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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세계(완결)
작가 : 레일
작품등록일 : 2017.3.1

자전이 멈춘 미래. 생존의 사투와 종말에 엮인 거대한 비밀의 이야기

 
17화 END
작성일 : 17-03-01 18:12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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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눈을 떴다. ‘그것’은 눈을 떴다. 눈동자에 생기가 없었다. 고개가 조금 뻑뻑했다. ‘그것’은 개의치 않고 눈에 들어오는 정보를 신속히 처리했다. 어느 노중년의 여인이 서 있었다. 뒤에는 롱코트를 입은 남성과 환희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젊은 여인이 있었다. 젊은 연이 배가 불룩하게 불러있었다.

 

 늙은 여인은 입에는 원통 모양의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그 원통의 끝에서는 연기가 지독하게 피어올랐다. 남성이 늙은 여인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속삭이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은요? 제대로 감았어요?“

 

 “걱정 마, 지적수준 성인 수준으로 맞췄으니까”

 

 “몇 페타클롭스(연산속도 36.8이 슈퍼컴퓨터 수준)죠?”

 

 “25”

 

 “안녕하세요.”

 

 그것이 세 명은 번갈아 보며 말했다.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난 누구죠?”

 

 “네 이름은 에페야”

 

 “에페. 전 에페입니다. 나는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리메이서.”

 

 “난 플랭크”

 

 “라미온이야”

 

 에페는 라미온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쪽은 상체가 이상합니다.”

 

 “아, 난 임신 중이야”

 

 “아이입니까?”

 

 플랭크가 갑자기 에페 앞으로 나왔다. 그는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잠깐, 잠깐 멈춰요.”

 

 리메이서는 에페를 껐다. 시간이 멈춘 듯, 동작이 멈췄다.

 

 “왜?”

 

 “왜 인공지능처럼 굴죠? 성격이 없어요. 무미건조하고 무뚝뚝해요.”

 

 “과거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DNA가 사람의 성격을 좌지우지해요. 후천적 영향은 거의 없다고요 물론 큰 사건은 예외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종이는 없고 펜만 있으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듯이, 아무런 기억 없이 연령만 높이면 소용이 없을 지도 몰라.”

 

 “그럼 기억을 주입하는 건 어때요?”

 라미온이 말했다. 리메이서는 그녀를 보다가 생각에 빠진 듯 팔짱을 끼고 손을 입에 가져다 댄 채 바닥에 시선을 꼽았다.

 

 “과거 기억을 주면 경험을 깔아주는 거나 마찬가지니 어쩌면 더 나아질 지도 몰라요.”

 

 “어떻게 기억을 주입하지?”

 플랭크가 물었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사진을 메모리에 옮겨서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게 하면 되죠.”

 

 “비디오가 있어”

 리메이서가 말했다.

 

 “무슨 비디오요?”

 

 “제이콥의 비디오. 우리 애가 캠코더를 좋아했다고 한 거 기억나? 여기저기 찍어 다녔었어.”

 

 라미온과 플랭크는 서로 보다가 웃음을 지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제이콥을 완전히 환생시켜 보자고요.”

 

 “그런데 비디오는 어디 있죠?”

 

 “증조할아버지 벙커에”

 

 “벙커요?”

 

 “2차 대전 끝나고 3차 일어나겠다 싶어서 지으셨지. 그 위에 아파트가 들어서긴 했는데 별 탈은 없어. 난 거기서 어렸을 때 많이 놀았지. 특히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랑 싸우고 나면 툭하면 거기로 들어갔어. 지금은 그냥 내 개인공간이나 다름없어”

 

 “좋아요. 찾아올 수 있겠어요?”

 

 “아마, 지금 갈게”

 

 .

 

 “저기요. 도와드려요?”

 덩치가 산만한 아파트 경비원이 물었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리메이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 지하에 볼 일이 있어서요.”

 

 “지하? 아, 콜린씨였군요. 죄송합니다.”

 

 리메이서는 통로를 건너서 지하계단으로 내려갔다.

 

 비밀번호 : 10120421

 

 리메이서와 제이콥의 생일, 10월 12일, 4월 21일을 조합한 숫자였다.

 

 .

 

 “전부다 집어넣은 건가요?”

 라미온이 물었다.

 

 “응”

 

 “괜찮을까요? 선별하지 않아도?”

 

 “첫 시도부터 성공할 생각은 하지 말자”

 

 리메이서는 엔터키를 눌렀다.

 

 에페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입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충격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경련을 일으켰다. 눈은 죽은 시체처럼 초점이 허공 속에서 흩어졌다.

 

 “전 누구죠? 여긴, 제 이름은 제이콥입니다. 난 이미”

 

 “왜 이래?”

 플랭크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무릎에 손을 올려 에페와 눈높이를 맞췄다. 히스테릭환자 빠른 속도로 변화되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리메이서는 멀찍이 서서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세상이 멈추고 오직 거기에만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맙소사, 아울!”

 

 그러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앵무새처럼 말했다.

 

 “내 딸은 어디 있죠?”

 

 “에페?”

 

 플랭크는 에페의 귀에다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나 에페는 플랭크를 무시했다. 아니,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몇 번이고 더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다가 묵례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이 감겼다.

 

 “시스템이 꺼졌어요.”

 플랭크가 말했다.

 

 “스스로 종료했어.”

 리메이서는 말끝을 흐렸다. 침을 길게 삼켜 메인 목을 젖혔다.

 

 “자살이야”

 

 그렇게 말한 후 무겁게 발걸음을 옮겨 연구실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

 

 “아무래도 선별해야 할 것 같아.”

 리메이서가 말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쇼크가 온 거야. 또 자신의 정체에 대해 혼란이 왔을지도 모르지,”

 

 “뭐로 선별해요?”

 

 “중요한 사건 몇 개만 남겨두는 거예요. 그리고 되도록 자기 정체가 혼란이 오지 않도록 이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죠.”

 

 “굳이 이름을 숨겨야 하나요? 아니, 그러니까 제이콥으로 바꾸는 게 더 작업이 수월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내가 미칠지도 몰라”

 

 그들은 각각의 테이프를 돌린 후 삶을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에페 스스로가 교착에 빠지지 않을 것들로 골랐다. 그 결과, 서른 개중 총 16개 의 테이프가 뽑혔다. 리메이서는 각각을 순서대로 제목을 붙였다. 인생(life)의 약자 L을 쓰고 숫자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마지막 테이프는 어떻게 하지?”

 

 “이것 때문에 자기 교착 상태에 빠졌던 게 아닌가요? 아마 놓지 않는 게 좋겠어요.”

 플랭크가 말했다.

 

 리메이서는 마지막 테이프에서 손을 떼기 어려웠다. 분명히 참혹하고 이로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주지만 그럼에도 버릴 수 없었다.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었기에, 진실한 끝을 고하고 낯선 육체로 완전히 새롭게 시작시키는 것에 쓰라림을 느꼈다. 괜히 했다싶었다. 하지만 후회할 수도 없었다. 제이콥을 어떻게든 되살리기 위해서 DNA를 입력했던 것은 바로 본인이지 않는가.

 

 “이걸 버린다면 진짜는 영영 사라져”

 리메이서는 넋두리하듯 말했다

 

 “분명히 인격형성에 어느 정도 훼손되겠죠. 하지만 밧줄을 맺으려면 우선 꼬인 매듭부터 풀어야 해요.”

 

 리메이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메모지 하나를 꺼내 제이콥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썼다. 평소처럼 꾹꾹 눌러졌다.

 

 ‘미안하구나. 난 너의 인생이 계속 되길 바라. 나를 용서해 줘’

 

 .

 

 그로부터 나무가 새 옷을 갈아입은 후. 어느 날이었다. 리메이서는 연구소에서 나와 집에서 쉬고 있었다. 은퇴를 선언한 후 무료한 공기를 마시고 겨울 곰처럼 숨어 지냈다. 여느 날처럼 방에서 나와 거실 현관을 내다봤다. 마당의 잔디는 찬바람을 맞으며 폴락거리고 귀는 암만 기울여도 정적만 감돌았다.

 

 부엌에는 에페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계란 익은 냄새가 풍겼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머니”

 

 “잘 잤어?”

 

 “아시는 지 모르겠지만 간밤에 전화가 왔었어요”

 

 에페가 리메이서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무슨 일인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괜찮아. 세계는 지금 냉전시대야. 옛 사회주의자처럼 광신도들이 지구 반을 덮었다고. 난 홀로 죽기를 기다리고. 그 어떤 소식도 날 더 이상 놀라게 할 건 없어.”

 

 “그게, 플랭크씨 아드님과 라미온씨 따님이 사고를 당했답니다.”

 

 “뭐?”

 

 “젠시는 숨을 거두었고 라르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걸로......”

 

 ..

 

 “플랭크.”

 

 리메이서가 말했다. 플랭크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연구소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질 뿐이었다. 화면은 0과 1로 이루어진 DNA구조와 염기서열 암호들이 빼곡했다. 그는 숫자 하나하나를 조정해가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벽에 기댄 채 라미온은 팔을 얼굴에 가져다댄 채 울고 있었다. 라미온이 울부짖었다.

 

 “애가 깨어나질 않아요!”

 

 “라미온.”

 

 리메이서는 그쪽으로 가서 안아주었다. 라미온은 그 폼에 안겨 리메이서를 꼬옥 안았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거 라미온의 얼굴은 리메이서의 어깨에 파묻혔다. 옷이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가녀린 힘도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하죠?”

 

 라르의 상황은 알고 있었다. 리메이서는 무어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저기 있지 다 괜찮을거야, 하고 부질없는 위로만 반복할 뿐이었다.

 

 “당신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 가요”

 

 플랭크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시뻘겋게 부어 있었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아요. 세상이 끔찍하게 원망스러워요. 끔찍하게. 아이가 울고 웃던 모습이 떠올라요. 그 애가 좋아하던 딸기를 먹으려고 첫 발자국을 떼던 때가 생각나요. 그럴 때면 내가 없는 것 같아요. 아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실감나지 않아요. 늘 내 곁에 있었는데. 믿기지가 않아요. 아이를 말할 때도 이젠 모두 과거형을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손이 떨렸다. 절망과 아픔, 슬픔이 얼굴에 역력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는데, 이미 모두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플랭크.”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둘다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잖아요. 끝까지 지킬 수 없었잖아요.”

 

 “플랭크, 무슨 뜻이야?”

 

 플랭크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저장하고 어떤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당신의 길을 따라가겠어요.”

 

 .

 

 플랭크는 완전히 따라가진 않았다. 기계의 몸은 없었다. 인공배양을 거쳤다. 그는 아들을 살려내기 위해서 평생 지켜오던 법을 깨고, 윤리를 깼다.

 

 새겨진 DNA의 정보는 젠시 제인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플랭크는 단 한 가닥을 수정했다.

 

 ‘혈액형 부분,’

 

 이것이 바뀌면 그 한 가닥과 연관된 샹채 정보들이 바뀔 터였다. 기호라던가, 특정한 질병에 걸릴 확률이라던가. 등등 그렇게 수정된 그것은 진정한 젠시 제인이 아니었다. 진짜 젠시 제인은 채식을 선호하고, 육류를 싫어했으니까. 메주콩을 좋아하고 햄은 싫어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르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희귀 혈액형을 가진 그녀의 피를 공급해줄 사람이 필요 했다. 그것이 라미온의 부탁이었다.

 

 .

 

 몇 년이 흐르고, 지구 전역을 걸쳐 일어난 대지진이 발생했다.

 

 리메이서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대지진이 과연 누구의 탓인지를. 이 종말을 초래한 것이 과연 누구인지를, 누가 누구를 말살시키려던 공격이었는지를. 그 날, 플랭크도, 라미온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모두 죄책감에 시달릴 테지. 영원한.

 

 이후는 냉전시기가 끝을 맺었다.

 불은 당겨졌고, 황혼이 떠오른다. 암흑이 드리우고 모든 것이 꺼진다. 가짜 시계 바늘 소리와 숨소리만 가득한 채.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저 해는 지는 건가요, 뜨는 건가요?”

 

 “지는 거지.”

 

 “뜨는 해랑 다른가요?”

 

 .

 .

 .

 

 젠시는 성냥갑에 성냥을 대고 신시대의 지휘자처럼 휘둘렀다.

 

 빛이 있으라.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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