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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풍운제일보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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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고 말았다!
눈이 점점 커지고 목이 말라 온다.
바람소리가 들리고 땀내음이 풍긴다.
얼핏얼핏 시야 속에서 핏방울이 튕겨오른다.
씨이잉- 칼바람 뒤에는 쪼개진 시신들.
그 뒤를 좇는 무심한 눈빛들.

무릎까지 빠지는 설원을 걸을 땐 경공을 익히지 못한 주인공이 안타깝고
활활 타오르는 만금루에서 뛰어오를 때는 내 엉덩이가 후끈해진다.

요즘의 지루한 무협 속에서 화들짝 깨어나도록
사나이의 땀내음과 칼바람을 온몸 가득 느끼게 해준다.
앞으로도 계속될 칼바람과 더욱 짙어질 피내음에 적지않게 흥분하고
또한 기대하는 것은 이미 풍운제일루에 전염되었음인가?

 
제 2 화
작성일 : 16-07-21 17:42     조회 : 672     추천 : 0     분량 : 7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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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봐, 너는 설마 시골 장정들을 앞세워서 현성(縣城)이라도 털려는 것은 아니겠지?”

 보다 못한 장 노대가 나서서 눈을 부라렸다. 집사는 더 말하지도 못했다.

 “저 빌어먹을 놈들 열을 데려가는 것보다 두위 한 명을 데려가는 게 백배 낫다. 너는 봉을 잡은 거야. 제기랄, 그런데 고작 은자 이백 냥이라니…… 저놈도 제정신이 아니지 뭐야. 암튼 어서 꺼져 버려, 재수없다!”

 그렇게 해서 어깨가 축 늘어진 집사를 따라 칼 한 자루를 들고 만금루를 나섰던 두위가 두 달을 소식 없이 보내고 다시 어슬렁거리며 돌아온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온 사람인 듯 태연한 것이 처음 그가 말했던 대로 그저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온 것만 같았다.

 

 “말해 봐.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술잔을 기울이고 난 반천수(潘泉壽)가 의뭉스런 얼굴로 두위를 흘겨보며 넌지시 물었다. 두위가 두터운 입술을 열고 살짝 웃어 보였다.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났다.

 “없어.”

 “몹쓸 친구로군.”

 눈을 흘긴 반천수가 투덜거렸다.

 “그럼 양가장에서는 돈이 썩어났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이백 냥이나 되는 은자를 그저 집어준 거겠지.”

 “맥없이 놀고 먹다 온 것은 아니다. 공돈을 받은 일은 없어.”

 “그렇지? 그럼 말해 봐. 대체 몇 놈이나 찍어버린 거야? 치열했어? 쓸 만한 놈은 있던가? 어디서 온 놈들이었지? 도와준 사람은 있었어? 아니면 정말 혼자서 다 해버린 거야?”

 이때라는 듯 반천수가 얼굴을 바싹 붙이고 숨 쉴 새도 없이 물어댔다.

 그의 붉은 입술이 재빠르게 나풀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두위가 입맛을 다시고 눈살을 찌푸렸다.

 한번 이렇게 물고 늘어지면 떼어놓을 수 없는 친구라는 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또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기도 했다.

 사람들이 귀반악(鬼潘岳)이라고 부르는 반천수(潘泉壽)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균형 잡힌 몸매에 어디에 내놔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잘생긴 그가 살귀(殺鬼)라고 한다면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귀가 맞았다. 검 한 자루를 손에 쥐면 아무도 그를 당하지 못했다.

 갈수록 창백해지는 안색 때문에 더욱 붉어 보이는 입술을 악물고 휘두르는 그의 살검(殺劍) 앞에서 목숨을 부지해 내는 자가 없었다.

 시를 읊조리고, 추녀 아래 서서 빗소리에 눈시울을 적시며, 늦은 봄날 시드는 꽃을 안타까워하는 그가 왜 검만 쥐면 그처럼 귀기(鬼氣)에 사로잡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평소의 행동과 그 미려(美麗)한 용모에 비추어 그건 불가사의한 일이기만 했다.

 처음 그가 등 뒤에 검 한 자루를 메고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남장여자(男裝女子)라고 여겼다.

 놀림을 받으며 만금루에 빌붙어 산 지 어느덧 일 년. 이제는 누구도 그를 놀리려고 하지 않았고, 그에 대하여 음심(淫心)을 품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처연한 미소와 감상적인 그늘 속에 숨겨져 있는 살벌함을 눈치 챈 것이다.

 그가 품고 있는 검은 뽑히면 반드시 피를 보았다. 검을 쥔 그의 손에 자비와 용서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 속에서 미남(美男)으로 이름 높은 서진(西晉) 때의 문인(文人) 반악(潘岳)이나, 초(楚)나라의 송옥(宋玉)과 비견될 만한 아름다움을 지녔으면서 동시에 아수라(阿修羅) 같은 자였다.

 반천수가 눈을 반짝이며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두위는 멋쩍은 생각에 슬그머니 그의 시선을 피했다.

 “서가장에는 여섯 놈이 와 있었다. 어디서 온 놈들인지는 나도 몰라. 제법 재간을 지닌 자들이었지.”

 “그래서?”

 반천수가 자기의 일처럼 흥분되는지 입술마저 핥으며 다그쳤다. 두위의 무용담을 듣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게 분명했다.

 두위는 이 친구가 그동안 심심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만족시켜 줄 만한 무용담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잠시 곤란한 얼굴이 되어 머뭇거리던 두위가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도착한 날은 별채에서 편히 쉬고 다음날 어슬렁거리고 나가서 놈들을 불러냈지.”

 “여섯 놈 모두? 병장기는 뭘 쓰고 있었지? 검을 쓰는 놈도 있었겠지? 어땠어? 세던가?”

 반천수의 흥분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그가 이제는 주먹마저 불끈 움켜쥔 채 다시 쉬지 않고 물었다.

 그는 언제나 검을 쓰는 자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솜씨와 비교해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것이다.

 “두 놈이 검을 썼다.”

 “제기랄,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하라구. 누구 숨넘어가는 꼴 보려고 그래? 비싸게 굴 생각이면 재미없어!”

 두위가 말꼬리를 끌자 반천수가 발끈해서 눈을 부라리며 더 다가들었다. 멱살이라도 움켜쥘 기세였다. 소리없이 웃어 보인 두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제일 먼저 그놈들의 목을 쳐버렸다. 영 싱거웠어.”

 “쳇, 죽일 놈. 나쁜 놈 같으니. 너는 그때 내 생각을 했겠지? 그렇지? 틀림없어. 그랬으니까 다른 놈들은 놔두고 제일 먼저 검을 든 놈들부터 조졌겠지. 넌 나한테 감정이 많은 게 분명해. 언제고 단단히 골탕을 먹여주고 말 테다, 나쁜 놈.”

 침을 튀기며 욕을 하는 동안에도 반천수의 눈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흥분을 싣고 번쩍거렸다.

 “다음으로 쌍극(雙戟)을 쓰는 놈과 철편(鐵片)을 휘두르는 놈을 노리고 뛰어들었다. 생각보다 너무 쉬웠어. 한 번에 한 놈씩이었으니까. 나머지 두 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버리더군. 아침나절에 산보 삼아 나가서 그 길로 끝내 버렸다. 양모춘이 약속한 은자 이백 냥을 건네는데 받기가 영 미안하더구만. 한 일이라고는 고작 칼을 네 번 휘두른 것밖에 없었거든.”

 “쳇, 별 싱거운 놈 다 봤네.”

 눈을 흘긴 반천수가 그래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잔뜩 기대했었는데 두위의 그 몇 마디는 정말 싱겁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내가 나갈 테다. 가서 칼을 든 놈을 만나면 더 볼 것 없이 그놈의 멱줄부터 댕강댕강 끊어놓고 말 테다. 두위 요놈, 두위 요놈 하고 소리치면서 말이다. 하하……!”

 반천수가 생각만 해도 즐거운 듯 탁자를 두드리며 크게 웃어댔다. 쓴 입맛을 다시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두위가 술병을 들었다.

 “너는 꼭 내가 따라주는 술을 마셔야만 직성이 풀리는 거냐?”

 그때까지 한쪽에 말없이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던 거구의 사내가 씩 웃고 빈 잔을 내밀었다.

 마치 한 마리의 검은 곰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한 몸집이었다.

 온통 구레나룻으로 뒤덮인 얼굴과 그 속에 박혀 있는 두 개의 화등잔만한 눈이 그를 더욱 짐승처럼 보이게 했다.

 만금루 제일의 덩치와 힘을 자랑하는 역사(力士) 마석산(馬石山)이었다.

 그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벙어리가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닷새 밤낮을 함께 지내면서도 한마디의 말도 들어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을 뿐 벙어리는 아니었다.

 장애라고 해야 할 만한 말더듬이 지나친 부끄러움이 되어서 그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는 꼭 말해야 할 때가 아니면 좀체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두 눈이 모든 생각들을 말해 주었다.

 두위는 그의 소처럼 커다란 눈 속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말들을 다 찾아냈다. 그래서 마석산이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답답한 줄을 몰랐다.

 단번에 술을 마셔 버린 마석산이 이번에는 두위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반천수가 쳇, 하고 혀를 찼다.

 “꿀 처먹은 놈아, 내 잔은 잔이 아니고 흙덩어리냐?”

 벙어리라는 욕이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런 욕을 들었다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백 근이나 나가는 거부(巨斧)를 휘둘러 대갈통을 쪼개놓았을 마석산이었지만 반천수에게는 언제나 한풀 꺾여 있었다.

 그가 두툼한 입술을 열어 씩, 웃어 보이고 반천수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투박하기가 솥뚜껑 같은 손이 학 모가지 같은 병목을 쥐고 조심스럽게 술을 따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한 번 그를 흘겨본 반천수가 단번에 잔을 비우고 이번에는 자신이 술병을 잡았다.

 그의 계집처럼 길고 마디 고운 손가락이 병을 기울여 마석산의 잔을 채워갔다.

 마석산이 눈을 부릅뜬 채 넋을 잃고 반천수의 그 희고 투명한 손가락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귀역(鬼域)입니다.”

 칠흑의 어둠 속에 멀리 보이는 불빛을 가리키며 말하는 자가 있었다. 백의에 백색 영웅건을 썼고, 어깨에 두르고 있는 피풍의(披風依) 또한 백색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살빛마저 하얗게 반짝이는 듯했다. 그가 불빛을 가리킨 손을 거두고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타고 있는 말까지도 백마였는데, 주인의 공경하는 마음에 동화된 듯 얌전하게 네 발을 멈추고 서 있었다.

 그의 조금 앞에는 흑마를 타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검은 수염이 가슴 앞까지 늘어져서 그의 풍채를 더욱 당당해 보이도록 했다.

 세상 사람들이 검신(劍神)이라고 부르며 공경하고 두려워해 마지않는 진사후(陣獅侯)였다.

 그는 군웅성(群雄城)의 삼전(三殿) 중 제일위(第一位)에 놓여 있는 정의전(正義殿)의 전주(殿主)로서 무존(武尊) 대무광(戴武光)에 이어 군웅성의 이인자라는 어마어마한 신분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 진사후(陣獅侯)가 갈색 장삼 자락을 한번 떨치고 나서 백의의 청년을 돌아보았다.

 “도욱.”

 “하명하소서.”

 “너는 저곳을 어찌 생각하느냐?”

 “속하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욱이라고 불린 백의청년은 말하는 것이 깨끗하고 절도가 있었다. 언제나 간단명료하고 분명해서 노인은 그것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의 솜씨는 물론, 일 처리하는 법 또한 그와 같았던 것이다. 진사후는 하도욱(河道昱)에게 임무를 맡겨서 한 번도 실망해 본 적이 없었다.

 “가본 적이 있느냐?”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가서 겪고 느껴보거라.”

 “존명!”

 백의청년 하도욱에게 진사후의 말은 곧 법이었다. 짧고 힘있게 대답한 그가 한 손을 번쩍 들었다.

 등 뒤의 숲 속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삼십여 필의 말들이 차례로 나왔다.

 하나같이 눈부신 백마였고, 하나같이 백의를 차려 입은 청년들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출중하고 영롱한 영웅의 기도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꾸미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저절로 몸에 배어 있는 자신감이고 자부심이었다.

 철벽을 둘러친 듯 진사후를 겹겹이 에워싼 백마들이 투레질을 하며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 아래 달빛을 받아 번쩍이며 조용히 흐르는 규화강(葵花江)의 검은 물결이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 강안에 장명등의 불 그림자를 드리운 채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는 만금루(萬金樓)의 이층 다락이 을씨년스럽게 솟아 있었다.

 그들이 귀역(鬼域)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곳이었다.

 

 “자, 자, 이쯤 해두자, 잡놈들아. 하루 밤새 두위를 아예 거덜낼 셈이냐? 염치가 있어야지.”

 장 노대가 성큼 탁자 위로 뛰어 올라가 소리쳤으나 사람들은 뉘집 개가 짖느냐는 듯 돌아보지도 않았다. 먹고 마시고 떠드는 일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서 곁에 누가 왔는지, 누가 가는지도 몰랐다.

 “개자식들아!”

 화가 난 장 노대가 술병을 들어 냅다 던져 버렸다. 그것이 벽에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다.

 그제야 멀뚱한 눈으로 장 노대를 바라본 사람들이 일제히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장가야, 미친 거냐? 왜 지랄 발광을 해?”

 “저 자식은 술만 처먹으면 개가 된다. 우리 모두 상대하지 말자.”

 “네놈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핏대를 세우고 난리야? 두위가 네 서방이라도 되는 거냐?”

 그 말에 모두가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장 노대의 검은 얼굴이 더욱 검어졌다.

 그가 철사 같은 수염을 빳빳이 곤두세운 채 부르르 치를 떨었다.

 둥둥 팔을 걷어붙이자 온통 굵은 상처들로 징그럽게 뒤덮여 있는 강철 같은 팔뚝이 불빛을 받아 번쩍이며 드러났다.

 “어떤 쥐새끼냐? 이리 썩 나오지 못해?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말 테다!”

 “새색시인 줄 알았더니 암코양이였던가 보네?”

 다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이제는 데굴데굴 구르며 웃어댔다.

 미칠 지경이 된 장 노대가 더 참지 못하고 훌쩍 뛰어내려서 탁자를 거꾸로 들어 올렸다.

 위에 있던 음식 접시들이며 술병이 와르르 쏟아져 요란하게 깨지고 흩어졌다.

 소리가 난 곳으로 그것을 내던지려던 장 노대가 흠칫하고 굳어버렸다. 만금루의 문이 활짝 열렸던 것이다.

 그리고 한 무리의 청년들이 무거운 걸음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장 노대를 놀리며 정신없이 웃고 떠들어대던 자들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걷혔다.

 마치 한 덩어리의 흰 구름이 밀려들어 오는 것 같았다.

 서른 명이나 되는 백의청년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와 늘어서자 무거운 침묵이 주루 안을 순식간에 눌러 버렸다.

 “백의검대(白依劍隊)다.”

 누군가의 조용한 속삭임이 자갈을 굴리는 듯한 소리가 되어서 그 침묵 속으로 퍼져 나갔다.

 하도욱이 검을 쥐고 들어와 한쪽으로 비켜서서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비로소 노인이 장포 자락을 거머쥐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투를 틀고 동곳을 꽂은 머리가 주름진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검었다. 대춧빛으로 익은 노안(老顔) 가득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진사후(陣獅侯)!”

 사람들 속에서 그를 알아본 누군가가 경악하여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노야(老爺)! 일이 생겼습니다!”

 루주(樓主)인 동건유(董健留)가 뚱뚱한 몸을 굴리듯 하며 뛰어들었다. 그의 늘어진 볼이 지나친 긴장으로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한쪽에 다소곳이 앉아서 낡은 적삼을 꿰매고 있던 여인이 깜짝 놀라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다.

 “아야!”

 그녀가 아미(蛾眉)를 찡그리며 낮게 비명을 터뜨리고 핏방울이 스며나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볼품없는 노인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벽을 바라보고 비스듬히 누워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노야! 그, 그들이…… 그들이 왔습니다. 어떻게 좀…….”

 동건유가 애가 타는지 손을 싹싹 비비며 발을 굴렀다.

 “어떤 개아들놈이 왔기에 화아(花兒)를 귀찮게 한단 말이냐?”

 노인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 웅얼거리듯 겨우 말했다. 잠꼬대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인을 힐끔 바라본 동건유가 어떻게 좀 해보라는 듯 눈짓을 했다. 그러나 여인은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손가락을 빠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애가 탄 동건유가 노인의 등을 향해 뻗던 손을 급히 거두어들이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들…… 아니, 그가 왔단 말입니다.”

 쯧쯧, 하고 혀를 찬 노인이 여전히 등을 보이고 돌아누운 채 귀찮다는 듯 말했다.

 “화아야, 네가 나가봐라. 시답잖은 놈이면 귀싸대기를 때려서 내쫓고, 그렇지 않으면 술이라도 한잔 처먹이고 보내 버리려무나.”

 영 귀찮고 못마땅하다는 투였다. 불이 났다고 해도 저렇게 누워서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노인의 등을 한 번 매섭게 흘겨본 여인이 치맛자락을 붙잡고 일어섰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동건유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서른 명이나 되는 백의청년들은 그대로 굳어 석상이 되어버린 듯 움직일 줄을 몰랐다.

 허공에 못 박혀 버린 눈동자가 주루 안의 기척들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누구 하나 숨조차 크게 쉬는 자가 없었다.

 작은 바늘이 떨어져도 그 소리가 뇌성처럼 크게 울릴 것만 같은 숨 막히는 긴장이 흘렀다.

 “좋군. 다들 훌륭해 보인다.”

 한 바퀴 주루 안을 휘둘러 본 진사후의 입에 보일 듯 말 듯 웃음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천천히 맴돌고 난 진사후의 시선이 한쪽에 딱 멎었다. 두위의 탁자였다. 그의 눈이 처음으로 이글거리는 생기를 띠고 빛났다.

 진사후의 불길 같은 시선을 똑바로 받던 두위가 슬그머니 외면했다. 진사후의 눈 속에 서늘한 기운이 떠올랐다가 곧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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