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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화공도담
작가 : 촌부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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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와 법을 익힘에 있어 느리디 느린 둔재.
법식에 얽매이기보다 마음을 다하며,
술을 익히는 데는 느리지만 누구보다 빨리 도에 이를 기재.
형식과 필법을 익히는 데는 둔하나 참다운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게 된 화공 진자명의 강호유람기가 펼쳐진다.

 
19 화
작성일 : 16-07-19 14:13     조회 : 542     추천 : 0     분량 : 7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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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장 한 걸음씩

 

 1

 

 

 

 자명은 조그마한 주머니를 열어 그 안의 돈을 세어보고 있었다. 은자가 한 개나 있고 구리 돈도 적지 않았다.

 구리 돈을 합쳐 보면 은자 두 냥은 될 듯하니 은자가 세 냥이나 있는 셈이다.

 여행길에 돈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이 정도라면 당분간은 무난히 버틸 수 있으리라.

 돈을 꼭꼭 잘 숨긴 자명은 다음으로 미리 챙겨두었던 화구들을 정리했다. 질 좋은 화선지를 몇 장 얻어 원통 안에 잘 챙기고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기름종이로 마감을 해두었다.

 늘 들고 다니는 벼루와 붓은 자신의 것을 들고 가기로 했다.

 다만 붓은 언제 털이 빠져 못 쓰게 될지 모르니 몇 자루를 더 준비했는데, 장유필, 면상필, 세필, 황모필, 죽필 등 필요에 맞는 붓을 준비하려니 은근히 손이 많이 갔다.

 자명은 채화당에 넘치는 화구들 중 그럴듯한 것을 몰래 챙겨두었다.

 평생 처음으로 물건을 빼돌려 본 자명은 묘한 긴장감도 들고 흥분도 되어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었지만 화공이 화구를 챙기는 것은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닌 바, 사람들은 자명의 어설픈 행동을 보고도 모른 척해 버렸다.

 욕심껏 챙기자면 먹 역시 귀한 송연청묵이나 용향먹으로 하고 싶었지만, 자명은 휘묵(徽墨)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안휘성에 살기에 흔하게 여겨서 그렇지, 황산의 소나무와 계곡물로 만든 휘묵은 전 중원에서도 으뜸으로 치니 먹 역시도 괜찮은 것을 챙긴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문사건에 학사의 두 벌을 챙기자 그럴듯한 방랑묵객의 풍모가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작별의 인사뿐이다. 곽주 화백님과 모영찬 화원님, 상준백 사부님, 조운고 사부님께 서신을 남기고 나면 자명은 채화당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남궁세가에 그림을 보내야 해.’

 화란 아가씨는 잘 계신지 모르겠다. 마음의 짐이 무거운지 매번 피곤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어떨라나.

 어쩌면 자신의 그림을 보고 반가워해 줄지도 모른다.

 자명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조운고의 강론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열심히 회초리를 얻어맞은 자명은 강론이 끝나자마자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먹을 갈고 화구들을 펼쳐 놓았다. 감히 사부님의 명을 어기고 몰래 그림을 그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화선지를 펼쳐 놓고도 자명은 쉽사리 붓을 들어 올리지 못하였다. 경영하필(經營下筆)이라,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 구상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자명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심상을 다듬었다. 물론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건 하늘의 기운이 아니잖아.’

 자명의 인상에 깊게 남은 것은 남궁세가의 삼대조 어른 되시는 분의 초상화였다.

 때문에 자명은 그분이 하늘을 닮은 예쁜 검로를 펼치는 연무도(硏武圖)을 그려 남궁세가에 작별 인사 삼아 남기려 했는데, 하늘을 닮기는커녕 제왕의 기운이 느껴진다.

 창공을 떠도는 한 마리의 매처럼 하늘의 기운은 만인을 압도하는 고고하고 장중한 기상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자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휴우!”

 다시 한 번 심상을 가다듬은 자명은 검무를 추는 한 명의 노인을 떠올렸다. 지그시 감긴 눈 뒤로 한 명의 노인이 나타나 그간 보았던 하늘을 닮은 검로를 펼친다.

 검극은 땅을 가리키고, 좌수로는 검지와 중지를 곧게 하여 하늘을 가리킨다. 그 뒤로는 부드럽게 원을 그리듯 검을 당겨 앞으로 쿡 찌르는데 여기까지는 그 기운생동이 부드럽고 좋다.

 하지만 그 뒤로 내리긋는 일검은 제왕의 기세를 품는다.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만마가 숭앙할 듯한 위엄 어린 검형이었다.

 자명은 식은땀을 흘렸다. 벌써 세 번째 실패였다.

 “내가 무공을 몰라서 그런가?”

 볼멘 목소리로 투덜거린 자명은 한숨을 길게 내쉰 다음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잠시 뒤에 다시금 붓을 들었다.

 ‘그럼 하늘의 기운이 담긴 기수식만 그리면 되겠지, 뭐.’

 생각을 바꾼 자명은 세필에 먹을 묻혀 외형 선을 먼저 그려 나갔다.

 제왕의 기세를 잊고자 했지만, 저도 모르게 철선묘(鐵線描:처음부터 끝까지 두께가 같으며 꼿꼿하고 곧은 필선. 딱딱하고 예리하여 철선이라 불린다)로 그려 나가는 자명이었다.

 그렇게 한 획을 그어나가는데, 무명도원도의 호흡이 말썽을 부렸다. 그리움은 다른 곳에 있는데 너는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는 듯 가슴을 옥죄며 심술을 부린다.

 ‘으, 으윽!’

 하마터면 붓을 떨어뜨릴 뻔했던 자명이 겨우 붓을 다잡고는 손을 바르르 떨었다. 갑갑한 마음에 어디다 대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졌다.

 하늘을 닮은 검로를 그려야 하는데 무명도원도의 호흡은 왜 그리지 못하게 하는가! 이대로라면 틀린 그림을 그리는 수밖에 없다.

 자명은 다시 붓을 놓고는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한참 동안 자명은 생각에 빠져 움직이지 않았다.

 “으음.”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여 보니 문득 마음이 가벼워진다.

 생각해 보면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따르고 싶어 채화당을 벗어나려 하는데, 지금에 와서 그것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면 어불성설이 아닌가 말이다.

 “어차피 나는 아직 수련생이니까.”

 그림을 조금 틀리게 그린다 해도 크게 욕먹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가는 길을 따르는 편이 훨씬 더 쉬웠다.

 자명은 다시금 붓을 들고 철선묘로 검무를 그리는 노인의 외형을 그려 나갔다.

 고고하고 장중함보다 조금 더 강한 심상이 떠올랐던 자명은 세화(細畵: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린 그림)의 형태로 노인의 상을 그려 나갔는데, 옷의 주름과 수염마저 철선묘로 그리다 보니 노인의 기상은 더더욱 높아져만 보였다.

 어째 점점 무신이 되는 것 같아 자명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림을 다 그린 자명은 안료를 슥슥 개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인이니까 강해 보이면 좋아하지 않을까?’

 아니면 남궁세가의 검로를 요따위로 그렸다고 그림을 박박 찢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열심히 그린 그림이 찢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시리다.

 ‘그래도 정성인데… 봐주겠지.’

 안료를 다 갠 자명은 남색으로 노인의 도포를 칠해갔다.

 검은 눈이 부실 듯한 백광이니 조개를 으깨어 만든 흰색 안료를 사용했고, 배경은 짙은 황토로 하되 노인의 얼굴은 홍안으로 그 기력이 젊은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려낸다.

 그 모든 것이 무명도원도의 호흡 아래에 일어났다. 무명도원도의 호흡은 자명의 몸속에 제왕의 기운을 심어놓았고, 그 기운은 고스란히 화선지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군왕의 검무를 그린 양 패도적인 기운을 흩뿌려댔다.

 “그림은 괜찮네.”

 자명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명도원도의 호흡이 제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처럼 기운생동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것을 보면 보물 중에도 그런 보물이 없다.

 가끔 주인의 뜻을 따르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자명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림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그림을 곱게 펴서 바닥에 깔아두었다.

 “표구까지 해서 드리고 싶지만, 본의(本意)에서 벗어난 졸작이니 그럴 수도 없고.”

 게다가 제대로 표구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표구를 잘못하면 그림이 울거나 팽창하여 찢어지니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는 아니 하는 것이 낫다.

 자명은 낙관도 찍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아직 연습생이니 엉뚱한 제왕의 기운을 그려냈지만, 나중에 제대로 하늘을 그리게 되면 그럴듯한 낙관을 찍어 표구를 해다가 선물해 줄 참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채화당의 불이 꺼지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 시간까지도 자명은 잠들지 않고 그림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자시가 지나 모두가 잠들었을 무렵, 자명은 그림을 한 폭 들고 조용히 본당으로 향했다.

 본당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채화당의 책임자인 곽주도 삼년상이 끝나기 전에는 본당에 들지 못하였고, 다른 이들은 오채문을 기릴 뿐 본당에 발걸음 자체를 하지 않았다.

 사는 이 없는 쓸쓸한 본당에는 할아버지의 물건 몇 가지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본당의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선 자명은 내부를 바라보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당장에라도 할아버지가 ‘자명이 왔느냐?’ 하고 부를 것만 같아 자명은 눈물이 배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자명은 슬픔에 깊게 잠겨 있지는 않았다.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인 자명은 그림을 한 폭 탁자 위에 올려다 놓았다.

 “할아버지께 보여 드리려 했던 모작이에요. 너무 늦게 완성했지만요. 할아버지에게 제일 처음 보여주고 싶어서 그동안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아, 모영찬 화원님만 빼고요.”

 텅 빈 방 안에서 혼잣말을 주워섬기던 자명은 그림이 놓인 탁자를 부드럽게 쓸어 만졌다.

 “이만 가볼게요.”

 하지만 말을 마치고도 자명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였다. 잠시 그대로 서성이던 자명은 잠시 뒤에야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쉬운 마음에, 그리운 마음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말이다.

 다시 방에 돌아온 자명은 학사의를 입고 문사건을 머리에 썼다. 동경을 보고 문사건을 매만지고 싶었지만, 불을 켰다가는 누가 볼까 봐서 그러지도 못하였다.

 의복을 갖춰 입은 자명은 붓이 두어 개 주렁주렁 매달린 바랑을 가슴에 안았다.

 이제 채화당의 수련생 자명은 없어지고 방랑묵객 자명만이 남았다. 설레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해서 자명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자, 가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방을 훑어본 자명이 호기롭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같은 곳에 머무는 수련생들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음을 놀렸다.

 그렇게 숙소를 벗어난 자명은 예화당, 우진당을 거쳐 마침내 채화당의 문간에 이르렀다. 걸음을 조심한 모양인지 채화당을 벗어날 때까지 자명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하지만 문간에 이르자 사정이 달라졌다.

 “이 새벽에 어디를 가느냐?”

 “어, 엇? 상준백 사, 사부님?”

 문가에는 상준백이 냉랭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옆에는 모영찬마저 있다. 자명은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최근 네 모습이 나아진 것 같기에 안심을 했더니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었구나.”

 오채문에게 큰 지혜는 도리어 어리석게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알게 모르게 자명을 지켜보고 있던 상준백이다.

 상준백은 모영찬과 자명이 친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모영찬과 더불어 자명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명이 슬픔에 깊숙이 빠져 있던 것도, 서서히 벗어났던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조운고 화백이 아니었으면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를 뻔했다. 요즘 네 이야기를 자주 하시기에 관심을 가져보았더니… 쯧쯧.”

 조운고가 가지고 있던 자명의 그림을 본 이후 상준백은 몇 가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채문이 자명을 상리에 맞지 않게 가르쳤음을 떠올리자 아이가 예법에 엄한 채화당을 갑갑케 여길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든 것이다.

 그래서 갓 근신이 풀린 모영찬에게 부탁해 자명을 좀 살펴보게 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부터 자명은 다람쥐 도토리 챙기듯이 화구들을 챙겨다가 방 안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돌아가거라. 조운고 화백께서 예법에 엄하다 하나 그것이 정도, 너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야 해. 예와 법을 얻으면 너는 대붕이 될 것이다. 이대로 저잣거리를 돌게 둘 수는 없어.”

 오채문 화백이 자명을 두고 이야기하길, 법식을 스스로의 것으로 체화하여 마음을 다한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명은 어떠한가! 법식을 체화하려 하기보다는 익히기도 전에 어렵다고 도망가는 꼴이다.

 자명에게 무명도원도의 호흡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준백은 준엄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저는 떠나야 해요.”

 “어허!”

 상준백이 인상을 찌푸리자 자명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자명은 결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채화당에 머무르려면 무명도원도의 호흡을 버려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네가 스승의 말을 거역할 셈이냐!”

 “저는 채화당에 있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됩니다.”

 “예와 법에 얽매이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지금처럼 꾀를 부려 도망칠 일이 아니야!”

 “하지만 예와 법이 저를 옭아매는데요.”

 스스로 깨닫지 못한 예와 법은 무명도원도의 호흡과 공존하지 못하였다. 무명도원도의 호흡이 가르쳐 준 풍류 역시 예와 법에는 속박되지 않는다.

 상준백은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예와 법으로 가둘 수 없는 것은 방종함뿐이다! 경지에 이른 화공은 법이 없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법이 없음을 법으로 삼았을 뿐이야! 내 말을 듣지 않겠거든 사람을 불러 강제로라도…….”

 “법식과 예는 스스로 깨달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가는 겁니다. 저는 그래야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억지로 하려 하면 무명도원도는 계속해서 제약을 가할 것이다. 자명이 고집스러운 표정을 짓자 상준백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예와 법을 깨닫기 위해 세상으로 나간다?”

 “지금은 법식에 얽매이게 됩니다. 종국에는 같은 곳에 이를지도 모르겠지만 만인에게는 만인의 길이 있을 터, 저는 예와 법보다 마음을 다하라고 배웠어요.”

 자명의 말은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바로 오채문이 하였던 말이다.

 “만인이 만 가지 팔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하나의 법식으로 묶겠는가.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려 법식을 배우는 것이지, 법식에 얽매이려 법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상준백이 홀로 중얼거리자 자명이 조심조심 상준백의 눈치를 보았다. 상준백은 그 자리에서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채문은 ‘일 획을 긋는 데 마음을 담는다면, 술(術)을 익히는 데는 느릴지 모르나 누구보다 빠르게 도(道)에 이르게 된다’라고 했다. 설마 지금 자명이 말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까?

 상준백이 말이 없자 자명은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다가 결심을 했는지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렸다. 그리고 몇 걸음씩 천천히 뒤로 물러나더니 바랑을 가슴에 꼬옥 안고는 냅다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어엇, 저놈이!”

 당황한 모영찬이 화들짝 놀라며 자명을 뒤쫓으려 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상준백이 막아섰다. 모영찬은 당황한 얼굴로 상준백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자명이가 도망을 가잖습니까!”

 “아니야.”

 상준백은 자명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도… 나도 모르겠구먼. 어쩌면 우리는 희대의 천재를 진흙 속에 내팽개친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명의 말이 맞는다면…….”

 상준백은 뒷말을 잇지 않았다. 모영찬은 아예 상준백의 말은 이해하지도 못했다. 당황한 얼굴로 상준백과 도망치는 자명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허참, 어떻게라도 잡아야 하는데… 저 녀석이 무엇으로 벌어먹고 산다고…….”

 모영찬은 차마 쫓지도 못하고 떨떠름하게 자명이 사라진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에는 자명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디 보중하세요!”

 마지막까지 인사는 잊지 않는 자명이었다.

 상준백과 모영찬은 자명이 사라졌는데도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한참 동안 그렇게 서서 자명을 배웅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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