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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화공도담
작가 : 촌부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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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와 법을 익힘에 있어 느리디 느린 둔재.
법식에 얽매이기보다 마음을 다하며,
술을 익히는 데는 느리지만 누구보다 빨리 도에 이를 기재.
형식과 필법을 익히는 데는 둔하나 참다운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게 된 화공 진자명의 강호유람기가 펼쳐진다.

 
12 화
작성일 : 16-07-19 14:08     조회 : 586     추천 : 0     분량 : 7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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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남궁화란은 조금이나마 유쾌한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매번 화공의 말 때문에 고민을 했는데, 상황이 뒤바뀌어 자신이 화공에게 고민거리를 남겨주었으니 통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쾌함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러면 뭐 해.’

 사실 화공에게 이야기해 준 것은 본인 스스로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이치였다.

 언뜻 생각하면 몹시 간단한 이치이나, 그것은 심검지도에 이르는 길이니 가벼움 속에 무거움이 있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 잘난 척을 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화공의 말에 아직 반박하지 못했고…….’

 사실 마음이 무거운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천하제일을 위해 남궁세가를 다그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남궁세가를 천하제일로 만드는 것이 욕망이라고는 생각지 않으나, 그로 인해 남궁세가를 다그쳤다는 것은 어쩌면 옳은 소리일지도 몰랐다.

 여러 가지 논거를 들어 정당성을 확보해 보려 했지만 화공이 말한 ‘아름다움’을 끝까지 알지 못했으니 마음의 부담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창천각 앞이었다.

 창천각을 불안한 듯 서성이고 있던 시비 소향이 헐레벌떡 달려와 남궁화란의 앞에 시립했다.

 남궁화란은 평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소향을 바라보았다.

 “아가씨, 창궁무애단주 남궁곽 어른께서 아가씨를 기다리다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곽 숙부께서?”

 남궁화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향은 머리를 숙인 채 조그맣게 속삭였다.

 “창궁무애단주께서는 아가씨가 돌아오시길 기다리다가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자 제게 전언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남궁화란은 어서 말해보라는 듯 소향을 바라보기만 했다.

 소향은 주저주저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빠르면 오 일 안에 산동의 악가가 도착한다 합니다. 하여 외인의 출입을 줄이고 세가의 마음가짐을 올곧게 하심이 어떠하냐고 하셨습니다.”

 “으음…….”

 본래 강호 무가의 교류가 있을 적에는 외인의 출입을 금하는 법이다.

 강호의 일을 양민들에게 알릴 하등의 이유가 없기도 하거니와 혹시 모를 살수나 비적 따위의 출입을 막기 위함이기도 했다.

 문득 화공이 떠올랐다. 그 역시 외인. 그의 말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건만 벌써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강호의 일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알았다. 이만 돌아가거라.”

 한숨을 포옥 내쉰 남궁화란이 축객령을 내리자 소향이 머리를 조아려 시립해 보였다.

 그런데 문득 소향의 얼굴을 보니 초췌하고 파리해 보였다. 귀한 객을 접대할 남궁세가의 시비들의 얼굴은 늘 단장하여 아름다운데 소향의 얼굴만 유독 초췌했다.

 남궁화란은 자기도 모르게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네 얼굴이 좋지 않구나.”

 “예?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다, 다시 단장을 하겠습니다.”

 덜컥 겁이 난 소향이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자 남궁화란의 기분이 불쾌해졌다. 세가를 다그치고 있지 않느냐는 화공의 말이 또다시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이다.

 남궁화란이 한층 더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고하여라. 몸이 아프다면 쉬게 해주마.”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가씨. 죄송합니다. 단장을 채 하지 못하여 그만…….”

 “고하라 했잖느냐.”

 남궁화란의 목소리에 소향이 움찔했다. 그녀는 잠시 남궁화란의 얼굴을 살피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시, 실은 어머님께서 편찮으십니다. 한데 약재를 구할 돈이 없어 걱정되는 마음에…….”

 “흥! 세가에서 지급하는 돈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 돈은 어디에 소용했기에 의원도 부르지 못한단 말이냐?”

 혹시 소향이 돈을 제멋대로 탕진한 것이 아닐까 싶었던 남궁화란이 비웃듯 읊조렸다.

 “시, 실은… 손님께 안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죄로 약 반년간의 지급이 삭감되었습니다. 당장 이번 달부터 지급이 삼 할로 줄었지요. 그 돈으로나마 어떻게든 병구완을 해보려 했지만 약재 값이… 모자랐습니다.”

 남궁화란의 얼굴이 굳어졌다.

 화공, 다름 아닌 화공을 안내해 온 아이가 바로 이 아이였다. 손님을 잘못 안내한 죄로 벌을 내리라 지시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소상히 말해보라.”

 “아가씨…….”

 “어서!”

 남궁화란이 채근하자 소향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어머님은 폐병을 앓고 계신데 약재 값이… 고가입니다. 흑, 흐흑. 모아둔 돈이 있었으나 동생이 배움을 원하는지라 두 달 전에 학비로 소용해 버렸고… 동료들이 조금씩 돈을 보태주었으나 삼 일치 약재 값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어머니가… 피를 토하셨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돼서 그래요. 흐흑…….”

 겁에 질린 소향이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었다.

 “어머니가?”

 남궁화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머리가 멍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스리는 이의 아름다움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는 화공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아가씨. 정말입니다. 흑, 흐윽. 안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실수가 한탄스러워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아프지 않아요. 저는 일을 해야 해요. 저는 아프지 않아요. 흑, 흐윽. 아프지 않아요.”

 일을 하지 않으면 일 푼도 지급이 되지 않는다.

 남궁화란은 시비의 눈물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멍했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상념이 가득 차 있었다.

 시비가 벌을 받은 것은 손님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법에 맞는 벌로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에 자괴감이 들었다. 화공이 말한 아름다움과는 동떨어진 처사였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것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추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천하제일이란 명성을 위해 세가를 다그친 것이었을까. 다스리는 이의 아름다움이 내게는 있었을까. 왜 나는 이 시비의 사정을 몰랐을까.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마음이 명성에 얽매여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이 찾아왔다.

 시비가 울음을 애써 감추며 물러가도 되겠느냐고 물은 후 눈물을 훔치며 뒤로 물러났건만 남궁화란은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화공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지금 남궁세가는 사람을 위하고 있던가?’

 모르겠다. 이전이었다면 그렇다고 강변했을 것이나,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남궁화란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서 떠나지 못했다. 마음의 짐이 평소보다 몇 배로 무겁게 느껴졌다.

 

 

 

 3

 

 

 

 남궁화란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자명은 지난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궁리를 계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명은 남궁화란에게 다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남궁세가로 향했다.

 평소처럼 연무장에 자리한 자명은 남궁화란을 기다리며 하늘을 닮은 검로를 바라보았다.

 “휴우!”

 눈은 연무를 바라보고 있건만 자명의 머릿속은 기운생동에 관한 화두로 가득 차 있었다.

 ‘기가 사물을 움직이면 사람이 감응하는데, 기의 청탁은 신체에 달려 있으니 억지로 힘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라는 성현들의 말씀부터 시작해서, ‘세상이 아름다운 것만큼이나 아름다워진 이후에 마음을 다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이 화공이다’라는 할아버지의 가르침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상념의 마지막은 남궁화란이 알려준 것으로 이어졌다. 자명은 미간을 잔뜩 좁히고 혼잣말을 주워섬겼다.

 “기운의 청탁은 신체가 주관하고, 신체의 청탁은 마음이 주관한다. 그리고 마음이 있는 곳은 법에 따라 다르다.”

 자명은 검로의 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하늘을 닮았다는 것을 알 뿐, 다른 것은 미처 알 수 없었다.

 “검로의 법이 하늘에 있다면 저들의 마음도 하늘에 있는 걸까?”

 자명은 그렇게 혼잣말을 주워섬겼다. 막상 중얼거리고 나니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하늘을 닮은 검로이니 자연히 마음이 하늘에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할아버지는 아름다움을 즐기는 마음, 풍류를 이야기하셨다. 화공에게는 반드시 풍류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으니 어쩌면 비밀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풍류가 뭔지 모르는데…….”

 생각은 거기서 끊어지고 말았다.

 먹에 달을 담아 즐기는 것, 산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그리워하는 마음이 풍류라는데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풍류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상, 무명도원도의 호흡에서 벗어나기는 그른 일이었다.

 “에이, 난 도저히 모르겠다.”

 자명은 갑갑한 마음에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쾌청한 하늘이 미소를 지어주는 것 같아 자명은 그만 곰곰이 생각해 왔던 것들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저 하늘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신이 났었고, 그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어 화공이 되고자 했다.

 결국 자신은 저런 것들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름답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도 하늘이 그리웠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향한 그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하늘을 향한 그리움이 가득 차올랐다.

 문득 못 견디게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어쩌면 화공은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구나.”

 아름다운 것이 너무 좋아서 결국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

 가슴속에 가득 찬 그리움으로 아름다움을 불러내는 사람.

 그것이 바로 화공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자신처럼 말이다.

 그러한 생각이 떠올리자 자명의 마음이 일렁였다. 하늘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하자 마음이 하늘을 닮아갔고, 그 기이한 느낌이 가슴을 울린 것이다.

 동시에 자명의 호흡 역시 길게 이어졌다. 마치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느리고 길게.

 그것은 무명도원도의 호흡이었다.

 “어?”

 스스로의 호흡을 느낀 자명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방금 무명도원도의 호흡을 내쉰 것 같은데, 통증이나 괴로움 따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자명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혼잣말을 주워섬겼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 차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건…….”

 깨달음은 부지불식간에 갑자기 찾아왔다.

 마음을 머무르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그리움을 따라 마음이 머무르면 신체가 맑아지고, 신체가 주관하는 기운 역시 맑아지게 되어 종국에는 기운생동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화공 스스로가 아름다워지는 법이 아닐까.

 “풍류… 로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자명은 시선을 내려 손에 들린 나뭇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하하! 내가 바보였어. 이제야 알았네.”

 알고 보면 이처럼 쉬운 것을 그동안 왜 몰랐던 것일까.

 이제야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면 통증이나 괴로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해보자.”

 자명은 곽주의 금제조차 잊고 나뭇가지를 붓처럼 쥐고는 흙바닥에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러자 자명의 호흡이 느려졌다. 길게 이어지던 호흡은 종국에는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변해갔다. 나뭇가지가 천천히, 하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검은 땀 역시 또다시 새어 나왔다. 하지만 땀이 빠져나갈수록 마음은 점점 더 청량해지는 것 같았다. 저 푸른 하늘처럼 말이다.

 그리고 한식경이 지날 때쯤, 자명은 비명을 지르지 않고도 그림을 완성했다.

 “와아!”

 자명이 그려낸 것은 솜처럼 부드럽고 새하얀 구름,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떠도는 구름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은 평소의 호흡으로 그렸던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무명도원도의 호흡이 기운을 생동케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기운생동케 하는 호흡이라니, 화공에게는 이보다 귀한 선물이 없을 것이다. 땀이 검고 악취를 풍긴다는 점이 흠이었지만 말이다.

 찝찝해진 자명은 못마땅하다는 듯 소매로 얼굴을 벅벅 닦았다. 의원은 땀은 검더라도 큰 이상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기분이 나쁘긴 매한가지였다.

 “어디 진흙탕에서 넘어지기라도 했나요?”

 얼굴을 벅벅 닦던 자명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왼편에 평소와는 다른 초췌한 얼굴의 남궁화란이 서 있었다.

 자명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화란에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아, 화란 아가씨.”

 자명의 옷에는 검은 얼룩이 져 있고 악취도 심했다. 얼굴에도 거뭇한 때가 묻어 있었다.

 민망해진 자명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정작 남궁화란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나는 그대에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이에요.”

 “예? 무슨 일인데요?”

 “그대의 화사에 관한 이야기예요. 이제 그대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하러 왔어요. 먼저 돌아간 채화당의 화공들은 조사전의 보수가 내일이면 끝난다고 알렸고, 또 남궁세가에 큰일이 있어 외인의 출입을 금해야 하니 그대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이틀뿐입니다.”

 남궁화란이 얼굴을 벅벅 닦고 있는 자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 일 후에 산동악가가 도착하니 앞으로 이틀 후부터 외인의 출입은 금지될 것이다.

 “하하! 굳이 이틀씩이나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가씨께서 알려주신 것 덕택에 고민하던 것을 풀 수 있었거든요.”

 “고민이 해결되었나요?”

 자명이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남궁화란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다.

 남궁화란은 왠지 모를 불쾌감을 느꼈다. 고민을 해결했다고 좋아하는 모습이 마치 남궁세가를 벗어난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하아, 고민이 풀려 심상을 다듬을 수 있었다니 잘됐네요.”

 “저기, 그런데요, 아가씨. 얼굴이 안되어 보입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남궁화란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이를 시켜서 전해도 될 일을 굳이 직접 찾아온 것도, 그의 고민이 해결되었음을 서운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을 대신 채운 것은 자신이 명성에 얽매여 남궁세가를 다그쳤을지도 모른다는 복잡한 생각이었다.

 남궁화란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리고 설혹 무슨 일이 있었다 한들 그대가 특별히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심상을 정리했다니 나는 그대가 이만 떠나주기를 원해요.”

 남궁화란이 평소보다 훨씬 차갑게 말하자 자명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정이 들었는데 이렇게 헤어지기는 너무나 아쉬웠다.

 하지만 어떻게든 다시 말을 붙여보려 해도 남궁화란의 차가운 얼굴은 도무지 틈을 내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자명은 결국 머리를 숙여 보이고 자리를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부디 보중하세요, 아가씨.”

 “화공께서도 보중하세요.”

 남궁화란이 차갑게 말하자 자명은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꼈다.

 자명은 주눅 든 얼굴로 흘끔흘끔 남궁화란을 바라보다가, 결국 연무장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남궁화란이 자명을 불러 세웠다.

 “진 화공.”

 “예……?”

 “그대는 아직도 남궁세가를 갑갑하다 여기고 있나요?”

 자명이 고개를 돌려 남궁화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얼굴에는 여전히 짙은 피로가 머물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은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자명은 몰랐지만 그녀의 마음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자명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예, 조금.”

 “약속하지요. 그대가 다시 남궁세가를 찾을 때에는 갑갑함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자명은 남궁화란의 말을 쉽게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말을 마친 그녀의 얼굴은 후련해 보였다. 알 수 없는 회한과 후회가 있었지만, 짐을 벗어버린 이처럼 홀가분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명은 모처럼 안쓰러운 미소가 아닌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예. 그림이 완성되면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남궁화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명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비우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일다경도 채 지나지 않아 자명이 모습을 감추었다.

 한참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던 남궁화란은 그때서야 고개를 폭 숙이고는 자그맣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진 화공.”

 그녀의 조그마한 속삭임을 들은 것은 바닥에 그려진 한 점의 구름뿐이었다. 구름은 당장에라도 비를 부를 것처럼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한낱 그림 주제에 진짜 구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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