을 바꾸는 게 좋을 것이네.”

 무심코 내뱉는 듯한 진사후의 말에 규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는데 풍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개소리! 너는 더 이상 쓸데없는 말로 사람을 홀리지 말고 어서 가는 게 좋겠다!”

 하하, 웃은 진사후가 방을 나가며 동건유의 둥그런 어깨를 툭 쳤다.

 “너도 여전하구나. 주인을 잘 모셔라.”

 동건유의 안색이 시체처럼 새파랗게 질렸다. 그가 입술을 악문 채 정신없이 머리를 끄덕이기만 했다.

 

 왁자한 웃음과 잡소리들로 떠나갈 듯 시끄럽던 주루 안에 죽음 같은 적막이 가득했다.

 서른 명의 백의검사들은 여전히 석상처럼 서 있기만 했고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하도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무정백검(無情白劍)이라는 외호(外號)는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데?”

 반천수가 다시 이죽거렸다. 하도욱의 눈 깊은 곳에서 노여움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는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지만 때로는 불같이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런 하도욱이 발작하려는 자신의 손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 그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천수는 여전히 그의 가슴 앞에 서서 이리저리 뜯어보며 약을 올리기만 했다.

 “사문이 어디지? 그 검집은 정말 탐나는군. 백룡문(白龍紋)인가? 아주 정교해. 틀림없이 많은 돈을 주고 주문했을 거야. 하지만 고작 검집에 불과한데 그건 사치지. 헝겊으로 둘둘 말아가지고 다니면 어때? 검이란 찌르고 싶을 때 제대로 들어가 주고, 베고 싶을 때 제대로 베어지면 되는 물건 아니겠어? 검집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이지.”

 반천수가 투박한 자신의 검집을 툭툭 두드리며 이죽거렸다. 그의 검집은 아주 오래된 물건인 듯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색이 바래서 처음 그곳에 수놓아졌을 문양마저 이제는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검은 언제나 새로 벼려낸 것처럼 시퍼렇게 살아 있는 날과 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검집을 벗어났을 때에야 사람들은 검인(劍刃)에 실려 있는 요기(妖氣)와 검극(劍極)이 뿜어내는 살기를 보고 부르르 치를 떨었다.

 “어때, 한번 보여주겠어?”

 반천수가 겁도 없이 손가락을 들어 검을 가리켰다. 그 순간, 극한까지 끌어올렸던 하도욱의 인내심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죽일 놈!”

 그가 버럭 외치며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그것을 지겹도록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천수의 눈가에 반짝, 하고 걷잡을 수 없는 희열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검격(劍擊)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서질 듯 이를 간 하도욱이 끝까지 참아낸 것이다.

 반천수의 눈에 감탄의 기색이 떠올랐다. 혈기방장한 나이의 청년으로서 이만한 인내심을 보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하도욱이 지니고 있는 수양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것이었다.

 그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백의검대(白依劍隊)를 이끄는 대주(隊主)의 지위에 있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대단한 공부로군. 인정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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