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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화공도담
작가 : 촌부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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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와 법을 익힘에 있어 느리디 느린 둔재.
법식에 얽매이기보다 마음을 다하며,
술을 익히는 데는 느리지만 누구보다 빨리 도에 이를 기재.
형식과 필법을 익히는 데는 둔하나 참다운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게 된 화공 진자명의 강호유람기가 펼쳐진다.

 
16 화
작성일 : 16-07-19 14:12     조회 : 545     추천 : 0     분량 : 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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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장 마음이 가져간 것

 

 1

 

 

 

 조그마한 창문으로 황금빛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살은 옛 족자들이 놓인 물대와 그 사이를 노니는 먼지를 스치고 지나가 고화당의 낡은 문에 가 닿았다.

 햇살이 닿았음이 반가운 것일까.

 하루 종일 열릴 생각을 않던 고화당의 문이 끼이이,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한 소년이 고화당 안에 들어섰다.

 소년은 들고 있던 짐을 햇살 가운데에 내려놓은 다음, 익숙한 몸짓으로 송대의 명화가 가득한 물대로 향했다.

 손을 더듬거려 낡은 비단 족자를 찾아낸 소년은 그것을 물대에 걸어두고는 몇 걸음 뒤로 걸어갔다.

 “할아버지.”

 소년은 다름 아닌 자명이었다. 자명은 모영찬의 허락을 받은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곧바로 그림을 그리러 온 것이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차올라 자명은 처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 왔어요.”

 자명이 반가운 목소리로 불러보았지만, 그림 속의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인자한 얼굴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아!”

 자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무명도원도의 모작을 완성해야 했다.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림을 그려야 했다.

 자명은 가져온 나무판을 바닥에 깔아놓고는 그 위에 화구를 펼쳤다. 벼루, 장유필과 세필, 녹빛과 청색 안료 등을 순서대로 놓은 자명은 마지막으로 화선지를 한 장 꺼내어 펼친 다음 문진으로 꾸욱 눌러두었다.

 준비를 마친 자명은 달이 담긴 물을 벼루에 붓고 어렵게 구한 송연청묵(松烟靑墨)을 꺼내었다. 벌써부터 묵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듯하여 자명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먹을 가는 것이 곧 마음을 닦는 것이라 했다. 지금 자신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하여 보니 오직 그리움뿐이다.

 ‘마음에 그리움이 가득하다면 먹 또한 그러하겠지.’

 자명은 천천히 먹을 갈았다.

 묵도(墨道)에 먹이 갈릴 때마다 마음속 가득했던 그리움이 함께 녹아들었다.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풍경도 먹과 함께 녹아들어 연해(硯海)로 흘러갔다.

 묵도 바닥이 평평해지고, 고운 먹빛이 연해 위에 떠올랐다. 자명은 황모(黃毛:족제비의 꼬리털)로 만든 면상필을 들어 먹에 적시고는 진중한 눈으로 무명도원도를 주시했다.

 허허로운 산의 기운, 아름다운 도원, 도화를 어루만지는 노인과 무어라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

 ‘대단하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풍류가 무엇인지 알고 보니 무명도원도의 모작은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무명도원도의 호흡을 따라 하는 것조차 어렵지 않았던가!

 풍류가 무엇인지 몰랐다면 아직까지도 무명도원도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자신이 저러한 아름다움을 모작해야 한다니 두려움이 물씬물씬 밀려들었다.

 외형만이라면 쉬울 것이나 그 기운까지 훔쳐 낼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자명은 눈을 감은 채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래도 그리고 싶은걸.’

 할아버지를 그리고 싶다는 소망이 두려움보다 더 컸다.

 자명은 부드럽게 웃으며 붓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호흡이 천천히 느려지더니 종국에는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변해갔다. 바야흐로 무명도원도의 호흡이 시작된 것이다.

 자명은 허허로운 기운이 가득 담긴 산의 외형을 먼저 그려 나갔다.

 ‘허허로우나 홀로 오롯하고, 풍화되었으나 느긋하다.’

 자명의 몸에 산의 기운이 배어들었다. 만물을 표용할 듯한,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산의 기운이 자명에게서 풍겨 나왔다.

 평소처럼 검은 땀 역시 배어 나왔다. 자명은 산의 외곽 선을 모두 그린 다음에는 면포로 땀을 닦아내야 했다.

 다음은 도원의 차례였다.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얼핏 보기에는 흔해 보이나 자세히 보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현기가 깃들어 있다.

 자명의 눈도 도원을 따라 현현하게 빛났다. 수도하는 도인들이나 가졌을 법한 깊은 눈빛이 무명도원도와 화선지를 번갈아 움직였다.

 도원을 다 그리고 면포로 땀을 닦은 다음에는 바야흐로 두 명의 노인을 점경하듯 그릴 차례였다.

 ‘이건…….’

 도화를 어루만지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얼핏 보면 촌로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기운생동의 이치에 따라 그림을 보니 노인은 가히 불가해한 존재로 변모해 있다. 누가 그림 속의 노인을 신선이라 부른다면 자명은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어, 어렵다.’

 자명의 붓놀림이 거북이처럼 느려졌다. 무명도원도의 기운이 태산처럼 자명을 짓눌렀던 것이다.

 과연 모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또다시 살아났다. 도화를 어루만지는 노인은 짓궂은 장난을 하는 것처럼 미소 짓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몹시 얄밉다.

 네 기운은 얼마나 맑으냐며, 탁하다면 모작은 꿈도 꾸지 말라고 약을 올리는 것 같았다.

 자명은 마음을 비워내려 애썼다. 진정으로 그리움을 느끼지 못하면 무명도원도의 호흡은 끔찍한 고통을 준다. 그것은 곧 틀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운의 청탁은 신체, 더 나아가서는 마음에 달린 것.’

 마음을 가라앉힌 자명의 붓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 갔다.

 하지만 도화를 어루만지는 노인은 그렇게 쉽게 자명을 보내줄 생각이 없나 보다. 이번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족쇄가 되어 자명의 가슴을 옥죄었다.

 도화를 어루만지는 노인은 그리움이 삿된 마음이 되었다며 자명을 놀려댔다.

 어제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속에 침잠해 있었으니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린 닭의 그림을 보지 못했다면 아직도 침잠해 있을 것이다.

 ‘그, 그리움이 뭐가 어때서…….’

 자명은 식은땀을 흘리며 억지로 붓을 이끌어갔다. 무명도원도와 싸움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전신이 긴장되어 있었다.

 ‘이 부분을 그리지 못하면 할아버지를 그릴 수 없잖아. 난 그릴 거야. 그려야 해.’

 자명은 노인의 얼굴을 그려갔다. 노인은 짓궂은 미소만 지을 뿐, 얼굴을 그리도록 허락해 주지 않았다. 붓을 든 자명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리게 해다오, 무명도원도야. 제발 부탁한다.’

 할아버지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일까?

 절대 허락해 주지 않을 것 같던 노인이 자명의 붓에 얼굴을 내맡겼다. 어디선가 노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네 마음이 정 그렇다면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보라는 듯, 한 번 물꼬가 트이자 노인의 얼굴은 순식간에 그려졌다.

 비로소 할아버지를 그릴 수 있게 된 자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명도원도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자명의 볼을 타고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자명은 먹이 튀지 않은 왼쪽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는 붓을 들어 할아버지를 그려 나갔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머릿속에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가 하나둘씩 떠올랐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네 그림 실력이 정말 뛰어나구나.”

 

 할아버지와 처음 만났을 때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모작을 한 점 그렸으면 이 할아비에게도 보여주지 않고서.”

 

 왜 일찍 그리지 못했을까. 왜 그리움이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는 것을, 아름다운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은 걸까. 조금 더 일찍 그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할아버지는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었을 텐데.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여라, 자명아. 마음에 아름다움이 있으니 그것을 잃지 말고, 천지간에 흐름이 있음을 바라보아라. 너는 그럴 수 있겠느냐?”

 

 마지막 붓놀림이 끝났다. 할아버지의 외곽 선을 다 그린 자명은 눈물에 젖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요. 꼭 그림을 그릴게요.”

 자명은 무명도원도를 바라보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림 속의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어주는 듯해 자명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명은 웃음 어린 얼굴로 장유필을 들어 올려 먹에 적셨다. 그리고 운두준법(雲頭?法)으로 산의 내부부터 채워 나갔다.

 도화를 어루만지던 노인이 얼굴을 그리도록 허락해 준 이후부터 무명도원도는 방해하지 않았다. 자명의 붓은 신들린 듯 화선지 위를 춤추었다.

 붓이 화선지 위를 스치자 윤곽만 남아 있던 산이 살아났다. 흙의 내음이 났고, 축축한 안개가 배어들었으며, 구름이 손짓했다.

 도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리 개어둔 안료로 붉은 도화를 칠해 나갈 때마다 평생 머물고픈 도원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모작보다 원본에 있었다. 무명도원도가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선은 점점 흐려졌고, 채색된 부분은 얼룩처럼 변해 버렸다. 자명이 한 가지 선을 완성하면 선이 하나 흐려졌고, 자명이 도화 한 송이를 채색하면 무명도원도의 채색이 빛이 바랬다.

 자명의 몸에서 나는 땀의 속도가 빨라진 것 역시 기사라 불러도 좋으리라.

 검은 땀은 흐르고 흘러 자명의 옷에 배어들었고, 중간중간 땀을 훔치던 면포도 어느새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자명은 그러한 변화는 하나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마치 광기에 휩싸인 것처럼 두 명의 노인을 채색해 나갈 뿐이었다. 무명도원도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모든 힘을 쏟아 붓을 놀린다.

 마침내 자명은 옅은 황토 안료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채색하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점정(點睛:눈을 그림)만이 남았다.

 “허억! 허억!”

 미친 사람처럼 쉬지 않고 그림만 그려댔던 자명이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자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화선지를 내려다보고는 다시 한 번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주 느리게 점정하였다.

 그렇게 무명도원도의 모작을 완성한 자명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원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

 자명과 눈을 마주치자 무명도원도에 흐르던 세월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마치 점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퇴색되고 옅어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종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만다.

 숨을 두세 번 내쉬기도 전에 무명도원도는 수천 년은 묵은 듯한 낡은 종이만을 남기고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하지만 자명은 의문조차도 표시하지 못했다.

 쾅―!

 무명도원도가 사라지자마자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머리에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머리가 맑아지는 듯도 하고 도리어 깨어지는 듯도 해 자명은 이를 악물어야 했다.

 쾅―!

 두 번째로 소리가 들렸을 때쯤엔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자명은 힘겹게 눈을 뜨고는 무명도원도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그 생각이 마지막이었다.

 세 번째로 쾅 하고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을 무렵, 자명은 앞으로 풀썩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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