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이 오경옥에게 진술거부권과 영상이 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고 조사을 시작했다.
"오경옥씨, 본인이 지금 무슨 이유로 조사받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
용진의 물음에 오경옥이 침묵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오경옥씨는 민채린양을 때려 숨지게 하고 그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아 내가 안죽였다고!!!!"
오경옥이 용진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버럭 소리 질렀다.
"내가 안죽였다고요. 증거 있어요? 증거 있냐고!?"
"그럼 지금 민채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몰라요! 집나간지 오래된 애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7살짜리 어린애가 집을 나갔는데 왜 찾은 적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까?"
용진의 말에 오경옥이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왜 내가 걔를 찾아야 하죠? 내 자식도 아닌데? 애새끼가 집을 나갔으면 애새끼 부모들이 직접 찾아야지, 안그래요 형사님? 막말로 내 새끼도 아닌년 맡아다가 3년이나 먹여주고 재워준거 생각하면 나한테 책임을 물을게 아니라 애새끼 부모가 나한테 감사하고, 보상이라도 해야 하는거 아닌가?"
"..."
용진이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집 나간지 오래된 애 들먹이면서 때려 죽였니 어쩌니 말씀하시는거 보니 애가 죽긴 죽었나 보네요? 애새끼가 집을 나가서 뒤졌으면 애새끼 부모한테 책임을 물어야지 왜 내가 때려죽였다느니 헛소리 하면서 날 괴롭히는거죠?"
"오경옥씨"
"나 참 어이가 없네. 애새끼가 살아있을 때도 그렇게 애를 먹이더니 죽어서도 애를 먹여 별..."
"오경옥씨!"
용진이 조금 더 큰 소리로 오경옥을 불렀다.
"아 왜 소리를 질러! 누구는 큰 소리 못 내는 줄 아나! 이봐요 형사님.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뭐야? 객관적인 진실을 밝혀서 억울한 사람들 생기지 않게 하는거. 그게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잖아? 왜 자꾸 엄한 사람 건드리냐고! 재수없는 애새끼 들먹이면서 나한테... "
"야 오경옥!"
용진이 고함치며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오경옥을 바라봤다.
"뭐? 야 오경옥? 당신 지금 나한테 반말... "
용진이 오경옥의 코 앞으로 다가서며 얘기한다.
"니가 우리가 해야할 일을 알아?"
"이 사람이 자꾸 반말!!"
오경옥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용진이 들고 있던 서류더미를 책상에 집어던지듯 내려놓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쾅
"앉아!"
"..."
"니 말대로 객관적인 진실을 밝혀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는게 우리 수사관의 임무야"
"근데 왜 자꾸..."
"그래서!"
용진의 한마디에 오경옥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객관적인 진실을 밝혀서 억울하게 죽은 그 어린아이. 그 어린아이 한을 풀어주려고 하는거잖아, 지금"
"..."
"검사와 수사관들은 열 사람의 범인을 잡는 것보다 억울한 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
"그러니까 내가 억울하다고! 억울한 나를 구해달라고! 엉뚱한 사람 범인으로 몰아 세우지말고 니가 내 억울함을 풀어줘야할거 아냐!"
오경옥이 발악하듯 외치는 모습을 용진이 잠시 바라본다.
"근데 난 그 말에 동의못해"
"뭐? 그게 무슨..."
"억울한 한 사람 때문에 너같은 쓰레기들을 10명이나 놓치게 되면 10명 아니, 그 이상의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길 것 같아서 소름이 돋거든. 국민들이 불안해서 발 뻗고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겠어?"
"이..이...!"
오경옥이 분을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도 용진이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하려고 하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종수가 끼어든다.
"2팀장님,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종수의 말에 깊게 심호흡한 용진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오경옥을 바라본다.
"오경옥씨, 내가 너무 흥분했네요. 조사하는 수사관은 다른 사람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잠시 물 한잔 하면서 쉬고 계시죠"
쾅
얘기를 마친 용진이 문을 소리나게 닫고 나가자 종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쓰게 웃었다.
"저 형님 성질도 참..."
진술녹화실에서 나온 용진이 병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재야"
"예 팀장님"
"그 쪽 조사는 다 끝나가냐?"
"예. 여청팀장이 지금 막 정미숙이 조사 다 끝냈습니다. 정미숙이는 자기 범행 다 시인했구요"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소리에 용진이 눈을 크게 떴다.
"뭐? 다 시인했다고?"
"예. 아직 어려서 겁이 많았습니다. 몇 마디 물어보니까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다 얘기하더라구요. 오경옥이 죽은 민채린양이 집으로 온 날부터 굶기고, 때리고 지속적으로 학대를 해왔던 것 같은데 사건 당일에는 온 몸에 멍이 들 정도로 아이를 때리고 의자에 묶어서 베란다에 내놓았었답니다. 물론 정미숙은 그 모습을 옆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구요."
"오경옥 이 미친년... 그래서?"
"그 상태로 둘이서 쇼핑을 다녀왔는데 몇 시간 있다가 돌아오니까 애가 축 늘어져서 숨을 안 쉬고 있었던 거죠. 정미숙은 그 사실을 알고도 오갈데가 없으니 침묵하고 있었던 거구요. 사체유기를 도와준 것도 같은 이유에서..."
"..."
잠시 눈을 질끈 감고 침묵하던 용진이 말한다.
"병재야 일단 니가 이 쪽으로 좀 와라"
"예?"
"내가 직접 오경옥이 조사하면... 때려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니가 와서 조사 좀 해주라"
"..."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팀장님,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더 남았습니다"
"...또 뭔데?"
"민채린 양이 죽은 것 관련해서 민채린 양 친모인 오재희도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그건 무슨 소리야?"
"오경옥의 학대가 잦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오경옥의 폭행 강도가 눈에 띌 정도로 세졌답니다"
"그런데?"
"그게 오재희가 오경옥의 집에 왔다 간 이후였답니다"
"뭐?"
"정미숙 진술에 의하면 아이가 죽기 1달 전에 오재희가 오경옥의 집에 왔었답니다. 더러운 새끼의 자식이니, 악마의 새끼니 한바탕 욕을 하더니 오재희가 직접 민채린 양을 때리기 시작했답니다. 민채린 양이 실신하자 자신의 언니인 오경옥에게 '저년은 악마같은 년이다, 어린게 얼마나 악독한지 몇 대 맞았다고 다죽여버리겠다고 고함치던 년이다, 심성이 악독해서 진짜 그런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라는 얘기를 했구요"
"..."
"그렇게 오재희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그 날 이후 오경옥도 민채린 양을 심하게 때리기 시작했답니다. 딱 실신할 때 까지"
"...그래서?"
"사건당일에도 마찬가지구요. 한달 만에 오경옥의 집에 방문한 오재희가 오경옥과 함께 민채린 양을 때린 거죠. 민채린 양이 실신하자 오재희가 '저년은 밥도 굶겨야 된다'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서 민채린 양을 베란다 의자에 묶어두고 집으로 돌아갔고, 오경옥과 정미숙은 쇼핑을 하러 간 것인데..."
"..."
"그 이후에는 아까 말씀드린 그대로구요"
"..."
수화기 넘어로 아무런 말이 없자 경일이 말한다.
"위에 올라간 경일이네랑 통화 한번 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용진이 말한다.
"알겠다.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게. 병재 너는 일단 이리로 와라"
"예,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뚝
통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용진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더니 니코틴 연기를 천천히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상념에 잠겨있자 약 5분도 채 되지 않아 병재가 도착했다.
"팀장님"
용진이 진술녹화실을 눈짓했다.
"...알겠습니다"
병재가 진술녹화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용진이 말한다.
"병재야"
"예?"
"책에 그런 뜻으로 적어둔 말은 아니겠지만, 난 지금까지 1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기더라도 10명의 쓰레기들은 꼭 잡아 쳐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수사관으로서 실격이지.. 그런데 말이야... 그 쓰레기를 잡아 쳐 넣음으로써 죽은 아이의 한(恨),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
병재가 침묵을 지키자 용진이 한숨 쉬었다.
"...들어가 봐"
말을 마치고 멀어지는 용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병재가 진술녹화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