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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사라전종횡기
작가 : 수담.옥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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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성의 촌놈 장소열, 마침내 그가 강호와 맞장을 뜨러 왔다!
예측할 수 없는 투로, 걸걸한 입담, 뒷골목 건달식 박투술로
칼밥 인생을 살아가는, 강호의 어두운 중심을 통과해 가는 소열.
그가 신 난투 시대의 강호를 무와 협이 살아 숨쉬던 지난날의 황금빛 시절로 되돌릴 수 있을지….

 
18 화
작성일 : 16-07-21 15:01     조회 : 785     추천 : 0     분량 : 8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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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십조 일기당.

 무불련 서열 오십 위까지의 무인들로서 개인 하나하나가 일개 방파의 무력과 맞먹는다는 절대의 존재들이다.

 그들 사이에 서열이 있다고 해서 수직적 상하 관계는 아니다. 그들은 조자명을 기점으로 수평적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한편으로 철저하게 분산되어 있다. 사실 이것은 조자명의 의도이자 고육책이다. 상하 관계를 정했다간 혹시 있을지 모를 그들끼리의 충돌을 염려했고, 그들의 능력을 고려해 둘 이상 모인다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일 위에서 십 위까지는 무불련을 표면적으로 이끌어 가는 자들이다. 이른바 서열 일 위 조자명을 위시하여 두 아들인 이자(二子), 각각의 단과 전을 책임지는 삼강과 삼수, 마지막으로 조자명의 금지옥엽 일녀다.

  오십 위에서 사십 위까지는 소림, 무당을 비롯한 정도 십대문파 수장들이다. 조자명이 통일된 무림을 원활하게 관리하려고 일률적으로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조금 우습다면 무불련 서열 사십구 위가 소림사 장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사십 위에서 삼십 위까지는 마도의 십대 문파 수장들이다. 서열은 서열 주인에 의해 세습되지 않고 반드시 무불련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쉽게 말해 무당파 신임 장문인이라면 서열 사십삼 위 자리를 받기 위해 무불련 총단으로 와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삼십 위에서 십 위까지다. 이들 스무 명이야말로 강호가 무불련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원인. 즉, 진정한 오십조 일기당이다. 몇몇 존재를 제외하고는 그들은 하나같이 소속도 조직도 없다. 언제나 강호를 떠돌아다닌다.

 그렇지만 그들이 무불련에게 부여받은 권능은 실로 엄청나다. 오십조를 제외한 모든 대상의 생사여탈권과 지역 지부의 동원과 해체를 무불련의 인가 없이 명할 수 있을 정도이다.

  구체적으로 이십 위에서 십일 위까지는 모두 제(帝)라 불린다. 즉 무불십제다. 각기 검(劍), 도(刀), 창(槍), 장(掌), 독(毒), 등등 한 분야에서는 정점에 이른 무인이다. 그중에는 검이나 도로써 무공이 겹치는 자들도 있고, 독제처럼 악명을 떨치는 자들도 있으며 검제(劍帝)처럼 다소 순후한 성향을 가진 자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가 무공에 대한 자존심이 하늘 끝에 다다라,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조자명에게 포섭됐다는 자체가 불가사의다.

 삼십 위에서 이십일 위까지는 모두 병(兵)으로 불린다. 무불십병이라고 불린 이들은 강하다는 면에서 십제와 자주 비교되지만 근원적인 면에서는 십제와 많은 차이가 난다.

 십제가 조자명에 의해 포섭된 자들이라면 십병은 조자명에 의해 만들어진 무인인 것이다. 그러기에 조자명에 대한 충성도는 무불십제와 비교할 사안이 아니다.

 현재 이들은 천하 곳곳에 분산되어 있다.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조자명과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과 조우한 사람이면 백이면 백 그 자리에서 죽기 때문이다.

 강호인들이 그들을 알아볼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열 개의 무기이다. 아울러 열 개의 무기는 불패의 전적을 말함이며, 곧 죽음을 의미한다.

  오십조 일기당 그리고 무불련.

  무림사가 시작된 이래 최강의 조직체. 무림을 넘어서서 국가 권력마저 무시하는 괴물 같은 단체. 너무 거대하기에 조자명 자신도 두려워하는 단체.

 과연 소열은 이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상대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 그가 걷는 길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 * *

 

  새북지부를 백 장쯤 벗어난 소열은 근방에서 가장 높게 자란 고목 위로 올라갔다. 고목 꼭대기까지 올라선 그는 새북지부에서 남창으로 향하는 임의의 선을 여러 방면으로 나누고 '나라면 어땠을까. 어느 방면으로 갔을까.' 라는 추론을 한참 동안 하였다. 대략 한 식경이 지나 고목에서 내려온 소열은 조금 전 뇌리 속에 그렸던 방향을 따라 곧장 걸어갔다.

  각각의 선에 도착해서 주위 일대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던 소열은 결국 한 방향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차가 지나간 바퀴 자국이었다.

 그는 마차 바퀴를 따라 한참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다가 기존 마차 바퀴 자국보다 좀 더 흔적이 선명한 바퀴 자국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확연히 대비되는 자국. 마차가 여기에서 잠시 멈추었단 뜻이다.

  소위 말하는 추적술은 백이면 백 땅에서 시작한다. 특출난 이들이 방향제를 이용한다거나 영물을 이용해 추적한다고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례적인 경우이다. 또 그런 이들도 대지를 모르고서는 진정한 추적자라 할 수 없다.

  소열은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마차 바퀴 주변을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냄새가 났다. 여러 가지였지만 그 중에는 지린 내음도 있었다. 필경 누군가 인간 본능을 참지 못하고 여기에 갈겼으리라.

 그는 입김을 땅바닥에 세게 불었다. 그러자 표면을 덮고 있는 흙이 날려가고 눈에 보일까 말까 한 발자국 흔적이 나타났다.

 그는 일어났다. 바퀴의 흔적은 대략 세 시진 전. 방향은 남동. 흔적이나 기타 정황으로 미루어 이 방향으로 갔던 무리가 무불련 무인임이 거의 확실하다.

  "하아, 하아,"

 소열은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했다. 그런 다음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가 하면, 다리를 접었다 말았다 하며 뭉친 근육을 풀었다.

 그 역시 배우기만 했지 실전에서는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던 신법을 발휘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위험했다. 어쩌면 제어를 못해 나무에 처박히거나 벽에 처박혀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 면에서는 확실했다. 달린다는 것. 누구보다 빨리 달린다는 것. 그는 어깨를 뒤로 살짝 퉁겼다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슈ㅡ우ㅡ우ㅡ우ㅡ우ㅡ팟!

  폭발하듯 달려 나간 신형! 너무 빨라 땅이 당겨지는 듯한 신법! 지난날 무불 십구조 장제 황엽충을 농락했던 이류의 신법. 운종 막여춘의 일보천행이 오늘 소열의 몸을 빌려 재현됐다.

  안면에 부딪치는 세찬 바람. 휘날리는 머리카락.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치솟는 전율. 그는 가슴이 불탔다. 이런 기분이라면 누구와 싸워도 좋았고, 싸우다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목구멍이 찢어져라 고함을 쳤다.

  "아아아아ㅡ아아!"

  무불 사십칠 년 칠월.

 추적자가 떴다. 그는 사신이다. 어느 누구도 도망갈 수 없는 추적사신이다.

 그는 현 시각부터 종리연을 구출할 때까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나 있다. 잠든 옆자리에도, 용변을 보는 뒤통수에도, 밥을 먹는 머리 위에도, 어쩌면 당신의 내면에도.

 

 

 

  二. 달(月)은 어둠 속에서 숨을 쉰다

 

 

  두두두두.

  장식이 배제된 검은색 마차가 회창과 남창을 잇는 일직선로를 질풍처럼 내달렸다. 특이하다면 일단의 무리가 마차를 에워싼 채 같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달린 거리로 보나, 속도로 보나 일정 수준 이상의 무인들. 바로 새북지부를 벗어난 무불련의 무인들이다.

 현재 선두에서 달리는 이는 광선풍과 광염풍이었다. 그들은 마차를 뒤따르는 다른 무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신법을 발휘함에 지친 기색은커녕 달리는 와중에 대화를 나누고 있을 정도였다.

  "제기랄, 몰살이라니. 그것도 우리편을. 내 싸움터를 전전하며 수많은 인간들의 목을 날렸지만 이번처럼 기분 더러운 적은 없다. 안 그래 광염풍?"

  "난 그딴 것 몰라. 지금 내가 분한 것은 광사풍의 죽음이야. 씨발 그러고 보면 전부······."

  광염풍은 말하다 말고 문득 뒤돌아 봤다. 그들의 바로 뒤에는 좌냉추가 따라 붙고 있었다. 광염풍은 좌냉추를 죽일 듯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 새끼 때문이야. 뭐 방심해서 당했다고? 주먹질만 잘하는 놈이라고? 에라이 빌어먹을 놈아! 그런 놈이 삼 장 너머까지 격공섭물을 발휘하고, 검기를 미친 듯이 뿌려? 광사풍은 바로 네놈의 헛소리로 인해 죽은 거야!"

  눈이 멀었다고 해서 감각마저 먼 것은 아니다. 좌냉추는 광염풍의 막말이 자신에게 향한 것임을 알고 인상을 확 구겼다. 꼭 죽어야만 원통한가, 무인으로서의 치명적 부상을 당한 자신도 최대 피해자가 아닌가, 하는 반발심이다.

  "쓰아, 더러운 새기. 위로는 모해 줄 망정 씹기는. 나들 그 노이 그런 이간인주 아랐겠어? 만야 아랐다면 내가 이렇게 당해게어!"

  광삼풍이 광풍단의 감찰조 수장들이라면 좌냉추는 광풍단의 정찰조 수장이다. 평소 절친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달리는 내내 그들은 견원지간처럼 '으르렁'댔다. 만약 그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존재가 없었다면 광삼풍과 광풍조는 이유 불문하고 충돌을 했을 터다.

  "자자, 어딘가에서 독제가 보고 있을 모르니 서로 성질을 조금씩만 줄이자고. 사실 광사풍이 다시 살아날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우리끼리 티격태격하면 뭐해. 잘못이 있다면 우리 모두의 잘못이고, 또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이런 임무를 수행케 한 일부 윗대가리들의 잘못이야!"

  두 사람의 대립이 살벌해지자 광선풍이 이를 말려볼 요량으로 개입했다.

  "하긴 이게 그 인간들의 한계야. 책상에서 대가리만 굴릴 줄 알지. 정작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감도 못 잡고 있어."

  그 인간들이라는 말에 광염풍이 돌연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씨, 화조문의 새끼! 소천자만 아니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모가지를 비틀고 만다."

  "크아, 그, 그 시정 내가 아다!"

  좌냉추가 동조한답시고 치아 없는 잇몸을 활짝 드러냈다. 광선풍은 좌냉추를 안됐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점을 감안한대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야. 도대체 단순 주먹질로 광풍오도를 잡고 나아가서는 좌냉추와 광사풍까지 두들겨 잡는 괴물 같은 놈이 어디서 나타났지? 그것도 가슴에 화염전을 맞고도 말이야."

  "으음."

  화염전이라는 말에 광염풍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사실 그는 괴물 같은 놈의 등장보다는 놈이 화염전을 맞고도 살아났다는 것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당시 화염전은 완벽하게 놈의 가슴에 꽂혔다. 그런 상태라면 상대가 누구이든 죽음 아니면 거동 불능이 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놈은 다시 일어섰다. 그것도 약 처먹고 일어난 듯 엄청나게 강해져서.

  "아무튼 련에 가면 전반적으로 재조사를 벌여야 돼. 분명 뭔가가 있어. 어쩌면 서불이 은밀하게 특급 고수를 파견했는지도 몰라. 동불이 우리 몰래 독제를 보낸 것처럼 말이야."

  광선풍의 추측 어린 결론에 광염풍은 잠깐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실제 그럴 가능성이 아주 없지 않았다. 무불련 조직의 특성상 현장 투입조는 상부가 은밀하게 꾸미는 계획에 따라 임무 수행 중에도 뜻밖의 인물, 의외의 사건에 접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거야 원 좆같아서···……. 에이 샹!"

  광염풍이 욕설을 토하며 달리던 속도를 배가시켰다. 그러자 덩달아서 무리 전체의 속도가 빨라졌다. 누구는 그것으로 부글대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풀리지 모르나 뒤따라 붙는 무인들로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비유하자면 용대가리 밑에 용꼬리, 용꼬리 밑에 뱀대가리 그 밑에 뱀꼬리 아니겠는가.

 

  두두두두.

  빨라진 속도만큼 마차는 요동이 심했다. 종리연은 어지러움에 주렴을 젖히고 밖을 내다봤다.

 뿌연 먼지. 흐릿한 하늘.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시각이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알 길이 전혀 없었다. 다만 달릴수록 무불련이라는 종착지가 가까워진다는 것. 지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만은 확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도 했다. 가족의 꿈과 가문의 영광이 정점에 달하는 오늘, 그녀 역시 짧은 인생 오직 이날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기쁘기는커녕 왠지 두렵고, 왠지 슬프기만 했다.

 처음엔 혼자여서 그렇겠지, 떠나기 전 아버지의 참담한 모습을 봐서 그렇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뭐랄까, 가슴 한쪽이 잘려나간 것 같다고 할까. 슬픔과 두려움 이면에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아쉬워하고 있었다.

  "휴우."

  그녀는 답답한 심정에 평야 넘어 먼 산으로, 다시 그 산을 지나 먼 하늘로 시선을 계속 확장시켜 나갔다. 어느 순간 멀리 있는 산야뿐이 아닌 아주 가까이 있는 주렴까지 부옇게 보였다. 세가를 빠져나오며 이제부터는 울지 않는다고 다짐 또 다짐했건만 이번에도 감정에 북받치고 있었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그러면서 위대한 약속의 주인공에겐 감정은 사치며 나약은 절망의 뒤안길이다, 란 아버지의 말을 다시금 뇌리에 새겼다. 깊게 아주 깊게, 멀리 아주 멀리······.

 

  그녀가 태어난 날, 축하라도 하듯 종리세가에는 휘황찬란한 천장 비문이 세워졌다. 그러나 정작 종리세가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그날 지난 임을 그리워하며 통곡을 했다. 그들에게는 서러운 현실이 우선했지, 삼백 명의 피와 맞바꾼 위대한 자의 약속 따위는 무의미했다. 그나마 그녀가 남아로 태어났다면 조금의 위안이라도 되었을 터다. 그녀를 낳은 후 그녀의 엄마가 한 첫마디는 이거였다.

  "갖다버려! 계집애는 필요 없어."

  그녀는 자라며 엄마의 젖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엄마의 품에 안겨본 적도 거의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 그녀가 엄마라고 생각하며 힘차게 빨아먹었던 젖은 혹시나 딸자식이 배곯아 죽을까 염려한 아버지가 인근 마을의 어느 아낙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얻어낸 것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낳고 시름시름 앓다가 사 년 뒤 세상을 떠났다. 죽을 당시, "그때 그 칼을 받는 즉시 부러뜨려야 했어."란 회한만을 남겼을 뿐, 이제 막 걸음마를 배워 바동대는 딸자식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냉담한 반응은 비단 그녀의 엄마뿐이 아니었다. 세가의 가솔들 대부분이 '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된 거야'라는 원망 어린 시선을 그녀에게 던졌다.

 그래서 그녀는 어린 시절 언제나 혼자였다. 친구가 있다면 자신만 보면 눈물 흘리는 아버지와 세가의 마당에 세워진 거대한 돌비석이 유일했다.

  그녀가 가문의 몰락과 영광된 약속을 알았을 때는 가슴이 탱탱하게 자라고 난 다음이었다. 슬픔이나 원망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그때부터 외로움을 벗어 던지고 활기차게 행동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가의 구석구석을 청소했고, 사람들을 보면 그녀가 먼저 활짝 웃었다. 궁핍한 생활을 하는 가솔들에게는 얼마 되지 않는 세가의 재산을 과감하게 풀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이 대략 삼 년을 넘어가자 마침내 냉담했던 세가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그날, 내가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조금만 더 사랑했다면, 하는 심정에 자기 방에서 한밤을 소리 죽여 울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이렇게 다짐했다.

 

 ㅡ세가의 슬픔은 나의 슬픔. 내가 가질 영광은 나의 것이 아닌 형제들이 피로서 이룩한 것. 나는 세가의 재기를 위해 기꺼이 여인의 생을 포기하리라.

 

 차라락.

 그녀는 상념에서 깨어나 젖혀놓았던 주렴을 내렸다. 한순간 어둠이 찾아왔다. 며칠 동안 불면의 밤을 보냈기에 육체가 휴식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숫자를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넷······.

 하지만 숫자 열을 채 헤아리지 못하고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피로한 육체와는 달리 정신은 매순간 각성되고 있었다.

 세가 식구들과 아버지가 피 흘리는 모습이 감은 눈 속에서 아른댔고, 그나마 간신히 지워내면 이어서 최근 긴박했던 순간들이 펼쳐진 그림처럼 뇌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순간적으로 고정됐다가 지나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정신 차려 종리연. 시집을 가고 있는 마당에 다른 남자를 생각하다니. 이제 보니 너 아주 못됐구나.”

 그녀는 혼잣말 후에 미소를 가늘게 머금었다. 소열을 생각할 때면 그녀는 우울함을 지워내고 안도의 심정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사람 앞에서 생전 해보지 않았던 투정도 은근히 부려봤고, 위기감에 눈앞이 캄캄하면 제일 먼저 그를 찾아 여인의 심정으로 매달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끝이었다. 그가 묶어준 끈을 치아로 끊어내던 순간 모든 게 원상태로 돌아갔다.

  "그래 잘한 거야. 난 누구에게도 기대서는 안 돼. 혼자 일어서야 해. 그게 너의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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