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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세이안
작가 : 사이딘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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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사신, 카이.
만 번째 그 임무를 끝낸 후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죽음의 신,
샤이노스의 말에 소멸을 선택한다.
하지만 소멸 대신 사고로 죽은 한 인간의 몸에 들어가게 된 카이!
한심함과 모자람을 골고루 갖춘 채 배배 꼬인 과거를 가진
세이안의 삶을 대신 살아가만 하는 카이의 운명이 펼쳐진다.

 
제 13 화
작성일 : 16-07-19 16:22     조회 : 547     추천 : 0     분량 : 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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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시종이 자넬 이디스 황자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거네.”

 “직접 소개도 안 해 주시는 겁니까.”

 “젊은 사람끼리 놀아야지, 내가 끼어서 뭐하겠는가.”

 이디스 황자를 본 적도 없는 자신을 직접 소개도 해 주지 않고 무작정 찾아가라는 베히츠의 말에, 세이안은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젊은 사람에게 친구 만들어 준다고 설친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베히츠에게 자꾸 무례를 범하는 자신을 한 대 때릴 듯 노려보는 슈레이튼 백작의 시선을 느끼며 그 말은 꿀꺽 삼켜야만 했다.

 “하하! 우린 폐하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쪽으로 가세.”

 “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베히츠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슈레이튼 백작과 함께 먼저 그 자리를 떠나갔다.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

 그리고 잠시 후 시종 하나가 세이안에게 다가서며, 이미 언질이 있었던 듯 그를 이디스 황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쪽입니다.”

 얼마 후 시종을 따라 세이안이 도착한 곳은 검술을 연마하는 장소였다. 아마도 황자 전용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

 “……?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세이안을 안내한 시종은 자신의 말에 정중히 감사 인사를 건네는 세이안의 모습을 보며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황성에 오는 귀족들 중 시종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거나 저리 말을 높이는 이를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내 시종은 평소보다 더욱 정중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여 보인 후 그 자리를 빠르게 떠나갔다.

 “…….”

 그렇게 홀로 그 자리에 남겨진 세이안은 멀리서 검술 연습이 한창인 한 사람을 가만히 바라봤다.

 ‘저자가 이디스 황자인가 보군.’

 루시언 못지않은 큰 키에 짧은 커트 머리가 잘 어울리는 그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검술 훈련에 매진하는 중이었다.

 “…….”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세이안은 끝나지 않는 그의 훈련에 슬슬 따분함과 졸음이 쏟아지는 걸 느껴야만 했다.

 걸음을 옮겨 근처 그늘진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은 세이안은 이디스 황자의 검술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졸리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따뜻한 햇살이 내려오는 풀밭에 앉아 있는 건 저절로 졸음을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

 그리고 잠시 후 세이안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대로 나무에 몸을 기댄 채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툭… 투툭!

 “……?”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무언가 자신을 툭툭 치는 느낌에 세이안은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다.

 “넌 뭐냐.”

 그러곤 자신을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한 사람과 마주할 수 있었다. 바로 조금 전 검술 훈련에 빠져 있던 이디스 황자였다.

 그는 검술 훈련을 끝내고 자신의 거처로 향하다 연무장 한 곳에서 잠이 든 세이안을 발견하곤 황당함을 느끼며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감히 다른 곳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 잠이 든, 배짱 좋은 인간이 누군지 궁금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다가와도 잠에서 쉽게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세이안의 모습에 그를 발로 툭툭 차며 깨웠던 것이다.

 “…….”

 세이안은 자신의 옷에 선명하게 나 있는 발자국을 보며 더할 수 없이 무표정해졌다.

 그러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턴 후 이디스 황자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

 그 후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겨 그 자리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 이봐, 누구냐고 묻잖아.”

 이디스 황자는 그런 세이안의 모습에 와락 얼굴을 찌푸리며 더욱 싸늘해진 음성으로 그를 향해 소리쳤다.

 감히 자신의 말에 대답도 없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그의 행동에 울컥 화가 치민 것이다.

 “친구가 필요하십니까?”

 “뭐?”

 그러다 처음으로 들려온 세이안의 음성에 이디스 황자는 의아한 눈빛이 되어야만 했다. 뜬금없이 친구라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발로 툭툭 차며 너 따위 필요 없다 말했다고 전해 드리겠습니다.”

 “……?”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자리를 떠나는 세이안의 모습에, 이디스 황자는 성큼 걸음을 옮겨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경고하는데, 다시 한 번 내 허락 없이 등을 돌리면… 죽인다.”

 “…….”

 세이안은 이디스 황자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느꼈지만, 그렇다고 그 말에 겁을 먹을 세이안이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이 팔 좀 놔주시겠습니까.”

 “…….”

 “땀으로 범벅된 손은 사양하고 싶습니다만.”

 “…나에게 명령하지 마라.”

 “명령이 아니라 부탁인데요.”

 “…….”

 이디스 황자는 자신의 차가운 말과 표정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말대답을 이어 나가는 세이안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얼굴을 찌푸려야만 했다.

 “다시 묻지. 누구냐, 너.”

 “세이안 슈레이튼이라고 합니다.”

 “슈레이튼? 슈레이튼 백작의 아들인가.”

 “네.”

 슈레이튼 백작이라면 이디스 황자도 잘 알고 있었다.

 큰 세력이나 재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 한쪽 권력에 빌붙거나 가문의 이름을 팔아 부를 쌓는 짓을 하지 않는 이라는 것 정도는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뭘 말이냐.”

 “…….”

 역시 노인네가 노망난 게 확실하다. 어쨌든 사람을 붙여 놓을 생각이었으면 미리 언질이라도 해 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 말도 이디스 황자에게 전하지 않은 베히츠를 떠올리며 세이안은 속으로 으드득 이를 갈았다.

 ‘샤이노스 님 같은 인간이었군.’

 아무런 대책 없이 일만 만들고 보는 샤이노스와 베히츠가 비슷하다고 여기며 짧은 한숨을 내쉬는 세이안이었다.

 “쓸데없는 일 만들기 좋아하고 노망나기 직전인 한 어르신이 절 이디스 황자님께 보내셨습니다.”

 “베히츠를 말하는 건가.”

 “…….”

 자기 말을 곧바로 알아듣는 이디스 황자의 모습에 세이안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건지 잠시 고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 하랍니다.”

 “뭐?”

 “저보고 가서 이디스 황자님의 친구가 되어 보라고 하더군요.”

 “…….”

 “그럼 전 이만.”

 세이안은 그렇게 모든 걸 알려 준 후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뒤돌아 걸음을 옮겨 갔다.

 자신이 거절한 게 아닌 이디스 황자가 가라고 했다면 이번 일도 그냥 이렇게 쉽게 마무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다려라.”

 “……?”

 하지만 다시 자신을 붙잡는 이디스 황자로 인해 세이안은 뒤돌아서던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기억력이 나쁘군.”

 “네?”

 “내가 허락할 때까지 먼저 등을 보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래서 죽이실 생각입니까.”

 “…….”

 이디스 황자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너무도 담담하게 내뱉는 세이안의 얼굴을 잠시 말없이 바라봤다.

 “따라와라.”

 “네?”

 “친구 따윈 필요 없지만, 베히츠가 보낸 이를 그냥 돌려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

 예의를 따지는 인간이 사람을 발로 툭툭 차냐!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세이안은 그 말을 꿀꺽 삼키며 앞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발걸음을 한 일이니 마무리는 확실히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손님 접대 장소치곤 참 특이하십니다.”

 “책 싫어하나?”

 “안 싫어합니다.”

 “그럼 됐군.”

 이디스 황자가 세이안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황실 도서관이었다.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책이 이곳에 다 모여 있다 할 정도로 이 도서관에는 드넓은 공간에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체자로스 황실 도서관에 없는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이라는 말이 있으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단지 손님을 데리고 접대할 장소는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말이다.

 “흐음.”

 하지만 세이안 역시 형식적인 손님 접대를 받으러 온 것은 아니기에 이내 도서관 안을 둘러보며 읽을 만한 책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러곤 흥미를 끄는 몇 권의 책을 찾아 들곤 창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

 그런 세이안의 모습을 보며, 미리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이디스 황자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보통 귀족가의 자제들이 자신과 함께할 땐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아부를 다 떨거나 한시도 자신의 곁에서 안 떨어지려 했다.

 그런데 오늘 만난 저 녀석은 뭐가 그리 잘났는지 아부는 고사하고 지금도 자신과 가장 먼 자리를 택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 자신이 있다는 걸 까먹은 이처럼 말이다.

 ‘재미없는 녀석이군.’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1시간, 2시간, 그리고 3시간이 흐르는 동안 책에서 시선조차 들지 않는 세이안의 모습에 이디스 황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왠지 녀석에게 무시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하, 차를 준비해 왔습니다.”

 그때 조용히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는 시종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 장시간 있는 경우가 많아 이렇게 시간이 되면 시종이 차를 들고 오곤 했다.

 스윽!

 이디스 황자는 순간 어린아이의 심술처럼 세이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시종이 자신의 옆을 지나갈 때 슬쩍 다리를 내밀었다.

 “어… 어!”

 시종은 그대로 이디스 황자의 다리에 걸려 앞으로 빠르게 넘어졌다.

 “……!”

 그런데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막 바닥으로 넘어지려던 시종이 마치 무언가에 당겨진 것처럼 넘어지려던 모습 그대로 다시 부드럽게 몸을 일으킨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

 당사자인 시종조차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등에 실이라도 매달린 것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일으켜지자 시종 또한 연방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이디스 황자 또한 갑작스런 상황에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의아한 눈빛이 되었다가, 급히 고개를 돌려 세이안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는 듯 처음 모습 그대로 책만 읽고 있을 뿐이었다.

 “뭐하는 거냐. 차 따르지 않고.”

 “네? 아, 네.”

 잠시 후, 괜히 짜증이 난 이디스 황자는 시종에게 화풀이하듯 큰 소리로 말을 건넸고, 그에 멍해 있던 시종은 빠르게 찻잔을 준비해 이디스 황자에게 내밀었다.

 그러곤 걸음을 옮겨 세이안에게도 차를 따라 건넸다.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시종은 건네 오는 세이안의 감사 인사에 당황하며 급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앞으론 발밑을 항상 잘 보고 다니십시오.”

 “네?”

 “괜한 심술을 부리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

 그리고 이어지는 세이안의 뜬금없는 말에 시종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조금 전 자신이 넘어지는 모습 때문에 그러는가 보다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도서관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탁!

 “차, 잘 마셨습니다.”

 시종이 건넨 차를 한 번에 쭉 마신 세이안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디스 황자에게 그제야 말을 건넸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또 오겠다고?”

 “한동안 어른들의 비위를 맞춰 줘야지 않겠습니까.”

 “…….”

 “그럼 전 이만.”

 이디스 황자에게 꾸벅 인사를 건넨 뒤, 그대로 도서관을 빠져나가는 세이안이었다.

 “…뭐야, 저 녀석.”

 그렇게 세이안이 사라진 후 홀로 도서관에 남은 이디스 황자는 와락 얼굴을 찌푸린 채 못마땅한 표정을 한동안 풀지 못했다.

 “그리고 아깐 그건 뭐였지.”

 그러다 조금 전 시종에게 일어난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드는 이디스 황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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