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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화공도담
작가 : 촌부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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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와 법을 익힘에 있어 느리디 느린 둔재.
법식에 얽매이기보다 마음을 다하며,
술을 익히는 데는 느리지만 누구보다 빨리 도에 이를 기재.
형식과 필법을 익히는 데는 둔하나 참다운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게 된 화공 진자명의 강호유람기가 펼쳐진다.

 
14 화
작성일 : 16-07-19 14:11     조회 : 599     추천 : 0     분량 : 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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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채문의 상(喪)은 곽주의 주관하에 치러졌다. 예인의 경우에는 핏줄을 이은 후손이나 기예를 이은 제자가 상주가 되게 마련인데, 자명은 후손도 제자도 아닌 친인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삼년상 역시 채화당 전체가 돌아가며 치르기로 결정이 났다. 채화당 전체가 오채문의 제자였다는 의미이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삼일사(三日事)에 삼석사면(三席四面)으로 치러진 상이 끝날 때까지 자명은 고화당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포백을 맞이한다, 길에 등불을 켠다, 지전을 태운다, 채화당이 들썩일 동안에도 자명은 하염없이 무명도원도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구름에 휩싸인 계곡과 복숭아 화원, 그리고 그 안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두 노인을 바라보며 자명은 무릎에 머리를 박고 훌쩍이곤 했다. 그림 속의 할아버지는 여전한데 진짜 할아버지는 세상에 없다는 것이 가슴 시리고 아팠다.

 초점조차 없는 멍한 눈으로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무명도원도만 바라보는 자명의 모습은 처연하고 안쓰러웠다.

 상이 끝난 후 며칠 뒤, 결국 모영찬은 굳은 다짐을 하고 자명을 불러야 했다.

 “네게 해야 할 말이 있다.”

 자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모영찬 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고 무명도원도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모영찬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간 내 재량껏 네가 고화당에 출입하는 것을 허락했으나 더 이상은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본래 아직 수련 중인 제자는 고화당에 함부로 들 수 없으니 너 역시 그 규칙을 따라주어야겠다.”

 그제야 자명이 모영찬을 되돌아본다.

 모영찬은 자명의 시선을 마주하자 한숨을 길게 내쉬고 말았다. 초점조차 없는 눈에 원망이 깃들어 있었다.

 “…네가 믿어줄지 모르겠다마는 오채문 대화백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너를 내치는 것이 아니니라.”

 모영찬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화당에 틀어박혀 넋을 잃은 채 무명도원도만 바라보는 자명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고육지책일 뿐인데 자명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하다.

 “후일 네가 다시 청하거든 나는 반드시 고화당에 들여보내 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상주하는 것만은 허락하지 못한다. 나가거라.”

 자명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앉은 채로 눈물을 흘리며 도리질을 치는데, 그 모습이 애잔하기 짝이 없다.

 “싫어요, 모 화원님. 흑, 흐흑. 싫어요.”

 “나가라 하지 않았더냐!”

 모영찬은 화가 난 얼굴로 자명에게 걸어가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억지로 자리에서 일으켰다.

 “오채문 대화백과 네 사이에 쌓인 정이 작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이 사람을 죽게 한다면 그 정은 미움보다 못한 것이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억지로 일으켜진 자명은 고개를 푹 숙이고 통곡했다. 울음에 지쳐 버렸을 법도 한데 눈물은 끊이지 않고 새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보니 화를 내려던 기운도 사라지고 만다. 또다시 한숨을 길게 내쉰 모영찬이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네게는 네 나름의 추모가 따로 필요할 테지. 나도 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이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니 이렇게 하자꾸나.”

 자명이 눈물에 젖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 모영찬을 바라보았다.

 “매 끼니 식사를 챙기고 또한 가르침을 청하여 그림을 배우도록 해라. 비명을 지르는 병에 걸려 그리지 못한다 해도 참관은 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런 연후에 찾아온다면 고화당을 열어주는 것으로 하겠다. 어떠하냐?”

 자명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화당에 다시 못 들어오는 것보다는 약간의 시간이나마 허락받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가서 식사부터 챙겨라.”

 모영찬이 씁쓸한 얼굴로 말하자 자명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훌쩍이며 고화당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쉬움이 많은 모양이었다.

 모영찬은 일부러 더욱 딱딱한 표정을 지어 보인 채 그런 자명을 배웅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다음날부터 자명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입맛을 잃었을지언정 꼬박꼬박 식사를 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제자들이 모작을 공부하는 곳에 가 형식적으로나마 화선지를 펼쳐 놓았다.

 하지만 자명은 쉽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할아버지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문득 할아버지가 그리워질 때마다 자명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기다렸다가 고화당에 가서야 쌓인 슬픔을 풀어놓곤 했다.

 누가 하는 말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멍하니 있을 때도 많아졌고, 초점없는 멍한 눈으로 서성이는 일도 많아졌다.

 이자언은 그런 자명을 보고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이봐, 진자명!”

 자명은 이자언의 부름을 듣지 못한 채 고화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명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한간(韓幹)의 목마도(牧馬圖)였는데, 그것 역시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그림이다.

 할아버지는 ‘저 봐라. 흑마와 백마가 마치 살아 있는 듯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문득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고 보니 그림이 달라 보인다.

 그러자 자명의 마음속에 이상한 기운이 꿈틀거렸다. 그리움이 또다시 무명도원도의 호흡을 불러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호흡이 길어지기 직전에 이자언이 자명을 건드렸다.

 “내 말이 안 들리냐, 이 자라 녀석아!”

 “어?”

 뒤늦게 이자언이 있음을 알아차린 자명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자언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여태껏 불러도 무시하더니 이제야 아는 척을 하는구나.”

 이자언은 자명의 머리를 한 대 세게 후려쳤다. 자명의 고개가 아래로 푹 숙여졌다.

 “흥,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벌로 알아라.”

 자명이 멍한 얼굴로 머리를 어루만지자 이자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왕치와 또래 소년들 역시 흡족한 얼굴로 자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채문 대화백께서 돌아가신 것은 서화(書畵)에 있어 크나큰 손실이지만, 어쨌든 돌아가셨으니 어쩌겠냐. 이제 너는 오채문 대화백의 도움없이 네 밥벌이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은 네 슬픔을 감안해 내가 너그럽게 봐주었지만…….”

 너그럽게 봐준다고 해도 청소는 늘 자명의 몫이었다. 자명은 멍한 얼굴로 우진당을 청소한 다음에야 비로소 고화당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우진당의 청소 따위는 내팽개쳐 두고 바로 고화당에 가고 싶었지만 일상을 돌보는 데 소홀했다 하여 모영찬이 들여보내 주지 않을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

 이자언은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자명을 발로 한 번 툭 찼다.

 “너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르니 화공이 아니고, 화공이 아닌 사람이 채화당에 머무르려면 하인 일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너는 오늘부터 우진당을 청소하고 나면 내 방을 청소하고, 그 이후에는 우리 모두의 방도 청소하여라. 그래야 하인으로서 밥값을 한다고 할 수 있겠지.”

 말을 마친 이자언은 낄낄거리며 자명을 비웃었다. 자명은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방마저 청소해 주었다가는 고화당에 머무를 시간이 대폭 줄어들고 말 것이다.

 “같은 제자니까 우진당은 청소했지만, 너희들의 방까지 청소하진 않을 거야.”

 자명이 무심한 어조로 말하자, 이자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자언은 자명을 노려보고는 왕치를 불렀다.

 “야, 왕치야. 이 녀석이 청소를 못하겠다는데 어찌해야 하지?”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혼을 내줄 테니까.”

 산적처럼 수염이 비죽비죽 솟고 덩치도 커다란 왕치가 척척 걸어와서는 자명의 볼을 후려쳤다. 자명은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청소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넌 매를 맞게 될 거다! 살고 싶다면 청소하겠다고 하시지!”

 왕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지만 자명은 여전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바닥에 나동그라졌는데 아프다는 기색도 엿보이지 않았다.

 “안 해.”

 “흥! 호되게 매를 맞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 거다!”

 왠지 모르게 성질이 난 왕치가 몇 걸음 나서서 바닥에 쓰러진 자명을 짓밟기 시작했다. 거세게 발로 차기도 하고 위아래로 콱콱 내리밟기도 했다.

 하지만 자명은 끝까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몸을 웅크리고 매를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먼저 지친 쪽은 왕치였다.

 “이 자식, 끈질기기가 거머리 같구나!”

 왕치가 헉헉거리며 숨을 내쉬자, 이자언이 이를 질끈 악물었다.

 이자언은 불쾌한 얼굴로 자명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지. 더 때렸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봐주는 것은 오늘까지일 뿐, 내일은 우리들의 방을 청소해야 할 것이다.”

 이자언은 성큼성큼 쓰러진 자명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은 다음 자명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사부님들께 고자질이라도 했다가는 알아서 해. 그러면 정말 죽여 버릴 거니까.”

 자명은 대답 대신 입 안이 터져 흥건히 배어 나온 피를 뱉어낸 후 쿨럭댔다.

 이자언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또래 소년들에게 턱짓했다.

 “가자, 얘들아!”

 쓰러진 자명이 퉁퉁 부은 얼굴로 바라보는데도 뒤를 돌아보는 소년은 한 명도 없었다. 저희들끼리 낄낄거리며 ‘이제 나이가 찼으니 우리도 술을 마셔봐야지’ 하고 잡담을 하며 활기차게 걸어나간다.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자 자명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절뚝이며 파지가 된 화선지를 줍고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붓을 빨았다.

 손마저 깨끗이 씻은 자명은 목마도를 둘둘 말아 조심스럽게 들고는 고화당으로 향했다.

 절뚝이는 걸음으로 힘겹게 고화당에 도착하자 모영찬이 자명을 반겼다.

 “오늘은 조금 늦었구… 엇! 얼굴이 왜 이 모양이냐?”

 모영찬이 후닥닥 달려와 자명의 얼굴을 쓸어보았다. 얼굴의 여기저기에 멍이 잔뜩 들어 있고 입술은 터져 있으며 다리를 절뚝이기까지 한다.

 “누가 애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게야! 이게 무슨 일이냐, 자명아?”

 “모 화원님… 할아버지를 보러 가도 되나요?”

 자명이 애처로운 눈으로 모영찬을 바라보았다. 모영찬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일단 상처부터 치료해야 하지 않겠느냐! 흉이 지는 것은 물론, 몸살을 하게 생겼다. 누가 너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더냐? 또래 제자들이더냐?”

 “저는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마음을 닫아버렸는지 누군가의 관심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자명이었다. 모영찬은 자명의 슬픈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들어가 보아라.”

 “고맙습니다.”

 자명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천천히 고화당 안으로 사라졌다. 고된 하루의 마지막을 할아버지와 함께 보낼 수 있으니 그럭저럭 버틸 만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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