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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화공도담
작가 : 촌부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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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와 법을 익힘에 있어 느리디 느린 둔재.
법식에 얽매이기보다 마음을 다하며,
술을 익히는 데는 느리지만 누구보다 빨리 도에 이를 기재.
형식과 필법을 익히는 데는 둔하나 참다운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게 된 화공 진자명의 강호유람기가 펼쳐진다.

 
15 화
작성일 : 16-07-19 14:11     조회 : 552     추천 : 0     분량 : 9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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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아이들의 세계에서 모두가 잘하는 일을 홀로 해내지 못한다면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다. 소년들이 어릴 적 자명을 바보라고 놀렸던 것도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중에는 유독 영악한 아이가 있어 작은 일을 크게 벌여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자언이 바로 그러했다. 사람 됨됨이가 옹졸하고 오만했던 이자언은 어린 나이에도 상대를 조롱하기를 즐겨했던 것이다.

 그런 이자언에게 자명이 천하제일 화백 오채문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속이 상하여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이자언의 목표는 어떻게든 자명의 기를 꺾어놓고 스스로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뒤를 받쳐 줄 오채문 대화백이 없으니 굽실거리며 비비고 들어와도 모자랄 터인데, 진자명이라는 녀석은 뭐가 그리 잘나서 목을 꼿꼿이 세우고 돌아다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난 며칠간 두들겨 패고 괴롭혔는데도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약이 바짝바짝 오를 지경이었다.

 이자언은 적개심이 가득 어린 눈으로 자명을 바라보았지만, 자명은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질 때쯤, 조운고가 표구된 지 얼마 안 된 두루마리를 들고 나타났다.

 조운고는 험험, 기침을 내뱉고는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오늘 모작할 그림은 고화가 아니니라.”

 자명은 초점없는 흐린 눈빛으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을 뿐 고개를 들지 않았다.

 조운고는 자명이 보거나 말거나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모작할 그림은 우리 채화당의 자랑이셨던 고(故) 오채문 대화백께서 황궁에 들기 전에 그린 것으로, 노름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흐렸던 자명의 눈에 조금이나마 빛이 돌아왔다. 조운고는 표대에 두루마리를 걸어놓고 천천히 펼쳤다.

 그림의 중앙에는 성질이 사나워 보이는 닭 두 마리가 서로를 쪼아 죽이려고 날개를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사람들 서넛이 서서 무어라고 수군거리고 있었는데, 손에 구리 돈 몇 문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어떤 닭에 돈을 걸지 논의 중인 모양이었다.

 시구나 낙관 따위는 없었고, 좌측 상단에도 도(賭:노름)라는 한 글자만 적혀 있을 뿐 다른 흔적은 없었다.

 “이 그림은 오채문 대화백께서 그림을 배우던 시절에 저잣거리 잡인들의 내기를 보고 그린 것인데, 한낱 풍속화(風俗畵)에 불과하나 너희들에게는 오채문 대화백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공부가 될 게다.”

 조운고는 헛기침을 내뱉고 손가락으로 그림의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중앙에서 우측 하단부로 약간 비껴난 곳에는 닭 두 마리가 서로를 노리고 있는데, 서로 떨어진 간격을 재어보면 좌측 상단에 있는 세 명의 도박꾼의 간격과 일치하느니라.”

 자명은 조운고의 설명은 듣는 둥 마는 둥 닭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저 그림을 그릴 때에 무슨 흥취에 젖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낱 미물에 불과하나 살아 있음을 강렬하게 알려주는 힘찬 날갯짓이 할아버지를 매료시켰으리라. 닭의 기운생동한 몸짓은 내기를 하는 사람들보다도 강렬했다.

 “또한 좌상(左上)과 우하(右下)가 서로 균형을 이루었듯이 우상(右上)과 좌하(左下) 역시 균형을 이룬다. 돈이 떨어진 모양인지 침울하게 서 있는 한 남자가 우상에 있고, 좌하에는 뭣도 모르는 꼬마 아이가 손가락을 빨고 서 있으니 우상과 좌하의 균형 역시 맞는 것이다.”

 조운고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자명의 호흡이 길어졌다. 그 눈빛 역시도 깊어져 현현하게 빛났다. 저도 모르게 무명도원도의 호흡을 일으킨 것이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호흡을 불러내었으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닭의 투기(鬪氣)에 자명은 점점 매료되어 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명의 마음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명의 몸에서 조금씩 검은 땀이 흘러나왔다. 아직은 미미했으나 호흡이 조금만 거세어지면 땀의 색 역시 짙어지리라.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색의 조화일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흙의 색채가 동일해 보이나, 좌우 상단과 좌하의 흙은 검고 닭 두 마리가 날갯짓하는 땅의 색은 토황(土黃)으로 밝다. 이는 닭을 중심으로 하여 좌상, 좌하, 우상의 방향, 즉 부채꼴 모양으로 그림이 확장됨을 뜻하는데, 그림 뒤의 상황을 상상케 하여 내기를 거는 사람들의 심리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조운고는 험험, 하고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이들은 뚫어져라 그림을 보고 있었는데, 설명해 주기도 전에 이치를 알아차린 아이도 있었고 설명을 듣고 나서야 감탄하는 아이도 있었다.

 “오늘부로 고화당에 들게 될 그림이니 너희들은 이것을 모작하여라.”

 조운고는 말을 마치자마자 휘적휘적 걸어 우진당을 벗어나 버렸다.

 전이모사의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남아서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가르침을 주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수준이 되었으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실력이 제법 높아졌으니 나중에 아이들이 완성한 모작을 보고 잔소리나 몇 번 해주면 될 일이었다.

 조운고가 사라지자 아이들이 붓을 들고 모작을 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뚫어져라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 오채문이라는 이름값이 과연 가볍지는 않나 보다.

 하지만 이자언은 모작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야, 진자명!”

 이자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에야말로 자명이 자신의 방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이자언이었다.

 그림을 모작하려던 왕치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이자언을 말렸다.

 “저기, 자언아. 오늘은 하지 말자.”

 왕치는 흘끔흘끔 자명의 눈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전 신이 나게 자명을 짓밟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왕치?”

 “저 녀석,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뭐가?”

 흥분한 이자언이 반문하자 왕치는 감히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럽게 자명을 가리켰다.

 “상처가 너무 빨리 나아.”

 이자언이 할 말을 잃고 자명을 바라보았다. 자명은 뚫어져라 그림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과연 상처가 거의 없다시피 나아 있다.

 이자언은 불쾌한 얼굴로 왕치에게 고함을 쳤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엊그제 일 까먹었어? 쟤, 피를 토할 정도로 맞았었어. 죽은 줄 알고 우리 모두 도망쳤었잖아.”

 왕치가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엊그제 방을 청소하지 않겠다는 자명을 두들겨 패다가 결국 피를 보고 말았다. 가슴 어딘가를 마구 짓밟던 중에 자명이 격렬하게 기침을 하며 피를 뱉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호흡마저 서서히 가라앉았는데, 아이들은 자명이 죽는 줄 알고 겁에 질려 마구 도망을 쳤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다음날 자명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우진당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서야 아이들은 자명의 얼굴에 멍이라곤 없음을, 터져 있던 입술도 거의 아물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하루 만에 상처가 거의 나아버린 것이다.

 “쟤, 귀신 들렸다는 소문이 있어. 왜 얼마 전부터 그림을 그릴 때 비명을 마구 질렀잖아. 그때 귀신이 들려서 아무리 다치고 상처를 입어도 다 나아버리게 된 거래. 그리고 밤이 되면 흐느끼면서 누구를 저주한대.”

 성질이 촉급하지만 순박한 면이 있는 왕치였다. 이자언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나는 그런 걸 믿지 않아. 두고 봐. 내가 오늘은 저 녀석이 우리 방을 청소하는 꼴을 보고야 말 테니까.”

 이자언은 화가 난 얼굴로 성큼성큼 자명에게로 걸어갔다.

 한편, 자명은 뚫어져라 닭을 바라보고 있었다. 젊었을 적의 할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남들은 별것 아니라 했을 테지만, 할아버지에게 상대를 이기고 생존하고자 하는 닭의 본능은 강렬한 심상(心象)으로 다가왔으리라.

 때마침 이런 그림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

 할아버지가 느꼈을 경탄이 자명에게도 고스란히 다가왔다. 문득 삶에 대한 욕구가 일어났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살아 있음이 저토록 기운생동한 그림을 보니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 그림을 그린 할아버지가 그리워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자명의 몸에 흐르던 땀이 짙어졌다.

 한낱 미물일 뿐이나 닭의 투기(鬪氣)가 마음을 파고들었고, 무명도원도의 호흡은 그 기운을 생동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불운하게도 이자언이 자명의 어깨를 잡아챈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 자식, 몇 번을 불렀는데도 또 사람을 무시하고……!”

 오채문의 그림을 그리워하자 마음은 그것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마음은 신체의 청탁을 주관하고, 신체는 기운의 청탁을 주관하는 법[氣之淸濁有體, 體之淸濁有心].

 기운 역시 마음이 걸어간 길을 따라갔다.

 “헉!”

 덕택에 이자언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야 했다. 자명의 몸에서 한줄기 날카로운 기운이 배어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독기 어린 기운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어렴풋이나마 자명의 기운을 느끼고는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왕치는 아예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는데, 귀신이 들렸다는 소문이 떠오른 탓이었다.

 이자언 역시 방금 전에 들은 말을 떠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어깨를 만지려고 했는데 전신에 소름이 돋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몸이 떨린다.

 이것이 귀신의 조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쩌면 진자명은 정말로 귀신이 들린 것일지도 몰랐다.

 아이들 중 평안한 것은 오로지 자명뿐이었다.

 ‘할아버지.’

 세월을 격해 대화를 나눌 수도 있던가? 과거의 오채문이 그린 그림은 현재의 자명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림은 한낱 미물에 불과한 닭조차 생존을 위해 저렇듯 몸부림치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제 마음 하나를 가누지 못해 과거를 걷고 있느냐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명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였다.

 ‘그림을 그려야겠다.’

 할아버지를 그려야겠다. 할아버지가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무명도원도의 모작을 완성해야겠다. 그것이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옳은 방식일 것이다.

 자신은 화공이고, 화공에게는 화공의 방식이 있는 법이다.

 자명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동시에 검은 땀도 멈추었고, 길게 늘어졌던 호흡 역시 조용히 가라앉았다.

 자명은 처연한 몸짓으로 소매를 들어 눈물을 닦았다.

 검은 땀만 아니었다면 다른 아이들도 자명을 가엾게 여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검은 땀…….”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던 이자언이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귀신처럼 오싹하게 만들더니 마침내는 검은 땀을 흘리고 만다.

 “너는… 우리들 방을 청소해야 하지만… 오늘은 몸이 좋아 보이지 않는구나.”

 이자언은 자명의 시선을 명확히 마주하지 못하였다. 어떻게든 권위를 유지해 보고자 했지만, 조금 전에 느꼈던 자명의 오싹한 기운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겁먹은 이자언의 모습에 자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는 독사같이 굴던 이자언이 오늘은 왜 저럴까 싶다.

 하지만 방을 청소해 줄 수는 없는 노릇, 자명은 일부러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봐주마.”

 이자언이 용기를 짜내어 억지로나마 당당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당당함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오늘만 봐준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자명이 왜 너희들의 방을 청소해야 한단 말이냐?”

 “모 화원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모영찬이었다.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시립했다. 억지로나마 당당함을 가장했던 이자언 역시 고개를 숙이긴 마찬가지였다.

 모영찬은 냉엄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아이들이 주눅이 들어 고개도 채 들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쯤, 모영찬이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며칠 전, 자명이 크게 다쳐서 돌아왔더구나. 아이들끼리의 다툼인 듯하여 모른 척하려 했으나 그 정도가 심하여 하인을 시켜 사정을 알아보게 했느니라.”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컴컴하게 변해갔다.

 모영찬은 그런 아이들을 보고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자명과 마주 서 있던 이자언을 노려보았다.

 “그랬더니 하인이 말하기를, 엊그제에는 자명이 거동조차 못할 정도로 심하게 매를 맞아 자신이 직접 방까지 데려다 주었다 하더구나. 너희들의 행동이 그처럼 심해졌으니 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모영찬이 탄식하자 아이들의 고개가 한층 더 내려갔다.

 “하지만 자명은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보, 보세요.”

 아이들 중 하나가 더듬더듬 변명을 했다. 날카로운 기운을 느꼈던지라 감히 자명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으나, 이대로라면 치도곤을 면치 못할 테니 어떻게든 해야 했다.

 하지만 모영찬이 호통을 치자 목이 자라처럼 쑤욱 들어가고 만다.

 “자명의 몸이 튼튼하여 나은 것을 어찌 너희들이 왈가왈부하느냐! 너희들 스승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하여라!”

 말을 마친 모영찬은 몸을 홱 돌려 예화당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아이들은 죽을상을 한 채로 서로를 돌아보다가 주섬주섬 모영찬의 뒤를 따랐다.

 그중에는 자명도 있었는데, 아이들은 자명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오싹한 기운을 느꼈던지라 별다른 말을 하지는 못했다.

 잠시 뒤에 도착한 예화당에는 조운고는 물론, 상준백과 곽주까지 준엄한 얼굴로 서 있었다.

 “화공 모영찬이 곽 화백께 인사 올립니다.”

 모영찬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옆으로 걸어가 시립하여 섰다. 곽주는 맞추어 선 아이들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그간의 사정을 모 화원에게 전해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하여야겠다. 너희들의 입으로 사정을 말해보아라.”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할 말을 잃고 고개만 푹 숙였다.

 “말해보라지 않더냐!”

 “곽 화백 어른, 그것은 그저 장난삼아…….”

 이자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 하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언이 네놈! 신품이 될 재목이라 여러 화백들이 눈여겨보고 있거늘, 장난삼아 사람을 두들겨 팼다고 말하는 게냐?”

 이자언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곽주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본래 서화는 예와 다름이 없다! 괜히 문인들이 서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야! 더러움을 버리고 자연을 닮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림인데, 화공이 될 너희들의 마음이 그리 더러웠다니 기가 찰 노릇이로구나!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 했다! 너희들에게 기예를 전수할 이유가 어디에 있더냐?”

 곽주가 준엄하게 외치자 가만히 서 있던 조운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마음속에도 회한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예부터 가르쳤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가르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저 아이들은 자신이 손수 가르친 제자들이 아닌가!

 이대로 파문을 당하게 둘 수는 없다.

 “아이들의 잘못이 과하긴 하나 아직 어린데 파문까지는 과하지 않겠는가. 부디 선처를 바라네, 곽 화백.”

 “조운고 화백께도 눈이 없지는 않을 터인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곽주는 조운고를 바라보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조운고는 면목이 없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내 불찰일세. 하지만 가르침은 정을 쌓게도 하는 법이라, 내 마음이 기울어짐을 부정할 수 없겠구먼. 내 따끔히 가르치겠으니 파문만은 거두어주시게.”

 말을 마친 조운고는 자명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 미안한 감정이 살아 있다.

 아이들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 자명에게 상처를 남기고 말았으니 그것 역시도 자신의 책임인 셈이다.

 “저 아이를 돌아보지 않은 것 역시 내 불찰. 이제부터라도 내 다독이고 돌보겠네.”

 수염 지긋한 노화백이 그리 말하자 곽주는 난감해지고 말았다. 곽주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이들에게는 기예보다 마음을 닦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러니 채화당 전체를 쓸고 닦으며 제 마음도 돌아보게 하겠습니다. 이는 일 년의 시간을 두고 이뤄질 것이며, 그 기간 안에는 붓을 들어서는 아니 될 겝니다. 자명에게 하인의 일을 시키려 강요했다니 인과응보인 셈이기도 하지요.”

 “그리하시게.”

 아이들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조운고는 파문을 막은 것으로 만족하고는 뒤로 물러나 버렸다.

 “너희들은 지금 내가 한 말을 똑똑히 들었으렷다! 이는 모두 너희들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니 괜히 자명을 원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명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내일부터 당장 말한 대로 행하여라!”

 곽주는 그렇게 외치고는 손을 휘휘 저어 축객령을 내렸다.

 아이들은 쉽게 물러나지 못하고 주저주저했지만, 머뭇거린다고 뾰족한 수가 생길 리가 있겠는가. 결국은 울적한 얼굴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자명은 아이들의 표정에 어린 원망을 보고는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꼈다. 다쳤던 것은 모두 나았으니 생각해 보면 원망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는 셈이다.

 “저기, 곽주 화백님. 저는 괜찮은데…….”

 곽주는 대답은커녕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곽주 대신 모영찬이 다가와 자명의 어깨를 슬며시 잡았다.

 “아이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이니 괜한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러니 괜한 소리는 마려무나. 몸은 좀 괜찮으냐?”

 자명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모영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괜한 짓을 했다고 탓하는 것 같아 모영찬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허허, 네게는 미움이란 게 없는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지금 통쾌해서 어쩔 줄 몰랐을 게야.”

 자명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모습은 이전의 자명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오채문 대화백이 귀천하신 뒤로 슬픔에 휩싸여 말도 제대로 하지 않던 자명이 모처럼 사람다운 표정을 짓자 모영찬의 얼굴이 밝아졌다.

 “한데, 너 얼굴이 제법 괜찮구나?”

 자명은 모영찬의 말에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뭔가를 떠올리고 생각에 빠져들더니 잠시 뒤에는 진중한 목소리로 모영찬을 부른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모 화원님.”

 “말해보아라.”

 “스승님들께 고하여 잠시의 말미를 얻겠습니다. 그동안 고화당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허하여 주십시오.”

 모영찬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고화당에서 쫓아낸 것이 별 효과를 보지 못했나 싶다.

 “하지만 일과를 마친 후에 고화당에 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무슨 이유로 다시 고화당에…….”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모영찬은 입을 꾸욱 다물고 자명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슬픔은 가시지 않았으나 자명의 안색은 훨씬 나아져 있다.

 자명이 말을 이어나갔다.

 “할아버지께 완성된 모작을 보여 드리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뒤늦게라도 완성하여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사정을 전해 듣자 모영찬의 얼굴이 밝아졌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다짐한 얼굴을 보니 과거에 얽매여 제 생활조차 못하던 과거와는 다른 듯싶다.

 “그렇다면 내 허락하마. 며칠간 고화당에 자유롭게 출입해도 좋으니라.”

 모영찬은 자명을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모작을 완성할 때쯤이면 자명의 얼굴에도 웃음이 어려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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