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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사라전종횡기
작가 : 수담.옥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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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성의 촌놈 장소열, 마침내 그가 강호와 맞장을 뜨러 왔다!
예측할 수 없는 투로, 걸걸한 입담, 뒷골목 건달식 박투술로
칼밥 인생을 살아가는, 강호의 어두운 중심을 통과해 가는 소열.
그가 신 난투 시대의 강호를 무와 협이 살아 숨쉬던 지난날의 황금빛 시절로 되돌릴 수 있을지….

 
16 화
작성일 : 16-07-21 14:36     조회 : 688     추천 : 0     분량 : 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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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四. 강물이 만 리를 흐르면 구름은 만 리를 뒤덮는다.

 

 

 

  혁무추가 좌우로 넘어지자 소열은 서요평을 찾아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서요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혁무추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무인들 속에 파묻혀 도망가 버린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 점은 여타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혁무추의 처참한 죽음을 목도한 무인들은 전의를 상실해 앞다투어 통로 뒤편으로 도망가 버렸다.

  소열은 무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뒤돌아섰다. 강력한 면모를 보였다지만 그건 돌발적인 상황 아래 벌어진 잠깐의 과정이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거늘 무턱대고 무인들을 따라갈 수는 없는 없었다.

  뒤돌아선 소열은 화산오검이 있는 자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무인들이 물러난 후 통로는 정적만이 감돌았기에 소열이 내딛는 보행음은 유독 크게 들렸다.

 그런데 한 오 장을 걸었을까. 그동안 성난 맹수처럼 뛰어다녔던 그가 보행이 힘들 정도로 무릎을 후들거렸다. 더 나아가서는 그만 바닥에 벌러덩 드러눕고는 피를 토해낼 것 같은 호흡을 연신 하였다.

  “하아, 하아.”

  극단적인 변화. 안색은 백짓장을 연상시키고, 입술은 핏기가 빠져 푸르죽죽했으며, 얼굴 표면은 흘러내린 땀으로 온통 번들댔다.

 소열의 이런 모습은 무인들이 극심한 기력 손상을 입었을 때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현상이었다. 특이하다면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흡사 기억 속에 잠겨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있는 것처럼.

 

  <내공이 약하다고 해서 일격필살의 힘을 가지지 못하란 법은 없다. 부풀대로 부푼 산만한 내공은 오히려 힘의 분산만을 가져올 뿐이다. 고로 진정한 힘은 내공이 아닌 고도의 집중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단마류(斷摩流)는 바로 이 집중을 무공에 최대한으로 접목시킨 것이다. 지난날 나는 이것의 묘용을 알기 위해서 삼절권사 헌원광에게 천강쇄옥수(天剛碎玉手)를 주어야 했다. 신명조는 바로 그 단마류에 의해서 완성될 것이다.

 단마류는…….>

 

 사십오 년 전. 섬서 땅에 한 무인이 있었다. 일류와 이류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었던 그는 자신이 익힌 단마류가 항상 못마땅했다. 단마류가 비록 일격필살의 무공이긴 해도 실전에서는 응용하기가 무척 까다로워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는 틈만 나면 단마류를 버리고 다른 무공을 익히려 했다. 그렇지만 하수들이 대개 그렇듯 그에게는 상승의 무공을 익힐 천운이나,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일류 고수가 될 행운이 찾아왔다. 한 사람이 천강쇄옥수를 줄 테니 단마류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천강쇄옥수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절정의 무공. 그는 이게 웬 횡재냐 싶어 가문의 비전 단마류를 그 사람에게 즉각 넘겨주었다.

 그리고 오 년. 그는 마침내 일류 무인이 되어 강호에 삼절권사라는 명예로운 자국을 남겼다.

  그 일을 두고 강호인은 한결같이 씹었다.

  한 송이 별난 꽃을 얻고자 삼절권사에게 호박을 넝쿨째 갖다 바친 그 사람이 너무나 어리석다고. 한데 정작 그 사람은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ㅡ후후, 그때의 거래를 두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누가 이득을 보았는지는 오직 세월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강호여, 이것만은 분명히 알라. ‘유피구족 제철해석(唯彼狗足 蹄鐵奚錫)’이라. 개 발바닥에 말발굽은 아무 소용없다. 누가 감히 단마류를 이류의 무공이라 칭하는가.

 

 절정의 무공과 교환됐던 이류의 무공. 소열은 지금 그 단마류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울러 남들과 다른 혜안을 가졌던 사부를 다시금 느껴보고 있었다.

 

  "으음."

  유정은 잘린 팔을 옷소매로 대충 묶고 주위를 찬찬히 돌아봤다. 무거운 분위기였다. 사제들은 응급조치만 하고 있을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하긴 유정 자신도 그런 심정이긴 했다. 눈앞 목이 잘려 있는 시신 한 구. 좀 전까지 생생하게 살아있었던 유선이었다.

 게다가 적이 물러갔다지만 현재 위치가 새북지부의 지하였다. 일행의 수장으로서 탈출을 위해 뭔가 대책을 내놓아야 하건만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유정은 문득 일어나려고 꿈틀대고 있는 소열과 눈이 마주쳤다. 상상 불허, 예측 불허의 사내. 유정은 괜한 고민을 했다고 생각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그의 결정만 따르면 될 것을.

  "멋졌어. 반할 만큼."

  유정은 소열에게 짧은 말을 던졌다. 어떻게 살아났느냐, 내력 고수로의 변신은 무슨 경우냐, 하는 질문은 일체 하지 않았다. 대신 진지한 눈빛, 희미한 미소만을 보냈다.

  "뭐, 별로."

  긴말을 하지 않기는 소열도 마찬가지였다. 상체를 일으킨 소열은 유선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침울하게 말을 이었다.

  "아쉽군, 몇 마디 못해 보았는데."

  유정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유선도 만족할 거야. 개천형이 죽는 걸 목격했을 테니까. 음······."

  유정은 말을 멈추고 유경에게 눈짓을 했다.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게 사문의 형제들이다. 유경은 비장한 표정으로 유선의 가슴에 수놓인 다섯 개의 매화 휘장을 뜯어냈다. 그러자 지금까지 서있었던 유선의 신체가 바닥으로 넘어졌다.

 유정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소열에게로 다시 시선을 맞추었다. 감정을 억제하고 있는지 유정의 눈은 그렁그렁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표정과는 달리 유정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소열은 화산오검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 별다른 방법이 있나. 달려야지."

  "좀 힘들겠지?"

  "아마도."

  짧은 질문과 짧은 대답이 그들 사이에 오고 갔다. 하지만 말로서 다 풀이할 수 없는 내용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자, 모두 그만 일어나. 여기서는 해를 못 봐."

  소열의 음성에 화산 검사들은 각각의 검을 움켜잡고 하나, 둘 일어났다.

 한쪽 구석 죽은 듯 앉아 있었던 종리연도 덩달아 일어났다. 갈 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종리연이 마침 소열과 눈이 마주쳤다. 소열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당신은 이리 와. 이제부터는 화산검사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 살려면 당신 스스로 내 뒤를 알아서 쫓아다녀야 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당, 당신······."

  종리연은 반문하다 말고 서럽게 울먹였다. 죽은 유선이 불쌍하기도 하고, 현재 처한 상황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좀 다정하게 말해 주어도 되건만 냉정하게 말을 하는 소열이 왠지 모르게 미워서였다.

  그렇게나 멀어보였건만 막상 무인들의 저지가 없자 입구까지 다다르기는 일 각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입구 앞에 서서 잠시 무거운 숨결을 내쉬었다. 너무 조용해 퀭한 기분. 이것이 태풍전야임을 어찌 모를까.

  입구는 폭이 무척 좁았다. 그들은 한 사람씩 조심스럽게 입구를 통과했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참담한 신음과 함께 차례차례 멈추어 섰다.

  전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엄청난 숫자의 횃불이었다. 횃불은 입구를 중심으로 무인들이 들고 있었다. 선두에는 서요평과 광염풍, 광선풍이 있었고, 그 뒤로는 수많은 무인들이 칼을 치켜든 채 있었다. 못 되어도 족히 이 백은 넘는 인원이었다.

  "킥, 이건 좀 너무하군."

  소열은 화산 검수들을 쳐다보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자는 의도였으리라. 하지만 화산 검수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예감한 듯 침울한 표정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소열은 화산오검의 그런 모습에 눈 주위가 달아올라서는 타는 음성을 토했다.

  "뭐야? 지금 이 모습은? 두렵다는 거야? 지난날 천하를 누비고 다녔던 매화 검수들이 고작 이까짓 놈들에게 겁을 먹는단 말야? 정신 차려 화산오검! 너희는 화산의 제자야! 강호 제일 검파의 후예들이야!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봐. 거기에 두려움의 대상은 없어. 두려움은 바로 너희들의 마음속에 있어. 검을 들어 화산오검! 입술을 깨물고 투지를 태워! 까짓것 정 안 되면 죽어버리면 되지. 뭐한다고 저딴 것들에게 겁을 먹어. 멋지게 죽을 수만 있다면 지옥행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화산검사야!"

  눈빛은 타오르고 음성은 힘에 넘친다. 화산오검은 소열의 말에 검을 움켜잡았다. 그랬다. 그들은 매화 검수들이었다. 비록 무불련에 의해 화산파가 농락당했다지만 강호 제일 검파로서 수백 년을 이어온 자존심만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유정은 굳었던 인상을 풀고 활짝 웃었다.

  "그게 그렇게 되나? 하하하."

  "하하하. 대사형, 그러고 보니 죽기에는 날이 딱 좋군요."

  주눅이 언제였냐는 듯 화산 검사들은 화끈한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 이후, 그들은 뜨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소열은 한발 물러났다. 거기는 사문형제의 자리.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물러선 소열은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는 여려 겹으로 찢어 길게 만들어 매듭을 지었다. 어느 정도의 줄이 되자 소열은 그것을 종리연의 손목에 감았다.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왜?”

  소열은 종리연을 잠시 주시하고는 그 반대편 줄을 자신의 허리띠에 묶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녀를 등지고 서서 나지막한 음성을 흘렸다.

  “널 지켜준다고 했어.”

  “아!”

  종리연은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표현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인이 멋모르고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자 소열은 화산오검에게 눈짓을 했다.

  “준비됐어?”

  “물론.”

  유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내밀었다. 그 위로 나머지 화산 검수의 검이 올라왔다, 화산 검수들은 이제 소열을 주시했다. 소열은 설핏 웃고는 자신의 검을 그 검 위에 올렸다. 다섯 개의 검이 한자리에 모이자 유정이 말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마 잊을 수 없을 거야.”

  “저희도요. 장 소협.”

  소열은 화산 검수들에게 희미한 미소로 화답했다.

  “나 역시.”

  소열은 이제 전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 이런 순간이 자신에게 다가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긴 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지금은 오직 싸워야 할 적만 있을 뿐이었다.

  "자, 그럼 이번에도 셋 만에 간다! 하나, 둘······."

  "어엇 장 소협!"

  셋은 없었다.

  소열이 둘만 헤아리고 뛰어갔기 때문이다.

  곧이어 화산오검도 고함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꺄아아아아!"

  "뜨야야야야!"

  그들과 동시에 전면 새북의 무인들도 뛰쳐나왔다. 그 안에는 광선풍도 있었고 광염풍도 있었다. 또 이빨이 박살난 좌냉추도 있었다.

  무인들과 맞닥뜨린 소열은 검을 무차별, 무조건적으로 휘둘렀다. 치열한 난전이었다. 고함과 비명, 병기의 부딪힘이 천지를 쩌렁 울렸다. 그런 상황이 한참 동안이나 계속 되자 그는 앞에 어느 정도의 적이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앞을 막으면 무조건 벨뿐이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어 버렸다. 그것은 아무 것도 없는 느낌, 적도 없고 나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공간 안에서 그가 매순간 그리워했던 사람의 애절한 음성을 듣고 있었다

 

 ㅡ강호를 돌려다오. 그 옛날 비무를 행하기에 앞서 예를 취하고 검을 휘두르기에 앞서 상대를 염려하던 황금빛 시절로. 지금의 강호는 습격을 일삼고 협공을 행함에도 하등 부끄러움을 모르는 전쟁 집단에 불과하다.

 전쟁집단······ 전쟁집단······.

 

  그는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이ㅡ건ㅡ무ㅡ인ㅡ이ㅡ아ㅡ냐!"

  소열의 검이 푸른빛으로 휘감겼다. 빛은 소열의 휘두름에 따라 사방으로 부챗살처럼 날아갔다. 빛이 막히는 곳에서는 인간이든 사물이든 무조건 잘려나가고 있었다.

 백병으로 시작한 싸움이건만 무인들은 이젠 소열의 근처에 얼씬도 못하고 있었다. 한데도 이젠 그가 무인들에게 달려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역시 이런 난전은 처음. 살이 잘리고, 피가 튀고, 비명이 천지를 울리는 전장의 마력에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성을 상실해 있었다. 그에겐 무조건 앞을 향하는 것, 적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것, 그것만이 전부였다.

 마침내 철벽같았던 무인들의 대오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무공으로 인해서가 아니었다. 폭발하는 그의 기세에 무인들이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검.

  검이 운다.

  그것은 붉은 뜨거움.

  지난 시절을 불살라버리고 싶은 분노.

  가슴을 도려내고 목을 쳐내리라.

 

  검.

  검이 운다.

  그것은 차디찬 선택.

  감정을 죽여야 하는 야수의 마음.

  살갗에 돋는 소름을 감추어야 하리라.

 

 검.

 검이 운다.

 그것은 타고남은 재.

 소리 죽여 메마른 가슴을 달래리라.

 

  얼마나 죽였는지 모른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북지부가 아주 먼 한 점으로 변해 있었다.

  소열은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밤하늘 별빛이 눈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분 같아서는 이대로 한잠 푹 잤으면 싶었다. 소열은 호흡을 조절하며 옆을 돌아봤다.

  "하아, 하아."

  "으으으."

  유정과 유열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밤이어서 다행이지 낮이었다면 비참한 몰골을 차마 보지 못했을 터다.

 소열은 씩 웃었다.

  "킥, 꼴들 하곤."

  유정이 질세라 응수했다.

  "넌 어떻고. 모르긴 몰라도 우리보다는 배로 더할걸."

  "엉? 그게 그런가? 하하하."

  "하하하."

  그들은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 서로 손짓을 해댔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음성을 질러댔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 소열이 행위를 딱 멈추고는 무겁게 말했다.

  "나머진?"

  유정은 소열의 눈길을 피했다.

  "물어볼 필요 없잖아. 그냥, 그렇게 됐어."

  "그래, 그렇겠지."

  소열은 더 이상 물어 보지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짐작만으로도 충분했다. 소열은 머리 위 쏟아지는 별빛을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가끔, 아주 가끔은 생각날 거야······."

  "그래, 그래······."

  유정이 고개를 돌려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전이된다고 할까. 소열은 그 모습을 보자 목이 막히고 사물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유정이 일어나 유열에게 걸어갔다. 유열은 상태가 심각했다. 빠른 조치가 없다면 내일 해를 못 볼 가능성이 컸다.

 소열도 일어났다. 언제 어디서 적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그때였다.

 소열은 문득 무언가가 허전했다. 마침 유정도 소열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인상을 구겼다.

  "마, 맙소사!"

 허탈하게도 종리연이 없었다. 화산검사들이 목을 버려가며 지키려 했던 그 여인이 없었다. 아마 추적이 중단된 것도 그런 이유가 포함되었으리라.

 소열은 허리를 감았던 끈을 살펴봤다. 끊긴 표면은 칼에 의해서 잘려진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강제로 물어뜯은 형태였다.

 이게 무얼 뜻하는 것인지 소열이 모를 리 없었다. 소열은 허리띠를 사납게 던져버리고는 밤하늘에다 고함을 질러댔다.

  "병신 같은 년! 멍청한 년!"

  유정이 소열의 어깨를 툭 치고는 말했다.

  "잊어. 우린 최선을 다했어. 나머진 그녀의 인생이야."

  "제기랄, 잊다니? 그걸 말이라고 해! 그 정도로 쉽게 잊을 수 있는데 넌 형제들을 잃었어?"

 유정은 소열의 눈을 피해 나직이 읊조렸다.

  "그게 우린 걸. 무불련에 속한 우리의 운명인 걸. 본산에는 아직 형제들이 많아. 우리가 죽으면 무불련은 화산에 다시 매화 검수들을 요구할 거야. 그럼 화산은 제 이 제 삼의 적화조들을 무불련에 파견할 거고."

  소열은 침묵했다. 침묵의 의미는 개인의 삶을 짓밟아버리는 단체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유정이라고 왜 분노하지 않겠는가. 유정이라고 왜 사형제들의 죽음에 비탄하지 않겠는가, 라는 심정도 포함됐다. 그러나 분명한 건 유정과 자신은 다르다는 거였다.

 소열은 침묵을 깨고 단호한 물음을 던졌다.

  "대답해. 그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광풍단이니까. 아마도 소천자에게 가겠지."

  "유정, 말 돌리지 말고 분명히 말해. 난 그녀의 삶을 물었어."

  "소천자는 이미 열 명의 여자가 있어. 다시 말하면 그녀는 소천자의 미래를 약속하는 노리개가 된다는 거지."

  "으음."

  유정은 무거운 신음을 흘리는 소열을 잠시 묘한 눈으로 지켜보곤 말을 이었다.

  "물론 그녀가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갈 것은 분명해. 하지만 소천자보다는 그나마 초금자에게 가는 편이 그녀에게 좋아. 초금자는 무불련주의 약속을 지키려고 지금껏 혼자 살아왔으니까. 사실 이 모든 건 무불련주의 침묵으로 인해서야. 그가 두 아들 중 어느 쪽인지 확실하게 손을 들지 않았으니까."

  유정은 다소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이제 포기해. 그러고 보면 일이 너무 커졌어. 우리 선에서 감당할 게 아냐. 이건 용들의 싸움이야. 우린 개입할 여지가······."

  소열은 유정의 말을 끓었다.

  "분명히 해. 우리가 아냐. 난 너희와 달라."

 소열의 모습에서 유정은 문득 느껴지는 게 있었다. 눈앞 남자는 누군가에게 구속을 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유정은 어깨를 으쓱댔다.

  "뭐, 아님 말고. 그래 이젠 어떡하려고?"

  소열은 방금 지나온 길을 바라봤다. 시선의 끝에는 한 점으로 변해 있는 새북지부가 있었다. 소열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바보, 내가 약속했잖아. 지켜주겠다고."

  소열은 유열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렁대던 소열의 눈빛은 어느새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넌 그만 련으로 돌아가. 그래서 네가 동원할 수 있는 단체를 데리고 무불련 총단이 있는 남창으로 와."

  "그럼 넌?"

  소열은 새북지부를 가리켰다.

  "저기, 그녀가 있는 곳. 유정 날 믿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녀는 내가 구해. 그러니 우리 남창에서 만나. 지금 가. 당장!"

  유정은 소열을 지켜보다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유열을 들쳐 메고 산길을 곧장 걸어갔다. 소열에게 조심하라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오고 가는 눈빛 안에 나눌 것은 모두 나누었다.

  소열은 유정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방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선 몰랐다. 이대로 용화성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찬란한 별무더기 앞에 흐릿한 영상이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살아생전 처음으로 사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ㅡ치, 암만 봐도 모르겠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날 안고 뛸 생각을 했을까…….

 

  소열은 피식 웃었다.

  "후후, 사실은 나도 왜 그랬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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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조만리성
수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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