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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화공도담
작가 : 촌부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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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와 법을 익힘에 있어 느리디 느린 둔재.
법식에 얽매이기보다 마음을 다하며,
술을 익히는 데는 느리지만 누구보다 빨리 도에 이를 기재.
형식과 필법을 익히는 데는 둔하나 참다운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게 된 화공 진자명의 강호유람기가 펼쳐진다.

 
23 화
작성일 : 16-07-19 14:14     조회 : 704     추천 : 0     분량 : 8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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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남궁세가라는 무시무시한 꼬리를 달고 강호행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자명은 우마차가 멈춰 서자 기쁜 미소를 지었다.

 마차를 얻어 탄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송아지 두 마리와 함께 짐칸에 머무르는 것은 고역이었다. 처음엔 경계하는가 싶던 송아지는 어느새 안심을 하고는 혀로 이곳저곳을 핥아댔던 것이다.

 마차에서 내리려니 아쉬운 듯 음메 하고 울기까지 한다. 자명은 미소를 지으며 송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짐마차에서 내렸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고맙기는 무얼. 어차피 가는 길이었는데.”

 구화산에 큰 우시장이 열린 것이 자명에게는 호재였다. 자명은 우시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황산 부근에 산다는 한 농부를 만나 이처럼 우마차를 얻어 타게 된 것이다.

 “송아지 잘 자라길 바랄게요.”

 “그럼, 큰돈을 주고 샀는데 잘 자라야지.”

 농부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우마차를 몰아갔다.

 자명은 다시 한 번 풍작이 되라며 축원하고는 황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걸음을 옮겼다.

 합비에서 황산까지는 준마를 타면 사나흘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무려 칠 일의 시간을 소모하고 나서야 황산 부근에 당도한 자명이었다.

 설상가상, 돈마저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은자 반 냥도 안 남았네.”

 자명은 소매에서 토막 난 은자를 꺼내어 요리조리 굴려보았다.

 호객꾼의 손짓에 이끌려 크고 예쁜 객잔에 들어간 것이 문제였다.

 아직 세상에 대해 잘 몰랐던 자명은 ‘비쌀 것 같은데’라고 중얼거리면서도 호객꾼이 주문해 주는 음식을 먹고, 호객꾼이 지정해 준 방에서 잔 다음, 은자 한 냥 반이라는 거금을 지출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 객잔은 소호에 유람 온 부자들을 상대하는 비싼 객잔이었다.

 그 뒤로 돈을 아낀다고 아껴봤지만, 세 냥이라는 큰 돈 중에서 이제 은자 반 냥도 채 남지 않았다. 이 돈으로 방랑을 할 수 있을까 싶다.

 “뭐, 일단은 그림을 그려서 팔기로 했으니까.”

 마침 연말이 다 되어 집집마다 납팔죽(臘八粥:쌀, 좁쌀, 찹쌀, 수수, 팥, 대추, 호두, 낙화생(땅콩)을 한데 끓인 죽. 한 해의 수확을 축하하는 뜻으로 연말에 먹는다)을 끓이고 있는 시점이다. 이맘때쯤엔 없던 인심도 생겨나는 법이다.

 자명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황산 쪽 가까운 마을이 보이자 그쪽으로 달려갔다. 마침 허기가 지니 그림을 그려주고 한 끼 청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마을까지 달려간 자명은 코끝을 킁킁거렸다. 고소한 냄새가 풍겨오자 주위를 둘러보던 자명은 그럭저럭 멋지게 지어진 모옥을 발견하고는 긴장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기웃거렸다.

 “뉘시우?”

 죽을 쑤던 아낙이 자명을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자명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황산을 찾은 객입니다. 여비가 떨어져 곤란하던 차인데, 마침 제게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으니 그것으로 밥을 빌어볼까 하고요.”

 “원단에 객을 타박하면 다음해가 재수없다니 먹을거리야 나눠 줄 수 있지만, 귀한 분 같은데…….”

 “저는 학사나 문인이 아니라 그저 떠돌이 화공일 뿐인데요.”

 자명이 쑥스러워하며 말하자 아낙이 반색했다.

 “화공? 화공이라면 잘됐구랴! 마침 재주가 없어 조왕신에 빌지도 못하고 있었다우. 들어오시구랴.”

 일설에 따르면, 천존(天尊)께서는 워낙에 바빠 대신 조왕신을 각각의 집에 보내놓는다고 한다.

 사람들을 관찰한 조왕신은 연말이 되면 하늘로 돌아가 한 해 동안의 공과를 보고하는데, 때문에 연말에는 조왕신(?王神)을 그려 조방(?房:부엌)에 붙여놓고 엿을 고아 바친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소리만 해달라는 뜻이다. 엿을 먹고 입이 붙어버리라는 뜻도 있고 말이다.

 과연 조방에는 그림에 재주가 없는 사람이 삐뚤빼뚤 그려놓은 낡은 조왕신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

 “우리 바깥분이 그린 거라우. 재주가 없어 그림을 얻어오지도 못하고 자기가 직접 그렸지 뭡니까. 이 기회에 두어 장 그려주고 가시구랴. 배고프면 쑤어놓은 죽이라도 나눠 줄 터이니.”

 “조왕신의 그림 말입니까?”

 자명이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채화당에서는 그림으로 치지도 않지만, 세상에는 풍속화 같은 것이 널려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처음 만난 집부터 곧바로 풍속화를 그리게 될 줄은 몰랐다.

 “조왕신은 처음 그려보는데…….”

 본래 서화(書畵)란 문인들의 고아한 취미로, 대개 이상향에 가까운 산수화(山水畵)나 사군자(四君子) 등 군자의 향취를 닮은 식물, 혹은 고사에 나온 선인들의 자취를 그림으로 옮긴다. 자명이 그간 배워온 것도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민간의 풍속화는 이처럼 다르다. 생활에 맞닿아 있기도 하거니와, 소망하는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 붙이기도 한다. 풍속화를 처음으로 그려보게 된 자명은 오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못 하시겠수?”

 “음… 한번 해볼게요.”

 아낙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질문을 던지자 자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세상 속으로 나왔으니 세상의 그림도 배워야 하리라. 마침 이렇게 되었으니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자명은 아낙이 알려준 작은 방에 들어가 침상 옆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그리고 화선지를 펼쳐 문진으로 꾸욱 누르고는 먹을 갈았다.

 하지만 먹을 다 갈았음에도 자명은 쉽사리 붓을 들지 못하였다.

 ‘아름답게 여기지 않았거든 아예 그리지 말라고 했다. 조왕신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조왕신을 그려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니, 경영하필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조왕신이 누구일까? 또 그는 어떠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까?

 자명은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쉽게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다.

 아름다움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무명도원도의 호흡이 심술을 부릴 테니 함부로 붓을 놀려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낙은 그것도 모르고 기대감 어린 얼굴로 흘끔흘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차, 차라리 산수화나 실경(實景)을 그리는 편이 훨씬 낫겠구나.’

 처음에는 쉽게만 생각했는데, 풍속화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미간을 좁히고 생각에 빠져들었던 자명은 저도 모르게 붓끝을 깨물었다.

 아낙은 뒷모습만 흘끗 보고 화공이 배고파서 저러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빠르게 조방으로 달려가 쑤고 있던 납팔죽을 한 줌 퍼 담았다.

 그때, 한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모옥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 왔수?”

 “나 올 때를 알고 우리 마누라가 죽을 퍼 담고 있구먼.”

 사내는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키득거렸다.

 “으이구, 또 한잔 걸친 모양이로군. 밀주(密酒)를 담았다가는 치도곤을 당하는데, 그 왕가 놈이 또 술을 담근 게야.”

 “연말이니 봐줘, 이 마누라쟁이야. 그보다 자네는 그 소식을 들었는가?”

 아낙은 대꾸도 없이 심드렁한 얼굴로 죽을 퍼 담았다. 사내는 아낙이 듣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또 황산에서 곡소리가 들려왔다는군. 황산에서 사냥으로 먹고사는 왕가 놈이 또 그 소리를 들었대.”

 “그거야 나 어릴 적부터 꾸준한 일 아니우.”

 “글쎄, 이게 다른 날보다 더욱 구슬프더라는 거야, 이 마누라쟁이야. 틀림없이 나랏님이 잘못 다스려서 산이 우는 것일 테지.”

 근 삼십 년 전부터 연말이면 곡소리가 황산을 울리곤 했다. 처음에는 늙은 여인이 곡소리를 낸다고 모두들 두려워했는데, 삼십 년쯤 되고 보니 이제 익숙해지고도 남는다.

 죽을 다 퍼 담은 아낙은 방 안을 턱끝으로 가리켰다.

 “지나가는 화공이 있기에 끼니를 대접하고 조방에 붙여둘 그림을 한 장 얻기로 했수. 별로 대단한 화공은 아닌가 본데, 당신이 그린 그림보다는 낫겠지.”

 “어, 그래? 그거 잘됐구먼.”

 아낙이 죽을 담은 소반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사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방 안을 기웃거렸다.

 잠시 뒤, 방 안에서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죄송합니다. 조왕신은 그려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 산수화 같은 걸로는 안 될까요?”

 “산수화라니, 그런 건 고고한 문사님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 아니우. 그딴 거 말고 조왕신을 그려주시우.”

 아내의 목소리를 들은 사내가 피식 웃었다. 화공의 목소리가 순진하기도 하거니와 아내의 억척 어린 말투가 새삼 우습다.

 “하, 하지만 조왕신을 그려보는 것은 처음이라 생각보다 어려워서…….”

 화공이 뭐라고 변명하자 당황한 아내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질문을 던진다. 화공이 실력이 부족한가 보다고 답하자 실망한 건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 아내가 잔소리를 시작했다.

 “으이구, 저놈의 잔소리. 객한테까지…….”

 소문난 수다쟁이를 아내로 둔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왠지 모르게 화공에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마 화공은 한참 동안 식은땀을 흘려야 아내의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3

 

 

 

 자명은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납팔죽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아낙은 그래도 먹고 가라며 납팔죽을 들이밀었던 것이다.

 그림도 못 그린 주제에 얻어먹기가 민망했지만, 그래도 납팔죽은 맛있었다.

 대신, 그 이상을 바랄 수는 없어서 자명은 납팔죽을 다 비우자마자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왔다.

 밥값을 한답시고 난이라도 한 점 치려 했으나, 돈도 안 되는 그딴 것은 필요없다며 오히려 통박을 맞았다. 결국 그날 밤은 황산 부근의 한 객잔에서 묵어야 했다.

 다음날, 또다시 은자를 잘라 방값을 계산한 자명은 시무룩한 얼굴로 객잔을 나섰다.

 하지만 막상 객잔을 나서고 보니 한줄기 웅심이 피어오른다. 마침내 절경 중의 절경이라는 황산에 오르게 된 것이다.

 오악(五岳)에 가면 다른 산이 눈에 차지 않고, 황산에 가면 오악이 눈에 차지 않는다고 했던가!

 황산의 초입에 들어선 자명의 마음에 흥분이 감돌았다.

 과연 산행 초입부터 이쪽에는 기암이, 저쪽에는 운무가 가득한 준령이 보인다. 아직 높이 오르지는 못했지만, 자명은 산의 아름다움에 취해 탄성을 내뱉었다.

 “굉장하구나!”

 세상의 어떤 그림도 자연을 따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화공이 가장 귀한 먹과 안료로 그림을 그린다 해도 이런 산야를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자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자연을 그대로 그려낼 수 있는 화공이 있다면, 그 화공은 사람이 아니라 신선일 거야.”

 저 멀리 어디서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암괴석이 보이자 자명은 문득 무명도원도를 떠올렸다.

 사람이 그려낸 그림 중에 이와 같은 수준의 그림이 있다면 오직 무명도원도뿐일 것이다.

 그 그림을 본 모영찬 화원님은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했지만, 자명은 그것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자연과도 비견될 만한 신품 중의 신품이었다.

 그런 그림을 그려낸 이는 얼마나 뛰어날 것인가!

 “그러고 보니 나한테도 그걸 그려보라고 했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개꿈이 분명하다. 자기가 어떻게 그런 수준의 그림을 그리겠느냐는 생각이 들자 자명은 피식 웃어 보였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은 자명의 소망은 웃음 속에도 진심을 남겨놓았다.

 “만약… 내가 할아버지가 말한 진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면…….”

 아직은 진짜 그림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것을 그릴 수 있게 된다면 꿈에서 말했던 도원도를 그려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는 무형이고 무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천지만물에 있다…….”

 자명은 중턱에 서서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산의 밤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말이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쯤에 자명은 뒤늦게나마 경각심을 느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서둘러 걸음을 옮겨보아도 백아령을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해가 완전히 지고 달이 떠올랐을 쯤에는, 광명정이나 비래석을 구경하는 것은 고사하고 길도 잘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로라면 산에서 잠을 청해야 할 텐데, 잘 수 있는 곳은커녕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마, 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멍하니 서 있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이 넓은 황산에 설마 사람 사는 곳이 없으랴 하고 괜한 호기를 부린 끝에 이 모양 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명은 침울한 얼굴로 불빛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으면 큰일인데…….”

 불빛은 하나도 없다. 인기척도 없고 자꾸 부엉이 우는 소리만 들린다. 황산 기슭에는 늑대도 많다던데, 이러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할까 싶어 자명은 겁을 덜컥 집어먹었다.

 자명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크게 소리를 질러보기로 했다. 황산을 찾는 유람객이 많으니 중턱 어딘가에는 반드시 산장 같은 것이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도움을 구할 수도 있으리라.

 “저기, 누구 없어요?”

 대답 대신 또다시 부엉이가 울었다.

 자명은 몇 걸음을 더 걸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누구 없나요? 아무도 안 계세요?”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우우, 하고 늑대 우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자명은 화들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를 낸다면 늑대가 귀신같이 알아듣고 자신을 잡아먹으러 올 것이다.

 그때부터는 수풀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소리조차도 무서웠다. 갑자기 늑대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자명은 수풀 쪽으로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였다.

 겁에 질린 자명은 길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들었다.

 “워이! 워이!”

 자명은 나름대로는 호신 무기라고 주워 든 나뭇가지로 수풀을 찔러보았다. 만약 늑대가 튀어나오면 나무 몽둥이로 호되게 때려줄 생각이었다.

 근처를 뒤져 아무 야생동물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자명은 이대로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늑대가 있을지도 모르니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보다는 한군데에 머물러 해가 뜨기를 기다려야 했다.

 나무둥치 하나를 골라 그 아래 쭈그려 앉은 자명은 두려운 얼굴로 산의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할아버지는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된다고 했는데, 과연 그 말이 맞다.

 두려움이 밀려들자 그토록 아름답던 황산은 요괴와 귀신들이 가득한 지옥이 되어 있었다.

 “안 돼, 안 돼.”

 자명은 고개를 홰홰 저어 두려움을 쫓아내려 애썼다. 한시라도 자신이 화공임을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두려움 대신 다른 생각을 해보려 애를 써보니 문득 남궁화란이 떠오른다.

 남궁화란의 얼굴을 떠올리자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서 자명은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화란 아가씨는 내 그림을 보셨을까?’

 만약 보셨다면 기뻐하셨을까, 아니면 하늘이랑 안 닮았다고 화를 냈을까. 기왕 그림을 그려주기로 했으면 제대로 된 것을 그려주어야 하는데, 요상한 것을 그려 버리고 말았으니 아쉽기 짝이 없다.

 ‘낙서나 해볼까.’

 무심코 나뭇가지를 장봉처럼 쥔 자명은 피식 실소했다. 어차피 이대로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려야 한다면 그림만큼 좋은 친구도 없다.

 이 김에 엉뚱한 제왕의 기운 대신 하늘을 닮은 검로를 그려보는 것도 좋으리라. 잘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라.

 “후우―”

 숨을 길게 내쉬자 자명의 몸에 기이한 기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고스란히 옮겨져 흙바닥에 제왕의 형상을 그려냈다.

 그림을 완성하기도 전에 자명은 호흡을 거두었다.

 “또 틀렸네.”

 자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발로 그림을 슥슥 지웠다.

 “어디, 다시 한 번.”

 자명은 이번엔 섣불리 그림을 그리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하늘을 닮은 검로가 자명의 마음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제왕의 기운이 느껴진다.

 자명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어어, 이게 아닌데.’

 자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심상 속에서나마 하늘을 그려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억지로 하늘의 기운을 그리려 하면 끔찍한 통증이 오고, 자연스럽게 그리려 하면 제왕의 기운이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되었다.

 자명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폭 숙였다.

 “에휴… 응?”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보니 당혜가 한 쌍 보인다. 질 좋은 비단으로 만든 귀한 당혜인 듯한데, 얼마나 오래 신었는지 여기저기가 해져 있고 구멍이 나 있다.

 자명의 시선이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비단으로 누빈 치마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상의 역시 살갗을 가린 것이 용하다 싶을 만큼 낡아 있다.

 마침내 얼굴을 보니, 산발한 머리카락과 수백 년을 살아왔는지 쭈글쭈글한 피부가 보인다.

 그런데 양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요, 요괴!”

 자명이 헛숨을 들이켜며 뒤로 기다시피 하여 물러났다. 노파의 얼굴은 눈이 없기 때문인지 형편없이 찌그러져 더더욱 기괴하게만 보였다.

 “네 성씨가 남궁이더냐?”

 쇠로 쇠를 긁는 듯한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자명은 한층 더 겁을 집어먹었다.

 “저, 저는 진가(陳家)… 인데……!”

 “남궁가가 아니라 진가라?”

 노파가 흥미롭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양 눈이 없이 퀭한 노파가 미소를 짓자 두려움이 한층 더해진다. 동시에 노파의 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자명은 몰랐지만 그것은 살기였다.

 마침내 노파가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렇다면 너는 누구냐?”

 

 

 

 『화공도담』 2권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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