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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세이안
작가 : 사이딘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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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사신, 카이.
만 번째 그 임무를 끝낸 후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죽음의 신,
샤이노스의 말에 소멸을 선택한다.
하지만 소멸 대신 사고로 죽은 한 인간의 몸에 들어가게 된 카이!
한심함과 모자람을 골고루 갖춘 채 배배 꼬인 과거를 가진
세이안의 삶을 대신 살아가만 하는 카이의 운명이 펼쳐진다.

 
제 12 화
작성일 : 16-07-19 16:17     조회 : 573     추천 : 0     분량 : 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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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형님.”

 “음?”

 “제가 무슨 사고를 당했던 겁니까.”

 “뭐?”

 “제가 무슨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은 건지 묻는 겁니다.”

 “……!”

 그렇게 밖으로 나온 세이안은 루시언과 걸으며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라 질문을 던졌다.

 생각해 보니 아직 세이안이 무슨 사고로 쓰러져 죽음을 맞아 자신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건지 그 원인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

 그런데 자신의 그 질문에 루시언은 조금 굳어진 표정으로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사고의 기억을 떠올려 봐야 좋을 거 없다. 관심 두지 마라.”

 “……?”

 그러곤 자신에게 거기에 대한 기억을 할 필요도, 알 필요도 없다며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주지 않는 루시언이었다.

 “…….”

 그에 세이안 역시 굳이 알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며 더 이상 거기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별로 알아 좋을 사고는 아니었나 보군.’

 잔뜩 굳어진 루시언의 표정을 보며 그리 단순한 사고는 아니었다는 것만 짐작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

 

 “친구요?”

 “그래.”

 “이디스 황자님의?”

 “마음을 나눌 친구 하나 없는 이디스 황자님을 폐하께서 많이 걱정한다 하시더구나.”

 “…….”

 슈레이튼 백작을 찾은 세이안과 루시언은 며칠 전 이곳을 방문한 베히츠가 남긴 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애도 아니고 친구를 다른 사람이 찾아 주어야 하는 거냐.’

 세이안은 그런 슈레이튼 백작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친구를 어른이 선택해 골라 주는 것이 조금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디스 황자의 성격이나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세이안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며 슈레이튼 백작의 말을 한쪽 귀로 듣고 흘리며 앞에 놓인 차만 홀짝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왜 아버지에게 하신 겁니까.”

 “…세이안이 그 일을 해 줬으면 하셨다.”

 “네?”

 “풉!”

 그러나 이어진 슈레이튼 백작의 말에 세이안은 마시던 차를 그대로 뿜어내야만 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요?”

 “그래.”

 세이안은 급히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황당한 표정으로 슈레이튼 백작을 바라봤다.

 그러곤 자신의 귀가 제대로 작동한 것인지 재차 물으며 확인했다.

 “절 지목하셨다는 말입니까? 그 어르신이?”

 “맞다, 널 지목하셨다.”

 “…….”

 몇 번의 물음에 똑같은 대답을 하는 슈레이튼 백작의 모습을 보며 세이안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노인네가 노안에 이어 노망이 났나. 하고 많은 이들 중에 나를 왜 지목하고 난리야.’

 언제 봤다고 자신을 황자의 친구가 되어 줄 인물로 지명한 것인지 세이안은 베히츠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안 됩니다.”

 “루시언.”

 “절대 안 됩니다.”

 잠시 후 귀찮은 일은 사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막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던 세이안은, 그런 자신보다 먼저 반대 의사를 확실히 표하는 루시언으로 인해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아이를 지금 이디스 황자에게 보내겠다는 겁니까.”

 루시언 역시 이디스 황자에 대한 얘기는 이미 듣고 있었다. 성정이 불같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이라는 소문은 제국 안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아무리 세간에 관심이 없는 그라도 이디스 황자의 그런 소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가문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아버지!”

 “베히츠 님도 뭔가 생각이 있으시니 세이안을 선택하셨을 거다.”

 “제가 가겠습니다.”

 “넌 안 된다.”

 “아버지!”

 “가죠, 뭐.”

 “그래, 가… 음?”

 “……!”

 그렇게 한참 주거니 받거니 하며 금방이라도 큰 싸움이 날듯 다투던 두 사람은 순간 곁에서 들려오는 차분한 음성에 흠칫 싸움을 멈춰야만 했다.

 “세이안.”

 바로 세이안의 음성이었다.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씩 들러 말동무나 해 주는 게 뭐 힘든 일이겠습니까. 해 드리겠습니다.”

 “…….”

 “…….”

 별일도 아닌 일에 쓸데없이 싸우는 두 사람을 말리며 세이안은 그렇게 말을 끝맺은 뒤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 간단히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리 어렵게 생각할 일도 아닌 듯합니다만.”

 “세이안…….”

 루시언은 이번 일을 말리고 싶었다. 혹여 이디스 황자의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해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문에 피해가 가는 게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이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웠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사고로 기억을 잃어 이디스 황자가, 아니 황성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모르는 듯했다.

 음모와 배신, 그리고 권력을 위한 온갖 더러운 다툼이 가득한 곳이 황성이라는 곳이라는 걸 말이다.

 “잘 생각해라.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

 루시언에 이어 슈레이튼 백작까지 세이안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자신이 먼저 말을 꺼냈고 가문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말을 하긴 했지만, 슈레이튼 백작이라고 세이안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온갖 사고를 쳐 자신의 머리를 아프게 한 녀석이긴 하지만, 누가 뭐래도 세이안 역시 자신의 아들이었다.

 “어렵게 결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 않습니까.”

 “…….”

 밖으로 향하던 세이안은 걸음을 잠시 멈춰 그렇게 말을 내뱉은 후 피식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소악마라 불리며 사고만 쳤다 하는데, 이번에 작게라도 가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탁!

 “세이안!”

 그 말을 끝으로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는 세이안의 모습에 루시언 역시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

 그에 홀로 자리에 남은 슈레이튼 백작은 굳어진 표정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가문을 위해서라지만 아직은 어리다 할 수 있는 세이안을 온갖 술수가 난무하는 황성으로 떠밀듯이 들여보내는 것이 그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소악마라…….”

 그러다 스스로를 그렇게 칭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던 세이안의 모습을 떠올리며, 슈레이튼 백작은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내뱉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오늘따라 그 말이 왜 이리도 가슴이 아픈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형님.”

 “…….”

 이 인간, 은근히 뒤끝 있는 인간이었네.

 며칠 후, 세이안은 슈레이튼 백작과 황성으로 향하며 루시언에게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굳어진 표정으로 자신과 시선조차 마주하려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쯧 하고 속으로 혀를 차야만 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삐치기도 하냐는 조금은 황당한 눈빛으로 그를 보면서 말이다.

 ‘휴우…….’

 그래도 그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저런다는 걸 알기에 세이안은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쉰 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예전에 쥬시아가 심하게 삐쳤을 때마다 자신이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 있었다.

 그것도 물론 쥬시아가 이럴 땐 이렇게 해 주는 거라고 직접 가르쳐 준 방법이었지만 말이다.

 “……!”

 세이안은 루시언에게 다가가 그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안아 주었다.

 키가 컸던 카이였을 땐 쥬시아를 달래기 위해 자신이 안아 줬지만, 자신보다 더 큰 루시언은 이렇게밖에 안아 줄 수가 없었다.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

 그런 세이안의 행동에 루시언은 놀란 눈빛이 되어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건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 또한 매한가지였다.

 평소 형에 대한 증오심이 강했던 세이안이었기에 저렇게 다정히 루시언을 안아 준 일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잘 다녀와라.”

 잠시 당황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루시언은, 잠시 후 그런 세이안의 머리를 가볍게 툭툭 치듯 쓰다듬어 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네.”

 그제야 그의 화가 풀렸다 생각한 세이안은 그의 말에 간단히 대답하며 그대로 뒤돌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슈레이튼 백작에게 다가갔다.

 “안 가십니까?”

 “음? 아, 그래, 가야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슈레이튼 백작은 세이안과 함께 빠르게 마차에 올랐다.

 “…….”

 “……?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아니다.”

 그렇게 황성을 향해 마차가 출발하고 슈레이튼 백작은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가만히 세이안을 바라봤다.

 ‘갑자기 저리 달라질 수 있는 건가.’

 기억을 잃으면 다들 저리 변하는 걸까.

 예전과 참으로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슈레이튼 백작은 세이안에게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게 나쁘진 않지만 말이야.’

 물론 그 변화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최근 루시언과 사이가 좋아진 것 같다는 집사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그게 사실이라는 것에 왠지 모를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쥬시아의 말이 맞았군.’

 한편 세이안은 쥬시아가 가르쳐 준 방법이 다른 이들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쥬시아가 조금 전 그 모습을 보았다면 그 방법은 여자에게만, 그것도 카이를 사랑했던 자기에게만 통하는 방법이라고 다시 가르쳐 주었을 테지만, 세이안이 그 사실을 알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일이었다.

 덜컹… 덜컹…….

 그렇게 각자의 생각에 빠진 이들이 탄 마차는 빠르게 체자로스 황성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

 

 “하하!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군.”

 “…저까지 같이 반가워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녀석, 여전하군.”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변하기를 바라십니까.”

 세이안과 슈레이튼 백작이 황성에 도착하자 베히츠가 나와 그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물론 귀찮은 일을 떠맡은 세이안의 입에선 좋은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세이안! 그 무슨 무례한 언사냐!”

 “하하! 괜찮네, 괜찮아. 그래도 고맙군. 부탁을 들어 줘서.”

 베히츠는 세이안을 나무라는 슈레이튼 백작을 막으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봤을 때 남의 부탁을 쉽게 들어줄 녀석이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 챈 베히츠는 이번 일을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인 세이안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윗사람은 부탁이라 말하지만, 아랫사람은 명령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쯤은 아실 나이 아니셨습니까.”

 “…….”

 하지만 그런 자신의 말에 가볍게 툭 내뱉듯 이어지는 세이안의 말을 들으며 베히츠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세이안!”

 오히려 슈레이튼 백작이 당황하며 급히 세이안의 이름을 다시 큰 소리로 불러야만 했다.

 “아니네. 저 아이의 말이 맞아. 내가 미처 자네가 내 말을 어찌 받아들일지 생각하지 못했군.”

 “아, 아닙니다, 베히츠 님.”

 그러나 이번에도 베히츠가 당황한 슈레이튼 백작을 막으며 도리어 그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

 베히츠는 새삼 흥미로운 눈빛으로 세이안을 바라봤다.

 자신에게 저리 비웃듯 말을 하는 녀석도 처음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을 웅장함이 느껴지는 황성 앞에서도 저리 무표정을 유지하는 이 또한 저 녀석뿐일 것이다.

 ‘아직 내가 사람 보는 눈은 남아 있군.’

 자신의 선택이 역시 틀리지 않다는 걸 느끼며 베히츠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히려 이디스 황자가 저 아이와 친분을 쌓아 두어 후에 득이 되면 득이 됐지,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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