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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청조만리성
작가 : 수담.옥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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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 폭정의 왕도를 타도하고자 뭇 영웅이 저마다 일통 강호를 외치며 궐기한다.
이로써 천하는 사국쟁패의 각축장이 되니. 난세를 평정할 진정한 영웅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제 25 화
작성일 : 16-07-20 14:56     조회 : 597     추천 : 0     분량 : 8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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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풀어낸 사마검이 이번엔 구기의 눈앞에서 상의를 풀어헤쳤다.

 뽀얀 속살과 두 개의 볼록한 가슴. 구기의 생각을 여지없이 확인시켜 주는 일이었다.

 사마검이 말했다. 여자 목소리였다.

 “제가 여자란 사실은 진련에서 오직 태상만이 알고 있는 일입니다. 오늘 이제 한 분이 더 생겼습니다. 어떤가요? 이 정도로도 믿음을 주지 못하는가요?”

 “으음, 됐어. 충분히 알았으니까 우선 옷 좀 입어. 늙은이 욕보이지 말고.”

 사마검이 옷을 입었다. 옷을 입은 다음에는 이전처럼 머리를 영웅건으로 묶었다.

 “그게 진짜였다니 이거 정말 미치겠군, 미치겠어.”

 구기는 남장하는 사마검을 쳐다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진짜였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지요?”

 남장을 끝낸 사마검이 물었다. 남자 목소리였다.

 “후후.”

 구기는 바로 답해주지 않았다. 묘한 눈으로 사마검을 한참 바라보고는 처소 한편에 있는 책장으로 걸어가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말했다.

 “아주 오래전에 오늘의 일을 예언한 사람이 있었지. 그땐 농으로 넘겼는데 이제 보니 그게 농이 아니었던 거야.”

 “무슨?”

 사마검은 눈을 빛냈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구기의 손에 들린 고서가 눈에 확 꽂히고 있었다.

 구기가 사마검에게 고서를 내밀었다.

 “이건 예전 나의 의제인 청록이 후인에게 전하라며 나에게 맡긴 책이지.”

 “청록?”

 사마검이 반문했다. 모르는 인물은 아니다. 동서대전에서 활약했던 전략가이다.

 반문의 이유는 왜 이 책을 자신에게 주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이런 환대를 하며.

 구기가 웃으며 말했다.

 “보면 알게 되네. 예언은 또 뭐고 왜 이 책이 사마 련주와 연이 있는지. 핫핫핫.”

 청록열국신서(靑鹿列國神書).

 불세출의 전략가 청록이 시공을 건너뛰어 부활하고 있었다.

 

 <청조의 기세가 꺾이고 또한 명의 운이 다하면 한 사람이 청록신서를 찾아 광동으로 오리라. 그가 일천의 무리를 이끌고 온 여장부라면 청록신서는 냉대를 받을 것이고, 그가 일만의 무리를 이끌고 온 남효웅이라면 천대를 받을 것이로다. 그러나 만약 그가 여자도 아니요, 남자도 아닌 몸으로 홀로 광동에 온다면 청록신서는 그때 천하의 흥망을 가름하는 천서(天書)가 될 것이로다.>

 

 청록신서는 그런 예언 같은 글귀로 시작하고 있었다. 사마검은 그것을 보자 가슴이 마구 벅찼다.

 그를 지칭한 것 같은 예언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가슴 벅참은 지금 그에게 가장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이 신서에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청록신서는 서장 다음으로 향후의 대륙 패권 구도와 그에 따른 새로운 제국의 출현을 장문에 걸쳐 설명하고 있었다.

 본편에 이르면 전략, 전술, 용병술 등 병법의 제반이 논리 정연하게 서술되어 있었고, 다음의 치세편에서는 통일 제국의 정치, 경제, 법제 등 새로운 질서 논리가 박식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뜻 깊은 불경도 불력 높은 고승을 만나야 빛이 나는 법이다.

 “아!”

 사마검은 자리에서 일어나 청록신서에 경건히 절을 올렸다.

 “사마세가의 후예 사마검이 오늘 청록 사부님을 뵙습니다. 비록 사부님은 이승에 계시지 않으나 이 사마검은…….”

 이른바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제지연이었다.

 구배지례로 제자의 예를 다한 사마검은 그때부터 청록신서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삼 일……. 그는 장장 한 달 동안 청록신서를 읽었고, 읽는 중간중간에 깊은 사색을 하며 청록과 시공을 넘어선 교감을 나누었다.

 이때의 그는 청록이었고, 청록은 또한 사마검이었다.

 청록신서의 끝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일성을 얻고자 한다면 백성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의 길을 걷고, 일국을 세우고자 한다면 백성의 마음을 강탈하는 강도의 길을 걸어라. 그러나 만약 천하를 일통하는 제국을 세우고 싶다면 그땐 백성의 마음을 요리하는 숙수의 길을 걸어라.>

 

 청록신서를 완독한 사마검은 다시 한 번 책을 향해 경건히 절을 올렸다. 눈은 정기로 빛났고 표정은 자신감에 넘쳐흘렀다.

 “제자는 삶을 다하는 그날까지 숙수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숙수의 길.

 그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표현하는 말이었다.

 第十章 잠룡출도

 

 

 

 천무 칠년. 무산 백연곡.

 

 “하아! 하아!”

 봉두난발의 한 사내가 아무런 장비도 없이 까마득한 백연곡 절벽 정상을 향해 암벽등반하고 있었다.

 암벽등반하고 있는 사내의 등판은 강철처럼 탄탄하고 어깨에서 손목으로 이어지는 푸른 힘줄은 금방이라도 살갗을 뚫고 나올 듯 툭툭 불거져 있었다.

 사내의 현재 위치는 절벽 중간 어림. 정상까지는 아직 한참 험난하여 위로 올라갈수록 추락의 위험이 가중된다고 봐야 했다.

 물론 위험하다고 해서 사내가 되돌아 내려갈 일은 없었다. 중도에 포기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암벽등반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목표는 정상. 정상을 향해 중단없는 전진을 하는 사내. 사내는 백연곡의 칠 년 생활을 정리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임주원이었다.

 

 ***

 

 “나에게 인정을 기대하지 말라. 일 년 중 백일이 나머지 이백육십오 일을 모두 합친 날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무명자의 그 말은 옳았다. 임주원은 첫날부터 그게 어떤 고통인지 처절하게 실감했다.

 첫해에는 종합박투술, 무명투를 전수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전수가 아닌 폭행이며 잔인한 학대였다.

 그는 백 일 내내 땅바닥을 굴렀고, 구를 때마다 피를 한 주먹씩 토해냈다. 거기에 초식 같은 건 없었다.

 때리고, 던지고, 차고, 꺾고, 조르고, 심지어는 머리로 처박는 무규칙적인 전신 박투만 있었다.

 꼭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박투를 배워야 하는가? 좀 더 능률적인 방법으로 전수해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임주원이 두들겨 맞다 못해 이런 물음을 던졌을 때 무명자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머리보다는 몸이 더 확실하고 더 빨라.”

 백 마디 지껄이는 것보다 한 방 맞아보는 게 더 빠르다는 거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임주원은 더는 반감없이 무명자의 수련 방법에 따랐다.

 백 일 수련 과정을 남들이 보면 딱히 무식한 실전 대련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밤이 되면 무명자는 임주원의 굳고 멍든 몸을 추궁과혈하며 이전 시절 벌어졌던 유명한 실전들을 논검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밤 시간의 추궁과혈과 논검.

 이런 과정은 낮 시간의 무식한 실전 박투를 하기 위한 사전 공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낮에 두들겨 패기 위해 밤 시간에 튼튼한 몸을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에 전한 실전 논검은 다음날 낮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패인을 분석하는 가상 박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임주원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백 일 수련을 마쳤을 때 그는 녹초가 되어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무명자는 그런 그에게 ‘일 년 후에 보자’라는 한마디만을 남기고 백연곡을 떠났다.

 무명심법과 무명투의 중요 요결은 백 일 수련 기간에 전수된 상태다.

 임주원은 그때부터 홀로 백연곡에서 생활하며 무명심법과 무명투를 수련했다. 게으름은 피울 수 없었다.

 딱히 무명자와의 약속 때문이라거나 그의 의지가 대단했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원천적으로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무명심법을 일단 수련하면 게으름을 피우려고 해도 네 몸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무명자가 한 말은 정말이었다. 무명심법을 수련한 후로 그는 이상하게도 안정된 휴식을 할 수 없었다.

 몸이 계속 움직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반발감에 그냥 일없이 앉아 있으면 그때부터 전신이 저리고 쑤시고 가렵고 마구 아팠다. 수면도 그랬다.

 도통 두 시진 이상을 잘 수가 없었다. 그 시간을 넘기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몽유병 환자처럼 백연곡을 뛰어다녔다.

 오십 일, 백 일, 백오십 일…….

 그렇게 보내다 보니 어느덧 그런 끊임없는 수련이 그의 몸에 익숙해져 버렸다.

 사실 수련 외에 할 게 없었고, 또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려면 수련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수련은 대련과 단련으로 구분된다. 대련만 한다고 해서 고수가 되지는 않는다. 진정한 고수가 되려면 수련자는 뼈를 깎는 단련 공부로 내실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 일반적 단련에는 경공(輕功), 연공(練功), 경공(硬功), 기공(氣功)이 있다. 경공(輕功)은 신체의 속도를 높이는 훈련을 말함이며, 연공은 약재, 약물 등으로 타격의 힘을 키우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경공(硬功)은 나무, 돌, 철 등을 이용해 수련자의 뼈와 피부를 강철과 같이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무명심결을 전수받았으니 기공의 중요성은 따로 말하지 않겠다. 이런 단련 공부는 무엇보다 수련자 자신의 각오와 의지에 따라 성취가 결정된다. 힘들다고 해서, 귀찮다고 해서 단련을 태만시하면 수련자는 영원히 이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이런 단련 공부에 세 가지를 더 추가하겠다. 그것은 동체안력, 감응력, 환응력…….”

 

 임주원이 홀로 남겨진 백연곡 생활. 이백육십오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무명자의 말이었다.

 

 일 년이 지나자 무명자가 다시 백연곡을 방문했다.

 임주원이 딴에는 반가운 심정으로 무명자를 맞이했는데, 그 순간 그의 면상으로 무명자의 주먹이 날아왔다.

 임주원은 땅바닥을 굴렀고, 그렇게 또 백 일이 지나가 버렸다.

 무명자가 백연곡에 세 번째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반갑게 인사하는 그의 얼굴 위로 대뜸 무명자의 주먹이 날아왔다.

 홀로 된 생활을 하며 무명자와 재회할 날을 늘 그리워했다. 또 그런 한편으로 그는 이날을 예상하며 나름의 대비를 철저히 하였다.

 그는 무명자의 주먹을 손으로 막고 한발 빠르게 물러나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듯 실실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무명자의 발이 그의 턱을 사정없이 차올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그에게 무명자가 이런 말을 했다.

 “상대를 확실하게 끝장내기 전에는 긴장을 풀지 마라. 전장에선 한 번의 방심이 곧 죽음으로 끝난다.”

 그해의 백 일 동안 그는 무명투와 더불어 십팔반병기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역시 초식 같은 건 없었다.

 병기술은 무명이십사투의 연장이었고, 대련은 곧 치열한 백병전이 되었다.

 무명자가 네 번째로 백연곡에 찾아왔을 때, 임주원의 신체는 무명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외관상으로는 더는 아이가 아니었고, 자란 신체만큼 그는 이전처럼 무명자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지 않았다.

 간혹 반격을 가해 무명자의 신체에 타격을 입히기도 하였다.

 예상보다 빠른 임주원의 성취.

 그의 이런 발전에 무명자는 자못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 표정은 아주 잠시였고, 무명자는 곧 이전처럼 임주원과 박투 대련을 하였다.

 장족의 발전을 하긴 했어도 임주원은 결국 다시 줄창 두들겨 맞고 바닥을 굴렀다.

 특이한 일이라면 이때 임주원이 고통스러운 표정보다는 즐거운 미소를 머금었다는 것이다.

 무명자는 백연곡을 떠날 때 그에게 무명검법의 요결을 전수했다. 다만 무명심법이 팔성의 성취에 이를 때까지는 본격적으로 수련하지 말라고 일렀다.

 한편으로 상승의 무공은 스승의 바른 지도 없이 홀로 수련하면 위험할 수 있으니 다음 해에 그 자신이 직접 전수를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때는 또 백 일이 아닌 일 년 내내 임주원과 함께 생활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임주원은 그 말을 믿고 그대로 따랐다. 무명자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철부지 아이가 아닌, 무엇이 옳고 그런지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무명자의 혹독한 수련 안에 제자의 장래를 염려한 사부의 정이 담겨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명자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을 때도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백연곡에 다섯 번째 여름이 찾아왔다. 무명자가 오기로 약속된 날, 그는 아침 일찍부터 곡 안을 돌아다니며 산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혼자 된 생활을 오래한 덕분에 그는 요리를 하는 데도 제법 솜씨가 있었다.

 그는 혹여 무명자의 입에 육식이 맞지 않을까 염려하여 갖가지 산나물을 뜯어 산채 요리도 마련했다.

 더불어 재작년에 담가놓은 산딸기 술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이날 무명자는 오지 않았다.

 날짜를 잊을 수도 있으리라. 바쁜 세상을 살다 보면 날짜를 어길 피치 못할 일도 생길 수 있으리라.

 그는 그렇게 위안하며 다음날에 찾아올 무명자를 기다렸다. 무명자는 이튿날도 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지 않았고, 그렇게 백 일을 기다렸건만 무명자는 끝내 백연곡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왜 오지 않았을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혹시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별별 상상을 다 했다. 상상은 매번 걱정으로 이어졌다.

 일 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간 이전보다 더 열심히 수련을 하였다. 무명자를 만나면 깜짝 놀라게 해준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음해 여름, 여섯 번째 약속의 날이 왔을 때 그는 나무집 앞에 성대한 만찬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렇게 기대했건만 무명자는 이번에도 오지 않았다. 그는 준비한 음식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나 양이 많았지만 그는 억지로 먹고 오기로 다 먹어치웠다.

 “왜! 왜! 왜!”

 그날 밤 그는 나무집 앞에서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무명자에게 욕도 마구 해댔다.

 욕설이 메아리로 돌아와 백연곡을 휘돌 때 그는 문득 혼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서글프게 울었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만날 사람이 있다는 거, 기대할 사람이 있다는 게 육 년의 세월 동안 그게 얼마나 그에게 큰 힘을 주었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무명자와 약속한 이천 일은 오래전에 지났다.

 그의 몸을 금제하였던 삼첩중인지는 재작년 이맘때에 그 스스로 풀어놓은 상태이니 그는 언제든지 백연곡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혹여 무명자가 올지도 모른다는 미련에 백연곡을 떠나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수련은 중단됐다. 아니, 수련을 하긴 하되 무조건적인 수련은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원할 때만 수련했다. 활동을 하라고 육체가 마구 울부짖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이 시기에 그는 수련할 때보다 열 배는 더한 정신적 각오를 태웠다. 자기 몸 하나도 통제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어버린다는 각오였다.

 많은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한스런 인생을 돌아보았으며, 아버지의 불쌍한 삶을 생각했다.

 왕필을 비롯한 용무학관의 수련생들을 떠올렸고, 더불어 청학 스승을 그리워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모두가 그를 떠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자신의 남은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어떤 길을 가야 옳은가. 어머니의 원대로 명나라와 싸운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어릴 때는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이젠 그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생각은 많고 또 어렵고 심히 복잡하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이제 아이가 아닌 스무 살의 청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천 일 동안 수련을 하며 보낸 날보다 이천 일을 넘기고 보낸 기간에 더한 정신적 성숙을 그렇게 하고 있었다.

 백연곡에 일곱 번째 여름이 찾아왔다.

 무명자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하루를 꼬박 기다린 그는 다음날 아침 나무집으로 들어가 무명자가 예전에 구해놓은 무복, 그중에서 그의 훌쩍 자란 신체에 그나마 맞는 옷을 골라 입고 나왔다.

 무명자가 비상금으로 준비해 놓은 은자 꾸러미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무집을 나온 그는 백연곡의 절벽으로 향했다.

 출구가 없는 백연곡.

 무명자는 그럼에도 매번 백연곡으로 들어왔다.

 그는 무명자가 오고 갔던 그 길로 백연곡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절벽 앞에 섰다. 그에게 무명자처럼 절벽을 차고 오를 경공술 따위는 없다.

 척!

 그는 절벽 틈에 손가락을 처박고 암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까마득한 정상이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전날의 수련은 이보다 백배 더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어느덧 절벽 정상이다.

 정상에 오른 임주원은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힐 사이도 없이 절벽 한편에 세워져 있는 비석에 시선을 고정했다.

 낯익은 필체. 무명자의 흔적을 여기에서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진정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비석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만약 너 홀로 백연곡에 올라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땐 하남성 북망산 구천봉으로 가라. 그곳에 가면 부처 흉내를 내는 마귀가 있을 것이니, 그 땡중에게 ‘난세의 도(道)’를 물어보고 갈 길을 정해라. 땡중이 누가 보냈느냐고 물어보면 그땐 전날의 피를 씻어낼 수 없어 이름도 버리고 과거도 버려 버린 남산의 한 노구가 보냈다고 하거라.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를 무엇보다 기쁘게 한 건 무명자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눈물을 글썽였고, 이어서 무명자를 대하듯 비석에 큰절을 올렸다.

 절을 올린 다음 그는 백연곡 절벽 끝으로 다가갔다.

 용기가 용솟음친다.

 “아아아아아아아!”

 그는 발아래의 백연곡을 내려다보며 강호 출도를 알리는 큰 함성을 질렀다.

 

 칠 년의 수련. 무명심법 외에 그가 제대로 수련한 무공은 무명박투밖에 없다. 그 박투가 실전에서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대와 붙어보기 전에는 그 자신도 무명투의 위력을 잘 모른다.

 다만 강호는 이제 긴장해야 한다.

 천무 칠년 오늘.

 굴복을 모르는 야수!

 죽을지언정 무릎을 꿇지 않는 맹수!

 내 살을 주되 적의 뼈를 추려 버리는 지독한 포식자!

 산타로 무장된 진짜 중의 진짜, 대박전사가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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