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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청조만리성
작가 : 수담.옥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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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 폭정의 왕도를 타도하고자 뭇 영웅이 저마다 일통 강호를 외치며 궐기한다.
이로써 천하는 사국쟁패의 각축장이 되니. 난세를 평정할 진정한 영웅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제 23 화
작성일 : 16-07-20 14:56     조회 : 594     추천 : 0     분량 : 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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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의인과 함께한 네 번째 아침.

 “으음.”

 임주원은 눈을 떴다. 눈에 보이는 낯선 목조. 사물의 낯설음은 그에게 공간과 시간대의 혼란을 불러왔다.

 그는 여기가 어디인지, 또 자신이 얼마나 깊은 잠을 잤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손을 잡아라.”

 

 황의인의 음성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음성에 뒤이어 혼절하기 전의 과정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그는 침상에서 일어나 실내를 돌아봤다.

 탁자가 있다. 탁자 위에는 또 빼곡한 글이 쓰여진 종이 한 장이 놓여 있다. 그는 탁자로 걸어가 종이에 쓰인 글을 읽었다.

 

 여기는 백연곡(白戀谷)이다. 젊은 시절, 못난 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여인이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이다.

 출구는 없다. 인간들의 발자취가 싫어 내가 다 막아놓았다. 굳이 나가고자 한다면 백연곡 절벽으로 올라가야 한다.

 노부와 약속했듯 너는 여기서 이천 일을 홀로 보내야 한다. 그동안 너는 무명심법, 무명검법, 그리고 종합박투술 무명이십사투를 수련한다.

 게으름은 용납되지 않는다. 나는 일 년에 한 번 올 것이고, 한 번 올 때마다 백 일을 머물며 네 성취를 확인할 것이다.

 사실 무명심법을 일단 수련하면 게으름을 피우려고 해도 네 몸이 그렇게 쉴 수 없게 된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후일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이번이 그 첫해의 첫날이다. 나는 백 일 동안 여기에 머물며 너에게 무명심법과 무명투를 가르칠 것이다.

 무명검법은 훗날 네 무명투의 공부를 보아가며 전수를 결정하겠다.

 혹여 기연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다정한 수련은 더더욱 기대하지 마라. 나는 실전이든 수련이든 그것이 전장의 삶과 연관됐다고 판단하면 절대로 인정이 없다.

 그리고 아마 곧 알게 될 것이다. 일 년 중 백 일이 나머지 이백육십오 일을 모두 합친 날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참고로, 너와 나를 사제지간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

 나는 네가 원하는 대단한 무인도 아니며, 또한 전날에 지은 죄가 워낙 커서 따로 후인을 둘 입장도 못 된다. 하니 너도 그렇게 알고 있어라.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그저 약간의 연으로 맺어진 조손 사이일 뿐이다.

 생필품을 구입해 오후에 다시 백연곡으로 오겠다.

 잊지 마라.

 너의 운명은 이제 나에게 맡겨졌다는 것을.

 무명자.

 

 임주원은 글을 보고 난 후 나무집 밖으로 나왔다. 제일 먼저 본 건 협곡의 양옆으로 까마득하게 솟아오른 절벽이었다.

 저기에서 대체 어떻게 내려왔을까? 다른 점은 제쳐 두더라도 당장 그 의문부터 풀리지 않고 있었다.

 이 의문은 황의인의 숨겨진 무공 능력과 연결되리라.

 황의인 무명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기연이 아니다. 다정한 수련은 기대하지 마라. 우리는 사제지간이 아니다.

 

 그러나 임주원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나무집을 향해 공손히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청학 도장과의 연이 끊겨 버린 현재 그에게 남은 유일한 끈은 바로 황의인이었다.

 일배를 올릴 때 그는 이렇게 말했고,

 “저 역시 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에겐 기연보다 백배 더 소중한 생명줄입니다.”

 이 배를 올릴 때는 또 이렇게 말했다.

 “다정한 수련은 저 역시 기대하지 않습니다. 장군의 꿈만 이룰 수 있다면 저는 인간이 아닌 개돼지처럼 굴러도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배를 올릴 때는 이렇게 말했다.

 “사제지간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보잘것없는 저에게 은혜를 베푸신 소중한 분이십니다. 어르신께서 명성이 있든 없든 저 임주원은 어르신을 항상 사부님으로 기억하고 또 존경할 것입니다.”

 구배를 올린 다음 임주원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엎드린 채 오랫동안 흐느꼈다.

 회한? 아니다.

 감격? 아니다.

 이 흐느낌은 이전의 여린 삶을 버린다는 각오이다.

 또한 새 삶을 위해 영혼까지 불태운다는 각오이다.

 임주원과 무명자의 무인지연(武人之緣).

 바로 이날이 사국쟁패의 시작점, 천무(天武) 원년이다.

 

 

 

 

 第九章 사국쟁패의 서막

 

 

 

 천무 오년.

 이화촌 사태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오 년이 지났다. 그간 강호무림은 동서대전 이래 최고의 격변기를 맞이했다.

 청조가 대륙의 서북부에서 반명(反明)의 깃발을 들어 올릴 당시만 해도 기세는 비록 대단하지만 그 운명을 그다지 길게 보는 전략가는 없었다.

 청조의 무력은 감숙과 청해를 위주로 일어난 지역의 반란 세력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병력만 해도 소명부는 오십만이 넘었는 데 반해 청조는 기껏해야 십만이었다.

 그렇다고 개인 무력에서 청조가 앞선 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들자면 방대한 대륙에 흩어져 있어 집결이 어려울 뿐 청조보다 소명부에 무림고수가 월등히 많았다.

 전쟁 무기 또한 청조는 소명부에 비교가 안 되었다. 쉽게 표현해 청조가 화살 한 발을 쏘면 소명부는 화살 백 발을 날릴 수 있었다.

 자금력에서도 비교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청조 진압 병력 집결 기간 오 개월. 소명부 입장에서 변수만 없다면 그 정도 시일만으로도 충분히 청조를 진압할 수 있었다.

 소명부가 염려하는 변수는 강호의 동향이었다. 즉, 남무제의 아성을 짓밟는 행위를 강호인들이 그대로 두고 보고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청조 진압에 앞서 강호무림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무림인들을 단속했고, 한편으로 엄청난 재물을 뿌리며 무림방파를 다독였다.

 결과적으로 소명부의 이런 시도는 허무한 노력이 되고 말았다. 강호무림인들이 청조의 손을 들어준 때문이 아니었다.

 소명부가 청조와 치열한 지역전을 하고 있던 사이에 대륙의 남반부에서 청조의 위협에 못지않은 두 단체가 척명(斥明)을 부르짖으며 홀로서기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이른바, 진련(眞聯)과 초련(楚聯)으로 일컬어지는 이련의 난(亂)이었다.

 초련보다 진련이 먼저 일어났다.

 진련의 발원지는 무창의 사마세가. 사마세가의 당대 가주 사마중환은 강남 동남부의 무인들을 규합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명의 폭정에 맞서 청조가 궐기했다고 하나, 우리 강남의 형제들은 그들을 더는 신뢰할 수 없다.

 그들을 믿다가 자칫 우리는 또 전날처럼 대륙의 산천에 선혈만 남긴 채 참제국의 꿈을 꺾어야 할 수도 있다. 청조는 흘러간 물이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 강남의 의로운 형제들이여, 한마음으로 결집해 진련의 깃발을 들어 올리자. 그리하여 이 땅에 세세손손 자랑스러운 참제국을 건설하자!

 

 진련이 척명반청을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호남성 장사(長沙)에서 강남 서남부의 무인들을 규합한 초련이 발족됐다.

 초대 초련주에는 전날 장제로 무림에 명성을 떨친 무림삼로 황엽충의 장남 황가륵이 올랐다.

 황가륵은 초련을 발족시키며 이런 뜻을 분명히 밝혔다.

 

 명은 부패한 집단이요, 청은 배신의 무리다. 또한 진은 이도 저도 못 되는 졸렬한 무력 도당이다.

 그러므로 대륙의 새로운 깃발은 명도, 청조도, 진련도 아닌 우리 초련이 세우게 될 것이다.

 의로운 형제! 새 역사를 창조하고픈 형제! 가슴이 뜨거운 형제! 그런 형제들은 초련으로 결집하라! 초련은 형제들을 절대로 실망케 하지 않을 것이다!

 

 진련과 초련은 발족하자마자 강남 일대를 일거에 장악해 버렸다.

 대명부와 소명부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음에도 이렇게 강남이 그들의 수중에 손쉽게 떨어진 이유는 그들이 독자의 깃발을 세워 올리고자 오랜 세월 칼을 갈아온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남무제의 청무조 시절과 소명부의 무림 탄압정책 속에서도 휘하 단체를 점조직해 버티며 훗날의 준비를 튼튼히 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이련의 발족은 소명부의 청조 진압을 차후로 돌려 버리는 정책을 양산했다.

 청조 진압에 주력하다가는 자칫 강남의 패권을 완전히 빼앗겨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이련 중에서 진련의 존재는 소명부, 아니, 명나라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었다.

 진련의 본거지는 무창을 중심으로 하는 대륙의 동남부. 이는 북경의 턱밑에 반역의 무장 단체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명부의 반역도당 진압 정책이 청조에서 진련으로 급선회했다.

 청조 진압에 나선 병력을 무창으로 회군시킨 것은 물론이요, 만리장성 부근에 포진한 일부 북방 병력까지 남진시켜 진련 진압에 나섰다.

 그리하여 그해 칠월, 무창 인근의 장강을 일차 전선으로 소명부와 진련이 일대 격전을 벌였다.

 초반은 백중세였으나 전선의 양상은 한 달을 기점으로 급격히 소명부 쪽으로 승산이 기울었다.

 깃발을 세워 올릴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진련을 발족하지 않았다.

 장강 전투에서 진련이 한 달 만에 밀린 이유는 진련 수뇌부의 착오, 전략상의 오산이 있었던 때문이다.

 원래의 전략에 따르면 장강 전투를 즈음해서 청조와 초련이 군사를 크게 일으켜 명나라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야 했다.

 그러면 명나라는 전선이 분산되어 무창 전투에 집중할 수 없을 테고, 그때 진련은 상황을 봐서 북경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간다는 전략을 짜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전략이 먹혀들지 않았다. 장강 전투가 발발하자 청조는 청해성으로 철군하여 강남 상황을 조용히 관망했다. 뜻은 분명했다.

 소명부와 진련이 전쟁을 하는 동안 청조의 세력을 정비하고 또 병력을 확충하겠다는 것이었다.

 초련은 청조보다 좀 더 적극적인 전략을 구사했다. 진련 입장에선 배신과도 같은 전술이었다.

 장강 전투가 한창일 때 뜻밖에도 초련이 진련의 서부 경계선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따지고 보면 장강 전투에서 진련이 크게 밀린 이유도 그것에 기인되어 있었다. 전선의 분산. 애초에 짜놓은 명나라의 전장 상황이 도리어 진련에 돌아와 버린 꼴이었다.

 여기에는 초련과 소명부의 은밀한 협약이 있었다.

 즉, 강서 지배권을 인정해 줄 테니 진련을 함께 공격하자는 소명부의 요청을 초련이 받아들인 것이다.

 한편으로 초련이 그 조건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 이면에는 무창의 사마세가와 호남 황씨 가문의 배타적 관계, ‘너부터 우선 말살하고 말겠다’라는 숙적 처단의 사심이 수반되어 있었다.

 초련의 동쪽 공격, 소명부의 북쪽 공격, 청조의 방관. 이러한 연이은 악재에 진련은 패전을 거듭하였고, 장강 전투 두 달 무렵 끝내 무창을 함락당해 버렸다.

 진련은 분루를 쏟아내며 남으로 남으로 계속 퇴각했다. 퇴각 과정에서 초련과 소명부의 끈질긴 공격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진련은 삼십 년 동안 준비해 온 조직을 몽땅 날려 버리고 절강 이남까지 내몰렸다.

 재기는 쉽지 않았다. 조직도 없고 자금도 없다. 거기에다 대륙에 새로운 깃발을 세워 올린다는 의기마저 꺾여 버렸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권토중래할 인물이 사마세가에 없다는 것이었다.

 사마중환을 위시해 사마세가의 핵심 인물들이 이 전쟁에서 전부 죽거나 병신이 되어버렸다.

 사마의 성으로 온전히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스물도 되지 않았다. 그 안에 재기의 칼을 갈 만한 인물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사마세가 안에서 거의 잡부처럼 살아온 위인들이었다.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했다.

 사마세가의 전대 가주 무림삼로 사마양은 이 현실에 절망했다. 팔순의 나이가 무색하던 전날의 패기 어린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동서대전에서 패전할 때도, 소명부의 탄압을 받을 때도 그는 이렇게 좌절하지 않았다.

 십이분광 사마양.

 빛을 열두 조각 낸다는 당대제일의 쾌검사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절강에 온 후로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말 그대로의 노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늪에서도 꽃은 피어나는 법이다.

 사마양이 쓸모없다고 생각한 스무 명 안에 훗날의 천하를 사 등분하는 영웅이 있었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 그 영웅의 뛰어남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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